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로코코
(1) 사회·문화적 배경
로코코의 어원은 프랑스어로 로카유(rocaille)와 코키유(coquille)인데, '정원의 장식으로 사용된 조개 껍질이나 작은 돌의 곡선'을 의미한다. 섬세하고 우아한 곡선이 주제를 이루며 밝고 화려하고 세련된 귀족 취미를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로코코는 외형상의 양식이라기 보다는 장식의 개념에 치중한 것이다. 로코코 시대에는 새로운 부르조아 계급의 급성장으로, 아름다운 부인들을 중심으로 살롱(salon)문화가 발달하고 여기에서 여성 중심의 예술이 꽃피어 잔잔하고 섬세한 곡선미의 로코코 예술이 탄생되었다. 바로크 양식이 절대적인 국가의 왕성한 의욕을 나타내었다면, 로코코 양식은 인간적인 친근함과 상냥함을 가졌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취향은 귀족 사회가 퇴폐해 가는 양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로코코 양식은 전 유럽에 확산되었으며, 직물 및 복식에 뿐만 아니라 건축, 가구, 미술, 음악 등에 많은 영항을 미쳤다.
영국에서의 산업 혁명은 18세기의 가장 획기적 현상 중 하나로, 여러 가지 기계 발명이 실체화되어 유럽 각지, 미국으로 파급되어 근대 복식의 발전에 가장 크게 공헌했다. 인쇄 기술의 발달로 18세기의 모드 전달 방법에도 변화가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잡지가 대량 출판되었고 여기에는 의상의 형태, 재료, 착용법 등을 상세히 기록하여 당시의 복식 문화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며 후에 복식 자료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모드지와 함께 의상실, 기성복도 눈에 띄게 나타났다. 기성복점은 1770년경 달티가롱(daltigalon)에 의해 처음 개점되었는데, 이는 근대 복식 문화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프랑스가 프랑스 혁명 때까지 복식 전반을 지배하였으며, 특히 루이15세의 애인이었던 뽕빠두르(Pompadour)와 두바리(Dubbary), 그리고 루이16세때 왕비였던 마리 앙뜨와네트(Marie Antoinette)는 패션리더로써 그 당시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의 복식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18세기 중엽 부터는 약간 다른 경향을 보였다. 고대(古代)의 간소한 아름다움이 로코코 양식에 융합되기 시작하여 품위있는 직선을 좋아하게 되고, 자유 분방한 움직임으로부터 어떤 일정한 틀로 들어 가려는 징조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 모드는 산업 혁명으로 번영·발전하게 된 영국으로 옮겨져 궁정 귀족풍의 찬란하고 퇴폐적인 모드를 버리고 영국의 자연적이고 실용적인 모드를 모방한 것이 나타났다.
(2) 로코코 복식
로코코 시대는 보통 세 시기로 구분된다. 초기로는 루이 15세의 섭정기(攝政期, 1725∼1774), 중기로는 루이 15세의 친정기(親政期, 1723∼1774), 그리고 말기로서 루이 16세 시대(1774∼1792)로 구분한다. 복식 문화를 중심으로 이 세 시대를 연구하여 보면, 로코코 양식으로 가장 화려한 시기는 중기인 루이 15세때와 루이 16세 시대의 초기로 볼 수 있다.
로코코풍의 의상은 로코코 시대 궁정 여인들의 의상에서 시작되었는데, 그들은 관능적이며 향락적인 생활을 즐겼고 이러한 생활상은 의상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18세기의 복식은 가슴을 깊이 파고 허리를 졸라 매어 힙(hip)부분을 펼침으로써 여성적인 곡선미를 의식적으로 강조하였는데 이러한 경향은 남성복에도 영향을 미쳐 여성적인 우아함을 띠게 하였다. 복식 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친 사치와 화려함 그리고 방탕한 귀족주의는 일반인들의 불만을 크게 일으켜 프랑스 혁명을 가져 왔는데, 혁명 이후에는 자연 그대로의 고대 스타일의 간소한 아름다움의 영향을 받아 단순화되기 시작하였다.
