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선수에 대해 안 것은 94년도 월드컵을 통해서였다.
물론, 그 월드컵은 홍명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실질적인 데뷔무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골을 넣지 않았다면 이름도 그렇게 알려졌을까?
지역예선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주목한 선수는
황선홍과 서정원 선수 정도였으니까.
아무튼, 내가 처음 축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86년도 월드컵을
앞둔 지역예선 때였다. 그 때가 내 나이 9살, 초등학교 4학년때였다.
여름에 아버지 친구 가족 단위로 콘도에 갔다가 지역예선 중계방송을
보면서 어른들이 열광하는데 나도 축구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이후로 최순호나 변병주나 윤정환 서정원 등의 선수들을
그냥 주의깊게 (와 잘한다....정도) 보고 있었지만
팬이라고 할 정도로 관심을 기울인 적은 없었다.
그런데다가 94년도 월드컵에서 골을 성공시킨 홍명보라는 선수에 대해
실력이 있는 선수구나....하고는 생각했을 뿐이었다.
아마도 그 때가 내가 재수를 하고 있었을 때고,
공부에 쫓기면서 "내가 대학만 갔어도 이 월드컵을 유유자적하게 볼텐데...."하는 생각을 하며 자존심상해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날 정작 축구는 무심했던 내 친구가 필통에
홍명보 선수의 사진을 붙인 것을 보여주면서
"야, 우리 학원에서 내 필통을 보고 이게 누구냐고 하는거야.
축구선수 홍명보라고 했더니 다 비웃는거 있지! 진짜 챙피했어."
라고 한탄하는 것을 보고 나도 깔깔 웃어댔는데 -
그리고 며칠 뒤 주말에 우연히 TV를 켰더니 프로축구 결승전(?)을
중계해주는 것이었다.
마침 그 중계에는 안양LG와 포항스틸러스의 경기라,
서정원과 홍명보, 황선홍이라는 BIG STAR가 뛰길래 잠시 공부를 멈추고
중계를 보기로 했다.
그 때 안양팀은 포항과는 실력차이가 많이 나는데다가,
서정원도 슬럼프에 빠져 월드컵때만큼 잘 뛰지 못했다.
(서정원이 슬럼프라는 것은 해설자들이 안됐다는 듯이 여러번 말했었다.)
그런데 홍명보 선수가 서정원이 마구 드리블하며 뛰어오는 그 앞에서
마크를 하다말고 슬쩍...피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서정원은 홍명보를 제치고(?) 달려갔지만 결국 골대앞에서
다른 수비수에게 골을 뺏기고 말았다.
난, 분명 서정원을 마크할 수 있었던 홍명보가 왜 슬쩍 피했는지
의문을 가졌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봐서인가??
하지만 그 장면은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고
나에겐 홍명보가 같은 국가대표 동료였던 서정원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끔 기회를 준 것만 같았고, 홍명보가 상대 선수의 작은 것까지
배려하는 큰 그릇을 가진 선수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때부터 막연하게 홍명보 선수에 대해 위대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내가 그동안 동경해온 성실하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그라운드에서 뛰듯이 모든 것에 진지할 것 같은 그 선수에게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훗날 나의 그 막연한 동경심대로 홍명보 선수는 그렇게
진실되고 성실하고 인격적으로도 성숙된 사람임을 확인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아무튼...
그 경기를 계기로 난 팬이 되었다.
이상한 것은 우리 아버지도 언젠가부터 나와 똑같은 이유로
홍명보 선수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축구 이야기를 하다가 아버지는 내가 홍명보 선수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이후 친선경기를 보면서 같이 좋아하고,
그러다가 아버지가 하루는 수원구장에서 열린 독일과의 친선게임티켓을
구해오셨다. (그게 재수 끝무렵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국가대표 게임이 있으면 나에게 표를 주시면서
보고오라고 해주셨다.
