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북천, 이병주 작가
어쩌다 이병주 작가의 작품세계를 토론하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고사리 작업 중에도 틈만 나면 옛날 봤던 이병주 작가의 단편집 두 권을 놓고 번갈아가며 다시 펼쳤다. 깨알같이 잔글씨에도 내 눈은 맞추어진 것인지 책장이 잘 넘어간다. 건성으로 읽는 게 아니라 집중을 해서 읽게 되니 책을 덮고 나면 몇 시간을 눈앞의 사물이 제 구실을 못한다.
중편소설 <알렉산드리아>로부터 <박사 상회>, <쥘부채>, <마술사>, <겨울밤>, <망명의 늪>등 오래전에 출간된 단편집 두 권을 읽고 나니 작가 이병주의 고뇌와 사상이 보였다. 작품 전체에 깔려있는 색깔은 허무주의 혹은 회색주의, 혹은 아류에 편성해야 산다는 의미와 분노할 줄 모르고 현실에 적응도 못하고 떠도는 우유부단한 주인공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폭로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작가 이병주의 작품을 접한 것이 언제인지 확실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우연히 <여인의 백야>라는 장편을 읽게 되면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나는 한 작가에게 꽂히면 그의 작품을 대부분 섭렵하는 성질인데 오래전에 읽은 것들은 제목이나 내용조차 기억할 수가 없다. 이병주 작가 하면 대하소설 <지리산>이 먼저 떠오를 뿐이었다.
내 고향이 바로 지리산 밑이다. 빨갱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들으며 자랐다. 6.25 동란 때 북한군이 지리산을 점령했을 당시 우리 집 텃밭에 가마솥을 걸고 북한군을 위해 밥을 했다는 친정엄마와 숙모님, 고모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북한군인은 예의가 발랐다는 것, 동네 소를 끌고 와 잡아먹어도 꼭 주인에게 소 값을 치렀다는 것, 북한군 소위는 참 잘 생기고 예의가 발랐다는 것과 엄마와 의동생을 맺고 지내다는 것, 북으로 철수하면서 언젠가 통일이 되어 남한에 다시 오면 꼭 찾겠다는 약속을 주고받았지만 아마도 동란 중에 죽었지 싶다는 것, 마지막 빨치산으로 끝내 전향하지 않고 장기수로 살다 간 정순덕은 엄마의 친구였다. 아직도 그녀의 시댁 식구들은 고향에 산다.
내가 아는 정순덕은 순하고 착한 촌부였다. 빨치산을 따라간 남편 때문에 경찰과 군인들에게 시달리다 못해 남편을 찾으러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된 여자,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16년을 토굴에 숨어 짐승처럼 살았다는 여자, 나는 늘 정순덕 그녀를 생각하면 엄마가 떠오른다.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고 동네 사람들끼리 반목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 동네는 음력 구월 구일 날 제사가 없는 집이 거의 없다. 우리 집 빼고 집집마다 한 두 사람씩은 산사람을 따라가 행방불명되거나 죽었다고 했다. 연좌제에 걸려 공무원도 할 수 없었던 후손들이 살았다.
아버지 역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다. 밤중에 들이닥친 빨치산이 총부리를 겨누며 나락 섬을 지고 지리산으로 가자고 했단다. 우리 집 뒤의 이방 산을 넘어가는데 일부러 나락 섬을 떨어뜨리고 산비탈로 굴렀단다. 그때 다친 다리의 상처를 보여주며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라 그나마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회상했었다. 외삼촌이 경찰이었고, 삼촌이 군인이었던 덕에 동네 따돌림을 오랫동안 받았다. 공화당 신민당 시절에도 신민당을 지지하던 아랫집 아저씨의 노골적인 저주를 받은 적도 많았다. 우리 동네는 창녕 조 씨 집성촌이었고, 타성바지는 우리 집 뿐이었으니까.
지리산은 내 어린 기억속의 삽화와 합쳐져서 더 흥미진진하게 읽었는지 모른다. 빨갱이라는 말에 공산당은 얼굴이 새빨갛게 생긴 줄 알았던 적도 있었다. 무조건 빨갱이라면 무서운 존재, 피해야할 존재로 알았었다. 그 역사관을 교정하게 된 것이 바로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내가 배운 역사가 왜곡된 것일 수도 있다는 자각을 그 때 처음으로 했던 것이다. 토론자의 단상에 올랐던 박 시인이 지리산을 읽고 생각의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말에 문득 떠올랐다. 그 뒤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 1, 2권>을 읽었다. 저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까지 내가 알던 역사관에 수정을 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병주 작가의 단편을 중심으로 한 토론회는 소설가로서 정체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작중 인물을 어떻게 그리는 것이 내가 쓰고자 하는 소설 속 인물일까. 이병주 작가의 작품 속의 화자처럼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지 못하면 낙오자로 구차하게 살다 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말을 한다. 우리 삶 자체가 평범한 것이 아닐까. 개개인의 삶을 돌아보면 특별하지 않은 삶이 없는데도 우리는 평범하게 산다고 한다. 남의 이목을 집중 시킬 만큼 재력과 권력을 가지지 않은 이상, 우리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작가는 그 평범한 소시민이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설파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는 나름 독자적인 노선으로 소설을 썼다. 어떤 숲을 뜻하는 나림이라는 그의 호처럼. 덕분에 나는 내 소설속의 인물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 역시 작중인물을 통해 내면에 든 나를 끄집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토론장의 마지막에서 발표자는 김윤식 평론가의 말을 빌려 소설과 이야기는 다르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하기 어렵다. 소설이 곧 이야기니까. 소설 구성에 맞게 짜 맞추어 쓴 것이 소설이고 이병주 작가의 소설처럼 이야기로 엮은 것은 소설이 아니라니. 오히려 이병주 작가의 소설이 소설 아닐까. 치밀하게 계획되어 완성된 소설, 거기에 작가의 내면이 햇볕에 녹아 풀잎이나 땅으로 스며드는 이슬처럼 녹아들 수 있을까. 소설은 이야기다. 이야기를 쓰는 것은 이야기꾼이고 이야기꾼은 소설가다. 내 생각은 그렇다. 소설가는 기록자이자 증언자라고 한 겨울밤 속의 작중 인물 나는 바로 작가의 말이다. 역사적 흐름을 짚어가는 것만이 기록이 아니다. 소소한 개개인의 삶을 되살려놓는 일도 기록이다. 소설은 작중인물을 통한 개인의 삶을 엿보게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 스스로 정의를 내리면 나 역시 기록자의 자세가 아닐까. 내 눈으로 보고, 듣고, 느낀 시골 사람들, 그들이 사는 모습 속에 투영된 내가 사는 모습을 소설 속에 반영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남의 잣대로 봤을 성공한 인생이나 실패한 인생이지 내 잣대로 봤을 때는 다를 수 있다. 누구나 한 세상을 살다 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각자 나름대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며 그 속에서 행복하면 잘 살다 가는 인생이다. 혹독하다 싶어도 살아내고, 편안하다 싶어도 살아내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 속에 내재된 것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떤 환경과 여건에서도 살아가게 되어 있다는 거다.
토론회는 유익했다. 참석자도 토론자도 모두 생각 나무 한 그루 심고 나왔지 싶다. 뒤풀이로 하동북천의 너른 들을 장식한 양귀비꽃들의 매혹 속에 빨려든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