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손짓하는 지리산 2. 외로운 종주산행 3. 천왕봉에 묻어두고 (산 행 지 : 지리산 - 경상남도/ 함양군, 하동군)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 (산행일시 : 2005.06.05 ~ 07 일요일~화요일 2박3일)
2005.06.06 월요일 05:25 -연하천 대피소 출발(06/06 산행시작) 05:38 -음정 하산길 05:43 -삼각봉(1462m) 06:07 -형제봉(1433m)(13분 휴식) 06:20 -형제봉 출발 06:25 -아름산팀 만남(9분간 기념촬영 및 담소) 06:34 -출발07:05 -벽소령 휴게소(47분간 아침식사 및 휴식) 07:52 -벽소령휴게소 출발 08:13 -음정(마천) 갈림길 08:55 -선비샘(덕평봉(1521.9m) 밑)(10분 휴식) 09:45 -칠성봉 전 전망대(30분 휴식) 10:15 -출발 10:28 -칠성봉(1576m)(4분 휴식) 11:00 -영신봉 나무계간(나무계단 내려가는데 7분소요) 11:23 -영신봉(1651.9m) 11:33 -세석산장(27분 휴식) 12:00 -세석산장 출발 12:13 -세석산장 100m지점 나무그늘(27분간 휴식) 12:40 -출발 12:50 -촛대봉(1703.7m)(5분 휴식) 13:46 -삼신봉(2분 휴식) 14:03 -연하봉(1750m)(14분 휴식) 14:27 -연하봉 출발 14:50 -장터목 대피소(06/06 산행완료)
2005.06.07 화요일 03:25 -장터목 대피소 출발(06/07 산행시작) 03:40 -채석봉(1806m) 04:13 -통천문 前 안부(3분 휴식) 04:20 -통천문 04:35 -천왕봉(1915m)(30분 휴식 및 해돋이 기다림) 05:05 -천왕봉 출발 05:30 -중봉(1874m) 06:13 -써리봉(1602m)(42분간 아침식사 및 휴식) 06:55 -써리봉 출발 07:28 -치밭목 대피소 1km지점 07:52 -치밭목 대피소(9분 휴식) 08:05 -치밭목대피소 출발 08:29 -통나무다리 냇가(8분 휴식) 08:37 -출발 08:42 -무제치기 폭포입구 08:45 -무제치기 폭포 08:56 -무제치기교 09:25 -새재 갈림길(치밭목휴게소 1.8km지점) 09:35 -대원사 4.9km지점(10분 휴식) 09:45 -출발 10:12 -대원사 4.1km지점 11:15 -유평식당가(콘크리트길)(45분간 막걸리 및 휴식) 12:00 -유평식당가 출발 12:16 -대원사(9분간 사진촬영 및 휴식) 12:25 -대원사 출발 12:55 -유평매표소(06/07 산행완료)
13:35 -진주행 버스승차 출발(유평매표소 주차장)(진주까지 3900량) 14:40 -진주도착 15:00 -진주 출발
지리산 종주 탐방안내도
1. 손짓하는 지리산 산 행 지 : 성삼재 ~ 연하천대피소 산행일시 : 2005.06.05 (일요일) 산행거리 : 15km 산행시간 : 실산행시간 - 6시간39분, 휴식 및 중식시간 - 2시간06분, 총산행시간 - 8시간45분 지리산 서부능선 (성삼재에서 연하천대피소)
산 행 지 : 성삼재 ~ 연하천대피소 산행일시 : 2005.06.05 (일요일) 산행거리 : 15km 산행시간 : 실산행시간 - 6시간39분, 휴식 및 중식시간 - 2시간06분, 총산행시간 - 8시간45분
산을 사랑하고 자연과 더불어 삶의 풍요로움을 만들어가며 삶을 즐기는 등산인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보고 싶은 산행이 지리산 종주산행 일것이다. 백두대간의 시발점이며 육지의 산 으로서는 제일 높은산 이기도 하지만 한국인의 기상이 이 천왕봉에서 발원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왕봉에는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 라는 표지석이 우뚝 서있다. 그러나 더 깊게 생각되는 것은 지리산 종주 능선은 엄마품과 같이 포근하고 아늑하면서도 젊음의 척도를 가늠해주는 선생님과도 같은 능선이기도 하다. 수치의 젊음이 아니라 체력의 젊음을--- 새벽버스를 타고 구비구비 휘어진 861지방도를 따라 성삼재로 향한다. 창밖으로 우거진 숲과 계곡을 덮은 운무가 여기가 지리산 이라는 것을 말해주는듯 하다. 성삼재 주차장에 도착하니 6시35분. 지리산 종주산행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성삼재 휴게소 (왼쪽에 안개에 가린 조그마한 집이 성삼재 매표소)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성삼재에서 노고단 대피소까지는 등산로라고 하기보다는 산책로라 해야 될것같다. 