근데, 막상 대학에 들어가서보니 난 홍명보 선수에 대해 너무도
잘 모르고 축구장을 찾아가는 것도 무섭고, 주위에선 아무도
축구를 보러 경기장에 같이 가주는 사람도 없고...홍명보 선수를 만나러
어딜 쫓아다니는 것도 챙피하고....이럴 때 연예인처럼 소속사나
팬클럽이나 그런게 있음 좋을텐데....하면서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홍명보는 일본으로 이적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홍명보 선수에 대한 내 열정은 식을 뻔 했다.
97년 여름, 여느때처럼 아버지는 친선경기 티켓을 주시면서
동생과 다녀오라고 하셨다. 그 때 동대문에 갔는데
우리 자리 바로 옆에 처음으로 붉은악마가 등장하여
대형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하는 것을 발견했다.
하프타임때, 한 언니한테 "저도 이거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요?"
라고 묻자 경기장에 유니폼이나 빨간 티셔츠만 입고 오면 된다고
설명을 해줬다.
그리고 그날을 계기로 난 붉은악마회원이 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붉은악마가 되려면 반드시 프로축구팀의 써포터로
가입을 해야만 했다.
난, 언젠가 홍명보선수가 포항에 돌아오겠지....그리고 홍명보 선수의
팀이었기 때문에 포항스틸러스 써포터에 가입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포항써포터도 50명정도밖에 안되고 붉은악마도 200명이
될동말동 했을 때였다.
그 속에서 내가 홍명보 선수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어느날인가 홍명보 팬클럽이 없으니 네가 만들지 그러냐고 제안을 했다.
난 홍명보 선수와 아무런 친분도 없었지만, 홍명보 선수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팬클럽을 만들었다. 팬클럽 창립시의 회원 수는 겨우 10명이었다. (1998년 5월 창단)
그것도 팬클럽이라고 홍명보 선수에게 인사를 하러갔고,
홍명보 선수는 좋은지 싫은지 알 수 없는 무표정으로 나를 대했다.
어찌나 그 표정에 압도되었는지 인사를 2마디인가 밖에 못하고는
턱이 덜덜 떨려서 더이상 말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내 생애 처음으로 그렇게 동경하던 사람을 직접 눈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충격적이었고 이것이 진짜 사람인지 사진에서
튀어나온 영상인지 머리 속은 온통 멍했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챙피함을 무릅쓰고 회원들을 데려가서 다 인사도
시키고 선물도 주고 경기 평가도 듣는 등 만나러 갔었지만,
나중에는 점차로 내가 그렇게 홍명보 선수를 만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잃었다.
물론 집에서는 워낙 부모님들이 좋아하는 홍명보 선수와 내가
친해지는 것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지만
난 홍명보 선수의 뛰는 모습이 좋았을 뿐인데, 친분이 중요한가?
나이 24살에 이건 너무 유치한 것 아냐?
이런 생각에 홍명보 선수를 만나는 것을 그만하고
그냥 월드컵을 보러 프랑스로 떠났고,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일본에 어학연수를 갔다. (내 전공이 일본어였기 때문에.)
그런데, 막상 일본에 가보니 내가 살고 있는 곳과
홍명보 선수의 소속구단인 벨마레 히라쓰카가 그리 멀지 않은 것을
알았다. 내가 연수를 받는 동안 일본 J리그도 개막을 했고
난 근질근질한 참에 벨마레 히라쓰카의 홈경기를 보러 갔다.
그 때는 내가 친구를 사귀고 일본어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사람 저사람에게 말을 걸었고, 벨마레 써포터들은 모두 상냥하게
나를 대했으며 홍명보 선수를 좋아한다는 나의 말에 몸을 풀고 있는
홍명보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나도 모르게 "오빠!"하고 스탠드 아래를 향해 외쳤는데,
홍명보 선수는 몸을 풀다말고 아주 반가워하면서 튀어나왔다.
"어떻게 여기 왔어?"
그렇게 반가워하는 홍명보 선수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자, 경기를 잘 봐달라는 말과 함께
다시 선수들 틈으로 들어간 홍명보.
잠시 후, 나에게 홍명보 선수의 통역관이 찾아오더니
"이거 싸인볼인데 홍명보 선수가 전해주래요"라며 작은 공을 주었다.
나는 어찌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더구나 타향에서의 만남인데...
더욱 기뻤다.
