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전사고로 양쪽 팔다리를 잃은 전동록 씨
ⓒ 2001 이소희
처음 전동록(54. 일용직) 씨를 찾아간 날. 전 씨는 얕은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이틀 전 수술부위가 아물지 않아 고통스러운지 간간이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였다. 바로 옆 간이 침대에는 피곤에 지친 듯한 막내 아들 전민호(23) 씨가 누워 있었다. 전 씨의 아내 이명화(48) 씨만이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제는 수술 직후라 그런지 한숨도 못자더니 그래도 오늘은 간만에 눈을 붙이네요." 이틀 전 장장 7시간에 걸쳐 오른쪽 팔과 왼쪽 다리를 다시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은 뒤였다.
<최초기사> 고압선 이전 요구 묵살하더니...
지난 7월 중순 처음 오마이뉴스에서 관련기사를 접했을 땐,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에서 일하는 나는 별다른 대응을 할 생각을 갖지 못했다. 파주에서 일어난 사고이고, 알게 된 것도 사고 발생 후 이미 며칠이 흐른 뒤라 나설 만한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얼마 후 이번엔 경기도 하남에서 비슷한 신고를 접수받게 되었다. 건물을 새로 짓는데, 미군측이 고압선을 철거해주지 않아 공사를 중단했다는 것이다.
문득, 전 씨의 사고 소식이 생각나면서 이후 경과가 궁금해졌다. 어렵게 연락처를 알아내어 전화를 했을 때, 전 씨 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처음 기자들이 취재를 왔을 땐 그래도 괜찮았지, 지금은 양쪽 팔, 다리를 다 잘라냈어요."
순간 가슴이 멎는 듯했다. 그런 대답을 들으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바로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면서 모두가 내 탓인 듯했다. 그때부터 미군 고압선 문제에 대해 파헤쳐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2만2900V 미군 고압선에 감전된 전 씨
전 씨가 사고를 당한 것은 7월 16일. 경기도 파주시 뇌조리 Camp Howze 후문 100m 지점에 있는 대우제판 카메라 조립식 공장 증축현장에서였다. 그날 전 씨는 철제 판넬로 지붕을 잇는 막바지 공사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일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오후 6시 40분경. 공사 뒷정리를 하면서 지붕 위에 남아 있던 철판 조각을 반으로 접어 떨어뜨리려던 전 씨는 순간 몸이 확 쏠리는 느낌을 받았다. 철제 판넬이 지붕 위 2-3m 상공을 지나던 2만2900V 미군 고압선에 닿은 것이다.
사고 직후 응급조치를 마치고 일산 백병원에서 다시 화상 전문병원인 서울 강남의 순화병원으로 옮겨진 전 씨는 초진 결과 양쪽 팔다리에 4도의 중화상을 입고, 간과 폐에도 손상을 입어 향후 12주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전류가 심장은 건드리지 않아 목숨만은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경과가 좋지 않으면 팔다리를 절단할 수도 있다는 소견이었다. 워낙 중상인지라 상태는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전 씨는 8월 6일 오른쪽 팔과 왼쪽 다리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수술 3일 후 호흡 곤란에 배에 복수가 차고, 신부전증으로 황달이 생기는 등 합병증이 찾아왔다. 대형병원에 가는 것이 좋겠다는 소견에 따라 8월 12일 현재의 영동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 곧바로 남은 왼쪽 팔, 오른쪽 다리에 대해서도 절단술을 시행했다.
그리고 대략 두 달 뒤인 10월 8일. 1차 절단술을 시행한 부위가 감염이 되어 뼈를 더 깎아내고 봉합하는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큰 수술은 대충 끝난 셈이다.
그러나, 앞으로 여러 가지 합병증이 찾아올 위험성이 많아 안심할 수 없는 상태다. 특히 최근엔 합병증으로 귀까지 안들려 입을 귀에 바짝 대고 소리를 질러야 겨우 알아들을 정도다. 한참 동안 잠에 빠져 있던 전 씨가 잠시 깨어나 인사를 하게 되었을 때도 별 수 없이 귀에 대고 소리를 질러야만 했다.
미군-공사관계자 간에 책임 공방
"(미군측에서는 책임에 대해) 묵묵부답이지, 병원 업무과에서는 돈을 안 낸다고 하지, 귀가 안들려 아주 갑갑해 미치겠지, 또 누워만 있으니 허리가 아프지..."
전 씨는 마치 기다리기나 한 듯 자신의 괴로운 심경을 끝없이 토해내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팔다리를 모두 잃어버린 심정이야 오죽할까. 더욱 그를 답답하게 하는 것은 막상 사고가 터지자 미군측과 공장 건물주 등 관계자들이 서로 책임을 미루면서 얼굴 한번 제대로 비추지 않더라는 것이다.