잘 다듬어진 길을 따라 한 40여분 올라가니 노고단 대피소가 나온다. 그러나 40여분간은 종주산행의 시작단계 라서인지 몸이 풀리지 않고 짖눌리는 것 같다. 새벽차를 타기위해 서두르다보니 허리에 파스 붙힌다는 것을 잊은 것이다. 종주산행에 허리가 견뎌주어야 하는데--- 하는 걱정을 하며 버스에서 내려 륙색을 메는 순간 허리보다는 어깨가 무섭게 짖눌려온다. 그도 그럴것이, 나홀로 종주산행에 나서다보니 3일간의 산속생활물품이 장난이 아니다. 코펠서부터 버너, 식량, 반찬가지, 옷가지, 구급약품, 식수, 그리고 쐐주까지--- 륙색무게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쨋던 힘들게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하니 여기저기서 아침식사를 하는 등산인이 눈에뛴다. 잠시 둘러보고는 노고단으로 향한다. 화엄사 갈림길 안부에서 바라본 화엄사계곡 노고단 대피소 노고단대피소에서 노고단까지는 10여분 거리다. 단(檀)있는 노고단 정상은 출입통제지역이라 못들어가지만 넓은 노고단 평야?를 한바뀌 훑어 보고는 내처 걸음을 재촉해 본다. 노고단(老姑檀)의 어원은 "늙은 시어머니 제사터"란 한자말에서 나온것이지만 신라 때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이라 여겨 매년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노고단은 선도성모의 높임말인 노고(老姑)와 제사를 올리던 신단(神檀)을 합해 부르던 이름이라 한다. 그리고 태백산, 토암산, 계룡산, 팔공산과 더불어 나라의 대사를 지낸 오악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노고단은 '한국의 알프스'로 불리며 고산 휴양지의 메카이다. 노고단은 지리산 종주의 시작점으로 인기가 높을 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고산휴양지로 알려져 왔으며 신라의 화랑이 이곳에서 심신 수련을 했고, 일제시대에는 외국의 선교사들이 피서용 별장을 50여 채나 건립하고 이 곳에서 여름을 났다고 한다. 6·25동란을 거치며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돌로 지은 담벼락과 집터가 남아 있다. 노고단과 안내표지판 노고단평야?에 있는 전망망원경과 돌탑 노고단을 출발한지 2시간여 반야봉 갈림길이 나온다. 많은 등산인이 쉬고 있다. 반야봉을 가보지 않고 지리산종주를 할수는 없지. 하고는 반야봉으로 방향을 잡는다. 마고할미 전설이 있는 반야봉. 갈림길에서 1.0km구간, 40여분 거리다. 반야봉에 도착하니 여기도 많은 등산인이 붐비고 있다. 반야봉에서 바라보는 달궁계곡과 심마니능선, 앞이확트인 시원함이 마음을 상쾌하게 해준다. 여기서 마고할미와 관련된 전설을 살펴보면 반야봉에는 지리산 산신 중 女神인 천왕봉의 마고할미와 관련된 전설이 있는데 그 여신은 선도성모(仙桃聖母) 또는 마고(麻古)할미, 노고(老姑)라 불리는 바로 천신(天神)의 딸이다. 그 천신의 딸인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있던 도사 반야(般若)를 만나 결혼해 천왕봉에서 살았다. 그들은 딸만 8명을 낳았다. 그러던중 반야는 더많은 깨우침을 얻기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반야봉으로 떠났다. 그리고 마고할미가 백발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마고할미는 반야봉에서 깨우침을 얻기 위해 외로이 수도하는 남편 반야를 그리며 나무껍질을 벗겨 남편이 입을 옷을 만든다. 그리고 마고할미는 딸들을 한명씩 전국 팔도에 내려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린다. 기다림에 지친 마고할미는 끝내 남편 반야을 위해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 숨지고 만다. 갈기갈기 찢겨진 옷이 바람에 날리어 반야봉으로 날아가니 바로 반야봉의 풍란이 되었다고 전한다. 후세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이라 불렀고 그의 딸들은 8도 무당의 시조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반야봉에 있는 표지석 반야봉에 있는 이정표 반야봉에 도착해서는 만들어간 야채 사라다를 김에싸서 아침식사겸 요기를 하고는 자리를 일어선다. 