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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침같은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나리포
< 문우와 함께 간 정동진의 모래시계>
수많은 인파로 그득한 메밀밭에서 오전 내내 촬영한다고 시간을 보내고, 효석 생가를
들러서 귀가하려고 할 때가 3시 조금 못 미치는 시간이었다.
봉평에서 영동고속도로 IC로 나오다보니 직진 표지판에 평창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오자 어렴풋이 떠오르는 평창강 푸른 물이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25년 전 한번 다녀갔던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아 평창읍내로 바로 들어갔다.
읍내에서 계장리 가는 길을 물어 어렵사리 도착 해 보니 물은 옛 물인데 주변이
많이 변해 있었다.
강을 가로지르던 세월교 자리에는 든든한 아치교가 들어서 있고, 강바닥에 지천으로
널려있던 편편하던 바위들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아마도 그동안 치수사업을 하면서 바위를 전부 옮긴 모양이었고, 강변에는 둑이
튼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강 저편에 우뚝 서 있는 깍아 지른 절벽과 지금도 푸르기만 한
강물 뿐 이었다.
무심한 세월 속에 산천도 이리 변했는가 생각하니 가슴이 찡 하면서 사람은 얼마나
변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와의 편지 왕래가 끊긴 이후에 두어 차래 간단한 엽서가 왔는데 고향을 떠나
여러 곳을 전전한다고 적혀있었기에 그를 찾아보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다.
다만 그의 이후 행적이 궁금하고 그의 가족들 소식도 알고 싶어져서 마을 앞
구멍가게로 들어가 음료수 한 병을 사면서 조심스럽게 질문을 해 보았다.
“저 혹시 이 마을에 한 30여 년 전에 살고 있던 이우영 이라는 사람이 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아시나요?
그의 부모님들은 다 돌아가셨는지요? “
나이가 70쯤 되어 보이고 마음씨가 좋게 보이는 주인아저씨가 나를 빤히 들여다
보면서 물어왔다.
아마 무슨 정보라도 캐러 온 사람인 줄 알고 경계를 하는 눈으로․
“워디서 오신 분 이시래요?”
나는 얼른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 아, 예.
저는 그 사람과 총각시절 만났던 옛 친구입니다
오늘 봉평 메밀꽃 축제 다녀오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 평창강을 둘러보고
나오다가 그 친구 생각이 나서 여쭈어 봅니다.“
이해가 된다는 표정으로 일러준 주인아저씨의 다음 말에 나는 그만 넋을 잃고
멍하니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어야했다.
아저씨가 집으로 한번 가보라고 얘기 할 때 까지 …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에 내 자신이 너무나 미워졌다.
그가 오래전에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비어있는 옛 집에서 지금도 살고 있다고.
그리고 시인가 뭔가 쓴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고.
그동안 왜 고향으로 돌아왔을 것이라는 추측은 하지 못했는가?
오래전에 들었던 타지로 떴다는 얘기만 믿고 그가 고향에는 절대로 살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단정 해 버린 결과였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안고 가게아저씨가 일러준 대로 그의 집을 찾아갔다.
길은 다소 변해 있었지만 대문 앞에 서니 어렴풋이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당시 초라하던 너와집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원형이 보존되어 있었으며 야트막한
대문 너머로 보이는 마당이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대문은 자물쇠가 없는 오픈형 이라서 살그머니 안으로 들어가 작은 목소리로
주인을 찾았다.
대답이 없어 안채를 바라보니 열쇠가 밖에서 잠겨 있었다.
외출했다는 표시임을 확인하고 마당을 둘러보니 대문 쪽 헛간 담벼락에 자그마한
칠판 한 개가 걸려있고 무언가 글씨가 적혀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읽어보니
‘지금은 외출 중입니다.
급한 용무가 있으신 분은 아래 번호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이우영 올림‘
이렇게 되어있었다
오랜만에 읽어보는 친구의 이름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시간이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집에 돌아갈 생각은 아예 포기 한 체 그가
일러준 대로 핸드폰을 걸어보았다.
한참 만에 받은 폰 저편에서는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나는 그때서야 그가 청각 장애자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전화를 끊고 문자를 보냈다.
지금은 어디에 있으며 언제쯤 귀가 할 것이냐고.
곧바로 답신이 왔는데 어디에서 온 누구시냐고 물었다.
오랜만에 멀리서 온 손님인데 와보면 알 것이라고 다시 보냈다
그러면서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도 했다.
지금 영월에서 벌초중인데 다 끝나고 출발하니 약 한 시간 후면 도착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삽겹살이나 댓근 사오라고 문자가 다시 왔다.
도착시간이 한 시간 정도 남아있어 읍내로 나갔다.
할인마트에 들러 삽겹살 다섯 근과 소주 다섯 병을 사가지고 그의 집으로 다시
왔을 때가 7시 경 이었다.
대문 밖에 한참 서 있자니 승용차 한 대가 들어오고 차에서 세 사람이 내렸다.
남자 둘과 여자 한 사람이었는데 머리가 희끗 희끗하고 안경을 쓴 이가 친구인 듯
하였지만 실수 할까봐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저 혹시 이우영 씨가 아니신가요?’
그가 더듬거리는 말투로 크게 소리 질렀다.
‘아! 강진 ~~’
그리고 우리는 부둥켜안고 그대로 한참동안 서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 거 같은데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았고 자꾸만 눈시울이 뜨거워져
손등으로 훔치고만 있었다.
