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구두 수선공의 독백에 부쳐 / 문성해
나는 발목이 없는 세계를 만지는 사람
이것은 얼마나 조용하고 완벽한지!
이 위에서 얼마나 많은 혼잣말과 원망과 침과 오물과 음식이 자행되어 왔던가
얼마나 많은 왕궁과 댐이 건설되었던가
이 위에서 우주선과 3차대전과 정상회담이 떠들썩했다고 하기에
이것은 너무나 찌그러져 있고 하잘것없어 보인다
들끓는 피톨들과 움푹한 정강이뼈를 이 위에 앉히고
평생을 사는 직립의 허깨비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조이고 닦고 벗기고 사포질한다
언제든 맨발로 달아날 수 있도록 헐렁한 슬리퍼를 신고,
점심시간이면 몰려와서 삼선 슬리퍼 속에 꽂히는 유순한 발목들을 향해
나는 구두약과 본드를 들어 보이며 우스꽝스럽게 말한다
"10분만 기다려주세요. 당신들의 완벽한 발굽을 위해!"
그러면 그들은 갑자기 초식동물이 된 양 메에에, 웃는다
흰 이빨의 세계가 저토록 천연스럽다니!
나는 발목이 없는 세계에 이토록 공을 들이는 게 좋다
내가 하루 종일 침 바르고 애지중지한 이 속으로
각다귀처럼 떠들썩한 세계가 들어와서
증시장이라든지 시장통이든지 자살사이트가 기다리는 피시방이든지
대통령 취임식이든지 어디로든 흩어져 간대도 나는 도무지 궁금하지가 않다
내게는 다 달그락거리는 해골들의 각축장일 뿐,
나는 지게차 한 삽 거리도 안 되는 상자 속에서
하루 종일 냄새나는 세계를 얼굴 가까이 댄 채 닦고 덧대고 두드린다
그러면 이 세계는 내게 조용히 열어주는 것이다
조이고 덧대기 이전의 가죽의 세계를,
그 풀씨 흩날리던 되새김질의 노래를,
그 속은 언제나 조용하고 황홀하고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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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구두 수선공의 독백에 부쳐〉는
문명적 허상과 생태적 원형이라는 극명한 대비를 중심 축으로 전개된다.
본 작품의 주제는 ‘문명적 삶의 허무함에 대한 성찰과 생명 본연의 정숙한 원형 회복’이다.
시인은 수선소라는 비좁은 공간을 매개로 세 가지 층위의 이미저리를 교차시킨다.
대립적 이미저리 (세속의 허상 vs 수선공의 공간)
‘3차대전, 대통령 취임식, 자살사이트’: 인간사 진흙탕 같은 욕망과 소요를 상징한다.
‘지게차 한 삽 거리도 안 되는 상자’: 소란스러운 세상을 한 걸음 떨어져 관조하는 구도자적 공간이자 초월의 거점이다.
비하적 이미저리 (인간 존재의 비애)
‘직립의 허깨비, 각다귀, 달그락거리는 해골’: 과장된 문명 속에서 고투하지만, 수선공의 눈에는 영혼 없는 물질에 불과한 인간 존재를 냉소적으로 형상화했다.
원초적 이미저리 (생명의 본향)
‘삼선 슬리퍼, 초식동물, 풀씨, 되새김질’: 문명의 덧씌움(구두)을 벗어던질 때 비로소 드러나는 순수한 생명력이다.
수선공이 가죽을 다듬는 행위는 인공의 형태를 깎아내어 ‘태초의 가죽의 세계’라는 침묵과 황홀의 원형을 되살려내는 일종의 제의(祭儀)로 기능이라고 본다.
세속의 거친 소요와 태초의 정숙한 생명력을 대비하며 인간 존재의 허상을 짚어내는 시다.
수선공이 만지는 ‘발목 없는 구두’는 왕궁, 정상회담, 자살사이트로 대표되는 문명적 욕망과 비극이 응축된 물질이다.
시인은 그 위를 거니는 인간을 ‘직립의 허깨비’나 ‘달그락거리는 해골’로 깎아내리며 거대 서사의 덧없음을 폭로한다.
좁은 상자 안에서 가죽을 두드리는 행위는 문명의 찌꺼기를 벗겨내어, 풀씨 흩날리던 원형의 침묵과 황홀의 세계를 회복하는 구도적 제의로 승화된다.禹
문성해
출생: 1963년 경북 문경 출생
학력: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등단: 1998년 《매일신문》,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자라』, 『아주 친근한 소용돌이』, 『입술을 건너간 이름』,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내가 모르는 한 사람』 등
수상: 대구시인협회상, 김달진문학상 젊은 시인상, 시산맥 작품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