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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_김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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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인의 심복인 내금위 종사관. 과묵한 성격에 뛰어난 무술실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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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世宗 (1397년-1450년)/ 13세~54세_김상경 휘(諱)는 도(?). 군호는 충녕(忠寧) | |
외로운 사람이다. 왕실에서 왕자로 태어나, 삼자(三子)임에도 본의 아니게 세자가 되고 또한 군왕이 되어서 그는 외롭다. 아니 어쩌면 이런 파행을 거쳐 왕이 되지 않았다 해도 군왕이라는 자들이 원래 다 외롭다. 그의 결정이 많은 이의 행불행을 좌우하고, 때로는 그의 결정이 전쟁을 만들기도 하여 하 많은 사람들의 목숨마저 좌지우지 하니, 그 결정을 쉼 없이 해야 하는 자에게 외로움은 어쩌면 숙명이다.
추운 겨울날, 삭풍에 사정없이 흔들리는 용포를 수습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묵연히 서 있는 뒷모습, 그것이 그의 이미지다. 가장 아끼는 신하를 정적들로부터 보호하지 못했을 때, 하여 그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을 때 종당에는 아내마저 폐서인을 하여 내쳐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원치 않은 여인네를 품어야 했을 때, 전쟁을 하자 한 신하들을 설득하여 화친을 했으나 그 결정으로 인해 수많은 백성들의 목숨을 날려야 했을 때, 대국에게 실리를 위해 자존심 버리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을 때 그는 바로 저 뒷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어깨에 얼마나 많은 한숨과 눈물이 배어 있었을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외롭지 않은 사람이다. 소년시절부터 서충(書蟲)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배우고 때로 익히는 것을 진심으로 즐길 줄 아는 이라서, 설령 폐서인이 되더라도 당신의 진정을 의심치도 또한 당신을 원망치도 않겠다한 맘결 고운 아내 소헌이 있어서, 정치의 저 모진 삭풍을 온몸으로 함께 막겠다한 충직한 신하들이 있어서, 때로는 기껍게 때로는 아프게 사랑해야 할 백성들이 있어서 그는 외롭지 않다. 무엇보다 꿈이 있으므로 그는 외롭지 않다. 만인지상인 자신으로부터 그저 평범한 하나하나의 백성에 이르기까지 조선에 난 것을 기껍다 여길 만큼 아름다운 나라를 건설할 꿈이 있는데 그가 어찌 외로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그는 꿈이 가지는 큰 위력을 아는 자다. 혼자 꾸는 꿈은 그저 꿈일 뿐이지만 여럿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진실에 먼저 눈뜬 자. 그래서였을 것이다. 우리민족 최고의 문화유산이자 지적자산인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은... 500여년 전 그가 목 놓아 강변했던 그 소리가 들려온다.
“조선의 말에 걸맞는 조선의 글, 우리 고유의 글이 필요하다. 나는 이를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이름 할 것이다. 조선이 천하대국이 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이민족을 칼로써 누르고 영토를 크게 확장하는 것보다 더 크고 가치있는 길은 천하의 백성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문화대국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조선이 문화대국으로 우뚝 서는 순간, 온 나라 민족은 앞 다투어 조선의 언어를 배우고자 할 것이며, 허면 이 나라 조선의 민족혼은 천하로 뻗어나가게 될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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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1374년-1430년)30대 후반_조성하 | |
효령과 충녕의 스승이 되는 자다. 온갖 비리와 전횡이 난무하던 고려왕조도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하였으며 결국 정도전 같은 유능한 신하를 권력을 위해 버렸던 조선 왕실도 모두 마뜩치 않아 하는 인사다. 그래서 1408년 태종으로부터 왕자들로 하여금 무식이나 면하게 하라는 어명을 받고 효령과 충녕을 가르치게 되나 처음에는 큰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시간이나 때울 요량으로 수수께끼 같은 주제를 과제로 던졌을 때 이를 깊이 있게 궁구하여 ‘실천궁행’의 길까지 모색하는 세종에게 감명을 받아 열의를 가지고 그의 교육에 힘쓴다. 군왕 세종에게 “백성의 하늘은 밥”이라는 단순하나 엄준한 진실을 현실 속에서 가르친 것도 그고, 배움은 실천을 담보로 하지 않으면 마른 나무 껍질처럼 그저 건조할 뿐이라는 지식인, 나아가 지도자의 마땅한 마음가짐을 가르친 것도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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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온(1375~1418)35새-40대 중반_최상훈 | |
세종의 장인이자, 정치스승격인 인물. 태종이 선위하여 세종이 즉위하자 영의정으로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갔을 때, 아우인 도총제 심정이 상왕의 군국(軍國) 대사(大事) 처리에 불만을 말하는 것을 병조판서 박습(朴習)이 밀고하여 옥사가 일어나 그 수괴로 지목되어 귀국 도중 의주에서 체포된 뒤 수원에서 사사(賜死)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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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지(1396~1478)10대 후반_이진우 | |
경서에서 산학, 천문, 지리 음운학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는 천재형의 인간.