연습삼아 처음 만들어 먹어보는 것이지만 야채사라다에 김을 싸서 먹으니 맛이 일품이다. 산에와서 먹어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야채 사라다만 먹는거와 김에 싸서 먹는것은 맛이 천지(天地)차이다. 와~ 이렇게 맛있는 것도 있담. 반야봉에서 다시 되돌아 노루목으로 거쳐 삼도봉으로 향한다. 일명 날라리봉. 삼도봉의 바위모양이 낫날 같다하여 '낫날봉'이라 하던 것이 와전되어 '날라리봉'으로 불리게 된것이다. 반야봉을 출발한지 40여분.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가 만나는 삼도봉. 그 삼도봉위에 세워진 삼각형의 표지석위에 서서는 "나는 三道를 한꺼번에 밟았다" 하고는 속으로 빙그레 웃어본다. 삼도봉에 있는 표지석 삼도봉에서 화개재(뱀사골대피소 삼거리)로 가는 등산로에는 긴 나무계단이 있다. 삼도봉에서 화개재까지 내려가는데 30여분 걸리는데 나무계단만 내려가는데 10여분이 소요된다. 와! 이 나무계단을 올라오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틀림없이 연하천산장 아니면, 벽소령대피소, 아니 그전에 대피소에서 자고 왔을텐데 힘들고 지친몸으로 무거운 륙색까지 짊어지고 이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를때의 심정은? 내려가는데도 온몸이 뻐근하고 죽겠는데--- 말이다. 누군가 안내판에 "꼭 600계단"이라고 적어 놓은것이 실감을 낳게한다.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가는 등산로에 있는 나무계단 화개재(뱀사골대피소 삼거리 안부) 화개재에 와서 잠시 쉬고는 토끼봉으로 향한다. 도데체 지리산에는 봉우리가 몇개야! 토끼봉에 올라서는 잠시 피로도 풀겸 느긋이 휴식을 취하며 늦장을 부려본다. 여기서 연하천대피소까지는 3km, 2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이기에--- 지금시간이 오후 1시, 그러면 연하천대피소에는 3시전에 들어간다. 저녁까지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낸담. 하여튼 그래도 가긴 가야지. 일어선다 토끼봉에 있는 이정표 토끼봉을 출발하여 1시간여 연하천대피소 1km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아! 연하천대피소가 얼마 안남았군, 천근만근되는 몸을 이끌고 명성봉을 오른다. 명성봉만 넘으면 대피소다. 대피소에 일찍 도착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데도 머리속에는 대피소에 얼른가서 좀 쉬야지. 하는 생각뿐이다. 막상 대피소에 도착해보니 쉴곳은 없고 사람들로 정신이 없다. 자리배정도 6시나 되야 한단다. 지금이 3시15분이니 그냥 벽소령대피소까지 갈까? 그러나 비박준비도 없이 벽소령대피소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잘때가 없다 할수없이 그래도 예약한 연하천에서 자기로 하고 우연히 만난 아가씨 두분과 함께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별다른 준비도 없이 온것 같은 한 아가씨는 운동화 차림이다. 대단하네 하며 가지고 온 햇반과 아가씨들이 사온 라면으로 저녁식사를 때운다. 물론 소주 한잔씩 하면서--- 연하천대피소 6시가 되어 자리배정을 받고 임대한 침랑을 깔고 누워보니 와우! 여기가 군대인가? 도무지 잠이 올것 같지가 않다. 한사람의 소유넓이가 56.5cm. 사람끼리 다닥다닥 붙어 자는수 밖에 없다. 밖으로 나와보니 밖에는 더 아수라장 같다. 어두워지면서 몰려드는 등산인. 예약이 안된 사람들이 자리배정 받기위한 선두다툼. 그냥 땅바닥에 침랑깔고 비박하는 등산인. 몇컷 기념사진을 찍을려니 후라쉬가 터져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여 순간순간을 렌즈에 담을수도 없다. 에라~ 내일의 산행을 위하여 어쨋던 자 두는것이 좋지. 잠을 청해본다. 예약못한 등산인 자리배정 줄서기 대피소 앞을 꽉메운 등산인과 비박하는 등산인 2. 외로운 종주산행 산 행 지 : 연하천대피소 ~ 장터목대피소 산행일시 : 2005.06.06 (월요일) 산행거리 : 13.3km 산행시간 : 실산행시간 - 6시간19분, 휴식 및 중식시간 - 3시간06분, 총산행시간 - 9시간25분 지리산 종주 이정표 자다깨다 자다깨다, 설잠을 잔채 깨어보니 시계는 5시를 향해 달리고 있다. 