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절로 와도 절로 피는 꽃은 없으니... 2012.2.1
눈이 펑펑 내리는 저녁 길거리를 창밖으로 내다보다가 ‘곧 立春(입춘)이 들 터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 겨울 들어 서울은 제대로 눈이 내린 적이 없는데 봄이 다가온다 하니 갑자기 눈이 내려? 아쉽긴 한 모양이지! 하는 생각.
立春(입춘)이라는 글자 속에 ‘봄 春(춘)’이 들어가 있다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봄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봄이란 봄의 마지막 달인 春三月(춘삼월)이니 그렇다.
모두들 봄을 좋은 계절이라 하지만 그건 春三月(춘삼월)만 해당된다. 춘삼월, 그러니까 양력 4월 초가 되면 벚꽃이 피어나 산이 啞然(아연) 화려해지며 공기가 훈훈해지니 살만한 때가 된다. 그래서 봄을 좋다 한다.
하지만 입춘으로부터 두 달간의 산과 들은 보기에도 실로 민망하다. 겨울이 갔다 하지만 날씨 여전 쌀쌀 냉랭하고 어디에도 눈길을 끄는 것은 뵈지 않는다.
양력 4월 초순 이전의 봄은 그냥 잿빛이다. 눈은 대부분 녹아서 산등성에만 殘雪(잔설) 희끗 비치고 나무들은 아직 筍(순)을 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민망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른 봄을 두고 ‘봄이 왔어도 봄 같지 않다’,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이라 한다.
하지만 모든 봄은 처음 두 달 동안 전혀 봄 같지 않은 것이니 그게 실은 봄인 것이다. 어떻게 춘삼월만 봄이라 하랴! 그저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급하다 해야 하리라.
그런데 보면 그 따뜻한 봄을 묵묵하고도 열심히 열어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봄이 되어도 전혀 봄 같지가 않다고 울어대는 이도 있는 세상이다.
이게 세상의 이치이고 또 음양의 이치이니, 앞의 사람을 나는 ‘건설자라고 하고, 뒤의 사람을 ’시인‘이라 한다. 앞의 사람은 陽(양)이니 아버지라 하겠고, 뒤의 사람은 陰(음)이니 어머니라 하겠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엄한 아버지보다 자상하고 포근한 어머니를 더 좋아하는 법이듯, 세상의 사람들은 ‘봄의 건설자’보다 봄이 왔어도 봄 같지 않다고 울어대는 詩人(시인)을 더 좋아한다.
大衆(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理性(이성)이 아니라 感性(감성)이라 그렇다.
하지만 먼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봄이야 때가 되면 다가오지만, 봄의 새싹과 꽃들은 그냥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겨우내 얼어 죽지 않으려고 몸을 싸매고 바짝 웅크리고 있던 풀과 나무들은 봄이 되면 소생의 始動(시동)을 건다. 그들 역시 생명인 만큼 시동을 걸어야 하는 것이지 누가 절로 시동을 걸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무와 풀들 역시 어렵사리 시동을 걸고 봄을 建設(건설)해가야 하는 것이지, 가만히 있어도 싹이 트고 봄꽃이 절로 피어나지 않는다. 절로 그렇게 된다고 우리가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나무와 풀에 대해 무관심하고 잘 몰라서 그럴 뿐이다.
나무와 풀 역시도 哀歡(애환)이 있으니, 자연 속의 모든 생명은 우리 인간을 포함해서 힘들게 살아간다는 사실. 죽음의 계절인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다시 살아나기 위해, 그러니까 蘇生(소생)하기 위해 힘차게 노력하면서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쯤에서 말머리를 돌려본다.
작년 일본은 처음으로 무역적자를 봤다고 한다.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마당에 사고난 원전에 대한 뒤처리도 아주 엉망이었던 일본이다. 게다가 이대로 가면 일본의 인구마저 급감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남자라곤 모두 ‘초식남’이고 어디 좀 근성 있는 사내는 보이지 않는다는 일본이다.
精巧(정교)함의 대명사였던 일본은 어디로 갔는가? 승승장구의 경제대국 일본은 또 어디로 갔으며, 우리가 그렇게도 배우고 따라 하고자 하던 모범국가 일본은 간 곳이 없다.
얼마 전 뉴스에는 일본어 배우려는 사람이 씨가 마를 정도라고 한다. 그 누구도 일본을 주목하지 않는다.
지난 1980 년대 시절 온 세계를 다 사들일 것만 같던 일본의 위세와 영광은 이제 흔적조차 없다.
그렇다면 지금 일본은 어떤 계절을 지나가고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일본의 계절은 바로 양력 3월, 그러니까 봄을 맞이한 지 제법 되었다.
