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2020도쿄패럴림픽 장애인사이클 대표팀 이영주 감독
“재능기부에서 발견한 소명… 금메달 향해 바람 뚫고 질주”
초시계가 움직일수록 두 팔에 더욱 힘이 실린다. 도로를 달리는 세 개의 바퀴는 한층 빨라진다. 따가운 햇볕에 얼굴이 익어가지만 핸드사이클을 타는 장애인사이클 대표팀 선수들은 멈추지 않는다.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자신을 몰아붙인다. 이들 곁에는 파이팅 넘치는 격려와 조언으로 사기를 북돋는 이영주 감독이 있다.
이 감독은 경륜 선수로 활약하다 지난 2013년부터 재능기부로 장애인사이클과 인연을 맺었다. 대한장애인체육회장상 지도자상을 수상하며 신임을 한 몸에 받았다. 선수들의 실력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 감독은 “코로나19로 훈련에 난항을 겪었지만 선수들과 스태프가 끈끈한 팀워크로 뭉쳐 빛나는 결실을 맺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2020도쿄패럴림픽을 한 달여 앞둔 이 감독을 만났다.
Q. 패럴림픽을 앞두고 막바지 훈련에 한창이겠습니다.
A. 걱정과 기대 속에서 차근차근 점검하고 있습니다. 대표팀 분위기는 상당히 좋아요. 메달을 향한 의욕도 넘치고요. 장애인사이클은 1984년 미국 스토크맨더빌 하계패럴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트라이, 텐덤, 싱글 등 장애별로 운영 방식에 차이를 두고 있습니다. 크게 ‘도로 경기’와 사이클 전용 경기장에서 진행되는 ‘벨로드롬 경기’로 구분되는데, 대한민국 대표팀은 핸드사이클 도로 경기에서 개인 종목과 팀 릴레이 종목에 출전할 예정입니다.
Q. ‘비장애인 엘리트 출신 감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A.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중학교 때 사이클을 시작했고 전국체전이랑 전국사이클선수권 등에서 좋은 성적을 냈어요. 대학 졸업 후에는 프로 경륜 선수의 길에 들어섰고요. 어느 날 장애인사이클을 타는 지인께서 훈련을 도와줄 수 있겠냐고 부탁을 해왔고, 자연스레 대한장애인사이클연맹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이후에는 시각장애인 선수를 리드하는 파일럿으로도 출전했죠. 당시만 해도 훈련 환경이 많이 열악했어요. 선수들은 의욕이 넘치는 반면 전문적인 지도 방법이나 인력은 턱없이 부족했죠. 재능기부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함께 땀 흘리는 선수들의 열정 앞에서 제게 주어진 소명으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선수들의 기량이 조금씩 좋아지면서 연맹으로부터 전문지도자 제의를 받았죠.
Q. 장애인 선수를 지도하면서 어려움이 많았겠습니다.
A. 서로 어색해하고 어려워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비장애인인 저를 낯설어하거나 주변을 맴도는 선수도 있었죠. 사이클에 대한 지식은 있지만, 장애인과 호흡을 맞춘 경험은 없다 보니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시각장애인 선수에게 코스를 설명할 땐 한 번 더 고민했고, 지체장애인 선수와 이동할 땐 불편함은 없는지 수시로 물었지요. 발달장애인 선수와 훈련할 땐 갑작스러운 행동에 어쩔 줄 모르기도 했고요. 돌아보니 제가 선수를 너무 조심스럽게 대한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장애인이기 전에 사이클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인데 말이죠. 하지만 ‘사이클’이란 공감대로 그 벽을 무너뜨렸습니다. 바람을 가를 때의 짜릿함, 결승선을 향해 마지막 페달을 돌릴 때의 쾌감…. 말문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서로의 진심이 오고갔습니다.
Q. 장애인사이클만의 매력이 있다면요?
A. 장애인사이클은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스포츠입니다. 흔히 ‘바람을 가르며 질주한다’라고 하는데, ‘바람을 뚫고 간다’는 표현이 더 맞지 않나 싶어요. 머리칼을 날리는 바람에 선수들의 체력이 급격히 소진되기도 합니다. 약간의 오르막길도 장애인 선수에게는 큰 산이 될 수 있고요. 한번은 선수들에게 “이렇게 힘든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사이클을 타는 순간 자유로워지니까요”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사이클이 있다면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고요. 도로의 얕은 경사, 핸들을 꺾는 구간, 가벼운 미풍이 때로는 한계점이 되지만 그와 동시에 장애의 벽을 뛰어넘는 도전정신이 된다는 의미죠. 그 말이 가슴 속 깊이 남아요. 그래서 훈련을 할 때마다 곱씹으려 합니다.
Q. 장애인사이클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A. 우선 관련 단체와 기관을 적극 활용할 것을 추천합니다. 요즘에는 장애인사이클 동호회가 거제, 군산, 진주 등에서 각 시·도별로 활동 중입니다. 장애인사이클을 처음 시작할 때 장비 관리, 정비, 장소 선정과 이동, 파일럿 등 여러 어려움을 느낄 수 있어요. 동호회에 가입하면 그 모든 게 해결됩니다. 아울러 대한장애인사이클연맹에서 장애인사이클 교실을 운영하고 있어요. 광명, 하남 지역을 시작으로 차츰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장애인사이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소 선정입니다. 경사면, 통행량, 도로 넓이 등 면밀하게 살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환경에 맞게 타이어나 변속기 등 장비를 적절히 조율한 후 타야 사고나 부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Q. 도쿄패럴림픽을 앞둔 선수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2019년 캐나다 베코모장애인도로월드컵에서 좋은 성과를 낸 이경화 선수, 2018년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 2관왕을 달성한 윤여근 선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패럴림픽 은메달리스트 이도연 선수처럼 우리나라에도 기량이 좋은 선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들 베테랑인 데다 이번 패럴림픽에 대한 기대도 차고 넘칩니다. 이제 막바지 담금질 단계입니다. 지금은 팀 분위기를 차분하게 유지하는 게 최우선입니다. 대한장애인체육회에서 지원하는 심리상담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돼요. 메달을 떠나 선수들이 부상 없이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랍니다.
Q. 장애인사이클과 함께하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A. 무엇보다 장애인사이클이 대중화가 되길 희망합니다. 과거에 비해 환경이 좋아지고, 동호회도 늘어나고, 기업에서 선수단을 지원한다는 희소식이 들리지만, 장애인사이클을 접하고 재능을 발견하기까지는 여전히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선수 육성과 관리가 이뤄지면 좋겠어요. 2020도쿄패럴림픽이 장애인사이클에 대한 관심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더 많은 이들에게 장애인사이클을 알릴 수 있도록 선수들과 힘차게 달리겠습니다. 장애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선수들을 아낌없이 응원해주십시오.
김수정·신혜령 기자
*<손끝으로 읽는 국정> 제166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