1) 여자 의복
로코코의 여성적 취향은 여성 복식에 한층 더 섬세한 곡선과 꽃, 리본, 깃털, 레이스 등의 장식으로 새로운 모드의 바탕을 생성했다. 여성 의상은 깊이 파인 목둘레선으로 가슴이 많이 노출되고, 소매나 팔꿈치부터 층층으로 풍부한 주름 레이스를 붙이며 허리를 콜셋으로 조여 갸날픈 여성미를 나타내면서, 힙은 빠니에(panier)로 부풀려 리본이나 레이스 등으로 장식하는 것이 유행하였다.
18세기 여자 복식의 기본은 로브, 슈미즈, 외투 등으로 이루어진다. 로브는 로코코 시대 대표적 여자 의상으로 18세기에 가장 아름답게 전개되었다. 로브의 전형적인 모습은 가슴을 깊게 판 네크라인과 크게 부풀린 스커트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소매 끝에 다는 3∼4겹의 층을 이루는 레이스 러플인 앙가장뜨(engageantes)와 스커트 A형 트임의 가장 자리나 페티코트 드레스에 사용된 팔발라(falbala : 헝겊이나 레이스를 주름잡아 만든 트리밍)로서 중요한 장식적인 요소를 이룬다. 뒤의 주름이 풍성한 와또 가운(watteau gown)은 18세기 대표적인 로브로, 그 형태에 따라 앞까지 풍성한 로브 볼랑드(robe volante)와 앞은 꼭 맞고 스커트가 더욱 넓어진 로브 아 라 프랑세에즈(robe a la francaise)로 나누어진다. 로브 볼랑드는 와또 주름(watteau pleats)이라고 하는 풍성한 주름으로 뒷목둘레와 양어깨로부터 스커트 자락에까지 걸쳐 넓혀져 너울거리는 모습이 매우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주었다. 로브 아 라 프랑세에즈는 로브 볼랑드의 변형으로 가슴은 ∨자 형으로 벌어지고 스커트는 ∧자 형으로 열려 그 속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아름다운 스터머커(stomacher)와 언더 스커트(underskirt)가 보였다. 로브 아 라 뽈로네에즈(robe a la polonaise)는 로코코 말기의 대표적인 로브로서 로코코 양식의 특성을 잘 나타내 주었다. 특징적인 것은 오버 스커트를 여러 개의 드레이프로 부풀려서 양옆과 힙(hip)쪽에 놓이게 한 것이다. 소매는 자보 슬리브(jabot sleeve)로서 팔꿈치까지는 꼭 맞고 그 끝은 러플로써 장식했다.
콜셋(corset)은 허리를 가늘게 하고 가슴을 부풀려 아름답게 다듬기 위해 슈미즈 위에 착용하였다. 재료로는 주로 고래 수염을 사용하였으며, 트임은 영국의 영향을 받아 앞 중심보다는 뒤에 위치하는 것이 많았다. 16세기 이후 금속 콜셋으로부터 차차 개량되어 18세기 후기에 이르러서는 허리를 가늘어 보이게 하며 모양이 아름다우면서도 입기 편한 것이 착용되었다.
빠니에(panier)는 스커트 버팀대로 콜셋으로 허라를 조인 후 그 위에 입혀졌다. 빠니에는 16세기 초 스페인 모드에 기원을 두고 있는 베르쥬가당(vertugadin)의 변형으로 볼 수 있는데, 초기에는 종(鍾)모양을 하고 있었으나 점점 커지면서 40년대에는 스커트 도련이 타원형이 되어 앞뒤보다 좌우양옆이 넓게 퍼진 모양이었다. 50년대에는 대형의 원통형이 유행했으나 이와 병행하여 편리한 사이드 후프(side hoop) 즉 빠니에 두블르(panier double)가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양옆만을 부풀릴 목적으로 빠니에를 두 개 만들어 붙인 것으로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유행되었다. 이같은 버팀대의 출현은 복식 사상 실로 기묘한 현상이었지만 이것은 가는 허리와 함께 귀족적인 스타일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었다. 또한 로브 위에 입는 외투로는, 망토처럼 생긴 쁠리스(pelisse)와 후드가 달린 망토 스타일의 쁠리린느(pelerine)가 있었다.
