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예쁜 종아리 (외 2편)
황인숙
오르막길이
배가 더 나오고
무릎관절에도 나쁘고
발목이 더 굵어지고 종아리가 미워진다면
얼마나 더 싫을까
나는 얼마나 더 힘들까
내가 사는 동네에는 오르막길이 많네
게다가 지름길은 꼭 오르막이지
마치 내 삶처럼
친구의 엑스와이프
친구의 엑스와이프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도 무척이나
나한테나 잘해!
친구는 입을 비죽거리겠지만
너는 아무 때나 흔해터지게 볼 수 있고,
네 엑스와이프는 이제
만나기 힘들어졌지
너 때문에!
헤헤, 특유의 애교스러운 웃음소리 귀에 선한데
잘 웃는데 어딘지 슬퍼 보인 얼굴 눈에 선한데
친구 앞에선 이름도 꺼낼 수 없다
나를 엑스친구 만들까 봐서
친구가 사랑했던 친구의 엑스와이프
다른 사람 아내 된 지 좀 된
친구의 엑스와이프
죽은 사람은 외로워
― 나 아무래도 안 좋은가 봐.
꿈도 이상한 꿈만 계속 꾸고
어제는 생전 안 나타나던 길순이가
명림이랑 같이 집에 온 거야. 깜짝 놀라서
“길순아, 너 죽었잖아?!” 그랬다?
조직 검사 결과를 며칠 앞둔 언니가
겁먹은 목소리로 전화했다.
― 동네 의사가 괜찮을 거라 했다며?
마음 편히 가져.
너무 불안해하니까 당연히 그런 꿈을 꾸지.
그나저나 죽은 사람한테
“너 죽었잖아?”라니, 잔인하다.
― 놀라서 그랬지 뭐, 이상하잖아.
― 그러니까 길순 언니가 뭐래?
― 몰라, 그러고 나서 깼어.
매일 30분씩 훌라후프 돌리기
한 시간 조깅
30분 수영
저녁 6시 이후는 금식
이렇게 사는 언니는 “죽는 건 무섭지 않은데……”라는 와중에
제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내 체중을 묻는다.
차마 바로 대지 못하고 좀 뺐는데도 언니가 기함을 한다.
― 미쳤다, 너! 그럼 너 허리선도 없겠네? 어떡하니!
이 인간 오래 살겠네.
― 그렇지, 뭐.
건강검진 받아라. 특히 대장 내시경을 해야 한다. 군것질 끊어라. 6시 이후에는 먹지 마라. 운동해라. 많이 걸어라. 땅콩은 백해무익이니 먹지 마라. 아몬드랑 호두 챙겨 먹어라 등등.
뜨끔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한.
피가 되고 살은 안 될 말씀을 들려주시느라 언니는 생기발랄해지고
즐겁게 말을 늘이다가
이제 수화기 들고 있기 힘들다는 내 호소에 깔깔 웃으며
“그래, 오래 통화했네!”
끊기 힘들어서 받기 두려워라, 언니의 전화.
나는 진심
길순 언니 대답이 궁금했다. 우리가
죽은 사람을 만나는 걸
꺼리지 않는다면,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죽는 게 그렇게나
무섭지 않을 텐데.
―시집 『내 삶의 예쁜 종아리』 2022.11
---------------------
황인숙 / 1958년 서울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슬픔이 나를 깨운다』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자명한 산책』 『리스본행 야간열차』 『내 삶의 예쁜 종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