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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불고염치하고 돌아갑니다” |
사자성어인 ‘불고염치(不顧廉恥)’에서 염치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란 의미로 사용됩니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이야 누구에게나 있는데, 그것을 돌아보지 못한다는 것은 아마도 두 가지 경우이겠지요. 첫째는 성격 자체가 원래 너무도 뻔뻔하기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경우, 둘째는 부끄러운 것은 알지만 그것을 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곤란한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작은 아들은 어떤 경우일까요? 아버지 밑에서 부족한 것 없이 살던 그가 자기에게 돌아올 몫을 달라고 청했던 모습을 보면 분명 성격 자체가 뻔뻔한 것이 분명합니다. 유산을 미리 분배해달라는 말은 그 당시 풍습 안에서는 “아버지, 빨리 죽으셔요”라는 말과도 같기 때문이지요. 정말 부끄러움도, 버릇도 없는 불효자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집을 떠나 먼 고장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한 후, 곤궁에 시달리며 배고픔에 돼지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을 때 아들에게 들었던 마음은 다릅니다. 아버지를 찾아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용서를 청하겠다는 결심이었지요. 내가 지은 죄에 대한 부끄러움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기에 감히 아버지께로 돌아갈 면목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아버지께서 저를 받아주시기를 청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분명 작은 아들은 염치없는 행동을 했었고 또 곤궁에 처했기에 ‘불고염치’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불고염치하고 돌아와 용서를 청하는 ‘용기’가 있었기에, 결국 아버지 집에서 다시 살 수 있게 되었음을 잊지 맙시다. 우리가 사순 시기에 하느님 아버지께로 마음을 돌리는 데에는 ‘염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짓고, 하느님을 외면하고, 하느님께로부터 떠나간 적이 있었어도 괜찮습니다. 나의 죄가 부끄러워 하느님을 다시 뵐 낯이 없어도 개의치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이제나저제나 돌아올 아들을 기다리고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사랑 지극한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돌아온 아들이 아버지께 다가가 청하기도 전에 이미 아버지는 아들을 용서하고 달려나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음을 기억합시다. 많은 분들이 “그동안 냉담한 것이 염치없어서 성당에 못 나오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은 믿음 없는 겸손이며, 또 다른 교만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자비에 대한 믿음을 겸손과 함께 가지고 있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사랑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 우리 모두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대한 믿음으로 용기를 냅시다. 그리고 염치 돌아보지 말고 하느님께 청합시다. “아버지, 돌아온 저를 받아주십시오.” |
글/ 이상협(그레고리오) 신부 시화바오로성당 보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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