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5.
비가 내린다. '콩레이' 태풍의 영향이다.
종일 아파트에 갇혀 지내자니 무척이나 지루하며 답답하다.
인터넷 '다음'에 '꽃섬농원'이란 카페가 소개되었기에 접속했더니만 충남 당진시 고대면 영진 황토마을에서 농사 짓고, 꽃을 가꾸면서 이들을 파는 카페이다.
나는 꽃을 좋아하기에 가입한 뒤에 여러 방들을 살펴 보았다. 개설한 지 3년째이고, 카페지기는 여성이다.
키 작은 화초 위주로 재배하며 판매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여성의 아기자기한 맛은 있다고 여겨진다.
나는 시골에서 살다가 서울 올라온 지가 벌써 3년 7개월이 넘었다.
내 텃밭 세 군데는 주인없는 밭일까? 과일나무, 꽃나무, 키 작은 화초들은 제멋대로 웃자라고, 더러는 잡초에 치여서 소리없이 사라졌을 게다.
서울 생활이 길어지면서 식물 이름을 자꾸만 잊는다.
눈으로 보지 않으니까, 기억력이 더울 빠르게 진행되는 탓도 있겠다.
꽃섬카페에서 '토종보리수'라는 산문 글을 보았다.
보리수 일종인 토종보리수는 뜰보리수라고 한다.
내가 텃밭에서 보유한 보리수는 왕보리수 열댓 그루. 일본보리수 종류인데 알이 무척이나 크고 굵다.
한국의 토종보리수(뽀리똥, 볼레나무, 보리화나무, 보리장나무 등)으로 알려졌다. 충남 보령지방 출신인 나한테는 '뽀리똥'으로 발음한다.
토종보리수 알은 자잘하게 작다. 알의 길이도 짧고 동그랗고, 맛은 떫으면서도 달작지근하다.
오늘은 대전 사는 누나한테서 문자가 왔다.
서해안 시골에 언제 다녀오느냐고 물었으나 나는 '11월 중순 경에나 내려간다'고 답했다.
누나는 텃밭 속의 밤송이가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것처럼 아쉬워 했다.
추석 무렵에 매형 산소를 둘러본 뒤에 친정에 들러서 밤송이를 보고 대전으로 되돌아갔는데 지금쯤 그 발송이가 어찌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었다.
나는 밤 주으려고 시골 내려갈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차비 그 돈으로 시장에서 사서 먹는 편이 훨씬 이득이라고 여겼다.
2010년 과일나무 400 여 그루를 심었으나 그 가운데 감나무 묘목은 황토에 적응하지 못해서 95% 실패했다.
밤나무 묘목을 자가생산해서 묘목을 심기 시작했고, 해마다 증식시켰는데도 올해에는 한 그루도 심지 못했다. 묘목 생산도 하지 않았고, 장에서 사 오지도 않았기에.
10월 초순인 지금쯤 밤송이가 땅에 많이도 떨어졌을 게다. 마을 사람들이, 오고가는 행인들이 더러는 주워서 가져 갔을 터.
누나는 그게 아깝다고 아쉬워 했다.
어디 밤뿐이랴. 올해에는 왕보리수 열매 한 알도 따지 않았다.
지금쯤 감은 익어 갈 게다.
주인 없는 텃밭에는 새들이나 주인행세를 할 게다.
밤, 감, 대추, 애기사과, 으름, 모과, 석류는 또 어찌 되었을까?
생각도 하지 않아야 속이 덜 상하겠다.
아내는 쌀이 떨어졌다며 오늘 빗속인데도 시장에 나갔다.
내가 '농협동잠실지점에는 쌀이 있다. 거기에서 조금만 구입하라'고 알려 주었다.
아내는 목감기로 병원 다녀오는 길에 농협지점에 들렸는데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는 다소 비싸다며 시장에서 10kg를 구입했고, 택배받는다고 했다. 32,900원.
쌀 한 가마는 80kg이니 돈으로 환산하면 263,200원.
지난해 해안 내 시골에서는 한 가마 140,000원 했다.
지난 가을철에는 3가마니, 올봄에는 2가마니를 서울로 가져왔다.
장가 간 아들, 시집 간 딸들한테도 나눠주었더니만 10월 초인 지금에는 쌀이 떨어졌다.
시골 쌀값이 조금 싸다고 해서 시골 다녀올 수는 없을 터.
올 11월 중순 경에 시골 내려가거든 방아 찧어서 자동차 트렁크에 조금이라도 실고 서울로 올라와야겠다.
나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쌀 한 가마니의 무게는 얼마쯤일까?
한 가마니 무게는 80kg. 한 가마니는 열 말, 한 가마니는 100되, 한 가마니는 1,000홉...
한 가마니는 쌀이 몇 알일까?
쌀 한 톨의 평균 무게는 얼마일까?
마음이 심란하다.
요즘 서울 생활이 무척이나 무기력하다.
서울에서는 송곳 꽂을 땅이 전혀 없기에 아파트 베란다 위에 화분 올려놓고는 키 작은 화초를 키우는 게 고작이다.
일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서호 입구에서 사 온 고구마 두 바가지.
오늘 아내가 삶았기에 나는 몇 개를 먹었다.
고구마 껍질을 벗긴 뒤 음식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데도 나는 농사꾼답게 화분 속에 슬쩍 얹었다.