더 있어야 잠도 오지않고 날은 밝아 오는듯하니 일어나자 하고 밖으로 나간다. 벌써 많은 등산인들이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구수한 찌게냄새가 코를 간지럽게 한다. 혼자서 처량하게 냄새를 맡고 있느니 산행하는게 낫지. 아침은 벽소령대피소에 가서할까? 세수를 하는둥 마는둥 눈꼽만 떼고는 륙색을 짊어지고 내뺀다. 원래계획은 아침밥을 먹고 8시쯤 출발할 계획이었다. 천왕봉에서 백두대간을 시작하는 "아름산방" 회원들이 벽소령에서 자고 연하천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되었기에 그래도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담소라도 하고 가야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놈의 구수한 냄새때문에--- 아침식사 준비하는 많은 등산인들 연하천대피소를 출발한지 한 40여분, 삼각봉을 지나 형제봉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형제봉을 나서 내려가는데 누가 "안녕하세요" 한다. "다올"님이다. 뒤에들 온단다. 이내 "진주"님, "들꽃"님 그리고 닉은 모르지만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모두 29명이 1차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했단다. 많은 인원이다. 잠시 기념촬영과 담소를 나누고는 헤어진다. 얼마안가 후미에 오시는"산조아"님을 만난다. 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속보산행이나 장시간 산행이 힘들어 참여를 하지 못한것이다. 이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한 내가 아는 팀만도 3개팀이나 된다. 그러나 내가 함께 산행하기에는 전부 힘든 스케쥴이고 어려운 산행이다. 할수없어 나홀로 외로운 종주산행을 택할수 밖에 없었다. 벽소령대피소 아름산팀과 헤어져 30분간 지나니 벽소령대피소다.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하니 연하천 대피소에서 함께 저녁식사 했던 아가씨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오늘 백무동에서 4시에 떠나는 고속버스를 예약해 놓았기에 세석을 거쳐 빨리 내려 가야 한단다. 사진 몇장 찍어주고는 세석에서 백무동까지도 3시간30분 이상걸리니 서두루라고 하고는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한다. 아침식사라야 아직 남아있는 야채사라다와 김이다. 그리고는 칼로리바란스 빵을 한입 넣는다. 영양가도 2pack을 먹었을때 1일섭취 영양소의 50%를 섭취한다 하고 열량도 330kcal나 되어 있어 제법 요기가 된다. 이제 배를 채웠으니 일어서야지. 그러나 짐은 줄은것 같지가 않다. 더 무겁기만 한것같다. 선비샘 표지판 벽소령대피소를 출발한지 1시간여, 덕평봉 아래 넓다란 공터가 나온다. 이곳이 한노인의 슬픈사연이 서려있는 선비샘이다. 파이프를 통해 시원스레 나오는 물을 한모금 받아 마시니 속이 후련하고 시원하다. 슬픈사연이 있는 그 노인도 이물을 받아 마시고 속이 후련했을까? 그 슬픈노인의 사연을 보면 옛날 덕평마을에 이씨 노인이 살고 있었다 한다. 노인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화전민의 자식으로 가난에 쪼들리며 평생을 살았다. 배우지 못하여 무식 한데다 몹시 추하게 생겨 주위 사람들로부터 천대를 받으며 노인은 한번이라도 남에게서 사람다운 대접, 선비대접을 받으며 살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살아 생전 소원을 이루지 못한 그는 마지막 유언으로 상덕평 샘터 위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고 효성이 지극한 두 아들은 아버지의 유해를 샘터 위에 매장 했다. 그로부터 매년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은 샘에서 물을 마실 때면 반드시 노인의 무덤 앞에 인사를 하게 되니 생전에 그렇게 받고 싶었던 선비대접을 무덤 속에서나마 받게 되었다. 후일 동네사람들은 생전에 불우했던 이씨 노인을 위로하기 위해 이 샘을 선비샘으로 부르게 됐다. 그래서 덕평봉 남쪽 상덕평 능선 해발 1,500m에 있는 샘터를 선비샘이라 한다. 