세종이 충녕대군 시절부터 교유했던 인물로 세종이 저위(儲位/세자위)를 받아들일까 말까로 고민할 때, 이 나라 조선을 가장 사랑할 용의가 있다면 그 자리를 물리치면 안 된다고 용기를 주었던 인물. 후일 훈민정음 창제에도 크게 공헌한 바 있는 인물로 세종이 신하라기보다는 벗으로 여긴 평생의 지음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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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1380-1436)30대 중반_이원종 | |
활달하고 이해심 많고 끈기 있는 성품의 소유자. 그러나 한 번 술독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두주불사(斗酒不辭)라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하여 술 때문에 순군옥에 여러 번 갇히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는 취중에 교서를 작성해도 임금의 뜻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무난하고 이해심 많은 성품, 게다가 태종과 세종의 총애를 동시에 받은 인물이므로 세종의 초정 무렵, 현왕 세종과 상왕 태종사이를 오가며 그들의 의견을 조율하여 갈등을 최소화 하는데 크게 공헌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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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생몰연대 미상)_이천희 | |
기녀 소생의 동래현의 관노 출신으로 조선 최고의 과학 기술자다. 제련(製鍊) ·축성(築城) ·농기구 ·무기 등의 수리에 뛰어났던 그는 1423년(세종 5) 군왕 세종의 특명으로 발탁, 상의원(尙衣院) 별좌가 되면서 노예의 신분을 벗는다. 반상의 구분이 엄연했던 당시 조선사회로서는 혁신적인 일이었다.
이후 세종의 특명을 받고 명나라에 건너가 갖은 핍박을 감내하며 진보적인 과학기술을 습득하였을 뿐 아니라,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창의성을 결합, 천체관측용 대 ·소간의, 휴대용 해시계 현주일구와 천평일구, 고정된 정남일구, 앙부일구, 주야(晝夜) 겸용의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태양의 고도와 출몰을 측정하는 규표(圭表), 자격루의 일종인 흠경각(欽敬閣)의 옥루(玉漏)를 제작 완성하였다. 특히 1441년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와 수표를 발명하여 하천의 범람을 미리 알 수 있게 했다. 그 공으로 상호군으로 특진되어 당상관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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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1376~1451)_전현 | |
조선 초기 과학자이자 무신. 과학자. 경자자, 갑인자를 만드는 등 세종대의 인쇄술 발달에 크게 공헌했고 간의, 혼의, 앙부일구 등 천문기구의 제작을 지휘했다. 평안도 도절제사로 여진족을 토벌하고 4군의 설치를 건의해 실현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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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해산(1380년-1443)_이대연 | |
고려말 최초로 화약을 개발, 왜구를 물리친 최무선의 아들로 아버지의 유명에 따라 화약수간 및 화포의 비법을 전수 받아 신무기 개발에 주력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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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리(1398∼1456)10대중반_이성민 | |