함께 내린 조금은 젊어 보이는 남자가 인사를 건넬 때까지.
여자는 그 사람의 아내이고 친구의 친척인데 강릉에 살고 있다고 했다.
마침 일요일이라 함께 벌초를 마치고 오는 길이라며 친구로부터 가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마당 가운데 삽겹살을 굽는 통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인들이 자주 찾아와 소주
파티를 하는 모양이었다.
친구가 서둘러 번개탄을 피우고 그 위에 장작불을 얹어 내가사온 삽겹살을 굽기
시작했고, 같이 온 여자가 술상 준비를 해 주었다.
바람이 선들 선들 불어오는 너와집 마당 한 가운데 탁자가 놓이고 삽겹살 안주에
소주잔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해진지 한 시간도 안 지난 거 같은데 강원도 산골 맑은 하늘에 벌써 잔별이 뜨기
시작했다.
네 사람 사이에 간단한 인사치레가 끝나자 둘만의 소주잔이 오고가기 시작하고
그와 더불어 취기가 조금씩 올랐다.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우리는 말을 아꼈다.
눈으로 직접 확인 한 이상 말이 필요치 않음을 서로 알고 있었다.
다만 상대방의 머리가 벌써 저리도 많이 희어졌을까 하는 생각으로 안타까운 시선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
9시가 지나자 부부는 강릉으로 떠났다.
우리 둘만을 남겨놓고.
차가운 이슬이 밝은 별들 사이를 뚫고 어깨위에 내렸다.
시간이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지만 주고받는 술잔은 끝나지 않고 계속 된다.
나는 장시간 운전을 한 터라 피곤이 몰려오고 취기도 정도를 넘어서고 있었지만
정신만은 오히려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새벽 1시쯤이 돼서야 그가 방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그의 서재 겸 침실에서 소주 한 잔 씩을 더 나누었을 때 그가 옆으로 비스듬히
쓰러졌다.
나는 소주병을 치우고 그를 조심스럽게 요 위에 눕혔다.
곤히 잠든 그의 얼굴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다가 그의 옆에서 새우잠을 청했다.
잠깐 졸았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떠 보니 새벽 다섯 시였다.
일이 잡혀있는 터라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정신을 차려보았다.
옷매무새를 정돈한 후 곤히 잠든 그의 얼굴을 보니 25년 전 생생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흰 머리만 성성한 중늙은이가 되어있었다.
마음 한쪽이 아려오면서 다시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흐릿한 동공사이로 가지런히 정돈된 서재의 수많은 책들이 들어왔고 그가
지금 강원도에서는 알아주는 중견 시조시인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되살아났다.
25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의 처지가 사뭇 달라있는 현실에 나는 깜짝 놀라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곤히 잠든 그를 깨우지 않고 가만 가만 되돌아서서 집으로 향하는 평창강가로
물안개가 소담스럽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다음 날 나는 그가 개설한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다.
그리고 다음 날 25년 만에 그를 만나고 온 심정을 글로 적어 그 카페에 올렸다
평창강은 지금도 푸른데
金有星
25년 만에 다시 찾은 평창강은
지금도 변함없이 푸른데
잊을 법도 한 불청객을 한 눈에 알아본
혜안이 참으로 놀랍구나.
불편한 한 몸 이겨낸 그대의 의지력이
온전한 사지로 게으름피우는
이내 가슴을 서늘케 하지만
살아있어 다시 만나니 더없는 기쁨 일세
세월에 순응 한 듯 흰머리 성성한
오두막에 묻힌 옛 벗이 측은한데
별 빛 안주삼아 건네는 잔 속으로
못다 푼 사연들 세월을 뛰어 넘는다.
취해 잠든 주름살 얼굴에서
애잔함 한참동안 느끼다
가만 가만 되돌아서는 새벽 강가로
서늘한 물안개만 소담스럽게
피어오르고 있었네.
그리고 그 다음 날 그의 화답이 올라왔다.
옛 벗은 반가운데
李宇英
옛 벗은 반가운데
산천은 서러워라
산천이 서럽길래
옛 벗이 더 반가웨
반가운 옛 벗 데리고
설운 산천 이야기
흰머리 안났더면
체면 없이 울련마는
흰머리 났길래로
설움이 더 깊어서
말로는 못 다 푼 정을
한숨으로 풀어라
25년만의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그 후 평창을 두 번 더 방문 하였고 그와 함께 정동진 해돋이도
다녀왔다.
가보고 싶었던 효석 생가, 강릉 경포대를 비롯한 동해안 해수욕장들,
평창주변의 관광지를 두루 둘러보았다.
그러나 대전으로 거처를 옮긴 후에는 한 번도 그를 보지 못하고 있으니
다시 그 세월이 시작 되려는지?
"끝'
< 문우와 함께 본 2005년 정동진 해돋이>
첫댓글 소주 닷병 삼겹살 닷근 더 보태서 그 자리에 합류하고 싶네요. 글을 읽으며 만감이 오갑니다.
네!! 언제 기회가 되면 함께 약주 한 잔 하입시다^^*
정말 아득한 옛날이 새삼스릅습니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흐른후의 우리네 인생사라 할가요 김유성님 좋은 친구분 두신 것 같습니다 평온하기 그지 없습니다 평창강은 아직도 흐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