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던 어린 시절 우리 시골에 가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아침이면 “아직 잡샀니껴” 하고 점심이면 “점심 잡샀니껴”. 저녁에도 마찬가지로 인사들을 했습니다. 집에 찾아오는 마을 이웃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린 마음에 왜 이리 밥을 챙기나 이상하게 생각되기도 했지만 시골에서는 누구나 그러니 그게 시골 인사려니 했지요. 그 당시 집에 길 떠난 이가 있을 때는 오늘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꼭 밥 한 그릇을 떠서 아랫목에 묻어 두었었습니다. 내일 찬밥이 될 텐도 항상 그렇게 했습니다. 어느 누가 우리 집에 갑자기 와도 불 사정 물 사정 나쁘던 때에 즉시 밥을 대령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집 뿐 아니라 집집마다 그랬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 그 모습들이 얼마나 살만한 세상의 살만한 사람들의 모습이었나 싶습니다. 때가 되면 누구라도 밥을 거르지 않았나 살피는 인사를 하고, 허기진 사람은 누구라도 거두는, 정말 모두가 <우리>인 세상에 살았구나 싶습니다. 다른 사람의 건강 또는 생명을 같이 염려하는 근사한 사람들의 삶이었습니다. 모두가 앞에 있는 서로를 거두니 멀리 있는 내 식구 역시 그 누구의 도움으로 어디를 가든 대접받고 편했을 건 너무나 당연하죠. 밥은 우리를 살게 해주는 생명줄 입니다. 쌀 한 톨이 생산되는 데 햇볕, 물, 바람, 달빛 별빛과 여러 작은 생명체의 부지런한 몸놀림과 생산자의 보살핌이 있어야지요. 모든 것이 어우러져 만들어짐을 아니 생산과정에서도 어느 것 하나 다치지 않게 하겠지요. 만드는 과정이나 마음이 요사이 것과 다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불과 몇 십 년 전의 이 이야기를 전설로 여길 만큼 파괴되고 무너져 이런 이야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오래 전에는 당연하던 이웃의 밥걱정이 이젠 새삼스럽고 대견한 일로 여겨지게 되었으니 참 별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밥 하나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때는 모든 것을 소중히 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 했겠지요. 그러니 내 먹을 것과 네 먹을 것을 구분하여 농약을 쳐서 키우거나 화학 첨가물을 넣어 만들어 내지 않았겠지요. 그런 마음도 가져 보지 못했겠지요.
지금 우리의 먹을거리 현실은 너무도 암담합니다. 무서워서 선뜻 손을 내밀어 먹을 수가 없습니다.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청과류 농약오염문제, 청산가리 소금에 이어 다이옥신 소금, 색소 고춧가루, 농약 콩나물에 포르말린두부, 변질된 수입옥수수, 공업용 수입 식품이 식용으로 둔갑하기까지. 하루아침에 맛있게 먹던 식품들이 발암물질로 발표되지요. 최근에는 발암 의심물질 아크릴라마이드 검출 감자튀김까지. 일일이 열거할 수도 기억할 수도 없습니다. 적발되었다 아니다의 차이이지 온통 먹지 못할 것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돈만 되면 뭐든지 하는 세상이니 어디서 어떤 일이 터질지 정말 막막합니다.
가끔 광고를 보면 한 엄마가 지진마저 뛰고 날아 역경을 헤쳐 내어 제 아이에게 좋은 먹을거리를 찾아다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대단히 감동적이지요. 그런데 그것이 유전자 조작 두부였다면, 성장호르몬 가득한 닭고기였다면 얼마나 끔찍합니까. 생명안전윤리연대 박병상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모성 유전자가 세계 최고일거라 합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대단해요. 자기 아이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 다 포기하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엄마 들이예요. 그런데 제대로 알지 못하면 최고 유전자라도 소용이 없지요. 엉뚱한 것 마구 찾아 먹이고 가르치면 더 곤란하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그 귀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음식에 대한 지식수준은 아주 낮습니다. 그러니 다른 어디에서건 차려지는 밥상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됩니다. 지금 아이들이 일찍 교육현장으로 나오게 되는 데 그러니까 아주 어린 아기들이 단체 급식을 하게 되는 현실 속에서 유아교육 현장 교사들 또한 먹을거리에 대한 인식은 우리나라 보통 엄마들 수준을 뛰어 넘지 못하는 실정이지요. 많은 이들이 유치원이나 학원은 교육 정보를 얻어 오랫동안 알아보고 준비하여 보내고, 겉에 입는 옷은 면인지 몬지 비단인지 꼭 혼용률 표를 살피면서 몸 안으로 들어가며 온 몸을 만들고 골격을 구성하며 심성을 만드는 기초가 되는 음식에 대해서는 소홀합니다. 지식은 잘못되었으면 바로잡으면 되고 옷은 바꾸면 되지만 음식은 생명이 달린 문제라 뒤늦게 수정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시간도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대가를 아주 톡톡히 치르지요. 몸을 아예 잃거나 평생 병든 몸으로 괴롭게 살아가야하니까요.
제가 해보니까 아이에게 식탁만 제대로 차려 음식만 바로 먹이면 온 세상이 살아나요. 아이가 건강해지고 행복해지니 가정이 평화롭지요. 아파서 병원 갈일 없지요. 건강하니 뭐든 흥미로워 해서 별다른 사교육 필요 없어요. 돈 쓸 일이 없습니다. 시간을 쓸데없는 데에 낭비할 일이 없지요. 바른 먹을거리가 바른 아이를 만들어 인성, 심성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날마다 천국에서 삽니다. 유치원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원생들이 건강하여 서로 돕고 사이좋아 만사에 흥미를 보이고 마음이 온화하니 함께하는 생활이 얼마나 신나겠어요. 20대 폐경, 정자 수 감소, 약골 등치, 문제아, 사회 폭력자, 미국의 총기난사사건을 보며 세계적인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도 없지요. 아이를 위해 먹을거리부터 문제를 푼다면 그 다음은 자동적으로 그냥 풀립니다.
이제는 먹을거리가 모든 것의 앞에 서야하겠습니다. 식품을 예쁘고 잘 생긴 것, 싼 것, 맛있는 것 등 눈으로 혀로 또는 경제가치로 선택하지 말고 질 좋은 것, 제대로 생산한 것을 골라야 합니다. 내 아이가 먹을 것, 우리아이가 먹을 것이 돈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정 관심과 보살핌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야 합니다. 먹을거리에 조금만 관심을 두고 약간만 주의해서 보면 상식선에서 문제를 찾고 볼 수 있어요.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눈 뜨고 보면 먹을거리 세상이 다 보여요. 심 봉사의 (개안)이라고나 할까. 먹을 만한 것, 먹지 못할 것을 구분하는 법을 곳곳에서 알려주고 있어요. 가령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한여름에 몇 달 동안 길바닥에서 산처럼 쌓여있는 달걀들을 보며 그것이 ‘왜 안 썩나 과연 먹을 만 한가’ 이런 생각이 들지요. 이정도 관심만 갖는다면 개안한거예요. 또 무 사카린 간장, 무 방부제 단무지, 무색소 햄 하는 광고를 유심히 보는 것도 개안한 것이지요. ‘왜 무엇 무엇을 넣지 않았다고 광고를 하는가. 그렇다면 첨가된 것은 유해할 수 있구나. 그런 것들은 어떤 것들인가’를 찾다보면 정보도 늘고 그 다음부터는 뭐가 눈에 보이게 되는 거죠. 아무리 새로운 것을 개발해 광고를 해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게 됩니다. 이런 것을 살피며 고민하다 보면 ‘이렇게는 안 되겠구나 바꿔야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의식의 대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관심과 살핌이 의식의 대전환을 이루는 것이에요.
처음에는 단순한 음식에 대한 내용만 눈에 들어오지만 차츰 그 생산현장 또는 자본의 분배, 환경까지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 공허한 이론이 아니에요. 그저 단순히 바른 먹을거리에 관심 갖고 밥상만 잘 차렸는데 세상이 변해 있더라구요. 제가 변해있고 아이가 잘 자라있어요. 주변에 내 것만 챙기지 않는 소비자들이 있고 전국 어디를 가도 아는 생산자가 계시고 뜻이 통해요. 이쯤 되면 살만한 세상 아닙니까. 조금이라도 아는 것 실천하면 그만큼 세상이 달라져요. 1984년 아기를 갖게 되면서 기울이게 된 화학약품과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1989년 한살림* 회원활동을 하면서 발전되었어요. 많은 살아있는 자료들을 정리했으며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최선책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내놓아 실천하였습니다. 생각을 고쳐 생활이 달라지면 나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죽임의 세상이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살림의 세상으로 바뀝니다.
