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서불택필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은 원래 ‘글씨에 능한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일정한 경지에 오른 사람은 구차하게 필요한 도구나 재료를 핑계대거나 탓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라는 뜻으로 확대 해석해 통용되고 있다. 이의 탄생 유래와 의미를 비롯한 함축하는 뜻과 조우이다.
요즘은 붓이 아니라 컴퓨터로 글을 쓰거나 문서를 작성하고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는 방법으로서 카카오 톡(Kakao Talk)이나 이메일(e-mail)을 위시하여 폰(phone) 문자 메시지를 이용하는 디지털 시대(digital age)이다. 따라서 벼루에 먹을 갈아 붓으로 글이나 문장 혹은 서찰을 쓰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때문에 젊은이들의 글씨 쓰는 수준은 옛날에 비하면 초등학교 저학년을 방불케 하는 현실이다. 이런 시대에 붓으로 글씨를 잘 쓰는 서예가(書藝家)는 찾아보기 힘들고 이따금 국전(國展)의 서예 분야 입상자 정도가 눈에 띌 뿐이다. 6.25 전쟁의 휴전 무렵부터 다녔던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에는 습자(習字)시간이라고 해서 정규수업 시간에 편성되어 있었다. 한편 그 옛날엔 글씨를 잘 쓰는 사람들은 상당한 존경을 받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그 옛날부터 중국에서 서성(書聖)으로 일컫던 왕희지(王羲之), 우리의 조선시대 한석봉(韓錫琫) 즉 한확(韓確)을 위시해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등이 그런 예이다.
능서불택필의 유래는 중국 당(唐)나라 시절 저수량(褚遂良)이 자기 서예(書藝) 실력을 평가받아 보고 싶어 평을 부탁했을 때 우세남(虞世南)이 답하던 말 중에서 비롯되었다. 출전(出典)은 ⟪신당서(新唐書)⟫ ⟨구양순전(歐陽詢傳)⟩이다. 한편 유의어로서 선장불택병(善將不擇兵), 투필성자(投筆成字)가 있다. 출전에서 전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이의 실체에 대해서 살핀다.
예나 지금이나 어떤 분야에 상당한 경륜을 쌓으면 자기가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지 확인하고픈 마음이 생기게 마련인가 보다. 그 옛날 당나라 시절 서예가 저수량도 그랬던가 보다. 그는 자기가 이제까지 열심히 서예를 갈고 닦아 조예가 깊어졌다고 자부했는지 어느 날 우세남에게 물었다. “저의 글씨 수준이 지영(智永)*에 비교할 때 어느 정도인지요?” 그 물음에 “그의 한 글자 값어치가 5만 냥이라고 하는데 그대가 어찌 그에 필적할 수 있겠는가!”라고 답했다. 그러자 저수량이 그렇다면 “구양순(歐陽詢)*과 견준다면 어떨까요?”라고 다시 물었다. 이에 대해 우세남의 답은 이랬다.
/ ..... / 내가 듣기로는 구양순은(曰 吾聞詢 : 왈 오문순) / 종이와 붓을 가리지 않고(不擇紙筆 : 불택지필) / 모두 마음 가는 대로 쓴다고 하던데(皆得如志 : 개득여지) / 그대가 어찌 그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君豈得此 : 군기득차) / ....... /
위의 내용에서 능서불택필이 비롯되었다. 이 말을 듣고 난 저수량이 또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제가 어찌해야 할까요?”라고. 이에 이렇게 답했다. “그대가 앞으로 손이 부드러워지고 붓과 어울린다면 꼭 더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싶네.”라고. 결국 우세남의 드높은 가르침에 저수량은 크게 깨우침을 얻으면서 매우 기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당나라에는 서예 분야에 뛰어난 대가들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 당초사대가(唐初四大家)로 꼽히던 우세남, 저수량, 유공권(柳公權), 구양순 등이 특히 우뚝했다. 그들 중에서도 동진(東晉)시대 사람으로 특히 예서(隸書)를 잘 썼고 왕희지체(王羲之體)로 유명하며 서성(書聖)이라고 추앙 받던 왕희지의 서체(書體)를 터득한 바탕에서 자신의 특이한 서체인 솔경체(率更體)를 창안해 냈던 구양순이 무수한 별 중에 별이었다.
물론 구양순과 저수량은 누가 봐도 나무랄 데 없는 서예의 달인이었다. 그런데 둘의 차이가 분명 있었다. 우선 구양순은 글씨를 쓰는데 벼루나 먹을 위시해서 붓 따위의 도구나 재료를 가리거나 탓하지 않고 닿는 대로 썼다. 이에 비해 저수량은 붓이나 종이를 비롯해서 먹이 맘에 들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차이를 예리하게 파고들며 진정한 서예가라면 별로 가치가 없는 도구나 재료의 제약을 초월하여야함을 일깨워준 큰 가르침이었다.
우리는 삶을 꾸리면서 별의별 경험을 많이 하게 마련이다. 그런 과정에서 바람직하지 못하거나 뜻하지 않은 결과와 맞닥뜨렸을 때 그 원인을 남이나 환경 같은 외부요인에 돌리며 “네 탓이오!”라는 책임 전가를 하는 경우를 숱하게 목도한다. 물론 그런 요인이 작용했을지 모르지만 결정적인 영향은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에 있음을 간과하면 안된다. 원래 장인(匠人)은 도구를 탓하지 않으며, 유능한 장군은 병사를 고르지 않는 법이다. 아울러 진정한 술꾼은 주종을 가리지 않는다. 이 같은 관점에서 생각할 때 세상사 모두는 그에 수반 되는 도구나 재료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에 따라 성패가 좌우됨을 잊는 어리석음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능서불택필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가 엉뚱한 경지까지 상상의 나래를 펴고 너무 다른 세계까지 비상(飛翔)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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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영(智永) : 중국 수(隋)나라 승려(僧侶)이자 서예가로서 왕희지(王羲之)의 후손으로 알려졌다.
* 구양순(歐陽詢) : 중국 당(唐)나라의 서예가이다. 왕희지(王羲之)의 서법(書法)을 이어받아 해서(楷書)의 모범이 되었다. 힘차고 독특한 서체인 솔경제(率更體)를 창안했다. 작품으로 황보탄비(皇甫誕碑),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 따위가 있다.
마산문학, 제48집, 마산문인협회, 2024년, 12월 14일
(2024년 7월 1일 월요일)
첫댓글 핑계대는 사람, 모든 잘못은 상대 때문이라는 사람이 필독해야 할 수필같네요.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교수님 좋은 글에 대단히 감동 받았습니다._()_
항상 감사드립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