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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생명 말씀(2015.9.27.일) 말씀/ 요한복음 12:20-25
복음의 중개자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20-21)
오늘은 한국의 중추 명절 추석입니다. 이런 날이면 고향 고국이 그리워지기 마련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옛날에 글을 배우지 못한 여자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해가 갈수록 고향생각이 간절했지만 시부모를 도와 농사를 짓고 살림을 꾸리느라 고향에 다녀올 엄두조차 못 냈습니다. 하루는 고향에 있는 친정어머니에게 안부를 전할 요량으로 종이를 펼쳤으나 글을 몰라 한 글자도 쓸 수 없었습니다. 고민하던 여자는 글 대신 그림으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완성된 그림은 간단했습니다. 커다란 굴뚝과 훨훨 나는 새 한 마리가 다였습니다. 며칠 뒤 고향에서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글도 모르는데 어떻게 편지를 보냈을까?'하고 의아해하며 편지를 뜯었습니다. 굴뚝과 새 그림을 본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여자의 친정어머니가 밭일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시집간 딸에게 온 편지를 내밀며 물었습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래요?" 편지를 본 친정어머니는 이내 환하게 미소지으며 말했습니다. "고향에 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올 새가 없다는 말이랍니다." 우리중국 형제들도 고향 생각 굴뚝같지요?
오늘은 추석 연휴를 생각하며 ‘복음의 중개자’라는 말씀으로 잠깐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은 유대인의 최고 명절인 유월절을 배경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유대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 세계 각지에서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때 마침 때 맞춰 빌립과 안드레가 헬라인 몇을 데라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명절인 유월절기간 예루살렘에 왔다가 그것도 예수님이 나귀타고 호산나 찬송을 들으면서 왕으로 입성하시는 모습을 보고 관심을 갖은 자들입니다. 사실 왕이라 하시지만 예수님은 너무 볼 품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큰 말도 아니고 초라한 나귀를 타시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저들의 눈에는 감동으로 보여졌던 것입니다. 겸손하시고 인자하시고 평화로우신 예수님이 오히려 너무 훌륭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이방인이면서도 예수님의 본질의 모습을 보고 뵙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지 않으면 어떻게 이렇게 이런 예수님의 모습에 감동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갈리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기를 청하나이다 하니”(21) 청했다는 것을 보면 얼마나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했는가를 말해줍니다. 문제는 이들이 직접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자신들을 소개해줄 제자들을 먼저 만난 것입니다. 먼저 빌립에게 청했고, 빌립은 또 다음에 안드레에게 가서 이 이야기를 하고 함께 예수님께 나올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예수님을 만나는데 한 사람의 중개자가 필요하고 또 협력자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개자가 되시기 위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모양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가 되지 않으셨다면 아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빌립과 안드레도 하나님을 몰랐던 헬라 사람이 예수님께 나올 수 있도록 중개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또 많은 제자들 중에서 하필 빌립과 안드레 였을까요? 이들은 주님이 오병이어로 오 천명을 먹이실 때 똑같이 등장했습니다. 빌립은 사태를 파악하는 머리가 빠른 지적인 사람입니다. 헬라인들을 상대하기가 좋은 사람입니다. 또 안드레는 심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찌하던지 양들을 먹이고 돕고자 하는 마음이 강한 사람입니다. 전에 형제인 베드로도 인도한 경력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아직 직접 복음을 가르칠 정도는 아니지만 예수님께 사람들을 인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빌립은 외국인들을 인도할 지적 준비, 안드레는 영혼을 주께 인도하는데 심정이 있는 심적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누군가 완벽해서 무슨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준비되면 그만큼 작은 일 하나하나를 해나갈 수 있고,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쓰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주님께 나올 사람들을 붙여주셔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립과 안드레가 데려온 헬라인을 보시자 뭐라고 말씀 하셨습니까?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은 몇 몇 헬라인들, 아직 초자인 그들이 찾아온 것을 인해서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당장에 아무것도 모르는 부족한 것들 뿐이겠지만 이들이 이렇게 나온 것은 온 인류 구원의 싸인인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지만 그 의미는 유대인들만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확한 시점에서 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외국인들이 나옴으로써 예수님의 죽으심 의미가 더욱 뚜렷해진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가 한 알의 썩는 밀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한 분이 죽으심으로 온 인류가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을 뜻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어떻게 썩는 한 알의 밀알 하나가 온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신비입니다. 