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청에서 공문 한 통이 도착했다. 공문을 뜯어보고 깜짝 놀랐다. 제목이 <도로명주소 건물번호판 망실에 대한 재부착 안내>라고 되어 있다. 도로명주소건물번호판이 없어진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까지 붙어 있었는데 그게 갑자기 왜 없어져? 그리고 누가 와서 확인했는데? 서둘러 도로명주소건물번호판이 부착된 곳으로 가서 확인을 해 보니 없다. 주차장 마당 옆의 우체국 옆면에 푸른 바탕에 도로명주소건물번호판이 붙어 있었는데 그 자리가 휑하다. 큰 바람이 분 것도 아니다. 혹시나 싶어 주변과 풀숲을 살펴봐도 흔적이 없다. 도로명주소건물번호판은 가볍지 않다. 강풍에 날아갔다고 해도 마당에 떨어져 있어야 마땅하다. 내가 알기로는 날아갈 리도 없는 무게다. 만약 도로명주소건물번호판이 저절로 떨어졌으면 우체통 주변에 있어야 마땅하다. 강력 접착제로 붙인 흔적에는 억지로 떼어낸 자국이 선명하다. 도로명주소건물번호판이 분실 된 것을 군에서는 어떻게 알았을까. 누가 와서 확인해 간 것일까. 분명 이것은 누군가의 소행이다. 주인도 모르는 사이 국가에서 부착한 물건이 사라졌다면 손을 탄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군에서 온 공문에는 도로명주소건물 번호판을 분실했을 때는 직접 자부담으로 새로 맞추어 달아야 하고, 단 후에는 사진을 찍어 군청 담당자 앞으로 보내야 한다고 되어 있다. 한 달 이내에 재부착을 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가 된다는 항목도 들어 있다. 도로명주소건물번호판을 분실한 22곳의 집 주소가 쭉 나와 있다. 대부분 우리 집처럼 한적한 곳에 있는 집들 같다. 또한 도로명주소건물 번호판을 만드는 업체 두 곳이 적혀 있다. 창원과 경남의 업체인데 빨간 글씨로 "특정업체를 지정하는 것이 아님' 이라고 되어 있다. 누가 우리 집에 왔다 간 것일까. 우리 집에 도로명주소건물번호판이 없어졌는지 신고한 확인자도 알아야겠고, 어떤 업체를 선정한 것인지도 알아 봐야겠다. 우선 공문서에 적힌 대로 군청민원봉사과 토지정보담당자에게 전화부터 걸었다.
"오늘 도로명주소건물번호판 재부착에 따른 공문 하나를 받았는데요. 바로 확인해 보니 누군가 억지로 떼어 간 흔적이 남아 있더군요. 와서 확인해 보세요. 이건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 마땅할 것 같은데 일단 담당자랑 이야기를 해 본 후에 결정하려고요. 누가 확인 했나요? 우리 집 건물 번호판이 없어졌다는 것을? 경찰에 바로 신고할까요? 건물번호판 점검대상 목록을 보니까 대부분 우리 집처럼 골짜기나 외딴 집의 번호판이 없어진 것 같은데요."
"잠깐만요. 제가 알아보고 전화 드릴게요. 거기가 어디 인가요?"
주소를 불러 주었다. 확인해보고 전화를 해주겠단다. 공무원들의 안이한 태도도 마음에 안 든다. 도로명주소건물번호판이 있는지 없는지 점검을 하러 왔다면 주인부터 만나고 가야 하는 것이 옳은 처사다. 도둑처럼 슬그머니 와서 도로명주소건물번호판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만 하고 가는 것도 잘못 되었다. 여기엔 뭔가가 있다. 경제가 어려우면 경제절도범이 생긴다고 한다. 한 때 쇠뭉치나 맨홀 뚜껑조차 도둑이 떼어가는 바람에 언론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다. 돈이 된다면 사기도 지능적으로 치는 세상이다. 세상에 믿을 놈이 없다는 말이 왜 생겼겠는가.
도로명주소건물번호판이 분실 되었을 때 자부담으로 새 번호판을 달아야 한다면 그것도 돈벌이 수단이 될 수 있다. 창원과 진주에 건물번호판 만드는 업체가 몇 군데나 되는지 모르지만 두 업체 중 한 업체는 검은 글씨로 굵게 확인사살을 해 놓고 한 업체는 일반 글씨체로 업체 이름과 전화번호를 표시해 놓고 인근에 있는 업체를 알려드리는 것이라는 친절한 문구도 넣어 놓았다. 그 아래 붉은 글씨로 별표를 그려놓고 '특정업체를 지정하는 것은 아님'이라고 표시해 놨다. 특정 업체를 선정해 놓았다는 뜻이 완연하다. 짜고 치는 고스톱 같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가. 어리석은 게 인간이다. 먹고 살자고 하는 방법이 해도 이런 방법은 비열하다. 개인이 떼어낸 것이 아닌데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니. 그것도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분실한 것이 아니면 국가에서 부담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 모든 잘잘못을 따져보지도 확인도 하지 않고 그 부담을 개인에게 전과한다는 것은 큰 잘못이다.
군청 담당자에게서 어떤 식으로 연락이 올지 기다려보겠지만 임시방편으로 연락드리겠다고 했다면 며칠 내로 경찰에 신고를 할 참이다. 나만 당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도로명주소건물번호판을 불법으로 회수해 가고 개인에게 재부착 하라고 강요함으로서 이득을 취하는 업체가 있다면 그 죄질에 따른 응분의 대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관공서와 업체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 요즘 대센가. 민초는 억울하게 당하고도 삭히며 살아야 하는가. 제발 내 생각이 기우에 그치기를. 바른 마음 바른 정신으로 불신보다 믿음을 믿으며 살아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