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동방불패(東方不敗)’.
한족의 명(明)나라에 대항해 먀오족의 나라를 세우려는 동방불패를 주인공으로 한 홍콩 무협영화다.
먀오족의 새로운 리더 동방불패는 ‘일월신교(日月神敎)’라는 종교집단을 장악하고 외세(外勢)인 일본 낭인들까지 끌어들여
한족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먀오족끼리 내분을 거듭하다 결국 몰락한다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다.
동방불패로 분한 한족 영화배우 임청하는 당대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영화 속에서 동방불패는 “너희 한족은 금(만주), 요(거란), 묘(묘족), 장(티베트), 몽(몽골), 회(회족) 6족 가운데
수가 가장 적은 먀오족(묘족)을 제일 괴롭혔다”고 일성을 내뱉는다.
허구적 사실에 근거한 영화지만 ‘동방불패’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먀오족의 존재를 처음으로 각인시킨 영화로 평가받는다.
구이저우 20여개 자치지역에 절반 거주
미국 캘리포니아 등에도 20여만명 살아
중국 전역에 살고 있는 먀오족은 모두 894만명가량이다.
중국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좡족 △만주족 △후이족(회족)에 이어 4번째로 그 수가 많다.
영화 ‘동방불패’에서 먀오족은 타이완을 마주하고 있는 푸젠성 해안가에 사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먀오족은
서남부 내륙지역에 주로 거주한다.
당초 황허 중류에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먀오족은 한족들에게 밀려 남하를 거듭하다 창장(長江) 이남까지 내려왔다.
지금은 대다수의 먀오족이 구이저우(貴州), 후난(湖南), 윈난(雲南), 광시와 같은 창장 이남에 주로 거주한다.
그 가운데 구이저우성 동남부 산간지방에는 전체 먀오족의 48%가량이 모여 산다.
이 밖에 구이저우와 접경을 이루는 후난성과 윈난성에도 전체 먀오족의 21%, 11%가량이 모여 살고 있다.
-
- ▲ 먀오족 여자아이들. / photo 바이두
소수민족의 용광로로 불리는 윈난성과 광시 좡족(壯族)자치구 사이에 있는 구이저우는 먀오족의 근거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이저우에만 족히 20개가 넘는 먀오족 자치주와 자치현이 있다.
먀오족 자치주와 자치현은 대개 먀오족을 중심으로 동족이나 이족 같은 기타 소수민족들을 한꺼번에 묶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자치주와 자치현의 규모는 작게는 1만명부터 크게는 27만명까지 각양각색이다.
구이저우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1985년부터 1988년까지 3년간 당 서기를 지낸 곳이기도 하다.
당시 후진타오 당 서기는 소수민족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해진다.
중국 국적이 아닌 해외에 사는 먀오족도 상당수다.
중국 남부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베트남과 라오스에도 각각 79만명과 32만명가량의 먀오족이 살고 있다.
베트남과 라오스에 살고 있는 먀오족은 ‘흐몽족(赫蒙族·혁몽족)’으로 불린다.
베트남에 사는 먀오족들은 베트남 전쟁에도 개입했다. 현지 지형에 익숙한 먀오족들은 미군과 협력해
공산 베트콩(월맹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미군 포로들을 구출하는 역할을 했다.
라오스 왕국과 공산반군 사이에 벌어진 라오스 내전 때도 먀오족들은 라오스 왕국을 지원하는 미군의 비밀용병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1975년 베트남의 적화통일과 함께 인도차이나(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반도가 공산화되자 미군을 도와 싸운 먀오족은 졸지에 정치 난민 신세가 됐다. 결국 이들은 베트남과 라오스를 떠나 미국과 태국 등지로 대량이주를 감행했다.
이러한 먀오족들의 대량이주는 먀오족이 전세계로 퍼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일대와 태국에는 각각 22만명과 12만명의 먀오족이 살고 있다.
프랑스에도 1만명이 넘게 산다.
미국과 태국 등지에 살고 있는 먀오족과 중국 내에 살고 있는 먀오족을 포함하면 모두 1000만명이 넘는다.
인구 면에서 유럽의 포르투칼(인구 1068만명)에 육박하는 ‘거대’ 소수민족인 셈이다.