꼬장꼬장한 성품의 원칙주의자. 1419년(세종 1) 생원으로 증광문과에 급제, 홍문관에 기용되어 집현전박사를 겸임.조말생과 함께 세종정부의 합리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며 지나치게 개혁적인 정책들에 반대하기도 했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뒤 1444년 6조목의 이유를 들어 이를 반대, 한때 세종의 노여움을 사기도 했으나 그는 조선시대의 청백리로 꼽히는 인물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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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자치(출생연대 미상-)_윤기원 | |
태조 조 아기내관으로 출발하여 세종, 문종, 단종 삼대에 걸쳐 근시노릇을 한 인물. 충녕대군의 어린 시절, 위기에 처한 충녕대군을 목숨을 걸고 구해준게 인연이 돼 세종의 근시가 된다. 후일 태조의 근시였던 김사행이 남겨둔 비밀지도의 존재를 알게 되고 또한 이것이 범궐을 꿈꾸는 무리들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을 밝혀 내는 데 크게 공헌한다. 그 후 세종의 눈과 귀 역할을 하며 야인정벌과 훈민정음 창제 비밀프로젝트 수행시 비밀 정보원 노릇을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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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지_문천식 | |
엄자치와 함께 상촉방 내관. 어린시절 명나라에 환관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이력으로 외국어에 능해 왕자 충녕의 외국어 스승 역할을 하기도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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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_조재완 | |
어린시절 왕자 충녕의 내관. 어린시절 궁에 들어와 내관으로 지내면서 유난히 품성이 착하고 어진 충녕에게 매력을 느낀다. 가끔 몰래 가출을 해 잠행을 하는 충녕에게 손사래를 치면서도 백성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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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대군(讓寧大君, 1394~1462) 16세-50대까지_박상민 태종의 장남. 휘(諱)는 제(?) |
활달한 성품에 매혹적인 달변의 그는 타고난 보스다. 그의 나이 십 세, 왕세자로 책봉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아버지 태종의 핵심 참모요, 정치동지였던 외숙 민무구 민무질의 손에 맡겨져 권력을 주무르는 능력마저 보태니 보스로서 나무랄 데가 없는 인물이다.
그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구분이 너무도 분명했던 인물이다. 그 발 앞에 충성 서약을 한 충복은 지옥 불 속에 들어가서라도 꺼내올 의리를 지녔으나 자신에게 맞서는 자에게는 철퇴를 내리치는 것도 마다치 않을 비정을 품은 자, 어쩌면 아버지 태종의 성정을 그대로 빼어 닮은 유일한 아들, 그가 바로 양녕이다.
그는 호전적인 정복자다. 양녕은 호방함과 뛰어난 무재 또한 아버지 태종을 그대로 빼 닮았다. 아니 어쩌면 그 호방함(?)은 아버지 태종을 능가했을지 몰랐다. 요동, 그것은 양녕의 피를 끓게 하는 도전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래서 양녕은 아버지 태종을 일면 불신했다. 개국 5년 정도전은 요동정벌을 천명했다. 아비는 그런 정도전이 노여웠고, 그의 입장을 조선 전체의 입장이라 여겨 등 돌릴 대명(大明)이 두려워 그를 거세했다고 믿었다. 국제관계와 외교적 역학을 알기에 그는 어쩌면 너무 어렸고, 또한 공부가 부족했으며 무엇보다 힘써 궁구할 성의가 없었다. 그래서 한어(漢語/중국어)를 공부하며 지명극명(知明克明)을 해 보고자 하는 아우 충녕의 깊은 속내를 헤아려 볼 의사를 품지 않았으며 명국 사신을 향해 그 호전성을 가감 없이 드러냄으로써 조명외교의 심각한 걸림돌을 놓기도 했다.