제가 생각하는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길은 유기농산물을 공동체로 직거래하는 방법이 가장 쉽고 빠른 길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건강, 먹을거리, 환경, 농업 살아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부담이 될까하여 쉽고 간단한 방법부터 차례로 제시하겠습니다. 바른 먹을거리와 농업과 환경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제대로 알고 나면 전체에 대한 관심을 갖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여기 교육자들이 많이 모이셨는데요. 주변에서 보는 단순한 사례들을 가지고 아주 기초상식선에서 접근하여 모두 알고 있던 내용을 한번 정리하는 시간일 겁니다. 이론적인 연구보다는 실천적 행동 사례들을 통해 알아보고자합니다.
첫째 주변에서 난 것을 먹습니다.
주변에서 난 것만 먹어도 세상을 어느 정도는 살릴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 난 것이 맞다하여 과거에는 걸어서 하루거리인 반경 40리 그러니까 16Km내에서 재배된 것이 좋다고들 하였는데 지금은 수입 식품만 배제하여도 좋습니다. 식량 자급률 25%를 감안하면 우리밥상에서 서너 가지 반찬 가운데 하나만이 우리 것이니 우리 농산물을 택한다면 100% 우리 밥상이 되는 것이지요. 수입식품 거부하는 것으로 먹을거리 75%를 살리는 것입니다.
수 년 전 MBC에서 밀가루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밀과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수입밀가루를 비커에 담고 똑같이 바구미를 한 숟가락씩 넣어 무명 보자기를 덮어 한 열흘 뒤에 열어보았어요. 두 가지 경우가 아주 판이하게 달랐는데요. 우리밀의 바구미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고 수입 밀은 넣은 그대로 밀가루 위에 소복이 쌓여 있었어요. 뭔가 하고 살펴보니 우리 밀 바구미는 먹을 게 천지니 살판났다고 먹이감속에 들어가 있어 보이지 않는 것이었고요. 수입 밀 바구미는 내가 죽으면 죽었지 이 농약덩어리 밀가루는 싫다며 단식 투쟁 중이었습니다. 이런 걸 우리가 먹어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먹여요. 아이들 예쁘다고 말 잘 듣는다고 과자 한 봉지 주지요. 이런 내용물을 말이에요.
수입 밀가루에는 재배과정에서는 물론 수송과정에서도 농약이 뿌려집니다. 수출품은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양의 수십 배까지도 농약을 뿌려 재배합니다. 창고나 컨테이너 같은 밀봉용기 안에서 살충제 등으로 훈증되며 엘리베이터 컨베이어에서는 분무 처리됩니다. 재배 후에까지 농약을 치는 이유는 몇 주마다 부화되는 바구미와 다른 유충을 죽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밀폐된 용기 안에서 수백일 고온 다습한 바다를 건너와야 하니 당연하지요. 밀가루뿐만이 아니라 수입식품은 수확 후에까지 엄청난 양의 농약을 살포하는데, 그 또한 잔류성 강한 맹독성농약입니다. 유전자 조작식품의 증가까지 더해져 먹으면 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손해가 되는 물품이 되었죠.
그런데 이런 말을 들은 사람들은 먹는 식품으로 어떻게 그런 것이 버젓이 판매될 수 있느냐며 전혀 처음 듣는다는 반응을 보이기 일쑤입니다. 들어있어도 사람 몸에 해로울 정도는 아니지 않겠느냐고도 합니다. 그런데 훈증처리 하는 취화메칠, 취화에틸렌 등은 강한 발암물질로 미국에서는 1984년 이후 사용이 금지된 농약입니다. 이런 사실은 이미 1980년대부터 신문에까지 보도되었습니다. 1992년 1월에는 거의 모든 신문에서 수입식품의 사후농약처리 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우리밀을 꼭 찾아 먹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먹는 밀가루음식만 줄여도 1%에 지나지 않는 우리밀 이용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설탕 우유 달걀 버터 등이 꼭 들어가야 하는 빵 문화 보다 거의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는 떡 문화로 식생활을 바꾸는 것도 중요합니다.
앞에서 밝혔듯이 현재 우리는 75%이상을 외국 농산물에 의지해 살고 있습니다. 주곡인 쌀을 빼면 식량 자급률이 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잘 차려도 쌀마저 수입되면 밥상에서 두 수저 뜨면 우리 농산물은 없는 것이지요. 외국에서 농산물을 팔지 않으면 돈을 가지고도 우리나라 사람 75%(약 3000만 명)가 굶어 죽어야합니다. 북한은 자급률이 우리보다 높은 35%라고 하는 데 식량기근으로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 그렇다는데 식량이라고 하는 것이 어느 정도 자급률이 확보되지 않으면 돈이 있든 없든 거지로 전락하여 먹을 것을 구걸하는 신세가 됩니다. 내 밥상을 남에게 내어주어 안전하거나 안심이 되는 밥상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국내농업은 국민의 먹을거리를 적절하게 생산 공급하므로 국민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에 기여하는 식량안보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또 농업은 국민전체에게 초록공간을 제공해 주는 동시에 환경정화기능이 있으며 자연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해주는 사업입니다. 특히 벼농사는 홍수조절기능이 있습니다. 논의 농사외의 유효저수량은 홍수조절용 댐의 총 홍수 조절 량의 1.5배나 된다고 합니다. 저수구실과 흙이 유실되지 않게 보존하는 기능과 식물의 탄산가스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대기정화기능, 도시과밀 억제기능, 아름다운 휴양 공간 창출, 식량의 안보기능 까지를 모두 합하면 쌀의 경제가치는 9조인데 부대가치는 90조라고 합니다. <논 왜 지켜야하는가> 도서출판 따님
둘째 제철음식을 먹습니다.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유의태의 아들 도지가 취재에 가기 전 아버지 친구인 고승으로부터 출제 예상문제를 받는데요. ‘왜 여름에는 보리밥을 먹으며 겨울에는 쌀밥을 먹느냐’입니다. 도지는 머뭇거렸고 아마 그 수준으로 그해 시험에 떨어졌지요. 먹을거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은 누구나 답을 아는 문제입니다. 쌀은 따뜻한 햇살은 듬뿍 받고 자라지요. 그러니 온기 가득한 열물입니다. 겨울에 먹으면 우리 몸을 따듯하게 해주지요. 반대로 보리는 겨우내 찬 얼음 속에서 견뎌 냉기 가득합니다. 그걸 여름에 먹으면 몸이 식어 한여름에도 그리 덥다고 헉헉대지도 에어컨을 찾지 않아도 되는 몸이 되는 거지요. 사계절 철마다 나는 음식으로 밥상을 차린다면 건강은 자동으로 따라와요. 제철 음식 정말 좋지요. 싸고 맛있고 영양가도 높으며 제철에 키우니 별다른 시설도 필요 없어 환경파괴도 없습니다.
제철을 어긴 식품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여름 통배추입니다. 연세가 조금만 지긋하신 분들은 한여름에 통배추김치 먹지 않았다고 해요. 그런데 요즘 일년 내 통배추 김치를 찾으니 약으로 키워내요. 무조건 아무 계절에나 통배추 김치를 먹어야 한다는 어리석음 때문에 억지로 재배되어 시중에 나오긴 합니다. 여름에도 비교적 기온이 낮은 강원도 대관령에서 재배돼 나오는데 그것도 꼭 조건이 맞는 것은 아니어서 평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비료를 넣고 농약으로 길러냅니다. 모양만 배추이지 참 배추는 아닙니다. 양분이 그대로 있을 리 없지요. 한여름 더위가 시작되는 하지 무렵부터 밭에서는 배추가 녹기 시작합니다. 이 때 밭에 가보면 미처 수확하지 못한 배추들이 녹아 주저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까워서 6월 말에 여름김장을 담기도 했지만 제철이 아닌 걸 굳이 몸 망치고 자연망치며 먹을 일이 아닙니다. 한 겨울에 몸 식히라고 한여름에도 한 두 조각 입가심하는 수박을 통째로 갈라놓고 먹는 것은 몸을 죽이는 것이지요. 세상을 죽이는 것이기도 하고요. 여하튼 제철이 아니면 시설재배를 해야 하는데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연료마저 태워 실내온도를 높여야 합니다. 시설재배 농산물은 노지재배 때보다 영양분, 즉 무기물과 비타민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농약 재배의 경우라면 더 낮아집니다. 거기다가 갇힌 공간으로 통풍이 안 되니 병충해가 많아져 농약, 화학비료를 더 많이 하게 되고 잔류량 또한 그 만큼 많습니다.
셋째 자연 상태로 먹습니다.
