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이 두려워하는 것
글쓴이/봉민근
지금은 아파트에서 많이 살기 때문에 큰 개를 별로 기르지 않지만
예전에 개를 기르는 집에 가면 대문에 개조심이라는 글들을 종종 볼 수가 있었다.
사실 개가 많이 짖는 이유는 낯선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사람이 큰 개를 만나면 두려워하지만 개 역시 사람이 두렵다.
사탄도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사람이 늘 사탄의 시험이나 유혹을 두려워하고 경계하지만
사탄 역시도 진짜 예수쟁이를 만나면 두려워한다.
예수 이름 앞에 사탄은 결박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도는 사탄을 두려움에 빠지게 한다.
기도는 사탄을 쫓아내는 능력과 권세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을 당해 낼 장사는 없다.
누가 세상을 능력 있고 당당하게 살아 가는가?
누가 강단에서 능력 있는 설교를 하는가?
누가 능력 있게 복음 전하는가?
기도를 빼고 믿음을 이야기할 수가 없다.
기도하는 한 사람을 당할 자는 없다.
학벌과 재능이나 부유함이 세상의 힘이 아니라 기도가 힘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를 이길자는 없다.
역사는 기도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예수이름이 세상의 권세요 능력이다.☆자료/ⓒ창골산 봉서방
소망이라는 것은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존재가 된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소망의 관점이라는 면에서 말하자면
새로운 소망을 위해 거듭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소망은 천국에 대한 소망이며
천국복음이 편만하게 증거 되어지는 것에 대한 소망이고,
장차 그리스도를 영광 가운데 만나 뵈옵게 될 것에 대한 소망입니다.
교회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광이
충만해지는 것에 대한 소망이며,
예배 가운데 부흥이 일어나는 것에 대한 소망입니다.
연약한 자들이 강건하게 됨에 대한 소망이며
무지한 자들이 지혜롭게 되는 것에 대한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이라는 것은 변화된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벧전3:15 ☆자료/ⓒ창골산 봉서방
나에게 선포하는 복음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지 못한 자가 말하는 정의는
왜곡된 정의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정의는 그것을 말하는 자의
인격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진실한 자들이
정직한 자들이
정의를 논할 때 사람들은 귀를 기울입니다.
복음 또한 그렇습니다.
복음은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고
그 자체로 강력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전하는 자들이
올바른 됨됨이를 가지지 못했다면,
그는 오히려 복음을 방해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신자는 반드시 타인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에게 먼저 선포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스스로를 복종시켜야 합니다.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9:14 ☆자료/ⓒ창골산 봉서방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큰 죄인
교만은 우리에게
부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 찰스 스펄전
신앙생활이 오래될수록
가난한 심령이 사라집니다.
자기 스스로 꽉 찬 상태인
교만함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것이 교만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큰 죄인으로 서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음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상한 심령으로
주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형통의 비법
형통의 비법을 구하는 것은
대부분은 이 땅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에게
늘 있어왔던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잘 살아야하고 성공해야하고 평안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있는 형통의 기준은 다양합니다.
건강에 약간의 문제가 있더라도 성공하는 것을
형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성공은 하지 못하더라도 건강하고 평안하게 사는 것이
형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각자의 기호에 따라 형통의 메뉴판은 언제든지 달라집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이라는 것은
사실 이 땅에 관한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창조 이래 단 한 번도 변하지 않는 형통의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록된 그 말씀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바로 형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그분이 바로 우리의 형통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신명기 29 ☆자료/ⓒ창골산 봉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