해·달 숭배, 1년 365.25일 달력 사용
고대 이집트 태양력보다 정확도 높아
먀오족은 한족을 포함한 중국 56개 민족 가운데 농경 정착생활을 가장 일찍 시작한 민족 가운데 하나다.
‘먀오(苗·묘)’라는 단어 자체도 ‘밭(田)에서 돋아난 풀(草)’을 가리키는 말이다.
위구르족이나 몽골족 같은 북방계 소수민족들이 유목과 낙농업을 업(業)으로 삼는 데 반해 이들은 농업을 주로 한다.
자연히 먹는 음식도 쌀을 위주로 한 곡류가 됐다.
강수량이 풍부한 지역적 특색을 이용해 논에서 벼를 재배한다.
쌀 이외에는 옥수수와 같은 밭 작물을 주로 키운다.
-
- ▲ 베이징올림픽 폐막 공연 중인 플라시도 도밍고와 먀오족 가수 쑹주잉(우).
먀오족은 수풀이 우거지고 물이 풍부한 구이저우, 윈난 등 서남부 오지에 살다 보니 약초(藥草)를 비롯해 뱀과 해충 등을 다루는 일에도 능숙하다. 영화 ‘동방불패’에는 먀오족이 대나무 피리를 사용해 뱀을 능숙하게 부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매혹(魅惑)’보다 강한 의미의 ‘고혹(蠱惑)’이란 단어도 먀오족들이 다루던 ‘음양고(陰陽蠱)’라는 독충에서 비롯됐다는 설이다.
<주간조선 2067호 ‘박영철의 잡학사전’ 참조>
농경 정착생활을 하다 보니 먀오족은 역법(曆法)을 발전시켰다.
먀오족은 태양력을 위주로 한 ‘음양력(陰陽曆)’이란 달력을 사용했다.
1년을 365.25일로 나눈 먀오족의 음양력은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사용하던 태양력보다 정확도가 높다고 알려졌다.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윤년에 고대 이집트의 달력은 6일이 추가되는 데 반해, 먀오족의 역법에는 단지 1일만이 추가된다.
달력을 사용한 시기도 고대 이집트 달력보다 약 3800년가량 앞선다고 알려졌다.
때문에 한족들은 먀오족이 사용한 태양력을 근거로 “먀오족의 달력은 중국 역법의 어머니일뿐 아니라 세계 역법의 어머니”라고 자랑한다.
일찍부터 자체적인 역법을 발전시킨 먀오족은 예로부터 태양과 달, 별과 같은 우주에 떠있는 사물을 숭배했다.
영화 ‘동방불패’에서 주인공 동방불패(임청하 분)는 해와 달이 그려진 부채를 항상 들고 다닌다.
동방불패가 해와 달을 숭상하는 ‘일월신교(日月神敎)’의 교주로 등장하는 까닭도 먀오족의 전통신앙과 관계가 있다.
명교(明敎·중국화된 마니교)의 분파로 알려진 일월신교를 한족들은 흔히 ‘마귀의 종교’란 뜻에서 마교(魔敎)라 부른다. ‘
일월(日月)’은 밝을 ‘명(明)’자를 파자(破字)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 먀오족 사이에 일월신교란 종교집단이 있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전통적으로 한족은 먀오족을 남만(南蠻·남쪽 오랑캐)의 일부에 포함시켰다.
먀오족도 내부적으로 입는 옷이나 거주지역에 따라 △홍먀오(紅苗) △청먀오(靑苗) △흑먀오(黑苗) 등으로 구분된다.
1949년 신중국 건국 이후에야 중구난방 불리던 명칭을 먀오족으로 통일했다.
먀오족은 다른 소수민족들과도 확연히 구분되는 복식을 가지고 있다.
특히 먀오족 여자들은 은(銀)으로 된 장신구를 즐겨 찬다.
은으로 장식된 화관을 머리에 쓰고 무게만 10~20㎏에 달하는 은 목걸이를 목에 건다.
남자들의 경우 정수리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머리카락을 시퍼런 낫으로 ‘빡빡’ 미는 것이 전통이다.
남겨둔 윗머리는 상투 형식으로 틀거나 아래로 땋아서 기른다.
먀오족 자치주의 일부 먀오족 남성들은 여전히 이 같은 두발을 고수하고 있다.