미군측은 안전에 부주의한 전 씨 개인의 탓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건물주 등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군측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공사 시작 전부터 건물주 및 마을 이장 등이 수차례에 걸쳐 미군측에 고압선 이설을 요청했으나 계속 묵살했다는 것이다.
특히, 사고 발생 3일 전에도 미군측 전기 담당자 세 명이 나와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는 "괜찮으니 일단 공사를 진행하라"고 하고, 거듭된 요청에도 "그럼 당신들 마음대로 하라"며 막무가내로 나온 것으로 밝혀져 비난을 사고 있다.
"아, 그거야 전적으로 주한미군측에 있지. 사고가 나기 전 동네에서도 그렇게 몇 번을 진정을 하고, 부대 관계자가 현장에 나와보기도 했는데..." 이번 사고의 책임 소재를 묻자 전 씨가 정색을 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미군측은 당시 끔찍했던 사고의 주범인 문제의 고압선을 지금까지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놓고 있다. 사고 이후 미군측은 병원에 한번 방문하여 60만원의 위로금과 함께 배상 서류만 전달해주었을 뿐이다.
현행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에 의하면 미군이 점유, 소유 또는 관리하는 토지의 공작물과 기타 시설 또는 물건의 설치나 관리의 하자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국가가 국가배상법에 의해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미군 고압선 대개 나선(裸線)이라 감전 위험 높아
이번 사고의 피해가 컸던 것은 당시 고압선이 피복을 입히지 않은 나선(裸線)이라는 데 있다. 그런데도 위험을 표시하는 표지판조차 달려있지 않았다.
미군측에서는 미군 내부 규정을 들어 고압선인 경우 나선을 써도 무방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고압인 경우에는 나선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고압인 경우 피복을 씌우나 안씌우나 감전당하긴 마찬가지라는 것.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관리하는 고압선의 경우 거의 100% 피복선을 사용하고 있는 현실은 미측의 주장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국전력 기술 담당자에 따르면, 물론 고압선인 경우 피복선이라도 사람이 접촉하면 감전이 되긴 마찬가지나 그 피해 정도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고 말하고 있다. 같은 고압선이라도 피복선인 경우 감전으로 인한 인체 상해 정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피복은 수목 등의 접촉으로 인한 정전사고 등을 방지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나선과 피복선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의견이다.
덧붙여서, 미군측이 자체 규정에서 특히 고압인 경우 나선을 사용해도 좋다고 명시한 것은 미국과 한국의 생활 및 주거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 미국의 경우 우선 땅도 넓고 인구 밀집도가 낮아 나선이라 할지라도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우려가 적지만, 한국은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사람들이 살다보니 주거지역에 고압선이 지날 경우 그만큼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전기안전공사의 감전연구팀에 자문해본 결과도 마찬가지다. 보통 고압선에 감전될 경우 심한 화상을 입게 되는 것은 고압선 접촉으로 스파크가 터지면서 열이 발생하게 되는 것인데, 피복을 입힐 경우 이러한 스파크 발생을 확실히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사고지역을 관할하는 한국전력 파주지점에서는 미군측에 이미 몇 차례 피복선으로 교체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목상의 이유는 앞에 지적한 바대로 피복을 해도 감전 사고 방지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나 실제 이유는 '돈 문제'라는 것이 중론이다. 미군측이 관리하는 선로는 그의 교체, 이설, 철거 등에 따르는 비용을 모두 미군측에서 부담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병원비에 빚더미
현재 전 씨 가족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병원 치료비 문제. 한때 파주에서 제일 잘 나간다던 한 공업소 공장장으로 일하던 전 씨는 IMF가 터지면서 실직자 신세가 되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마냥 쉬고 있을 수 없었던 전 씨는 그때부터 일당 5만원의 건설 일용직으로 나섰다. 부인도 동네에 치킨집을 내고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이번 사고를 당하면서 그나마 있던 재산도 모두 다 날리고 빚더미에 앉게 됐다. 치킨집은 급하게 돈을 끌어다 쓰느라 사채업자에게 담보로 맡기고, 모자라는 돈은 카드로 긁어 왔지만 카드 빚을 감당치 못해 전 씨는 현재 신용 불량자로 찍힌 상태다.
거기에다 두 아들 중 올해 회사에 입사한 큰아들 전민수(25) 씨는 사고 직후, 사고 처리하며 뛰어다니느라 연 며칠을 결근하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회사를 그만뒀다.