생명은 겨자씨처럼 아주 작아서 보이지 않아도 그 영향력은 엄청나게 커서 나중에는 온 세상을 덮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니 예수님도 당연히 기쁘셨고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된 동기에 바로 예수님의 복음의 중개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안드레 빌립 이들이 믿음과 심정을 갖고 중개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외국인 헬라 사람이 어떻게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알고 보면 나 스스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주님과 우리 사이에 누군가의 중개자의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중국에 가있지만 조현개 형제가 처음 교회에 나와서 전경, 한빈, 지걸 등 형제들을 인도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 갈 대는 식당에서 알바하는 조방방 조방방을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을 만나고 성경을 공부하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양금락, 장치걸 자매가 장송설 형제를 인도 했습니다. 저를 만나고 또 예수님을 배우고 있습니다. 염단단이 싱옌원 자매님을 인도 했습니다. 중개하지 않으면 4년동안 교회 앞으를 왔다 갔다 해도 하나님께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중개자의 역할이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이겠습니까? 공명 형제 아니면 마군가 또 어떻게 나올 수 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다 이렇게 중개자들을 통해서 주님께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앞으로 먼 훗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아무 도 모릅니다. 제가 대학 들어갔을 때 자취방에 한 선배가 저를 ubf로 인도했습니다. 그분은 얼마 후 떠났지만 저는 거기 남아 부르심을 받고 목자가 되었습니다. 제가 또 여러 형제 자매를 성경공부하며 주님께 인도했습니다. 그 중에 한 형제는 의사가 되어 광주 7부를 섬기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자매는 한 의사 형제와 결혼하고 광주 3부를 섬기는 사모가 되었습니다. 오기희 형제도 거기서 지금 결혼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 후에 저는 잘 모릅니다. 제가 28살에 제주도에 가서 개척을 했는데 처음 인도한 몇 몇 형제 중에 지금 조마가 형제는 목사가 되어 제주 선교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 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러 왔는지 모릅니다. 생명의 역사는 일단 시작되면 우리가 알게 모르게 계속 자라고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 세상을 덮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는 한 사람을 인도 했지만 나중에 열매는 상상할 수도 없는 열매가 맺혀지 모릅니다.
소련 공산주의를 붕괴시키는 데에 선봉장 역할을 담당했던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기자 회견에서 자기로 하여금 소련 민주화를 위해 투신하게 한 사람은 폴란드의 바웬사였다고 말했습니다. 폴란드 자유노조의 지도자였다가 대통령이 되었던 레흐 바웬사의 수기를 읽고 그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웬사는 자기를 그렇게 만든 사람은 미국 흑인 민권 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라고 밝혔습니다. 킹 목사의 전기를 읽은 뒤에 공산당에 착취당하는 국민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킹 목사가 민권 운동에 나서게 된 동기는 흑인 여자 로사 팍스를 우연히 만난데 있었습니다. 버스를 탄 팍스 여인은 뒤쪽 흑인석으로 가지 않고 앞쪽 백인석 전용자리에 앉았습니다. 운전수가 당장 일어나 흑인석으로 가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모든 생명의 가치가 동일함을 믿었던 그 팍스 여인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의 용기와 믿음에 감동한 루터 킹 목사는 그 날 그 여인에게서 만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뜻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흑인을 사람답게 살리기 위한 그 유명한 민권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재봉사였던 로사 팍스는 가난하고 무식한 흑인 여인일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무리 죽었다 깨어나도 마틴 루터 킹 목사 같은 위대한 민권 운동가나, 레흐 바웬사 같은 민족 지도자나, 보리스 옐친 같은 위대한 혁명가는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로사 팍스 여인이 없었다면 마틴 루터 킹 목사도, 레흐 바웬사도, 보리스 옐친도 어쩌면 있을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그 볼품없는 한 여인의 삶이 미국 사회에서 흑인의 인권을 바로 세웠고, 공산 정부의 압정 이래에서 폴란드 국민과 러시아 국민들을 구원해 내었다는 것입니다. 그 여인은 단 한 번도 국경을 넘은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달리는 버스 속에서 그 일을 이루어 내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또 다른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 중개자들입니다. 이 이야기는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큰 역사를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나의 정직한 한 행동이, 나의 순결한 한 삶의 모습이, 하나님과 말씀 앞에서 순종하려고 몸부림치는 내 작은 순종이, 한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심정이 미래에 역사를 바꾸는 이름 모를 한 위대한 인물에게 영향력을 준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만난 우리는 모두 복음의 중개자입니다. 예수님의 중개자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말을 하는지 어떻게 행동을 하는지에 따라서 예수님을 바르게 중개할 수도 있고, 잘 못 중개할 수도 있습니다. 다니엘서 12:3을 보면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고 하였습니다. 나 한 사람을 인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모든 삶 속에서 우리는 중개인으로서 좋은 삶의 영향력을 보이고 우리를 인해서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추석에도 말을 하던 안 하던 우리의 삶이 가족들에게 복음의 중개자 역할이 되기를 기도 합니다. 주님과 함께 훌륭한 추석 잘 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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