수량은 적으나 마르는 적이 없고 주위가 평탄하고 넓어서 야영하기에도 좋다. 선비샘 맑고 시원한 선비샘을 음료수팩에 담아가지고는 륙색옆에 꼽아 놓는다. 무겁고 힘들어도 물은 있어야지. 아직도 갈길이 먼데. 정말 장거리 산행을 나홀로 하는것은 마음과의 싸움이다. 체력이 소모되어 힘든것은 어쩔수 없으나 외로운 생각이 들면 몸이 더 축~ 쳐진다. 등산로를 벗어나 어디 호젓한 숲속으로 들어가 노래도 부르고 가지고간 하모니카도 불면서 마음을 달래보고도 싶지만 몸이 천근만근 말을 듣지 않는다. 에라 여기서 좀 푹쉬자. 칠성봉 가기전 전망이 좋은 넓고 아득한 자리에 주저앉는다. 멀리 천왕봉이 손끝에 달듯 한눈에 들어온다.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가지고간 미숫가루를 타서 먹고 있으려니 한 등산객이 아저씨 앉아 있는 폼이 주위 경치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사진한장 찍어 주겠단다. 주위 다른 등산객도 맞장구를 친다. 갑자기 탈렌트가 됬나? 나를 놀리나? 어쨋던 듣기 싫지는 않기에 카메라를 내준다. 정말 경치좋은 곳이다. 앉아 미숫가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해본다 멀리 천왕봉이 한눈에(칠성봉 前 가칭 전망대에서 바라본 천왕봉) 한 30여분을 쉬고는 칠성봉을 향한다. 칠성봉만 넘으면 세석산장이다. 칠성봉을 지나 영신봉이 가까워지니 여기도 긴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나무계단을 내려가는데 7분씩 소요된다. 그럼 이 계단은 500계단은 되나? 자연보호를 위하고 탐방인의 편의를 위하여 설치한것은 좋은 일이나 펑 뚫린 계단,계단 밑에는 떨어트렸는지? 버렸는지? 음료수팩이랑 비닐이랑 쓰레기들이 눈쌀을 찌프리게 한다. 사실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담배피우는 등산인은 물론 버려진 쓰레기를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버려진 쓰레기를 카메라에 담었지만 사진 자체만으로는 어디 라는 곳이 명확히 알수가 없어 그냥 사진 찍어두는것으로 끝낼수 밖에 없으리라. 세석평전 (가운데 보이는 봉우리가 촛대봉) 세석산장 세석산장에도 어디 따가운 퇴약볕 피해 휴식을 취할 자리없이 등산인으로 붐빈다. 여기저기서 구수한 찌게를 끓이며 냄새를 풍기고, 웃고 담소하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다. 할수없어 세석산장을 벗어나 세석평전 나무그늘을 찾아든다. 그러나 이곳은 등산로를 벗어난 곳이기에 잠시 메모만 하고 일어선다. 그리고는 촛대봉으로 올라간다. 넓은 세석평전 위에 우뚝선 촛대봉, 설기설기 바위로 수놓은듯 여기저기 널려있다. 촛대처럼 생겨 촛대봉인가? 했더니 넓은 평전위에 우뚝솟은 봉우리다. 촛대봉에 있는 이정표 잠시 사진 몇장 찍고는 장터목대피소로 향한다. 연하천대피소에서 새벽에 출발했으니 장터목대피소에도 일찍 도착하겠지. 이정표에는 장터목대피소까지 2.7km. 1시간30분 거리다. 이제부터는 등산인이 가끔씩 보이고 등산로도 한적하다. 삼신봉을 지나 연하봉에 오니 멀리 장터목대피소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의 산행도 마감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왜 봉우리마다 근사한 표지석 하나 세워놓지 않고 나무로 이정표 겸 해 놓았을까? 물론 근사한 돌로 해 놓으려면 운반도 그렇고 경비도 많이 들어 가리라. 그건 그렇다치고 등산로에 숨겨진 쓰레기나 정리를 했으면--- 양심을 버리고 간 등산인만을 탓하다가는 온통 모든산이 쓰레기산이 되지 않을까? 입장료든 대피소 이용료든 얼마를 받는다는 것은 이런것도 책임져야 되는것 아닌지? 연하봉에 있는 이정표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니 오후 2시50분. 온몸은 쑤시고 종다리는 어떻게 해야 시원한지 의자에 앉아 이리 올려도 보고 저리 올려도 보아도 시원치가 않다. 주물러도 본다. 또 파스도 뿌려본다. 어떻게 해도 시원치가 않다. 둘어눕고 싶지만 6시가 되야 입실이 시작된단다. 에이 식사준비나 하자. 물을 떠다가는 코펠에 넣고 햇반을 넣는다. 끓인다. 안내설명서에 끓는물에 18분간 있어야 된다니 한 20분 끓이자. 내일 먹을것까지 끓인다. 이것저것 가지고간 반찬을 꺼내놓고 햇반을 뜯으니 근사한 저녁만찬이 된다. 쐐주 한입 마신다. 