2) 남자 의복
남자 복식은 기본형에는 큰 변화가 없이 기능적인 의상으로 발전하였다. 17세기에 확립된 코트, 조끼, 바지의 형식이 그대로 지속되었고, 보다 여성적인 스타일이 되어 부드러운 느낌을 주었다. 코트(coat)로는 아비 아 라 프랑세에즈(habit a la francaise)와 프락(frac), 르뎅고뜨(redingote)가 있었고, 조끼로는 베스트(veste)와 질레(gilet)가 있으며, 바지로는 뀔로뜨(culotte), 호즈(hose), 판탈롱(pantalon)이 있었다.
18세기 남성복의 상의로서 주로 코트류가 많이 입혀졌는데 그 종류도 다양하여 쥐스또꼬르(justaucorps)가 변형된 아비 아 라 프랑세에즈, 프락, 르뎅고뜨, 그리고 서민용 상의로서 까르마뇰(carmagnole) 등이 있었다. 아비 아 라 프랑세에즈의 기본형은 17세기의 것과 별다른 것은 없으나, 여자 옷처럼 허리는 약간 안으로 들어가고 힙(hip)부터 단까지는 밖으로 자연스럽게 퍼져 나가는 실루엣을 특징으로 하였다. 프락은 영국 일반 서민들 사이에 수수한 의상으로 입혀지기 시작한 실용적 형태의 의상으로, 너무 몸에 끼지 않고 불필요한 여유분이나 장식을 없앰으로써 활동하기에 편리한 형태로 바뀐 것이다. 르뎅고뜨는 영국에서 프랑스로 들어와 유행된 코트로 칼라(collar)가 2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르뎅고뜨가 처음 유행되었을 때는 그다지 멋스러운 외관이 아니었지만 널리 보급됨에 따라 각 부분이 세련되어지고 아비 르뎅고뜨로 불리며 19세기까지 예복으로서 착용되었다.
18세기에 착용한 남자 조끼는 베스트와 질레가 있었다. 18세기 후반에 코트의 길이가 변함에 따라 베스트도 그 길이가 차차 짧아져 모양이 변화하였는데, 실용적인 질레가 등장하면서 실내에서만 입는 사치품으로 남았다. 질레는 소매가 없고 길이는 허리까지 오고 밑단은 수평이었다. 재료는 앞판에만 아름다운 천을 사용하였고, 뒷판은 저렴하고 실용적인 천을 사용하여 서민풍인 검소, 실용성을 강조하였다. 뀔로뜨는 무릎 밑까지 오는 통이 좁은 바지로, 남성들의 넙적다리 곡선이 그대로 보여질 정도로 타이트하게 착용함으로 남성미를 과시하였다. 호즈는 뀔로드와 함께 착용했던 양말이며, 18세기 전반에는 흰색 바탕에 파란 줄무늬 양말을 신는 것이 유행했다.
(3) 머리 장식 및 장신구
17세기 대형의 가발 착용은, 18세기에 편리한 머리형인 땋은 머리에 의해 대치되었다. 1730년경에는 다시 가발이 나타났는데, 까만 리본이 달린 타이 위그(tie wig), 머리에 뿌린 밀가루가 떨어지는 것을 받아 담는 백(bag)이 달린 백 위그(bag wig), 피그테일에 매듭이 지어진 피그테일 위그(pigtail wig) 등 많은 종류가 있었으나 이전처럼 복잡하지는 않았다.
18세기 여자들의 머리 모양은 가장 흥미를 집중시키는 스타일을 연출했다. 초기에는 바로크 시대에 유행했던 퐁땅쥬(fontanges)가 유행하였으나, 루이 14세 사망 후 머리 카락을 부풀리지 않고 뒤로 빗어 넘긴 우아하고 깔끔한 뽕빠두르(pompadour)형이 유행하였다. 1760년 경에는 머리형에 변화가 나타나게 되어 점차 높이는 증가되고 장식이 높이 쌓여 그 크기와 복잡함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여서 당시 여자들의 병적인 자기 과시를 말해 주었다.
로코코 시대에는 남녀 모두 화장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전 세기보다 인공적인 화장법이 발달하였고, 파우더를 머리 전체 뿐 아니라 얼굴에도 하얗게 발랐다. 장신구로 보석의 사용이 눈에 띄게 줄었고, 남성들은 외눈 안경을 장신구로 사용하였으며 시계 역시 귀중한 장신구이었다. 머프(muff)는 남녀 모두 필수품처럼 되었고 크기가 점차 대형화되었으며 보온과 위엄을 나타내는 중요한 악세서리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