지금 일본의 달력은 정확하게 몇월 몇일인지도 계산해낼 수 있다.
2005 년 2월로서 立春(입춘)이었고 2010 년 2월로서 驚蟄(경칩)이었다. 오는 2015 년 2월이면 드디어 꽃피는 淸明(청명)의 때를 맞이한다. 그러니 지금은 어느 쯤에 있는가?
지금이 2012 년 2월이니 양력으로 3월 17 일경에 해당된다. 지금 일본의 달력은 3월 17일인 것이다.
사람들 눈에 지금 일본은 죽은 枯木(고목)나무처럼 보이겠지만, 일본은 枯死(고사)한 나무가 아니다. 순을 열고 꽃을 피워내기 위해 속으로 안간 힘을 쓰고 있는 일본인 것이다.
지금 일본은 自愧(자괴)의 심정으로 가득하다. 스스로 너무나도 부끄럽고 민망해서 어디 몸 둘 데를 찾지 못하는 일본이다.
그 부끄러움은 3월 23 일경의 春分(춘분)으로서 절정에 달할 것이니 환산해보면 금년 8월로서 일본의 자괴감은 극에 달할 것이다.
사람이 자신에 대해 민망해하고 한심해하며 自愧(자괴)한다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奮發(분발)과 發展(발전)의 바탕이 된다. 그거야말로 反省(반성)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반성 세게 하고 나면 으레 당연히 자신의 칼날을 벼리게 되는 법, 일본과 일본 사람들은 금년 8월로서 드디어 再起(재기)의 힘찬 시동을 걸기 시작할 것이다.
재기하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실제 재기도 가능한 법이니 이제 금년 8월에 그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실제 다시 일어나기까지는 그 또한 한 세월이 걸릴 것이지만 그렇다.
그렇다면 언제 일본이 세계인의 눈에 다시 일어서는 것으로 보일 것인지 당연히 그 계산도 가능하다.
마음을 먹고 나서 열심히 노력해서 어느 정도 스스로가 되었다 싶을 때까지 무조건 10 년의 세월은 기본이다. 그러니 2012 년 8월에서 10 년을 더하면 2022 년 8월이 된다.
즉 2022 년 8월이 지날 무렵, 눈이 좋고 빠른 자의 눈에는 ‘어? 다 죽었던 일본이 다시 살아나고 있네!’ 하는 감이 들 것이다.
더하여 그로부터 다시 10 년이 지난 2032 년 8월경이 되면 전 세계 미디어들은 온통 한 목소리로 일본을 찬양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 일본의 달력은 양력 7월 23 일경의 大暑(대서), 바로 힘찬 활력의 일본이 되었을 것이니 그렇다.
이제 다시 돌아오자.
일본을 예로 들었던 것은 봄은 마냥 좋은 계절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좋은 계절인 여름을 열어가는 때가 봄인 것이다.
양력 4월, 춘삼월의 開花(개화) 역시 그 자체로 좋은 계절이 아니라, 이제 비로소 좋은 계절인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徵標(징표)이기에 반가운 것이다.
지금 일본은 양력 3월 17일, 저리도 지질하다.
중국은 양력 8월 20일, 대단히 원기 왕성하고 오는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만들어가고 있다. 과연 중국이 어떤 수확을 보게 될 것인지를 놓고 시기 반 부러움 반의 눈초리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언제인가?
양력 11월 25일 경이다. 낙엽 분분 지는 계절이고 첫눈도 이미 한번 쯤 내렸다.
창밖 하늘을 보니 입춘 며칠 앞둔 겨울날의 햇빛이 제법 환하게 비쳐온다. 하지만 우리의 달력은 11월 25일, 이제 한참 겨울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으니 때를 잘 모르겠다.
우리는 1964 년 입춘을 맞이한 이래 정말 처절한 정도의 노력으로 힘차게 봄을 열어갔었고 1971 년의 여름 무렵에는 모두들 민망해했고 自愧(자괴)의 심정으로 침통했던 우리였다.
1971 년으로부터 30 년이 지난 2001 년이 되자 서로마다 더 가지겠다는 마음, 내가 못 가진 것은 너 때문이라는 생각, 서로가 서로를 증오 질시하는 마음만이 가득한 사이에 이제 우리의 달력은 어느새 진짜 겨울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오늘인 것이다.
그러니 입춘을 앞에 둔 2012 년 2월 1일은 어떤 달력이며 11월 25일을 가리키는 우리 ‘국운의 달력’은 또 어떤 달력인지 그를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다.
봄은 절로 오지만 봄꽃은 절로 피지 않는다는 사실만 그저 머릿속에 가득하다.
[출처]<a href='http://www.hohodang.com/?bbs/view.php?id=free_style&no=745' target='_blank'>호호당 블로그</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