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암 포구로 나가
구월 넷째 수요일은 도서관에서 빌려본 책을 반납하려고 자연학교 등교를 늦추었다. 집을 나서면서 배낭에 책을 채워 용지호수 도서관으로 향했다. 평소보다 일과를 늦게 시작했더니 어쩐지 감각이 어색해 같은 아파트단지 꽃대감에게 전화를 넣어 봤다. 친구는 처를 수영장으로 데려다주고 자신은 빙상장 주변에 닿아 차를 세우는 중이었다. 둘 다 운동으로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
나이가 들면 신체 감각이 무뎌지게 마련인데 꽃대감 친구는 달랐다. 중년 이후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산행도 가질 않더니 어느 때부터 롤러스케이트에 입문해 나를 놀라게 했다. 친구는 현직 시절 도심 레포츠파크 롤러스케이트장을 누비기는 예사였고 근교에 신설도로가 뚫려 차선이 미쳐 그어지지 않은 자동찻길도 서슴없이 질주했는데 이제는 계절 구분 없이 빙상장에서 보낸다.
나는 사서 업무가 개시되길 기다린 용지호수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반납했다. 사서는 추석 이후 처음 뵙게 되어 반가웠는데 왜 자주 들리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나대로 그간 바쁜 시간을 보낸다면서 오늘은 책만 반납하고 도서관에 머물 시간이 없다고 했다. 늦은 아침에 길을 나서 반나절 만이라도 산책을 나서려니 책을 빌리면 배낭이 무거워져 트레킹에 힘이 들지 싶어서였다.
용지호수 도서관을 나와 호숫가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도서관 근처 푸른 잔디는 싱그러웠고 호수의 수면에는 연잎도 잔디에 뒤지지 않았다. 넓은 잎의 홍련 백련은 꽃이 저물어 연실이 달렸고 작은 꽃잎을 펼친 수련은 아직 개화를 멈추지 않아 고운 자태를 드러냈다. 산책로 길바닥에는 일찍 떨어진 벚나무 낙엽이 흩어져 있어 이슥해진 가을이 아니라도 조락의 계절을 실감했다.
용지호수를 한 바퀴 거닐고 원이대로로 진출해 진해로 가는 버스를 기다려 팔룡동 터미널을 출발해온 155번을 탔다. 시내를 관통한 버스는 안민터널을 지나 장천동 종점에 닿았을 때는 승객은 아무도 없어 혼자였다. 여러 차례 지나친 장천동 종점이라 그새 아파트가 들어서도 주변 지형지물은 익숙했다. 진해 바다 70리 길의 합포 승전 길의 일부 구간에 해당한 코스를 따라 걸었다.
진해는 자그마한 포구이지만 몇 구역으로 나뉜 항구였다. 해군사관학교가 위치한 보안시설 군항은 빼고라도 속천항의 진해루 앞 탁 트인 소죽도 공원이 있었다. 거기서부터 시멘트와 바닷모래가 하역되는 장천항 산업부두였다. 부두 앞 바다 여기저기는 토목건축 자재를 실어 나르는 크고 작은 화물선이 닻을 내려놓고 기다렸다. 어선이 많은 여느 바닷가 항구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장천항 산업부두에서 행암으로 가는 해변을 따라 걸었더니 갓길엔 차박으로 날을 샌 태공들을 만났다. 나는 관심이 없는 낚시지만 우리나라에서 등산보다 많은 레저 인구가 낚시라고 들은 바 있다. 골프도 그렇겠지만 낚시는 더 번거로운 장비를 갖추어야 해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취미 활동이었다. 나는 평생에 걸쳐 매체를 이용하는 운동은 관심이 없어 오로지 걷기만 할 따름이다.
장천 부두 방파제에서 행암 포구로 가서 바다 저편 속천항과 진해 시가지를 바라봤다. 높고 낮은 아파트가 선 시가지 뒤 장복산 산등선과 안민고갯길이 드러났다. 행암 포구 앞에 이르니 임자를 만나지 못한 낚싯배 여러 척이 닻을 내리고 묶여 있었다. 합개를 거쳐 수치 해안으로 돌아 명동 포구까지 걸어도 되었겠으나 어제 산행이 예상보다 힘이 들어 무릎에 안식이 필요할 듯했다.
행암 포구 산책 테크를 따라 전망 정자에 올랐더니 진해만 바깥은 거제의 섬들이 에워싸 있었다. 가덕도의 거가대교 연륙 구간은 보이질 않았으나 저기 빤히 보이는 바다 저편은 거제 장목의 유호리 해안으로 짐작되었다. 내가 작년까지 교직 말년을 보낸 그 섬에서 퇴근 후 저녁 어스름에도 걸어봤고, 새벽 첫차로 시내버스로 해안선을 한 바퀴 둘러 근무지로 들어서기도 했더랬다. 22.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