자연에 가깝게 먹는 것이 좋습니다. 이 시대에는 오히려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행운입니다. 튀기고 볶고 지지지 않으니까요. 그냥 단순한 방법으로 조리해 먹는 것이 좋습니다. 간단히 날걸로 먹거나 찌거나 굽기 데치기 삶기 등이 건강에는 더 좋습니다. 감자튀김이나 맛탕보다는 찐 감자 군 고구마가 더 이롭지요. 손도 덜 가고 시간도 에너지도 절약되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가공식은 가능한 배제하고 부득이 이용하게 되면 옷의 혼용률 살피듯 내용물표를 꼭 살펴야합니다. 그 내용물표에 보면 원료와 각종 식품 첨가물이 적혀있는 데 처음에는 읽기도 어렵고 모르는 이름이지만 몇 가지만 알면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식품 첨가물은 현대사회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과정 속에서 기업들이 부족한 맛을 보완하기위해 새로운 맛과 향을 넣어 먹음직스럽고 맛있어 보이며 장기간 유통 보관될 때 변질을 막기 위해 쓰이는 물질입니다. 식품첨가물이 한 식품에 한 가지만 들어 있지 않고 또 우리가 한 가지 식품만 먹는 것이 아니어서 그 유해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집니다. 이 같은 식품첨가물이 우리 몸속에 들어가면 50-80%는 호흡기나 배설기관을 통해 배설되지만 그 나머지는 몸속에 계속 축적됩니다. 이런 첨가물의 문제도 식품회사 스스로가 문제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한 2년 전부터 서울지하철 3호선에 이런 광고가 붙었었습니다. ‘3일 만에 만든 일반간장이 아닙니다. 180일 동안 숙성시킨 진짜 간장입니다.’ 이 간장만 진짜라면 시중에 나와 있는 간장, 그리고 그동안 계속 먹어온 간장은 모두 가짜라는 말이지요. 어떻게 먹는 것에 진짜와 가짜가 있을 수 있는 것일까요? 하긴 진짜라거나 가짜라는 것의 정체는 시중 간장을 사먹는 소비자만 모를 뿐 식견 있는 전문가는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양조간장이라 해서 팔리는 것도 알고 보면 양조 앞에 있어야하는 화학이라는 글자가 빠져있어 현혹되었을 뿐입니다. 많은 이들이 양조간장 이라면 무조건 콩을 삶아 메주를 띄워 장을 담아 떠내는 간장 그러니까 광고대로 180일 동안 발효시켜 만든 자연(곡자균) 발효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많은 간장은 그렇게 오랜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이는 자연 양조대신 염산을 이용하는 화학양조법으로 만들어집니다. 콩에다 염산을 부으면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산도가 높으니 중화시키려고 거기다가 가성소다를 넣습니다. 이렇게 발효되었다고 나온 것이 산분해 간장 즉, 화학양조간장입니다. 그 간장 광고대로 3일이면 발효가 끝납니다. 사실 화학이나 자연양조 문제만이 아닙니다. 제 아무리 비싸고 최고라며 무 사카린, 무 방부제, 자연양조를 내세우며 안전하다고 광고하는 간장도 원료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주 원료는 탈지 대두 그것도 미국산 입니다. 앞에서 밝혔듯이 수입농산물은 엄청난 농약, 방부제가 혼입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탈지대두란 기름을 짜낸 콩 찌꺼기란 말입니다. 과거처럼 그냥 눌러 짠 것이 아니라, 약품으로 녹여낸 찌꺼기입니다. 무슨 맛이나 양분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해롭지요.
양분은 차제하고 맛이 없으니 화학조미료 글루타민산 나트륨으로 맛이 있는 것처럼 만듭니다. 합성감미료 사카린 나트륨으로 단맛도 냅니다. 사카린은 설탕의 300배에 달하는 단맛을 내는데 1977년 미국에서 눈의 기형, 콩팥 장애, 위암을 유발시킨다는 이유로 사용 금지된 화학물질입니다. 화학조미료는 섭취하면 두통 발열을 일으키고 어린이의 뇌신경을 파괴합니다. 아이 머리 좋게 하려고 갖은 애를 쓰는 어머니가 아이에게 뇌신경 파괴하는 화학조미료가 듬뿍 들어간 먹을거리를 준다니 어이가 없지요. 화학조미료는 아이들이 먹는 과자, 음료에도 들어갑니다. 화학조미료 쓰지 않는 식당이 생겨나고 세계적으로 일일 최대 섭취량을 정해놓았으며 세계적으로 먹지 않는 날이 있을 정도로 유해합니다. 내용을 잘 모르더라도 무(無)사카린 소주, 무 사카린, 무 방부제 간장, 무 화학조미료 식당 따위의 광고를 보면 유해 물질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집 앞 학교 학생들을 하교 길에서 보면 모두 입이 뻘겋거나 검게 물들어 있습니다. 얼음과자들을 먹어서 그런 것인데, 이것은 순전히 맛있어 보이라고 넣는 화학 색소 때문입니다. 볼 때마다 따라다니면서 이왕 먹으려면 연한 색을 고르라고 말해보지만 역부족입니다. 색소는 오래 쓰다가 뒤늦게 위험성이 알려져 1991년 5월 당시 보사부는 빙과류와 소시지에 들어가던 적색 3호, 4호, 황색 4호가 발암물질이라는 이유로 사용 금지시켰습니다. 그동안 안전하다며 사용해왔던 첨가물이 몇 십 년 뒤에야 유해하다고 판정됩니다. 그러니 현재 안전하다고 쓰이고 있는 것은 그 위험성을 지금까지 밝혀내 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이런 색소는 얼음과자, 주스, 버터, 치즈, 소시지, 햄에도 들어갑니다. 돼지고기 익히면 붉은 살이 허옇게 됩니다. 그게 자연스러운데 맛있어 보이라고 약으로 색을 내 햄이 새 빨갛습니다. 일반적으로 햄에는 발색제인 아질산나트륨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합성보존료인 솔빈산칼륨이 더해지지요. 발색제는 암 뿐만 아니라 빈혈, 구토, 호흡기 악화 등을 유발하며 합성보존료는 체내 세포에 독성을 끼쳐 유전자 변이, 중추신경 마비를 가져오며 암을 부릅니다. 무슨 맛 무슨 향이라고 써 있는 것도 다 가짜지요. 포도그림이 그려진 보라색 깡통 주스가 있어요. 보라색 주스가 포도냄새까지 나니 당연히 포도 주스려니 하지요. 잘 살펴보면 작은 글씨로 포도 맛이라고 써 있어요. 내용물표에 더 작은 글씨로 배 즙 10%, 청색, 적색색소가 첨가되었다고 해요. 아무도 속이지 않았는데 속았어요. 이 착색제들은 거의 발암성이예요. 간 혈액 콩팥 뇌장애를 일으킨다고 해요. 이런 구체적인 정보가 아니더라도 다른 광고가 주는 무엇무엇 넣지 않았다는 정보만으로도 충분하지요. 알고 보면 거저 줘도 먹지 않게 되지요.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 물 이상 좋은 음료가 없고 여름엔 시원한 미숫가루, 겨울엔 따끈한 유자차 한잔이면 족하지요.
가공식품을 살 때 내용물 표시를 일일이 확인하며 사다 보면 그런 힘이 모아져 좀더 나은 것이 생산됩니다. 기업은 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팔리는 것을 만들게 되지요. 소비자가 왕이라는 말이 있는 데 왕이 왕다운 권위가 있어야 왕 노릇을 하는 것이지 아무거나 주는 대로 먹고 알지 못하면 무슨 왕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소비자 주권을 찾을 때입니다.
가공식의 최악은 패스트푸드 입니다. 패스트푸드는 첨가물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그런 식품의 원료는 대개 수입품이며 만들어진 과정도 알 수 없습니다. 얼마 전 감자튀김에서 검출된 아크릴라마이드가 발암물질이라며 연일 매스컴을 장식했는데요. 감자를 삶거나 찔 때는 무관한데 120도 이상으로 튀기면 유해하다고하지요. 업체들은 170-180도로 튀기던 것을 저온 조리할 수 없으니 양질의 감자와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바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패스트푸드가 나오기 수 백 년 전부터 인류는 감자튀김을 해 먹었기 때문에 문제없다고도 합니다. 먹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할 필요도 없지요. 안전하지 않은 재료에 약품으로 녹여낸 식용유로 튀긴 내용, 알만하지 않습니까. 이것 역시 미루어 짐작이 가능한 일입니다. 또 주문만 하면 눈 깜짝 할 사이에 앞에 나타나고 단 몇 분 만에 먹고 난 용기들은 쓰레기가 됩니다. 그걸 먹는 아이들의 성격 역시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함께 식혜를 만들어 먹었는데 참 좋더군요. 아이들이 “단술(경상도 방언)해줘”하면 엿기름을 양재기에 넉넉히 넣고 물을 부어 함께 놀이삼아 주무르는 거예요. 그 물을 가라앉혀 꼬두밥에 부어 삭혀내 끓이며 상태를 하나씩 살피고 엿기름 따위의 이름을 익히고 기다려요. 뭐든 시간이 지나야 만들어지니 쳐다보며 여유를 갖는 거지요. 시원하게 냉장고에 식혀먹으려면 하루 꼬박 걸리고, 뜨거운 단술을 그대로 먹는다 해도 반나절은 걸리지요. 주물러놓은 엿기름 물은 빨리 가라앉으라고 아무리 소리 질러도 난리를 쳐도 빨리되지 않잖아요.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그나마 엿기름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으면 한살림 것을 먹는다면 주문 일을 감안하여 최소 사흘은 기다려야 되요. 밖에 나가 사와도 시간은 걸리지요. 그래도 사러가는 것도 재미있잖아요. 고물고물 예쁜 두 아이 손잡고 나서는 데 어디에서 엿기름 사나 아이들이 살펴요.
