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때보다 갈때가 더 춥고 눈이 더 많이 쏟아집니다.
나는 큰 형의 등에 업혀 그 먼길을 갑니다.
가다가 날이저물면 산중의 빈집에 들어가 잠을 잡니다.
큰 형에게 고마운 생각이 납니다.
여름에는 어머니 등에 업혀 가다가 어머니가 충에 맞아 돌아가시고
이제는 또 큰 형에게 업혀 청주로 오니 형의 고생이 이루말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온갖 고생을 하다가 드디어 집에 이르니
이승만 대통령도 양심 쪼가리가 남아 있는지 국민들에게 미안한지
한달에 두번씩 배급을 줍니다.
그덕에 우리는 굶지는 않앗지만 세간살이가 없어 애를 먹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니던 교동 국민학교에서 통지가 날라왔는데
앞으로 2달동안 밤 늦도록 남어지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나는 또 학교에 가서 밤 8시 까지 전등을 켜 놓고 공부를 합니다.
큰 형도 청주 농업고등학교를 졸업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너무 고생을 하여 그런지 병이들어 자리에 눕습니다.
나는 밤 늦도록 공부하다가 아픈 다리를 끌며 집에오면
방에 불이 꺼져 있습니다.
내가 들어가 전등을 켜자 큰 형이 누워 앓고 있습니다.
작은 형은 큰 형과 싸우고 집을 나간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매일 밥을 합니다.
나는 학교에서 공부하지만 내 생각은 항상 집에 누워 있는 큰형 생각뿐입니다.
너무 불쌍한데 도와줄 사람이 한명도 없잖은가?
(계속)
첫댓글 에효~그넘에 삶이 순탄치 않으니.
어서오세요 감바우님
제가 표현이 좀 부족헤 30번 이상을 얼아죽을 뻔한 이야길
올리지 못한답니다., 그 추위에 맨발에 검정고무신을 신고
겨울 피난을 갖다왔는데도 동상 한 번 안걸렸어요
전쟁그리 무서운거지요 삶을 송도리채 우애가 남다으네요 감사드려요 ~
어서오세요 해바라3님 감사합니다.
그해 겨울이유난히 추웠어요, UN군들이 많이 얼어죽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