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창 (외 1편) 전희진 문 앞에 네모난 상자가 배달되었다 텅 빈 상자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네모난 상자를 뒤집어썼다 네모난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았다 그 상자는 불안하게 들썩거렸다 마치 뱀이 가득 든 상자처럼 내가 가만히 있어도 창밖의 풍경은 쉬지 않고 바뀌었다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는 사물과 사람들 틈에서 끝까지 펼쳐진 창의 내륙을 따라 마치 짐칸의 수화물처럼 나는 어딘가로 떠나고 있었다 유리같이 네모난 마음이 안정적이지 못해서 언젠가는 주인에게 닿겠지 윗니와 아랫니가 잘게 부딪쳐 허공이 미세하게 떨렸다 옥수수 옥수수 옥수수밭이 풀려나고 옥수수 옥수수 옥수수 끝도 없는 옥수수밭 그때 수평으로 길게 네모난 틈으로 암말의 대퇴부같이 부드러운 산의 능선이 보였고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한 계집아이가 그녀의 앙증맞은 작은 손을 끄집어내어 나를 향해 흔들었다 손뼉을 치며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새삼 내가 중요한 것들을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 줄 언어와 노래는 내가 살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 눈이 왔다 붉은 벽돌집에 붉은색이 보이지 않게 함박눈이 많이도 내렸다 네모난 창에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알록달록 불빛이 깜빡였다 추위에 떠돌던 나의 어깨를 잡아 주는 손길, 주인의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다 나는 더 이상 밀려가는 낯선 풍경 속에 밀려가지 않았다 나의 옆에는 눈이 크고 눈썹이 안정적으로 두터운 나의 반려가 있었고 그녀의 긴 목덜미가 내 귀를 자꾸 간지럽혔다 먼 데서 삼나무 숲 삼나무들이 눈을 터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깥이 궁금한 사람에게 쏟아지는 어두운 생각들을 잠급니다 어둠의 조각들이 근처 나뭇가지에 잎들에 매달렸어요 나무가 어두워져요 문장이 되지 못한 생각의 비문들이 바람에 팔랑거려요 팔랑이는 잎들의 귀는 밖으로 열려 있어서 가도 가도 만나지 않을 빗소리만 들립니다 평행선 길을 사이에 둔 목침처럼 나는 그 위에 팔랑 누워 봐요 철길의 마음이 되어 봐요 오늘도 생각의 바깥에 앉아 어둠이 유리컵처럼 깨지는 걸 지켜봤습니다 나는 모처럼 안에 있는 사람 안사람 안 사람 나는 안쪽으로 찌그러진 상자일까요 만약 내가 사람이라면, 입 안의 풍선껌처럼 부풀어 올라 주저앉을 일만 기다리는, 내가 바지라면 안과 밖이 있을 텐데 나의 앞에는 콘크리트 같은 어둠 아주 가끔이지만 바깥을 나가면 마음이 조급해져요 플래시같이 터지는 빛 때문에 눈을 찡그리게 돼요 빛의 조리개 속에 드러나는 바깥은 제라늄의 붉은 상처 플라타너스의 여름 폭풍이 할퀴고 간 폐허, 빌딩을 세우고 있는 것은 언제 갈라질 줄 모르는 금 간 허물 닫힌 문의 코앞에서 코를 박고 있을 어둠, 킁킁거리다가 차차 모서리가 닳아 없어질, 문 앞에 나의 깨진 유리컵을 내놓습니다 ―시집 『나는 낯선 풍경 속으로 밀려가지 않는다』 2022.10 ------------------------ 전희진 / 서울 출생. 1973년 미국으로 이민. US Santa Barbara에서 Fine Art 졸업. HDM에서 Fashion Design 졸업.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2011년 《시와정신》에 시로 등단. 시집 『로사네 집의 내력』 『우울과 달빛과 나란히 눕다』 『나는 낯선 풍경 속으로 밀려가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