온몸은 쑤시고 아프지만 거 근사한데, "혼자 오셨어요"하고 옆 사람이 말을 건넨다. 그리고는 종주하느냐고, 씩 웃으며 식사를 끝낸다. 아마 혼자 식사하는 모습이 안됬던 모양이지. 입실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자리를 배정받고 들어가니 국립공원 직영관리 대피소 라 그런지 연하천대피소 보다 훨씬 근사하고 시설이 잘 되어있다. 오늘은 몸도 피곤하고 잠자리도 좀 나으니 제대로 자겠지? 들어누으니 내일 일출을 보려고 하는 등산인은 천왕봉에서 해가 5시에 뜨니 1시간10분 전에는 출발해야 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그러면 새벽 3시반에는 출발 해야겠네. 애라 잠이나 자자. 장터목대피소 장터목대피소 내부일부 3. 천왕봉에 묻어두고 산 행 지 : 장터목대피소 ~ 대원사(유평매표소) 산행일시 : 2005.06.07 (화요일) 산행거리 : 13.4km 산행시간 : 실산행시간 - 6시간54분, 휴식 및 중식시간 - 2시간36분, 총산행시간 - 9시간30분 지리산 동부능선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등산로를 후라쉬 하나에 의존해 올라간다. 해가 5시경에 뜬다고했으니 지금쯤엔 올라가야 한다. 생각하고 장터목대피소를 나선다. 지금이 새벽 3시반.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소리도 나는것 같다. 잠시쉬고 있으니 두사람이 후라쉬도 없이 더듬더듬 거리며 올라온다. 그들도 역시 천왕봉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위해 어둠을 뚫고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예비 후라쉬를 건네주고 올라간다. 이 날카로운 바위투성이의 등산로를 올라가다가 어디라도 부딪치는 경우에는 크게 다칠것이다. 한15분간 더듬더듬 올라가니 어둠속에 잎하나없는 나무들이 즐비하게 장송처럼 서있는 체석봉이다. 이곳은 50여년전 벌목군들이 벌목한것을 숨기기위하여 불을 질렀다 한다. 그래서 나무들의 공동묘지가 되어 버렸다. 날이 훤하면 카메라에 담을텐데--- 체석봉에 서있는 이정표 한참 오르다보니 여기저기 제법 등산인들이 많이 오른다. 일출을 보려나 보다. 그런데 뭐가 자꾸 걸리며 등산로가 좁다. 여기가 천왕봉으로 가는 통천문 이라나? 어두워 카메라에 담지도 못하고 뒤에 오는 등산인에 떠밀려 그냥 올라간다. 이렇게 어둠과 싸워가며 장터목대피소를 출발하여 1시간. 드디어 "천왕봉"이다. 육지의 산으로는 제일 높은곳. 천왕봉 표지석에 서서 사진을 몇장 찍는다. 그리고는 나는 제일 높은곳에 올라와 있다. 하고 소리쳐 본다. 다른 사람들의 "얏호"하며 소리치는 소리에 뭍혀 뒤범벅 되는 소리겠지만---. 그런데 해는 5시나 되야 떠오를테고, 아직도 20분 이상이나 시간이 남았으니 세차게 불어대는 새벽공기에 몸이 움츠려 진다. 그래도 참아야지. 천왕봉 표지석에 적힌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 처럼 기상이 있는데--- 일출을 보고자 어둠이 깔린 천왕봉에 서있는 등산인들
성삼재 휴게소 (왼쪽에 안개에 가린 조그마한 집이 성삼재 매표소)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성삼재에서 노고단 대피소까지는 등산로라고 하기보다는 산책로라 해야 될것같다. 잘 다듬어진 길을 따라 한 40여분 올라가니 노고단 대피소가 나온다. 그러나 40여분간은 종주산행의 시작단계 라서인지 몸이 풀리지 않고 짖눌리는 것 같다. 새벽차를 타기위해 서두르다보니 허리에 파스 붙힌다는 것을 잊은 것이다. 종주산행에 허리가 견뎌주어야 하는데--- 하는 걱정을 하며 버스에서 내려 륙색을 메는 순간 허리보다는 어깨가 무섭게 짖눌려온다. 그도 그럴것이, 나홀로 종주산행에 나서다보니 3일간의 산속생활물품이 장난이 아니다. 코펠서부터 버너, 식량, 반찬가지, 옷가지, 구급약품, 식수, 그리고 쐐주까지--- 륙색무게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쨋던 힘들게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하니 여기저기서 아침식사를 하는 등산인이 눈에뛴다. 잠시 둘러보고는 노고단으로 향한다.
화엄사 갈림길 안부에서 바라본 화엄사계곡 노고단 대피소
노고단 대피소
노고단대피소에서 노고단까지는 10여분 거리다. 단(檀)있는 노고단 정상은 출입통제지역이라 못들어가지만 넓은 노고단 평야?를 한바뀌 훑어 보고는 내처 걸음을 재촉해 본다.