‘아하 떡만 파는 줄 알았는데 방앗간에서 엿기름도 팔아요. 밥에 넣어먹던 보리에 싹을 낸 거래요.’
한두 번만 이런 놀이 겸 요리를 하면 아이들이 뭐든 잘 기다려요. 세상 원리를 다 아는 것처럼요. 편리하고 신속한 그렇지만 재미없는 그리고 대가는 엄청나게 치러야하는 패스트푸드에 비할 바가 아니지요.
넷째 축산물을 덜 먹습니다.
우리 축산물은 100%수입식품이나 다름없습니다. 광우병 소동으로 한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만 한우라고 해도 이 땅에서 먹고 숨쉬고 배설하며 자란다 뿐이지 97.5% 배합사료에 의존해 살기 때문에 내용은 수입고기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 배합사료는 앞서 밝힌 수입 곡류에다 수입 동물성 단백질과 화학첨가제를 더해 만든 것입니다. 단순 농약이나 화학첨가제를 뿌린 정도가 아닌 그것이 함유된 사료를 먹어 몸 안에 그대로 호르몬이나 항생물질이 농축되어있습니다. 안전할 수 없습니다.
설사 안전하다하더라도 살림운동을 하는 이가 먹기에 적절한 음식은 아닙니다. 광대한 숲을 베어내고 곡물을 재배하여 사료로 쓰기 때문입니다. 숲이 사라지는 것에 보태어 세계 8억 인구가 굶주림에 떨고 있는 데 끼니때마다 고기로 배를 채우겠다는 마음은 살림의 마음이 아닙니다. 죽어가는 동물이건 사람이건 살리고 봐야하는 것이 살림의 마음이지요. 살림이 아닌 죽임의 마음으로 기른 고기 몸에 이로울까요?
미국의 환경운동 이론가인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을 보면 정말 지독하게 무서운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갇혀 지내는 것에다가 어떤 사육장에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마분지와 신문지와 톱밥을 먹이에 첨가하는 실험을 하고 있으며 다른 축산농장에서는 닭장과 돼지우리에서 거름을 긁어모아 그것을 바로 소먹이에 첨가하기도 한답니다. 미 농무성에 의하면 시멘트가루가 장래에는 특히 매력적인 보충사료가 될지 모른다는데 그것은 보통사료보다 30%나 빨리 체중이 불어나게 하기 때문이랍니다. 식품 의약품안전청 관리들의 말을 들어보면 사육가들은 비용을 줄이고 동물들을 더 빨리 살찌우기위해 산업폐수와 기름을 먹이에 섞는 일도 드물지 않다고 합니다. 90년경 대만산 돼지고기가 폐수에 오염되어 있다는 우리나라 신문보도가 있었는데 이해할 수없던 그 이유를 책을 보며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살을 찌우기 위해 그렇게들 했나봅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한우가 그런 수입고기보다야 낫겠지만 과연 돈만 벌면 되는 갖은 방법으로 살만 찌운 것이긴 마찬가지겠지요. 그리고 항생제 가득한 이유식 같은 가루사료만 평생 먹고산다는 것 끔찍하지 않습니까.
닭고기는 싸고 육질이 부드러워 맛있고 영양가 높은 식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보통 팔리고 있는 닭고기는 좁은 공간에서 먹고 자기만 하는 식육용입니다. 물론 모이는 방부제, 항생제, 성장촉진제가 더해진 수입배합사료입니다. 약으로 석 달 자랄 크기가 단 27일 만에 자라 시장에 나옵니다. 무슨 맛이며 영양분이 있겠습니까. 얼마 전 인기리에 상영된 이정향 감독의 영화 <집으로>에 보면 상우가 튀긴 닭 사달라고 조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장에 가서 닭 한 마리를 사들고 와서 고아 줍니다. 그런 물에 들어간 닭은 안 먹겠다고 버티는 데 배가 고프니 밤중에 그 닭이라도 먹습니다. 아마 맛이 달랐을 거예요. 기른 과정이 다르니까요. 오래전에 지방에서 살 때 어쩌다가 닭이라도 한 마리 잡으면 물을 한강처럼 부어 이웃에게 한 그릇 퍼주고도 온 가족이 먹었던 그런 맛이었겠지요. 당장 눈 앞 이익만 생각해 빨리 얼른 약으로 키워내지만 속은 독으로 차 있어요. 우선 맛이 없으니 튀기거나 강한 양념으로 맛을 내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어 버린 거지요. 배합사료의 화학물질들은 고기에 고스란히 남게 되며 그것을 먹는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달걀도 마찬가지입니다. 양계공장에서 오로지 알을 낳기 위해 산란촉진제가 포함된 배합사료를 먹고, 통풍이 안 되고 햇볕이 들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무정란을 낳습니다. 온갖 병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얼마 안가 폐계가 됩니다. 이런 달걀이 과연 얼마나 건강할까요? 우리 아이들에게 양분으로 남을까요? 달걀은 사료에 섞인 농약, 항생제로 인해 한여름을 지나 몇 달이 지나도 썩지 않습니다. 한여름 상가 앞에 산처럼 여름 내내 쌓여있지 않습니까?
유아들이 보는 자연관찰 <달걀>책에 보면 20℃의 실온에서 10개월을 보관한 달걀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죽기도 하고 썩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살아있지 않으니 죽지도 않고 썩지도 않아요. 1년이 다 되도록 상하지도 못하는 달걀을 영양가 운운하며 먹는 것은 한마디로 비극입니다. 중요한 요점은 놓진 채 달걀색만 가지고 바빠요. 달걀색은 닭털색이 다갈색이면 다갈색으로, 흰색이면 알도 희게 나올 뿐 입니다. 노른자 역시 옥수수 사료를 많이 먹으면 노랗게 밀이나 쌀 또는 풀을 많이 먹으면 덜 노란거지요. 한번은 노른자라 할 수 없을 만큼 빨간 게 공급되었지요. 가을에 고춧가루를 빻으면서 빼낸 씨를 닭에게 먹였더니 카로틴이 많아 빨간자 달걀이 되었던 거예요. 이렇게 닭도 먹는 대로 나타나요. 아이들 말할 필요도 없지요. 먹는 대로 생각하고 자라지요. 영양가나 겉모습이 아니라 이제 속을 들여다보고 골라요. 생산방식에 관심을 가질 때입니다.
암수가 노니는 곳에서 풀어 키우며 가능한 한 많은 자연 부산물을 먹고 자란 게 없지도 않지요. 10수년전 이렇게 풀어 키워 오랫동안 알을 낳다가 폐계가 된 닭고기를 받은 적이 있는데 압력솥에 아무리 고아도 칼도 안 들어가도록 무르지 않아 물만 따라 마신 적이 있습니다.
일본 야마가따에서는 학교 급식 부산물을 가져다가 한 500마리를 뜰에 풀어 키우고 있었습니다. 경계만 할 뿐 별다른 시설도 필요 없었습니다. 음식찌꺼기를 활용하여 환경을 보존하고 아이들과 비슷한 음식을 먹은 건강한 닭이 낳는 알과 고기를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서로에게 큰 해가 되지 않는 방식도 가능하더군요. 하지만 달걀과 고기를 일상적으로 먹겠다고 한다면 가능한 재배방식은 아니지요. 같이 오래 살려면 키워서 많이 먹겠다는 생각을, 행동을 바꾸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섯째 수 백 년 간 먹어서 검증된 것을 먹습니다.
<동의보감>에 보면 쌀은 기를 늘리며 속을 덥게 하며 위장의 기능을 좋게 하여 살찌게 하며 내장을 보하고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하며 장과 위에 이익이 되고 귀가 밝아지고 눈이 밝아지며 혈맥이 통하게 하고 오장기운을 고르게 하여 안색이 좋아지게 하는 약효를 가지고 있다고 해요. 우리가 그간 일상적으로 먹어 온 많은 식품이 거의 이 정도의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홍문화 박사의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도 밥만 잘 먹어도 건강하다고 합니다. 매일 양배추 한 잎을 먹는 이는 장수하고 집 앞에 토마토를 키우는 사람은 병을 모른다고도 해요. 제대로만 자랐으면 음식이 곧 보약입니다.
하지만 오래 먹어온 저마다 보약인 먹을거리지만 사람들이 욕심으로 조합하고 새로 만들어낸 먹을거리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항생제 호르몬제 각종 화학 첨가물에다 초식동물에 맞지 않는 온갖 육류부산물을 먹여 당장은 빨리 자라지만 광우병이라는 재앙으로 다가왔습니다.