권리에 밝았으나 의무에 어두웠으니 군주라는 열매를 얻기 위해 얼마나 수많은 노력과 땀을 묻어야 하는지 알았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그는 국본의 자리를 놓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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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1363~1452)47세_김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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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처리의 귀재. 그러나 모질지 않은 성품 탓에 청탁 뇌물 수수 등의 비리사건에 자주 연루된다. 세종에게 중용되어 조선 최고의 명재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자나, 초정 무렵 세종의 강력한 정적이었다. 특히 세종이 충녕대군 시절, 세자로 책봉되는 것을 극력 반대해 관직을 잃고 유배되기도 한다. 그러나 후일 세종의 인격과 군왕으로서의 자질에 감복하여 23년간 정승으로 재임하며 조선의 정치를 이끄는 브레인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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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무구(?~1410)40대 초반_김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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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비 원경왕후의 동생.
1398년 제1차왕자의 난 때부터 매형이자 후일의 군왕 태종으로 등극하게 되는 이방원과 뜻을 같이한 정치동지다. 차분하고 냉혹한 성품의 그는 세자 양녕의 국본으로서의 자질이 심각하게 의심받자 효령, 충녕, 성녕 등 모든 왕자를 거세할 무모한 꿈을 꾸기도 한다. 결국 태종의 손에 사사되는 비운을 맞게 되는 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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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무질(?~1410)30대 후반_이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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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제 1 차 왕자의 난 때부터 태종과 뜻을 같이해온 자다. 형 무구에 비해 성품이 무르고 우유부단한 일면을 갖고 있다. 민무구가 비정한 정치꾼이라면 민무질은 문약한 학인의 전형이랄까. 그러나 시대는 이 심약한 학인에게조차 권력을 향한 쟁투를 부채질 한다. 결국 그 역시 형 무구와 함께 태종의 손에 사사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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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무회(?-1416)_이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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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비 원경왕후의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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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무휼(?-1416)_김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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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비 원경왕후의 동생
형 민무구 민무질이 태종에게 사사된후 정치적인 행보를 제약받자 조심스럽게 재기와 복수를 꿈꾼다. 세자 양녕의 실질적인 후원자 역할을 하며 형들의 원한을 갚고자 기회를 엿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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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계량(1369-1430)40대 중반_김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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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낸 문재로 특히 외교 문서에 능통했던 이다. 그는 관직 생활 대부분을 학관직에 종사하여 세종 대의 학문적 기반을 닦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대표적인 문형(文衡)이었다. 예문관과 집현전에 주로 근무하며 태종 대와 세종 초의 외교 문서 작성을 거의 전담하다시피 했고, 많은 학사들을 길러냄으로써 세종의 문치주의에 획기적인 공헌을 했다.
그러나 그 성품이 편벽하고 특히 여성에 대한 혐오감이 심해 아내를 학대하여 파직의 위기를 맞을 정도로 괴벽한 일면이 있는 인물. 이는 음탕했던 누이와 그 딸로 인해 여러 차례의 정치적인 위기를 맞게 된 일이 있는 바, 그 스트레스에서 기인한 바가 큰 듯 하다.
이런 그를 세종은 여인네를 나아가 인간을 사랑하는 길을 성심성의껏 일깨우며 그의 장점을 높이사 곁에 두고 귀히 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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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1390~1453)_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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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하고 꼼꼼한 일면 호방하고 추진력이 강한 일면도 가진 인물이다. 혈기방장한 젊은 시절에는 정도전의 실각과 그로 인해 요동정벌이 좌초된 것을 불만스럽게 여겨, 요동에 대한 꿈을 설파하며 호언하는 양녕의 측근을 자처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세종의 초정 무렵에는 강력한 반대세력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후일 세종의 현실적인 외교론과 타당성 있는 북벌론에 동의, 평생 그의 충복으로 살아가며 육진 개척에 일생을 바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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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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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로(1367-?)43세_최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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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대군의 장인. 치부와 권력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기회주의자. 사행길에는 상단의 뒷배를 자처해 치부를 꾀하고, 여식이 세자빈으로 간택되자 그 권세를 믿고 전횡을 일삼는가 하면, 사위 양녕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여식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는 것조차 아랑곳 하지 않으며 기녀 어리를 사저에 은닉했다가 은밀히 입궁시켜주는 행위 또한 마다치 않는다.
양녕이 폐세자 되자, 결국 부와 권세를 모두 날리고 몰락의 길을 걷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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