노고단(老姑檀)의 어원은 "늙은 시어머니 제사터"란 한자말에서 나온것이지만 신라 때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이라 여겨 매년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노고단은 선도성모의 높임말인 노고(老姑)와 제사를 올리던 신단(神檀)을 합해 부르던 이름이라 한다. 그리고 태백산, 토암산, 계룡산, 팔공산과 더불어 나라의 대사를 지낸 오악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노고단은 '한국의 알프스'로 불리며 고산 휴양지의 메카이다. 노고단은 지리산 종주의 시작점으로 인기가 높을 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고산휴양지로 알려져 왔으며 신라의 화랑이 이곳에서 심신 수련을 했고, 일제시대에는 외국의 선교사들이 피서용 별장을 50여 채나 건립하고 이 곳에서 여름을 났다고 한다. 6·25동란을 거치며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돌로 지은 담벼락과 집터가 남아 있다.
노고단과 안내표지판 노고단평야?에 있는 전망망원경과 돌탑 노고단을 출발한지 2시간여 반야봉 갈림길이 나온다. 많은 등산인이 쉬고 있다. 반야봉을 가보지 않고 지리산종주를 할수는 없지. 하고는 반야봉으로 방향을 잡는다. 마고할미 전설이 있는 반야봉. 갈림길에서 1.0km구간, 40여분 거리다. 반야봉에 도착하니 여기도 많은 등산인이 붐비고 있다. 반야봉에서 바라보는 달궁계곡과 심마니능선, 앞이확트인 시원함이 마음을 상쾌하게 해준다. 여기서 마고할미와 관련된 전설을 살펴보면 반야봉에는 지리산 산신 중 女神인 천왕봉의 마고할미와 관련된 전설이 있는데 그 여신은 선도성모(仙桃聖母) 또는 마고(麻古)할미, 노고(老姑)라 불리는 바로 천신(天神)의 딸이다. 그 천신의 딸인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있던 도사 반야(般若)를 만나 결혼해 천왕봉에서 살았다. 그들은 딸만 8명을 낳았다. 그러던중 반야는 더많은 깨우침을 얻기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반야봉으로 떠났다. 그리고 마고할미가 백발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마고할미는 반야봉에서 깨우침을 얻기 위해 외로이 수도하는 남편 반야를 그리며 나무껍질을 벗겨 남편이 입을 옷을 만든다. 그리고 마고할미는 딸들을 한명씩 전국 팔도에 내려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린다. 기다림에 지친 마고할미는 끝내 남편 반야을 위해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 숨지고 만다. 갈기갈기 찢겨진 옷이 바람에 날리어 반야봉으로 날아가니 바로 반야봉의 풍란이 되었다고 전한다. 후세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이라 불렀고 그의 딸들은 8도 무당의 시조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반야봉에 있는 표지석 반야봉에 있는 이정표 반야봉에 도착해서는 만들어간 야채 사라다를 김에싸서 아침식사겸 요기를 하고는 자리를 일어선다. 연습삼아 처음 만들어 먹어보는 것이지만 야채사라다에 김을 싸서 먹으니 맛이 일품이다. 산에와서 먹어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야채 사라다만 먹는거와 김에 싸서 먹는것은 맛이 천지(天地)차이다. 와~ 이렇게 맛있는 것도 있담. 반야봉에서 다시 되돌아 노루목으로 거쳐 삼도봉으로 향한다. 일명 날라리봉. 삼도봉의 바위모양이 낫날 같다하여 '낫날봉'이라 하던 것이 와전되어 '날라리봉'으로 불리게 된것이다. 반야봉을 출발한지 40여분.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가 만나는 삼도봉. 그 삼도봉위에 세워진 삼각형의 표지석위에 서서는 "나는 三道를 한꺼번에 밟았다" 하고는 속으로 빙그레 웃어본다. 삼도봉에 있는 표지석 삼도봉에서 화개재(뱀사골대피소 삼거리)로 가는 등산로에는 긴 나무계단이 있다. 삼도봉에서 화개재까지 내려가는데 30여분 걸리는데 나무계단만 내려가는데 10여분이 소요된다. 와! 이 나무계단을 올라오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틀림없이 연하천산장 아니면, 벽소령대피소, 아니 그전에 대피소에서 자고 왔을텐데 힘들고 지친몸으로 무거운 륙색까지 짊어지고 이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를때의 심정은? 내려가는데도 온몸이 뻐근하고 죽겠는데--- 말이다. 누군가 안내판에 "꼭 600계단"이라고 적어 놓은것이 실감을 낳게한다.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가는 등산로에 있는 나무계단 화개재(뱀사골대피소 삼거리 안부) 화개재에 와서 잠시 쉬고는 토끼봉으로 향한다. 도데체 지리산에는 봉우리가 몇개야! 토끼봉에 올라서는 잠시 피로도 풀겸 느긋이 휴식을 취하며 늦장을 부려본다. 여기서 연하천대피소까지는 3km, 2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이기에--- 지금시간이 오후 1시, 그러면 연하천대피소에는 3시전에 들어간다. 