유전자조작 역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시도입니다. 한 생물의 유전자를 다른 생물의 유전자에 집어넣어 새롭게 만든 생명체를 GMO 즉 유전자조작 생물체라고 합니다. 유전자 조작이 벼, 콩 등의 농작물에 행해지면 유전자조작농작물, 이것을 가공하면 유전자조작 식품이 됩니다. 식물과 동물을 마구 넘나들어 자연적으로는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종이 생겨납니다.
제초제 저항성 콩, 해충저항성 옥수수, 무르지 않는 토마토 따위인데 오랫동안 사용하다가 문제된 DDT처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인체에 대한 안전성과 환경 및 생태계에 미칠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채 다국적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그 문제를 미리 간과한 유럽에서는 유전자조작식품을 괴물이나 먹는 프랑켄푸드로 부르며 사회단체, 시민, 농민, 환경단체 사람들이 힘을 모아 몰아냈습니다.
2001년 3월30일 노동일보에 ‘유럽시장 막히자 한국공략’이란 기사가 실렸습니다. 유전자조작 종주국인 미국이 우리를 공략한다는 내용인데 우리나라는 수입 콩의 반, 옥수수의 25%가 유전자 조작농산물로 무방비상태입니다. 수입 콩을 굳이 거부해도 두부, 간장, 과자류에 들어있고 그 옥수수는 접착제, 사이다, 팥 앙금, 통조림 등에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사료로 쓰입니다.
작년 3월부터 GMO표시제를 시행하기로 했다가 다시 9월까지 계도기간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1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식품매장에서 GMO표시상품을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 엄마들은 GMO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있어도 표시되어있지 않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유전자조작식품은 우리 몸에 해롭습니다. 한 유전자가 다른 종에 유입될 경우 새로운 물질이 생산되므로 독성을 나타내거나 알레르기반응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해충저항성 GMO는 해충뿐 아니라 익충도 죽입니다. 그래서 미국에는 해충저항성 유전자조작 옥수수 재배포장에는 20%의 익충 피난처를 만들어야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꽃가루가 마음대로 날아다녀 유기농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GMO가 양산을 통해 식량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도 합니다만 식량문제는 양의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라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특히 장류를 전량 수입품으로 이용하는 학교급식은 GMO에 대해 완전히 노출되어 있습니다. 원래 학교급식은 바른 식습관 갖기, 영양개선을 하여 학생들의 심신의 발달에 이바지하여야합니다. 그런데 지급 급식은 집에서 도시락 안 싸고 그저 싸게만 먹이겠다는 부모들의 의지에다 그냥 싼 것만 골라다가 식판만 채우겠다는 업자들의 욕구가 맞아떨어져 형편없는 수준입니다. 미국 일본은 식량 생산의 배분 소비에 대한 문제를 학교급식을 통해 풀려는 법안들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건강이나 농업, 환경문제를 한꺼번에 푸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가 창립되고 전라북도에서는 농민 생협인들이 주축이 되어 전북지역에서만 나는 농. 수. 축산물로 아이들 급식을 차리자는 조례제정운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운동이 좋은 성과를 거두어 온 나라로 퍼지길 바랍니다.
여섯째 유기농산물을 먹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농산물 먹겠냐고 물으면 안전한 것, 질 좋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농산물 사냐고 물으면 맛있는 것, 싼 것, 보기 좋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기대와 선택이 다르니 농산물도 화장하고 약 먹고 자랍니다. 농약은 일반적으로 농작물이나 농산물에 피해를 주는 생물을 방제하기 위한 약제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농약은 수백 종에 이르는데 대다수가 침투성 농약이라고 합니다. 땅에 뿌리는 선택성 제초제, 살초제, 토양 살충제, 토양 살균제, 잎에 뿌리는 살충제, 살균제, 살비제, 착색제, 방부제, 성장촉진제, 항생제, 발아억제제, 낙과방지제 따위가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땅에다 기초공사로 여러 약제를 뿌리고 입맛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합니다. 꼬부라진 오이는 상품성이 없으니까 쪽쪽 곧게 자라나고 지력제를 뿌립니다. 사과에는 출하 무렵 먹음직스러운 색이 되라고 착색제를 살포합니다. 오미자나 매실, 대추같이 알이 잔 과일은 손이 많이 가니까 낙과제를 뿌려 수확합니다. 딸기는 큼직하게 크라고 뻥튀기 약을 뿌려 부풀려냅니다. 달지 않으면 팔리지 않으니 당도 높이는 약도 줍니다. 토마토는 수정되어 알이 많이 달리라고 토마토톤 같은 호르몬제를 투여합니다. 귤 같은 작물은 맛있어 보이라고 피막제까지 바릅니다.
농약은 배설되지 않고 축적되며 발암성, 최기형성(자녀에게 기형병이 생기는) 물질들입니다. 처음 DDT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벌레가 감쪽같이 박멸되어 신이 준 선물이라고 좋아했습니다. 수 십 년을 쓰고 난 후에야 그것이 벌레만이 아니라 그 벌레를 먹는 새도 그 농작물을 먹는 사람도 죽어가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발암물질이라며 쓰기를 멈춘 지 수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곳곳에서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새나 악어의 알이 부화되지 못하고 암수가 뒤바뀌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농약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은 제초제입니다. 제초제에 함유된 다이옥신은 인간이 합성해낸 물질로는 가장 독성이 강한 것으로 꼽히는데, 그 독이 청산가리의 수백 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한 방울로 2만 명이 죽을 수 있다고 합니다. 농촌에서 풀을 뽑는 대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어서 제초제를 많이 쓰는 데 월남전 고엽작전 이후 아직도 본인이나 그 자손들이 각종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는 것을 볼 때 그 유해성을 그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눈을 뜨고 보면 제초제 기사는 언론의 단골손님입니다. 지난달에도 검찰에서 피의자가 제초제를 먹고 죽은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쓰레기 소각장에서 나오는 다이옥신에는 예민한 엄마들이 정작 우리가 먹는 농산물에는 예외 없이 직접 뿌려지는 제초제는 오히려 무관심한 현실입니다.
농촌에서는 자신이 먹을 것과 내다 팔 것을 따로 재배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경북 의성 단촌에는 유기농 고추농사를 짓는 김영원 장로 생산자가 계십니다. 하루는 동네 젊은이가 고추를 얻으려 왔다고 했습니다. 그도 고추농사를 짓는 터라 웬일인가 고 물으니 제 것은 팔 물건이 지 먹을 것이 못된다며 유기농 고추를 좀 달라더랍니다.
아주 오래전입니다만 텔레비전 연속극 전원일기에서 일용이가 열무를 밭뙈기로 팔고나서 중간상인이 수확직전에 뿌려달라며 준 농약병을 들고 고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마 폴리돌 종류의 사후처리제겠지요. 농약은 재배하면서만 뿌리지 않고 수확 후에도 장기보존하기위해 살포합니다. 이 사후처리제는 비바람에 씻길 겨를도 없이 바로 우리 몸에 들어옵니다. 이런 종류는 간을 상하게 하고 시력을 나쁘게 합니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계속 사용하면 그걸 먹는 사람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약하게 만들지만, 이어서 흙도 생산자도 힘을 잃게 됩니다. 또 우리가 치는 농약은 농작물이 20%정도 흡수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물과 땅으로 들어갑니다. 즉 화학농법은 세상을 병들어 죽게 하는 죽음의 농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소비자가 이 물건 싫으면 저 물건 사면되고 이 매장 싫으면 다른 매장 이용하면 되지만 생산자는 생활이 달려 있어 소비자보다 더 어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런 농약화를 자초한 셈입니다. 처음에는 생산자가 농약중독의 일차피해자지만 그 농산물을 먹은 소비자도 서서히 농약피해를 보며 생산지 주변 환경도 결국 죽어 갑니다. 이 땅에 약을 친다는 것은 약으로 모든 벌레 다 죽이고 잘 생산해서 사람만 먹고 나만 돈 벌겠다는 것인데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아요.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유기농산물을 먹는 것입니다. 유기농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의 화학비료와 농약을 치지 않고 자연 부산물을 자연으로 돌린 퇴비와 천연재료만으로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화학비료는 쓰고 약치는 횟수를 줄인 저농약, 화학비료를 일절 쓰지 않은 무농약, 화학비료와 농약은 쓰지 않았으나 아직 땅이 완전히 살아나지 않은 유기농으로 가는 단계에 있는 전환기농을 보면 유기농이 얼마나 어려운지 압니다. 어느 것 하나 죽이지 않고 거스르지 않으며 그 어렵게 생산한 유기농산물을 먹는 것은 건강을 지키고 생명을 살리며 환경을 살리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지켜보면 유기농산물은 생산방식뿐 아니라 생산자의 마음가짐까지 달라 안전할 뿐 아니라 안심이 됩니다. 혹 사람들은 과연 유기농이 가능하냐고 묻습니다. 지금 수 십 년을 해온 분들이 계십니다. 안 해본 사람들의 막연한 불신과는 달리 완전한 방법은 아니지만 벼농사는 우렁이나 오리를 풀어 넣어 제초작업을 시키기도 하고 논에 쌀겨를 뿌려 그늘을 만들어 풀이 자라지 못하게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약을 쓰지 않는 방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또 유기농산물이 비싸다고들 말합니다. 당장 일반 재배농산물과 단순비교 하면 가격이 높습니다. 하지만 질이 다르니 건강해져 병원 갈 일, 아플 일이 없습니다. 알맞게 준비해 적당히 먹으니 살 빼려고 고민할 일 없습니다.
