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감기
김미희
잊고 있던 소식처럼 그는 온다
햇살 아래 눈 앞이 캄캄해질 무렵
흩어진 목련,
때 절은 창호지를 북북 찢으며
보도블록 틈새에 <보행 주의>
팻말을 박는다
응달에 익숙했던 한쪽 눈(目)은
늦눈처럼 오래 질척였다
덧문을 내린 달팽이관,
일상의 냄새들이 물꼬를 건넌다
가시 돋힌 입과 갈라진 음성의 근육들
욱씬거리며 이력을 복습한다
다그치고, 부수고, 세우고, 밀고, 당기던
생각의 매립지 위에
통증은 자두꽃처럼 흐드러진다.
칼바람으로 벼린 쟁깃날
흙덩이에 내재된 오랜 절기처럼
봄감기,
개나리빛 어지러움으로 온다
새 이랑을 난산하는 열꽃이 핀다.
그녀
김미희
까치발이 어는 줄도 몰랐다
실뿌리 같은 핏줄을 보듬고
샛별 아래 이슬을 털던 질경이
삯바느질,
자투리 천에 맵찬 손끝도 이어 붙여
조각밥상보만 한 채마밭 근처
세상은 치자꽃 같았다
고향을 팔고 날개도 팔아
바람 속에 꽃담을 쌓았다던가
그 담도 종내 허물었다던가
족두리만 내리고 떠나 간 팔랑나비,
건듯건듯 불던 서러움도
잊혀진 지 오래이다
쓸쓸한 가르마길에
쌀뜨물같은 골안개가 흘러들었다
가풀막 산길,
납작하게 엎드렸던 한살이 위로
뿌연 지우개가 지나갔다
썰물진 생의 무늬들이 가뭇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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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문학지
김해문학 24집, 시 2편 / 김미희
김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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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2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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