7월 23일 막 제대한 막내아들 전민호(23) 씨가 복학의 꿈은 접은 채 조금이나마 돈을 보태고자 PC방 아르바이트를 해왔으나 그마저 얼마 전 그만두었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남편 간호를 혼자 하기엔 너무나 벅찼던 부인 이 씨가 막내아들을 불러낸 것이다. 결국 지금 가족 중에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친척들이 얼마간 모아주는 돈으로 겨우 버티고 있다.
그렇다고 일일이 사정을 봐줄 병원도 아니다. 지금 있는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서만 약 한 달 동안 3천만원이 넘는 병원비가 들어갔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불한 돈은 고작 2백만원. 병원측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소송 후 실제 배상금 받기까지 1년 정도 걸려
"매주 토요일만 되면 병원 업무과에서 부르는 거야. 그런데 어떡해. 낼 돈이 있어야지. 그래서 지금은 불러도 안 간다니까." 부인 이 씨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털어놓았다.
그나마 기대를 걸고 있는 건 현재 서울지방 법원에 제출해 놓은 치료비 가처분 신청소송이다. 전 씨 가족은 처음에 국가배상도 검토해보았다가 배상금을 제대로 받기 어렵다는 말에 국가를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키로 했다.
그러나 소송이 끝나고 실제 배상금을 받기까지는 대략 1년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 급한 치료비 문제라도 해결하기 위해 먼저 치료비 가처분 신청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치료비 일부인 3,372만5707원과 2001년 9월 4일부터 2002년 9월 4일까지 일 년간 매월 말일에 2백만원씩의 치료비를 임시로 지급하라는 내용이다.
10월 12일 재판이 시작되어 11월 5일 오전 10시 서울 민사지법 358호에서 두 번째 재판이 있을 예정이다. 변호사측은 이번 재판 후 일주일 정도면 결과를 알 수 있는데 승소엔 무리가 없을 거라는 판단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적어도 치료비 문제는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듯 하다.
미군이 관련되었다는 말에 걱정부터 앞서
하지만 재판이 승소하고 많은 배상금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들 가족에겐 충분한 보상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하는 전 씨도 그렇지만, 이들이 사고 후 처리 과정에서 느낀 마음의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 동안 친구들에게 들은 얘기나, 요새 방송에 종종 나오는 걸 보면 미군 관련 사건 중 제대로 해결된 것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정부도 대충 넘어가려고만 하고요. 그래서 아버지 사고 당하고, 미군이 관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걱정부터 앞서더라구요."
현재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 제대 후 아버지 병수발을 들고 있는 막내아들 전 씨의 말이다. 미군이 관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부터 앞서더라는 말은 미군에게 피해를 당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공감하는 얘기다. 그만큼 가해자 처벌과 보상이 어렵다는 말이다.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서야
문제는 앞으로 전 씨와 같은 피해자는 얼마든지 더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군 고압선은 전국에 걸쳐 미군기지 주둔지역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나 지금으로선 그 현황조차 알 수가 없다. 미군이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한국쪽엔 관련 자료조차 없다는 것이다. 한국측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매번 묵살해온 미군측의 고압적인 자세도 문제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정부 차원에서 전국에 걸쳐 미군 고압선의 현황과 피해실태를 조사하고, 우선 나선 형태의 고압선을 피복선으로 전면 교체해줄 것을 강하게 요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고압선에 위험표지판을 반드시 부착토록 하는 등 안전 관리에 힘써야 한다. 예산은 두 번째 문제다. 사람이 먼저지 돈이 먼저일 수 없는 것 아닌가.
미국이 진실로 한국민의 목숨을 자국민과 같이 소중하게 여긴다면 이러한 요청에 즉각 응해야 한다. 최근 탄저병 테러에 대비해 미국정부가 탄저균 치료 항생제 확보를 위해 즉각 추가예산을 투입키로 했다는 보도가 왠지 씁쓸하게만 느껴진다.
* 현재 전동록 씨 가족은 엄청난 병원비조차 댈 돈이 없어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여러분들의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농협 215088-52-114856 이명화
▲ 건물 지붕 바로 위로 지나는 미군 고압선
ⓒ 2001 이소희
▲ 사고 직후 까맣게 타들어간 손과 발
ⓒ 2001 이소희
주한미군철수 운운하지는 않겠습니다.
그저 사고에 대해서 군당국이 진심으로 사과하기바라며..
피해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주길바라며...
그리고 이와같은 사건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이글을 올립니다.
고인이 되신 전동록씨께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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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방
일당 5만원짜리 일용직 근로자가 팔다리 짤리고 신용불량자가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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