그리고 믿을 수 있냐고들 말합니다. 내 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 아이의 뼈와 살이 되고 심성을 만들어 주는 먹을거리입니다. 관심을 갖고 어떻게 생산했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공부도 하고 산지에 가서 생산자도 만나 알아봐야겠지요. 그러면 판단이 섭니다. 믿어야할지 말아야 될지. 거꾸로 잘 알아보다보면 잘 먹고자하는 사람은 그 판을 내가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를 오히려 다지게 됩니다.
일단 내가 유기농을 먹는다는 것은 화학비료와 농약이 생산되는 것을 막는 일이며 생산자가 산지에 농약 통 들고 들어가는 것을 그만 두게 하는 일이며 나아가 물과 땅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멈추게 하는 일입니다. 아직 서울을 중심으로 한 2000만 수도권주민의 젖줄인 한강 상수원지역에서는 농약을 쓰지 못하는 농사를 짓도록 하고 있습니다. 팔당 유기농운동본부의 경우 80여생산자가 유기농을 하고 있으며 판로가 보장되지 않아 유기농을 하고자 기다리는 인원도 있습니다. 이제는 자녀를 기르는 사람이라면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유기농산물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할 때입니다.
일곱째 직거래를 합니다.
요사이는 여기저기서 직거래라는 단어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동네마다 부녀회마다 구청마다 직거래를 하지만 진정한 직거래를 하는 곳은 드뭅니다. 보통 직거래는 생산자는 좀 더 받고 소비자는 좀 덜 주고 팔고 사는 것들입니다.
진정한 직거래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생산량, 생산방식, 생산가격, 유통방식 등을 함께 논의하여 정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감자는 올해 2만 상자로 한다든지, 사과는 꼭지에 농약마르는 해는 농사 망친다고 할 정도로 어렵다니 불가능한 유기농이나 무농약 대신 저농약으로 하고 약은 어떤 것을 언제 얼마나 칠지를 함께 논의합니다. 물품이 생산된 데 든 돈을 보장하게 미리 가격을 정하는 것도 이상적입니다. 생협이든 각 단체들이 이런 직거래를 통해 돈이 우선이며 최고인 생각이 아니라 나만 중요하고 다른 사람은 나몰라라 하는 죽임의 세상이 아닌 기쁘고 신나는 살림의 세상으로 만들어야합니다. 직거래를 잘하면 내가 주인이 되어 우리가 함께 풀어갈 수 있습니다.
<직거래를 잘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
1. 공동체 운동을 합니다.
처음 한살림 회원이 되었을 때는 5명 공동체가 되어야 입회가 가능했습니다. 한 아파트에 사는 아이 친구 엄마와 옆집 사람을 모아 꾸렸는데 처음에는 무척 불편했지요. 정해진 날 같이 주문해야하고. 다섯 달에 한번 대표도 해야 하고. 혹시 늦게 찾아가면 공간은 빤한데 다섯 가족 것 냉장고에까지 일일이 넣어 놓아야하고. 돈도 대표가 모아서 내야하니 셈도 해야 하고 이웃과 매주 돈거래를 하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꼭 대표를 돌아가다 보니 서로의 어려움을 알게 되어 배려하고 양보하게 되었습니다.
‘한살림 왔어요’ 하면 모두 경비실 앞에 모여 물건을 나누었는데 저마다 보자기나 큰 바구니를 가지고 담아가서 포장재는 고스란히 되돌려 보냈습니다. 물품을 가지러 꼭 칼을 들고 갔는데 포장재를 흠 없이 잘 가르기 위해서입니다. 또 두부가 판으로 와서 그것도 나누어야 됐는데 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나누면 꼭 크고 작게 나누어졌어요. 그럴 때마다 두부 좋아하는 집, 식구 많은 집에 큰 것 주게 되었지요. 무도 큰 것 작은 것 구분 없이 같은 값에 오니 욕심이 날 수 있는데 잘 나누었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큰 것 갖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 텐데 ‘내가 한 절음 덜먹으면 누가 한 절음 더 먹겠지. 내가 작은 것 먹으면 누군 큰 것 차지하겠지’가 자연히 되더라구요. 큰 두부니까 혼자만 시켜 먹을 수가 없는데 내가 먹을 수 있도록 시키는 다른 회원이 고맙게 느껴지고 저 친구 덕에 내가 두부를 먹을 수 있게 된 걸 깨닫게 되니 얼마나 기쁩니까. 막 살맛이 납니다. 공동체의 힘이지요. 그 당시에서 자신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몰랐는데 시간이 오래 흐른 후에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잘 지낼 수 있었을까 자문해보니 훌쩍 자라있더군요.
혼자서 하면 뭐 나만 천 년 만 년 살겠다고 이일을 이리 힘들게 하나 싶어 그만 둘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만 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지요. 날마다 결품이고 모양도 그렇고 초기에는 맛도 형편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늘 기다리고 이해하고 참아내야 하니 힘 빠질 때가 종종 있지요. 그럴 때 공동체원들이 “서형숙씨가 그러면 우리 아이 어떻게 해.” 하며 용기를 주어 다시하고, 또 지겨워하는 다른 회원에게 주문하라고 졸라 일으키기도 하지요. 누가 더 나을 것 없이 공동체란 서로에게 힘이 되었던 거예요.
물품에 대해서도 서로 정보를 주어서 어떨 때는 식단이 모두 같을 때도 있어요. 식단은 꼭 짭니다. 식단이 있어야 물품 주문을 규모 있게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식탁, 간식, 선물까지 한살림으로 차리려면 늘 메모를 해야지요. 늘 물품이 나오는 것이 아니어서 있을 때 열심히 먹어요. 갈무리법도 익혀 겨우살이도 준비하지요.
2. 공부를 합니다.
초기 한살림 스승들은 생산자들이셨습니다. 여러 가지 자료들을 만들어내서 소비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보다 더 큰 가르침은 존경스러울 만큼 열심히 농사를 짓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우리에게 늘 주경야독하는 모습을 보이셨던 겁니다.
우리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소설 복합오염> <생명의 의 생명의 농> <에코토피아> <수입식품 이것이 문제이다> <지구환경보고서> <전파는 위험하지 않은가>등이 기억에 남는데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다시 볼 내용들이지요. <녹색평론>역시 오랜 지침서입니다. 신문 스크랩은 물론이고 텔레비전 앞에 메모지 없인 앉지도 않았어요. 아는 만큼 보여 생산지에 가면 살아있는 땅을 보는 감흥도 남달랐으며 생산자를 대하는 것도 각별했습니다. 얼마나 노력해서 이런 거미와 지렁이가 살아 꿈틀대는 부슬부슬한 땅으로 일구시나 알기 때문이지요.
보는 안목이 생기니 도시에서도 비온 날 화단 밖으로 나온 지렁이를 징그러움을 감내하고 흙으로 보내주지요. 아리요시 사와꼬의 <소설 복합오염>에 보면 지렁이가 땅을 일궈 15초에 50밀리의 강우량을 빨아들이는 반면 그렇지 않은 흙은 7200초가 걸린답니다. 또 지렁이를 통과한 흙은 보통 흙보다 질소가 5배, 인은 7배, 칼륨 11배 그리고 마그네슘이 3배나 많다는 것이 미 코네티컷 주립시험소의 보고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90년대 초반부터 공급한 수박은 일년에 한두 번 받으면 끝이 나요. 사정을 알아보니 많이 생산은 되는 데 날씨가 조금만 궂으면 물을 먹어 금방 터진다는 겁니다. 또 잘 익은 것은 이동과정에서 자꾸 갈라지니 소비자에게 오는 양은 극히 일부분이더군요. 공부를 해도 생산지 걱정이 앞서던 차에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에서 서과당이란 걸 찾았어요. 수박을 조청처럼 고은 것인데 급성 신장병에 특효이며 약을 쓸 수 없는 임산부나 환자에게는 그만이라고 되어있어요. 만드는 법도 간단하고 3년 정도는 보관도 가능하다고 해요. 필자께 전화해서 내용도 더 물어보아 자료를 산지에 보내어 파손되는 수박들을 쓸모 있는 것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처음엔 생산자가 우리 공부시켰는데 조금 지나니 소비자가 산지에 정보를 제공하게 되었지요.
