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없는 교실
오늘날의 교실은 고요한 사유의 향기보다 매끄러운 액정 화면의 불빛으로 가득합니다. 아이들은 이제 궁금한 것이 생기면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거나 자신의 내면을 파고드는 대신, 고개를 숙여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합니다.
질문하는 법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검색하는 법만을 가르치는 교육은, 지혜의 숲을 밀어버리고 정보의 사막을 만드는 일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교육이 지혜의 나무를 심는 고된 과정이었다면, 현대의 교육은 이미 가공된 목재를 빠르게 배달하는 서비스를 닮았습니다. 하지만 본디 지혜의 숲이란 아이가 스스로 질문의 씨앗을 뿌리고, 왜? 라는 비를 맞으며, 정답 없는 미로 속에서 기꺼이 길을 잃어보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길을 잃어본 아이만이 자신만의 북극성을 찾을 수 있고, 고민의 시간을 견뎌본 아이만이 지식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들이 헤매는 시간을 낭비라 부르며, 그 울창한 사유의 숲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있습니다.
숲이 사라진 자리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정보의 사막이 들어섭니다. 검색 한 번으로 쏟아지는 수만 개의 정보는 겉보기에는 풍요롭지만, 그 실상은 목마른 이에게 쥐여준 소금물과 같습니다.
검색은 타인의 생각을 수집하는 기술이지만, 질문은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예술입니다. 데이터는 파편화된 모래알에 불과하나, 지혜는 그 모래알을 빚어 만든 견고한 성입니다. 스스로 질문하지 않는 아이는 정보의 파도에 휩쓸릴 뿐, 그 파도를 타고 나아가는 서퍼가 될 수 없습니다.
검색창이 모든 답을 준다는 믿음은 아이들의 호기심이라는 근육을 퇴화시키고, 결국 사막 위를 부유하는 조각난 지식의 포로로 만듭니다. 교육의 본질은 정해진 답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답이 없는 상태를 견디는 힘을 길러주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검색의 속도보다 사유의 깊이를, 결과의 정확성보다 과정의 경이로움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이것의 이름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대신, "이것은 왜 존재하며, 너에게 어떤 의미인가?"라고 물어야 합니다.
검색창을 닫고 창문을 열 때, 데이터의 홍수를 멈추고 침묵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아이들의 내면에는 다시 푸른 싹이 돋아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정보의 사막을 다시 지혜의 숲으로 일구는 유일한 방법은, 아이들의 입술 끝에 맺힌 질문을 가장 귀한 유산으로 여겨주는 일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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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 님의 글입니다. 아주 아주 아주 공감합니다.
어떤 교장선생님이셨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평교사 시절, 연구수업이란걸 하게 되는데, 모든 과목에 시청각 기재를 꼭 사용하라 지시하셨습니다. 아마 시대가 변해가니 선생님들도 뒤떨어지지 말라는 뜻에서 그러신것 같은데, 수학과목도 문제를 파워포인트로 제시하고, 풀이도 파눠포인트로 화면에 띄우면 되지 않겠냐고 하시더군요. 난 생각이 달랐습니다. 풀이 과정을 분필로 칠판에 써 가며 학생들의 이해하는 눈 빛에 따라 첨가하기도 하고 생략하기도 하고, 학생들과 호흡하는 수업이 하고 싶었습니다. 결과는 연구수업을 다시 하라는...... 그걸 안 하고 년말까지 버텼던 나도 꽤나 악동이었나 봅니다.
어제도 Copilot에 한문을 해석시키며 허망하다는 말을 했었는데, 정보는 넘쳐나는데 걸러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독(毒)일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