앞머리를 깨끗이 깎는 것은 만주족의 변발과 거의 비슷하다.
옷·거주지 따라 홍·청·흑먀오로 구분하다 통일
음주가무에 능해… ‘중국의 이미자’ 쑹주잉 배출
먀오족은 음주가무에도 능하다. 대나무 피리의 일종인 먀오족의 전통 악기 루셩(芦笙)은 중국 전통악기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중국의 이미자’로 불리는 쑹주잉(宋祖英·43)도 먀오족 출신 가수다.
후난성 샹시(湘西) 먀오족인 투자(土家)족 자치주에서 태어난 쑹주잉은 중앙민족대학에서 음악과 무용을 전공했다
. 이후 ‘소수민족 노래경연대회’를 비롯한 각종 노래 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휩쓸며 1급 가수의 반열에 올랐다.
1991년에는 인민해방군 해정가무단에 가입하고 1999년에는 공산당에 입당하면서 중국의 인민가수가 되었다.
쑹주잉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폐막식에서 세계 3대 테너 중 하나인 플라시도 도밍고(68)와 듀엣으
로 폐막 무대를 장식하기도 했다.
지금도 각종 음악 예술 단체에서 지도급 연예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쑹주잉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을 방문해 공연을 갖기도 했다.
소수민족 출신인 쑹주잉의 급속한 성장배경과 관련해 각종 루머와 스캔들도 나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장쩌민 전 주석(한족)의 정부(情婦)”라는 소문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가 공산당에 가입하고 인민해방군 가수가 돼 승승장구하는 시점은 장쩌민의 집권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최근에는 “베이징에 있는 오페라하우스(국가대극원)는 장쩌민이 쑹주잉에게 준 선물”이란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한족에 뿌리깊은 반감, 명대에 잇단 반란
만주정권 들어서면서 한족에 급속 편입
먀오족은 조선족과 비슷한 면도 있다.
윈난과 쓰촨 등지에 사는 먀오족은 개고기(拘肉)를 즐겨 먹는다.
먀오족들이 민족의 시조로 섬기는 인물도 ‘치우(蚩尤)’다.
치우가 이끈 구려(九黎)족은 먀오족의 선조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일부 재야 사학자들은 치우를 우리 민족의 선조로 생각하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붉은악마’가 공식 마스코트로 사용한 도깨비의 얼굴이 바로 치우의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이다.
치우는 한족의 선조 격인 황제(黃帝)와 탁록( 鹿·허베이성 장자커우 일대)에서 일전을 벌인 바 있다.
이른바 탁록대전으로, 치우의 초반 9차례 승리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단 한 번의 패배로 중국은 황제를 시조로 하는
한족이 장악하게 된다.
중국 사학계에서는 탁록대전을 ‘황허를 기반으로 하는 한족문명과 창장을 기반으로 하는 남방민족 간의 대결’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
- ▲ (왼쪽부터) 먀오족 전통악기 ‘루셩’. / 낫으로 머리를 깎는 먀오족 남성.
탁록대전을 시작으로 먀오족과 한족 간에는 끊임없이 충돌이 이어져왔다.
영화 ‘동방불패’에서도 먀오족 일원신교 옛 교주의 딸은 “한족에게 시집을 가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말하며
한족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을 드러낸다.
실제 영화 ‘동방불패’의 배경이 되는 명나라 말기에 먀오족은 줄곧 한족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
먀오족은 명나라 말기까지만 해도 지방의 실력자라고 할 수 있는 ‘토사(土司)’가 전권을 쥐는 반(半)독립 상태에 놓여 있었다.
구이저우성 일대에는 과거 먀오족이 한족에 저항했던 성터 등 유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하지만 청대 들어 같은 소수민족인 만주족이 중국을 차지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만주 정권은 지방 유지인 ‘토사’들의 힘을 빼고,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에게 힘을 싣는 ‘개토귀류(改土歸流)’ 정책을 전개했다.
이후 먀오족은 한족의 호적에 편입되고 한족의 성씨를 사용하는 등 급속히 한화(漢化)되었다.
결국 소수민족이 소수민족을 굴복시킨 것이다.
하지만 먀오족은 청나라 말기 구이저우, 윈난 등지에서 재차 대규모 반란을 일으켜 만주 정권을 무너뜨리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