3. 산지를 방문 합니다.
생산자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뭐를 먹다가도 우리 아저씨께 전화하자며 수화기를 듭니다. 그래서 상주로 칠곡으로 영동으로 제주도로 전화를 하곤 합니다. 꼭 맛있다고 전화하는 것도 아닙니다. 한 번은 정말 너무 했다 싶도록 볼품없는 사과 한 상자가 왔습니다. 그 상자에는 상품가치가 떨어져 미안하다는 편지도 있었으나 그걸 읽기 이전에 이 생산자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지요. 제 몸과도 같은 나무가 병들고 제 살과도 같은 과일들이 뚝뚝 떨어졌을 때의 아픔을 비록 알지는 못해도 안타까움을 느끼기는 합니다. 채소들이 벌레에 다 뜯겨버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생산지에 전화를 겁니다. 한 번은 대여섯 송이면 가득 할 2kg짜리 포도 상자에 너무도 조그만 송이가 스무 개도 넘게 들어있었어요. 한 회원은 “이럴 수는 없다. 어떻게 이걸 그냥 먹냐. 더 드려야 되지. 한 송이마다 손은 똑같이 갔을 텐데.” 라고 해요.
이러한 감정들은 생산자 말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물품에 따라오는 편지를 읽거나 한살림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생산지에 가서 그 분들과 땅 속에서 어울리며 땀 흘리다 보면 자연 생기는 것입니다. 잊을 수 없는 산지방문 몇 곳이 있는데 경기도 용인 유정란 산지에 가서 돌아보고 소비자들은 한 방에 모여 앉아 달걀을 판에 담는 일을 했습니다. 금방 꺼낸 듯 아직 알이 따뜻했는데 간혹 오물이 묻어 있는 것이 있었지요. 그걸 칼로 긁어 버리고 사포로 문질러 정리하는 일이었는데 한 판을 다 하자 손가락이 뻣뻣해 왔습니다. 물에 씻으면 편하지만 공기구멍이 있어 오염되고 신선도가 떨어져 일일이 깎아내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고된 일을 하고도 밤이면 몇 판씩 달걀을 깎아야 한다니. 그냥 우리 소비자에게 공급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생산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가장 좋은 길은 고추밭을 한 번 매보는 겁니다. 강원도 배추밭에서 제주도 귤 밭 까지 다니며 몇 년을 꿈속에서 생활하던 내게 현실을 바로 보게 해준 곳이 바로 눈비산마을(전 충북 농촌개발회)입니다. 숨 가득 들이마셔도 향기로운 깨끗한 공기. 한가로이 떠도는 몇몇 구름 말고는 햇살을 가리는 것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푸른 하늘. 꼭지만 틀면 그냥 마실 수 있는 맑은 물. 사실 서울 살면서 항상 그리워하는 곳은 다름 아닌 이런 곳이었습니다. 훗날 내려와 살았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꿈은 바로 고추밭을 매면서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훅훅 찌는 지열과 함께 햇살은 사정없이 내리 쬐여 등줄기에선 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항상 위에서 내려쬐는 햇볕만 무서운 줄 알았는데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열심히 해대는 서툰 호미질에 가뭄으로 굳은 땅은 끄떡도 하지 않았고 밭고랑 끝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도대체 내 힘으로 고추농사를 얼마나 지을 수 있을까 돈 버는 것은 고사하고 우리가족 먹을 만큼이라도 기를 수 있을까. 잠깐의 벼 베기도 힘들었는데 이건 그 어떤 일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왜 농부들이 쉽게 제초제를 뿌리는지 절감했고 제초제 대신 일일이 풀을 뽑고 손으로 벌레를 잡는 우리 생산자가 우러러 보여 앞에만 가면 머리를 조아리게 됩니다. 어떻게 도시소비자가 이런 마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서로 알고 계속 노력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어려운 일을 옆에서 묵묵히 해내는 생산자 부인들인 여성생산자들께도 똑같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서로 이름 부르고 용기 북돋우는 좋은 관계를 만들어나가게도 되었습니다.
4. 책임소비를 합니다.
91년인가 큰 사상가 조한알 장일순 선생님께서 우리 소비자를 불러놓고 “여러분이 생산자의 주님이 되세요.”하셨어요.
무슨 말씀인가 어리둥절해하는데 “주님이 누구입니까, 살게 해주고 먹게 해주고 기쁘게 해주는 분 아니냐”는 거예요. 그러면서 “여러 소비자께서 생산자를 살게 하고 웃게 하는 주님이 되세요.”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우리 공동체는 열심히 이용하고 공부하고 책임 소비하느라 남는 물품은 더 받아다가 이웃과 나누고 좀 더 많으면 길에 나가 팔기도 했습니다. 저도 대학조교 1년 경력이 고작이고 다른 회원들도 직접 돈벌어 본적 없는 전업주부들인데 주님 노릇하겠다고 또 물품이 산지에서 남아나니 당장 그것이 아까워서 앞뒤 따질 경황도 없이 모두 두 팔 걷고 열무를 팔았습니다. 항상 아파트 입구에서 물품을 나누었기 때문에 한살림은 동네에서 알아주는 물품이었고 인심을 잃지 않아서 쉽게 팔수 있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주부들은 날 잡아 김치를 담그는데 열무를 선뜻 사가니 여간 고맙지 않았습니다. 팔러 나선 우리에게 서로 대견해하고 사준 이웃에 고마워하며 산지로 돈을 보내니 얼마나 뿌듯하던 지요. 주님노릇 했다싶어서요.
그런데 얼마 뒤 우리가 알아낸 것은 우리가 주님이 아니라 정말 우리 밥상을 차려주고 우리를 살게 해 주는 분들은 생산자들이란 사실이었습니다. 그걸 깨우치고 나니 그분들을 하느님처럼 섬기게 되었어요. 생산자들 역시 우리를 하느님 대하듯 하시니 서로 주님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직거래의 선물은 무궁무진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직거래를 하게 되면 생산자는 계획 생산을 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어떤 품목을 심을까가 정해지면 일정 양을 잘 가꾸기만 하면 됩니다. 기쁘게 농사에만 전념하면 됩니다. 누가 먹을지 아는 그 소비자에게 보내기도 하고, 알지는 못해도 가늠이 되는 사람에게 내가 먹는 것과 똑같은 것을 길러서 보내줍니다. 고추를 따서 길이대로 줄 세울 필요도 딸기를 크기대로 고를 필요도 없이 무게만 달면 됩니다.
소비자는 안심하고 물품을 받아먹으며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식탁에서 진한 감사의 기도를 올리게 됩니다.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밥을 먹습니다. 생산자가 뙤약볕보다 더 뜨거운 지열을 견디며 생산한 그것들을 소중히 먹습니다. 물품을 아끼니 많이 준비하고 버리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쓰레기가 없지요. 산지 사정을 알고는 너른 마음을 갖게 되어 손끝으로 불 켜고 물 트는 편리한 도시 생활을 하면서 강릉의 폭우나 먼 생산지의 태풍, 가뭄에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갖게 됩니다.
처음에는 내가 아는 생산자나 산지를 걱정하게 되지만 차차 마음이 넓어져 내 밥상은 잘 차리고 있는 데 이웃은 안전한 먹을거리는 고사하고 밥상을 차리기나 하는 건가 살피게 되며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과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겨울나기에도 마음을 쓰게 됩니다. 또 처음에는 아는 생산자만 알고 농업현실을 보지만 점차 우리나라 농업문제, 자본의 문제, 경제, 그리 분배의 문제까지도 고민하게 되지요.
아이들이 절로 큽니다. 무엇을 먹다가도 감사하는 아이들로 자라니 새 학용품 모았다가 산지에 보내기는 예삿일이고 밥 한 알 남기지 않고 감사히 먹지요. 제 것 사주지 않고 어디에 무엇을 보내도 흔쾌하지요. 공부 공부하지 않아도 산지에 다녀 자연, 환경 공부는 절로 했고 강원도 철원부터 제주도 서귀포까지 생산지를 두루 아니 사회 공부도 따로 할 필요 없습니다. 사실 같이 나누고 함께 사는 것을 공부한 아이들에게 무슨 더한 교육이 필요하겠습니까.
한살림을 시작했을 때 우리 아이들이 세살, 다섯 살이었는데 처음엔 배추에 묻어 온 무당벌레 보고 울고 달팽이 무섭다고 도망가던 아이들이 무당벌레를 먹이인 진딧물이 많은 무궁화나무에 데려다주고 생산지에 드나들면서 아무 벌레나 잘 만지게 되었습니다. 얼마 뒤에는 도마뱀에 뽀뽀도 해주고. 딸은 여덟 살 때 백화점에서 팔고 있는 집게가 가여워 일기장에다 ‘사람들이 만지면 아플 수도 있고 귀찮을 텐데. 또 가족도 보고 고향생각도 날 텐데. 어쩌나’ 하는 글을 썼습니다. 작은 아이인 아들도 그 나이 때에 ‘엄마, 보도블록이 참 잘 생겨서 다행이야. 홈이 있어서 개미는 홈으로 다니니까 사람들과 같이 다녀도 밟히지 않잖아’ 하더군요.
