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722 은혜와 책임.hwp
180722 시89:20-21, 27-37, 삼하7:1-14, 엡2:11-22, 막6:30-34, 53-56
언젠가 존경하는 한 목사님은 왜 목사가 되었냐는 질문에 나쁜 짓을 많이 해서 목사가 된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했습니다. 한편에서는 우스개소리 같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의미 있는 듯 합니다. 나쁜 짓을 많이 했는데 변화되어서 회개하는 의미로 선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보편의 목사 이미지는 거룩하고 흠없이 깨끗하고 도덕성이 우수한, 말 그대로 성직자 이미지를 갖습니다. 그래서 약간의 선입견도 있습니다. 보통 사람과는 다를 거야라는 선입견입니다. 그러나 정말 나쁜 짓 많이 했다고 이야기 하는 목사라면 그런 이미지 보다 좀 더 가까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과 친숙하고 이해도 빠르고 보통 사람과 다름이 아닌 같음의 이미지를 갖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목사가 된 이유라고 해석을 달아봅니다. 그 후로는 저도 주변에서 물을 때, 나쁜 짓 많이 해서 목사가 된 것 같ㄴ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곤 합니다.
나쁜 짓 하는 사람을 무작정 손가락질 할 수 없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순간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먼저 이해하려고 합니다. 나도 그랬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닌 것처럼, 나는 안 그랬던 것처럼 감추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쁜 사람이 이제는 변화되어 죗값을 치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변화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그리스도인은 은혜라고 하며, 은혜의 보답을 책임이라고 합니다. 죄가 깊은 곳에 은혜가 크다는 말처럼 은혜를 깊이 느낀 사람은 강력한 책임감을 응당 갖게 되기에 그것마저 오롯이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은 세 가지 이야기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이야기하는 부분이고, 둘째는 예수께서 무리들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불쌍히 여기고 가르친 것입니다. 세 번째는 사람들이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면 병자가 나을 것이라며 모여든 것입니다. 우선 사도들의 모습을 생각해봅니다. 그들 대부분이 갈릴리 시골 마을 사람들입니다. 몇몇은 어부이고, 세리도 있습니다. 가난한 시골 마을이라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겨우 먹고 사는 그래서 무시당하는, 소위 보잘 것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사도로 부름 받고 보냄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행한 일과 나타난 능력들을 보고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께서 무리를 보고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불쌍히 여겨 가르쳤다는 부분입니다. 목자 없는 양은 오갈 데를 모릅니다. 그저 분위기에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닙니다. 매 순간 이리 같은 맹수의 공격에 겁을 먹고 두려움으로 살아갑니다. 한 마리가 낭떠러지를 향해 달리면 모두가 그리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 목자 없는 양입니다. 예수 곁에 모인 무리들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를, 죽어도 왜 죽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무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친 것일까요?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딸이다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들의 풀도 입히시는 하나님이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 너희 한 사람 한사람이 천하보다 귀하고 존엄하다 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마지막으로 예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면 나을 것이라 믿고 모였던 무리들의 모습입니다. 철저한 성전종교체제 아래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의 가르침에서는 완벽하게 소외되고 배제된 병자들입니다. 그리고 가족들이고 지인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인간으로의 가치는 먼 꿈일 뿐입니다. 꿈조차 생각하지 못할 일인지도 모릅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무리들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소문을 듣자니 아무런 대가없이,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람을 가까이 한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이들에게는 희망의 희망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자들, 존재 가치를 모르고 있던 자들이, 사도로 부름 받았고, 목자 없는 양에게 목자가 되었고, 희망 없는 자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희망의 희망이 되었다는 것이 오늘 복음서를 통해 하시는 말씀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여러분들은 그 예수를 통해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딸이라 믿어지십니까? 어둠과 절망이 사라지고, 희망의 희망이 가슴 깊이 파고들어 활활타오르십니까?
사무엘하 본문에 다윗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들에서 양을 따르는 자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자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경주의 시골 마을, 하루에 버스 3번 다니는 마을에서, 어릴적부터 소똥을 치던 한 키작은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까? 값없이 그저 주어진 은혜를 어찌 저만 가지고 있겠습니까? 세상 속에 목자 없는 양 같은 그 세상에 은혜를 나눠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이 불쌍하지 않습니까? 목자 없는 세상에 목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장 존귀한 당신이라고 이야기 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에베소서 본문에 바울은 예수를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셨다.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구한 우리들입니다. 우리 한 사람한사람을 가장 존귀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으셨다면 그것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그 은혜가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 선한 힘이 고요히 우리를 감싸고 있기에, 그 어떤 일에도 희망 가득(본회퍼)입니다. 그 은혜를 느끼는 이들은 응당 책임적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 책임은 병들고 아파하는, 고통과 눈물 흘리는 곳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책임이 희망으로 꽃피길 간절히 두 손 모읍니다.
기도(시편본문)시89:20-21, 27-3720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내어 나의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었도다 21 내 손이 그와 함께 하여 견고하게 하고 내 팔이 그를 힘이 있게 하리로다 27 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 28 그를 위하여 나의 인자함을 영원히 지키고 그와 맺은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며 29 또 그의 후손을 영구하게 하여 그의 왕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30 만일 그의 자손이 내 법을 버리며 내 규례대로 행하지 아니하며 31 내 율례를 깨뜨리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32 내가 회초리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하리로다 33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는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34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고 내 입술에서 낸 것은 변하지 아니하리로다 35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 번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말을 하지 아니할 것이라 36 그의 후손이 장구하고 그의 왕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 37 또 궁창의 확실한 증인인 달 같이 영원히 견고하게 되리라 하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