찌꺼기가 분해되면서 벌레 끼고, 고약한 냄새도 난다. 아내한테 들키면 지청구를 먹겠지만 화분 속의 검불 밑에 감췄다.
베란다 창문은 늘 열어두어야 하고.
시골에서 농사 짓고 싶다는 갈망을 이기지 못하고는 아파트 안에서 이렇게 엉뚱한 짓이나 한다.
아내가 인근에 사는 손녀 손자가 놀러오면 주겠다며 쌀과자를 조금 샀으며 나한테도 내밀었다.
두 종류를 조금 맛보고는 이맛살을 찡그렸다.
고추가루, 소금, 독특한 냄새가 나는 외국산 소스를 잔뜩 뿌려서 만들었기에 혀끝이 얼얼하도록 맵고 짜고 독특한 맛이 난다.
정말로 괴상한 맛과 냄새였다. 아내한테 '다음부터는 이런 것 사 오지 말라'고 말했다.
고유의 구수한 맛이 아니고 정체불명의 괴상한 퓨전 맛이다.
이런 엉터리 쌀과자를 사 먹느니 고구마를 냄비에 넣고 삶아서, 뜨거울 때 껍질 벗겨서 먹는 것이 훨씬 낫겠다.
생쌀을 손에 쥐었다가 입속에 넣고는 오물거려서 천천히 씹어 먹는 게 더 맛이 있겠다.
막내아들이 귀가하면서 피자 한 판을 사 왔으나 나는 한 조각도 먹지 않았다.
이들은 내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촌사람이다.
2018. 10. 5.
첫댓글 그래서
귀농과 귀촌은 다른 거 같아요
나는 자연인이다 보고 있으면
자급자족형 자연인들이 보이지요
현실적인 이유들로 자급자족적 삶은 쉽지 않지요
귀농이 아니라 귀촌할 수 있으면
행복한 삶 같아요
댓글 고맙습니다.
귀농과 귀촌은 다르지요.
저는 건달농사꾼입니다. 농사는 농사를 전업으로 하는 분들이 생산, 가공, 유통시켜야 하고요.
저와 같은 사람, 도시의 소비자는 그냥 취미로 재미로 농사를 이해해야 되지요. 도시소비자도 농사를 잘 짓는다?
그럼 큰일이 나요. 그렇게 되면 정작 농사를 지어서 팔아야 하는 진짜농사꾼은 가난하게 됩니다.
미래의 농업은 보다 젊은이들이 농촌에 들어와 도시 직업꾼보다 더 나은 수입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 '황대권' 님의 '고맙다 잡초야' 산문집을 읽고 있지요.
비가 그치면 서점에 나가서 농업관련 책을 골라야겠습니다.
'꽃섬농원'이란 카페 이름이 좋습니다.
글을 참 정갈하게 잘 쓰시는군요
한편의 수필을 읽는것처럼 머릿속으로는 그 상황이 그려지네요
자주 오셔서 읽을 '꺼리'를 만들어 주세요~
잘 읽고,잘 느끼고 갑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님은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서 사시나요?
2018. 4. 11. 님의 글 '산작약' 사진에서, 아기자기하게 꾸민 텃밭을 보고는 님의 가족이 식물을 무척이나 소중히 여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뼘의 땅이라도 알뜰히 가꾸는 모습이 엿보이대요.
왕보리수는 키가 크게 자라는 나무이지요?
저는 관목처럼 자라는 뜰보리수를 심어 고민입니다
공감가는 글이어서 저녁 준비하는 막간에 그만 자리잡고 앉아버렸습니다
왕보리수 제대로 크면 거의 3.5 ~ 4m. 직경 35cm 이상도 보았지요.
보리수나무 종류는 뿌리부근에서 곁가지가 조금 많는데도...
곁가지 잘라낸 뒤 한 줄기로만 올곧게 키울 수 있지요.
곁가지가 많으면 캐서 포기나누기하면 될 터...
포기나누기 시기를 놓치면 곁가지가 고만고만해서...
뜰보리수도 함께 키워보세요. 식물은 다양성이 있기에... 여러 종류로...
저 어릴때도 포리똥이라 부르며 산으로 따먹으러 돌아다녔지요
안가본지도 몇년이어서 이제는 그자리에 잘 살고 있는지 익어가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댓글 고맙습니다.
포리똥나무... 그거 맛이 엄청나게 좋지요.
저...
내년에 한 번 구해서 심어야겠습니다. 제 텃밭에는 왕보리수 세 종류만 열댓 그루라서...
@곰내 시댁 산소에 갔는데 왕보리수의 삼분의이정도 만하게 열린 보리수가 있어 파왔는데 결국 죽었어요
물도 부족했었고 너무 바쁘다 보니 심고 관리를 못했줬어요
내년에 가면 옆에 있었던거 다시 하나 가져와야겠어요
@사루비아(광주)
뿌리로 빨아들이는 수분, 잎에서 발산하는 수분과의 조화가 잘못 되었을까요?
뿌리가 많은지 적은지를 판단해서 나무의 줄기 가지 잎사귀를 잘라서 균형을 맞춰야만...
가지 잎사귀가 아깝다며 많이 남기면 오히려 그게 수분을 분산해서 날리면... 고사(말라죽다)하겠지요.
내년에 한 번 더 심어서 성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