ㆍ마지막 남은 성냥공장 경북 의성 ‘성광성냥’
성냥 제조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성냥 공장에서 잔뼈가 굵은 이순명씨(56)가 거친 손으로 성냥개비를 다듬고 있다.
나도 한때는 화르를 타올라 옹이진 세월을 밝혔다. 이제 그 불빛 사라져가도 추억은 꺼지지 않는다
직원들이 자동생산라인에서 불량 제품을 골라내고 있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펴야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었던 시절. 우리 어머니들의 부뚜막 한쪽에는 성냥이 놓여 있었다. 성냥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개화기 무렵이다. 당시 성냥은 비누와 더불어 서민 생활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서구문물의 대명사였다. 인천에 처음 생긴 이후 성냥 공장은 1970년대 후반까지 전국적으로 300여개에 이를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한국직업사전에서 사라진 ‘성냥 제조원’이라는 직업 명칭도 이때 생겼다. 그러나 일회용 라이터와 가스레인지 등의 출현으로 지금은 성냥갑을 찾아 보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경북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 ‘성광성냥’은 국내에 남은 유일한 성냥 공장이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허름한 건물에 들어서자 머리에 빨간 모자를 쓴 성냥개비들이 낡은 윤전기에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18살에 성냥 공장 일을 시작한 손진국 사장(74)이 56년째 꿋꿋이 불꽃 가업을 지켜오고 있는 곳이다. “한때는 종업원이 300명도 넘었지. 당시에는 성냥 없는 집이 없었는기라. 촌에서는 물에 젖을까봐 신주처럼 잘 모셨지.”
손씨가 오래전부터 만들어온 통성냥 상표는 ‘향로성냥’과 ‘덕용성냥’이다. “우리 성광성냥이 아래로는 부산에서 위로는 강원 고성까지 안 간 데가 없었능기라. 하지만 지금은 식당이나 다방 판촉용 상품으로 겨우 명맥을 잇고 있지. 기계를 세워 놓아야 하는 날도 많으니 뭐가 신이 나겠어? 종업원들이라고 해봤자 뭐, 성냥 공장에는 아가씨들이 많은 줄 알겠지만 지금은 오십 넘은 동네 아줌마 7명이 다인기라.”
낡은 윤전기에서 머리에 빨간 모자를 쓴 성냥개비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