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요즘 어디에 간들 은행나무가 없으랴만 은행나무를 보러 양평 용문사를 가기로 했다. 사실 시내에서도 조금만 눈여겨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은행나무다. 그것도 가을이면 황금빛 유난히 샛노란 단풍 덕분에 쉽게 식별이 된다.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다.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어 수나무에서 날아온 꽃가루가 있어야 수정을 하고 열매를 맺는다. 암나무는 나무 형태가 펑퍼짐하게 벌어지는데 수나무는 뾰족하다 싶게 줄기나 가지가 옆으로 퍼지기보다 대부분 위쪽으로 자란다. 은행나무는 싹이 튼 지 20년 이상은 지나야 비로소 열매를 맺기 시작하므로 씨를 심어 손자를 볼 나이에 열매를 얻을 수 있다하여 공손수(公孫樹)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묘목에 접을 붙여 열매 맺는 시기도 획기적으로 빨라졌다. 가을에 단풍이 들어 황금빛을 발하는 이파리들이 바람에 쏟아지는 모습은 보노라면 절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마치 부채모양의 금화를 흩뿌리는 것처럼 황홀하기조차 하다. 나무 밑에 수북하게 쌓아 놓은 환한 모습을 보면 그냥 부자가 된 듯한 기분에 마냥 들뜨기도 한다. 이처럼 나무는 귀티가 나고 이파리도 단풍이 들면 어느 나무에 뒤지지 않는데 열매는 농익으면 작은 살구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무의 체격이나 연륜으로 보아 조금은 조잡하니 꾀죄죄해 보이기도 한다. 씨를 둘러싸고 있는 물렁물렁한 겉껍질은 구린내 같은 냄새가 진동하다시피 하며 피부에 옴까지 올라 긁적거리며 피부염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파리에는 인체에 유익한 화합물이 많이 들어있어 혈액순환을 도와주는 징코민이란 원재료로 이파리를 수매하여 농가의 수입원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은행나무 이파리에는 방충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부틸산이 있어 잎을 책 속에 넣어두면 책이 좀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곰팡이와 벌레에 강하고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는 관상수로 도심의 수많은 자동차의 매연에 시달리며 탁한 대기 속에서도 잘 견디어내며 오래도록 살 수 있어 가로수로 많이 선호하고 있다. 은행은 구워먹으면 쫀득쫀득한 맛에 여러 요리의 재료로 쓰이며 식빵으로까지 개발도 하였다. 특히 폐와 위를 깨끗하게 해주며 진해 거담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행나무 흔드는 바람
우수수수 쏟아진 금화
횡재했다 햇살이 씽끗. - 가을
천연기념물로 지정을 받은 은행나무가 전국 곳곳에 19그루나 있다. 대전 인근만 해도 영동 천태산 영국사 은행나무, 금산 진악산 보석사 은행나무, 부여 내산면의 은행나무 등이 있다. 은행나무는 오백 년을 훌쩍 넘어 천년을 거뜬하게 살 수 있는 장수목이다. 은행나무 중에서도 왕중왕을 가린다면 아무래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가 으뜸이지 싶다. 몸통이 자그마치 11m에 키가 42m나 되는 국내서 뿐만이 아니라 동양 유실수로는 가장 큰 나무로 1962년에 이미 천연기념물 30호로 지정 받았다. 용문사는 신라 53대 신덕왕 2년(913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밖으로는 궁예와 견훤이 맹활약하던 통일신라말기로 천백 년 세월이 훌쩍 흘렀다. 수차례 중창중수 하였으나 조선조 순종 때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이 불태웠다. 그러나 천년 전통의 숨결은 쉬 끊어지지 않고 다시 신축하여 오늘에 이른다. 불과 20여 년 후인 경순왕(935년) 때에 박혁거세가 건국하고 56명의 왕을 배출하며 지켜온 992년 사직을 왕건에게 통째로 헌납하면서 신라의 멸망 고려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신라 천년의 사직이 힘없이 무너진데 분개하고 통탄을 거듭하던 마지막 황태자였던 마의태자는 신라부흥을 꿈꾸며 경주(금성)를 떠나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에 남한강변의 양평(용문)을 들렀다. 짚고 다니던 은행나무 지팡이를 꽂아놓은 것이 싹이 트고 자라서 지금의 저 우람하고도 늠름한 은행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을 담고 있으니 이는 곧 신라의 나무라 할 것이다. 대웅전 정면 앞에 서서 불심으로 다듬으며 마의태자의 원한을 저버릴 수 없어 쉬 눈 감을 수 없던 세월이 어언 천백 년을 넘었던가? 주변의 작은 나무들은 이미 샛노랗게 단풍이 들고 이파리가 지며 바닥에 수북하게 쌓였는데 천년의 노익장은 아직껏 건재를 과시하는 양 이파리가 시퍼렇다. 용문사 대웅전 정면에서 잔가지보다는 줄기 중심으로 우뚝 솟아 훤칠한 모습을 하고 한 시도 불심에서 눈길을 떼놓지 않고 비운의 황태자인 마의태자의 혼이 담긴 굵직한 눈물방울 같은 은행을 신라의 패망을 지켜보던 아픔처럼 저무는 가을날에 툭툭 떨어뜨려 바닥에 널브러져있다. 천년의 향수 같은 향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 싶다.
은행나무는 예로부터 사찰 경내에 많이 심겨져 그 인근에서 거목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세수골에서 출발하여 백년약수 한 모금 목을 축이고 백운봉 올라 남한강변을 조망하고 함왕봉 장군봉 거쳐 용문산 정상(1157m)에 닿는다. 마당바위까지 거친 비탈을 내려와 계곡 물가에서 몇몇 진액 같은 원색의 단풍과 마주했다. 수시로 용문산에 걸렸던 구름이 흘러내려 오고 바람이 거침없이 깊은 계곡을 타고 용문사로 내려와 앞뜰에 우뚝 솟은 은행나무를 담금질하여 저토록 위세 당당하니 늠름할 것이다. - 2011. 10.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