(안타깝게도 그 공은 나중에 바람이 빠지고 찌글찌글해졌는데
할머니가 별거 아닌줄 알고 버려버리고 말았다.-_-)
그러나 경기에서는 홍명보 선수가 별로 활약을 못했다.
벨마레라는 팀이 당시 쇠퇴기였고, 더구나 팀의 주전인 나카다가
이탈리아로 이적해버리는 바람에 분위기는 침체되어있었다.
경기는 잘 풀리지 못했고, 홍명보 선수는 평소와같은 중앙수비수가 아닌
오른쪽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는데 다른 선수들이 공을 잘 배급해주지도
않았고 상대 공격수를 잡아당기며 겨우겨우 저지하는 홍명보의 모습이
너무도 어색했다.
그 때 벨마레에서 뛴 모습을 본 이후로, 난 홍명보 선수의 수비형 미드필더 기용을 반대하고 있다.
홍명보 선수가 멋있는 것은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중앙수비수 자리에
있을 때라는 것을 그 때 알았던 것이다.
암튼, 그렇게 전반전이 끝나고 하프타임이 되자
2명의 아저씨가 날 찾아왔다.
그들은 30대 중반 정도 되 보였고,
벨마레 써포터인데 홍명보 선수의 팬클럽을 만들어서 같이
응원하고 있다고 했다.
그 아저씨는 94년도부터 눈여겨본 홍명보라는 위대한 선수가
벨마레로 이적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면서 나를 만나 기쁘다고 했다.
그리고는 조만간에 우리 팬클럽에서 홍명보 선수와 팬미팅을 할 것인데
거기에 와달라고 했다.
나는 흔쾌히 알았다고 했는데, 나중에 팬미팅을 갔더니
다들 30~40대의 중장년 아저씨와 주부들이 대부분이었고,
간간히 있는 어린 사람들은 다들 그들의 아이들이었다.
맨날 중고등학생 팬들을 이끌던 나로서는
직장과 아이들이 있는 아버지 어머니들이 홍명보 선수를 성원해주고
물심양면으로 써포트하는 모습이 무척 생소했다.
그들은 홍명보 선수를 위해서 뭐든지 할 기세였고
항상 경기장 한 블럭을 차지하고는 홍명보 선수를 응원하고
지방원정까지 불사하는 실질적인 후원자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에 비해 나와 우리 팬클럽은 아무것도 없이 홍명보 선수의 싸인을 바래고 있었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축구선수의 팬클럽이 뭘 해야좋은지를 잘 모르고 있었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홍명보 선수는 요즘 경기가 생각처럼 잘 안풀려서 이 모임에 나올
상황이 아니지만, 사람들이 너무 잘해줘서 나왔다고 했다.
팬클럽 사람들은 홍명보 선수가 역시 나이든 우리보다는 지영씨같은
나이 어린 사람을 보면 더 마음이 편한가봐요,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하다니...하면서 부러워했다.
나는 그날의 팬미팅을 계기로 그 팬클럽 사람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하지만 막상 홍명보 선수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더 친해지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없어지고 나도 팬클럽 회장으로써 홍명보 선수에게 잘 해야겠다는
생각과 홍명보 선수에 대해 너무도 잘 모르고 있는 내 자신을 깨닫고는
좀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뒤 우연히 집 근처 헌책방을 가다가 축구잡지 이월호를 파는데
거기에 홍명보 선수의 기사가 실린 책을 3권이나 발견했다.
미친듯이 기뻐하며 그 책을 사들고는 한국에서는 왜 이런책이
없을까....했었는데 -
그 잡지책을 보면서 홍명보선수의 연습하는 모습을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은 경기가 있을 때만 갔었는데, 왜냐하면 일본은 교통비가
비싸기 때문에 우리집과 경기장까지가 가깝다고 해도
평균 왕복 교통비가 5천엔은 들기 때문이다.(약 5만원)
그것은 용돈을 쪼개쓰면서 겨우겨우 생활을 유지하는 유학생에겐
큰 돈이었다,,,ㅠㅠ
연습하는 것을 보면서 좀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찾아갔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