모든 생명체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배려하는 이런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사람들과 잘 지내지 않을 리 없지요. 나서지 않으며 양보하면서 한 반 아이들이나 동아리 모두가 함께 인 곳으로 꾸미는 재주가 있습니다. 스스로 행복하고 있는 곳 어디에서나 조금이라도 더 좋고 재미있게 만드는 재주를 갖은 청소년으로 자랐습니다. 에머슨의 시 <인생의 성공이란>에 나오는 성공한 사람의 모습이지요. 에머슨은 땅 한 뙈기를 가꾸든 아이를 낳아 키우든 원래 있던 것보다 낫게만 만든다면 그것은 인생의 성공이라고 합니다.
우리아이들은 중고생이 될 때까지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살면서 별다른 사교육 없이 어느 곳에서나 알아주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칭찬을 들어 송구할 정도입니다. 알아주거나 공부를 잘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그저 덤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키웠냐며 사례발표를 하라고 부러워들 하지만 사실 제가 키운 게 아닙니다. 같이 유기농산물 먹고 진정한 직거래와 공동체 활동을 하며 자연에 내놓아 원 없이 놀게 한 것 뿐 입니다. 제가 오히려 여러 곳에 참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덟째 환경운동을 합니다.
무공해 식품이라고 하는 것들이 요즘에 있기나 한가요?
물과 땅과 공기가 이미 오염되어 있어 그런 것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깨끗한 먹을거리란 깨끗한 물 깨끗한 땅 맑은 공기 안에서 만들어지므로 좋은 것 먹고자하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환경운동을 해야만 합니다. 아니 앞서 알게 된 정보만으로도 이제 세상전반을 보는 눈과 마음을 갖게 되었으므로 내가 사는 터전인 환경을 생각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누구나 좋은 음식 먹고 싶듯이 맑은 공기 마시고 싶어 합니다. 깨끗한 환경도 더러운 환경도 내가 만드는 것이지요.
수입 농산물을 먹지 않는 것도 환경운동입니다. 오염된 먹을거리를 내 몸에 넣지 않은 것, 내가 먹지 않은 만큼 먼 다른 나라 땅에 농약 치는 양을 덜게 한 것, 그 나라가 농약오염으로 사막화가 되는 것을 그만큼 지연시켰고 수송하느라 쓰는 에너지를 줄게 했으니 환경운동을 많이도 했습니다. 이렇게 따지면 주변에서 난 것을 자연 상태로 먹는 것 축산물을 덜 먹는 것 오래 검증된 물품을 먹는 것 유기농산물을 먹는 것까지 어느 하나 환경운동 아닌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혼자가 아니듯이 세상도 혼자가 아니고 모두 다 그물코로 연결되어있어 하나만 잘 해도 전체를 잘한 것이 되지요. 아이를 잘 살리고자 유기농 먹을거리를 먹이니 농업이 살아있고 환경이 살아있습니다. 거꾸로 죽은 먹을거리를 먹이니 농업이 죽어있고 우리가 죽고 환경이 죽어있습니다. 먹을거리 잘 살리는 일 정말 큰 환경운동입니다.
더 보태면 일상에서도 꼭 필요한 것 사서 아끼고 오래 쓰고 다시 쓰고 나누어쓴다면 최고지요. 장바구니를 들고 다녀 비닐봉지 한 장을 아끼는 것이 누굴 위한 게 아니라 내 맑은 숨 한 모금을 지킨 것이고 덤으로 주는 필요 없는 플라스틱 용기 한개 사양하는 것이 내 맑은 물 한 모금 지킨 것이지요. 더불어 유기농 터전인 물과 공기와 땅이 그만큼 살아나요.
그리고 뭐든 자연에 가까운 것을 쓰는 것이 좋아요. 가령 에어컨보다는 선풍기, 그보다는 부채가 좋아요. 자연에 가까울수록 만드느라 가동하느라 드는 에너지가 적어져요. 그럴수록 환경뿐 아니라 건강에도 이롭구요. 사실 제철음식만 잘 먹으면 여름에 부채 없이도 잘 납니다. 가끔 서로 부채질 해주면서 서로 옛날 임금 대접이라 감탄할 수도 있어요. 잘려진 꽃보다는 화분에 담겨진 꽃을 선물 해봐요. 그걸 받은 사람으로부터 해마다 꽃이 또 피었다는 인사를 받을 거예요.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를 타고 걷기도 해요. 아이들과 돈을 내고 들어가서 에너지를 써서 돌리는 놀이시설보다 산이나 들로 자연에서 놀아요. 훨씬 건강해지고 무궁무진한 자연의 모습에 감탄하게 될 겁니다. 휴대전화보다는 줄이 달린 전화를 씁니다.
현대문명의 이기를 모두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예요. 쓰되 꼭 필요한 것만 쓰자, 최소만 쓰자, 적어도 필요 이상은 쓰지 말자지요. 정 휴대전화를 써야하면 이용해야지요. 그리고 전화의 실용성만 이용하면 되지 휴대전화 지갑에 휴대전화 장식걸이에 휴대전화 목걸이까지 아주 새로운 산업을 쓸데없이 자꾸 만들어내는 데 그것은 분명자원남용이며 환경파괴지요. 우리에게 부메랑처럼 곧 돌아옵니다.
맺는 말
어렸을 때 시골에서 어른들께서 수챗구멍으로 뜨거운 물을 부으면 절대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안에 살아있는 생명들이 죽을 까봐 그랬겠지요. 사실 우리네 수채는 안이 훤히 보입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육안으로도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들이 보이지요. 그 생명체를 보호하고 함부로 대하지 않으셨는데 동화 <빨강머리 앤>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어요. 살림 잘하는 마릴라 아주머니가 앤에게 설거지가 끝나면 꼭 개수대에 뜨거운 물을 한주전자 끓여 부으라고 가르쳐요. 일상적인 그 나라의 살림법 인듯한데 우리나라와 아주 정 반대지요. 뜨거운 물을 부으면 청결해진다만 알지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 안 해요. 그 나라 개수대는 속이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 되요.
서로 본다는 것, 안다는 것 그리고 관계가 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해요. 우리 먹을거리의 현실을 본다는 것, 문제를 안다는 것, 그리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서로 애정을 갖게 만들지요.
그냥 단순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물품이 아니더라도 어찌 사는지 궁금해지고 보고 싶어지는 관계가 되지요. 어느어느 생산자께 혼기가 찬 자녀가 있는 지, 요 근래 담배를 끊으셨는지, 화상을 입은 여성생산자가 차도가 있는 지, 산지에서 우리를 맞던 어린 아들이 다 자라서 우체국에 취직했다더니 이제 한살림 실무자가 된 것도 올 가을엔 일기가 나빠 배추 속이 안찼는지도 알아요. 또 우리아들 대회 신기록 냈냐고 묻고 이사는 어떻게 했냐고도 안부인사가 많아요.
마찬가지로 수입 먹을거리든 가공한 먹을거리든 생산에서 소비가 연결되어 있고 그 끝이 누구라는 것을 인식하면 삶이 달라지지요. 나의 생산 활동이 또는 소비활동이 생명에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삶이 달라질 수 밖에 없어요. 죽임의 생산이 아닌 살림의 생산을 하게 되고 죽임의 소비가 아닌 살림의 소비를 하게 됩니다.
그것이 이어지면 알든 모르든 괘념치 않고 서로 밥걱정을 하는 사이가 됩니다. 만나는 이마다 “밥 잡샀니껴”하고 인사하는. 어느 누구도 밥걱정 안하는 세상이 아이를 키우는 우리가 바라는 세상 아닙니까. 그 때는 아이도 농업도 환경도 걱정할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있겠지요. 서로가 주님으로 모시는 세상일 테니까요.
* 한살림은 소비자와 생산자, 실무자가 공동으로 출자하여 유기농 직거래를 통하여 밥상살림, 농업살림, 생명살림을 이루어 더불어 사는 참 세상을 만들고자하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첫댓글 도토리 식구들은 꽤 환경친화적이라 잘 알고 계시는 것들이겠지만, 그래도 읽으니 좋으네요 ! 그래서 저는 마치 '생협홍보요원'처럼 사람들을 만나면 , 분위기가 된다싶으면...
필요하다면 홍보요원도 되어야지요. 작은 것에 편 가르기보다는 가는 방향이 비슷하다면 함께 가야겠지요. 갈라지는 작은 샛길이 나올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