저녁까지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낸담. 하여튼 그래도 가긴 가야지. 일어선다 토끼봉에 있는 이정표 토끼봉을 출발하여 1시간여 연하천대피소 1km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아! 연하천대피소가 얼마 안남았군, 천근만근되는 몸을 이끌고 명성봉을 오른다. 명성봉만 넘으면 대피소다. 대피소에 일찍 도착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데도 머리속에는 대피소에 얼른가서 좀 쉬야지. 하는 생각뿐이다. 막상 대피소에 도착해보니 쉴곳은 없고 사람들로 정신이 없다. 자리배정도 6시나 되야 한단다. 지금이 3시15분이니 그냥 벽소령대피소까지 갈까? 그러나 비박준비도 없이 벽소령대피소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잘때가 없다 할수없이 그래도 예약한 연하천에서 자기로 하고 우연히 만난 아가씨 두분과 함께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별다른 준비도 없이 온것 같은 한 아가씨는 운동화 차림이다. 대단하네 하며 가지고 온 햇반과 아가씨들이 사온 라면으로 저녁식사를 때운다. 물론 소주 한잔씩 하면서--- 연하천대피소 6시가 되어 자리배정을 받고 임대한 침랑을 깔고 누워보니 와우! 여기가 군대인가? 도무지 잠이 올것 같지가 않다. 한사람의 소유넓이가 56.5cm. 사람끼리 다닥다닥 붙어 자는수 밖에 없다. 밖으로 나와보니 밖에는 더 아수라장 같다. 어두워지면서 몰려드는 등산인. 예약이 안된 사람들이 자리배정 받기위한 선두다툼. 그냥 땅바닥에 침랑깔고 비박하는 등산인. 몇컷 기념사진을 찍을려니 후라쉬가 터져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여 순간순간을 렌즈에 담을수도 없다. 에라~ 내일의 산행을 위하여 어쨋던 자 두는것이 좋지. 잠을 청해본다. 예약못한 등산인 자리배정 줄서기 대피소 앞을 꽉메운 등산인과 비박하는 등산인 2. 외로운 종주산행 산 행 지 : 연하천대피소 ~ 장터목대피소 산행일시 : 2005.06.06 (월요일) 산행거리 : 13.3km 산행시간 : 실산행시간 - 6시간19분, 휴식 및 중식시간 - 3시간06분, 총산행시간 - 9시간25분 지리산 종주 이정표 자다깨다 자다깨다, 설잠을 잔채 깨어보니 시계는 5시를 향해 달리고 있다. 더 있어야 잠도 오지않고 날은 밝아 오는듯하니 일어나자 하고 밖으로 나간다. 벌써 많은 등산인들이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구수한 찌게냄새가 코를 간지럽게 한다. 혼자서 처량하게 냄새를 맡고 있느니 산행하는게 낫지. 아침은 벽소령대피소에 가서할까? 세수를 하는둥 마는둥 눈꼽만 떼고는 륙색을 짊어지고 내뺀다. 원래계획은 아침밥을 먹고 8시쯤 출발할 계획이었다. 천왕봉에서 백두대간을 시작하는 "아름산방" 회원들이 벽소령에서 자고 연하천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되었기에 그래도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담소라도 하고 가야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놈의 구수한 냄새때문에--- 아침식사 준비하는 많은 등산인들 연하천대피소를 출발한지 한 40여분, 삼각봉을 지나 형제봉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형제봉을 나서 내려가는데 누가 "안녕하세요" 한다. "다올"님이다. 뒤에들 온단다. 이내 "진주"님, "들꽃"님 그리고 닉은 모르지만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모두 29명이 1차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했단다. 많은 인원이다. 잠시 기념촬영과 담소를 나누고는 헤어진다. 얼마안가 후미에 오시는"산조아"님을 만난다. 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속보산행이나 장시간 산행이 힘들어 참여를 하지 못한것이다. 이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한 내가 아는 팀만도 3개팀이나 된다. 그러나 내가 함께 산행하기에는 전부 힘든 스케쥴이고 어려운 산행이다. 할수없어 나홀로 외로운 종주산행을 택할수 밖에 없었다. 벽소령대피소 아름산팀과 헤어져 30분간 지나니 벽소령대피소다.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하니 연하천 대피소에서 함께 저녁식사 했던 아가씨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오늘 백무동에서 4시에 떠나는 고속버스를 예약해 놓았기에 세석을 거쳐 빨리 내려 가야 한단다. 사진 몇장 찍어주고는 세석에서 백무동까지도 3시간30분 이상걸리니 서두루라고 하고는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한다. 아침식사라야 아직 남아있는 야채사라다와 김이다. 그리고는 칼로리바란스 빵을 한입 넣는다. 영양가도 2pack을 먹었을때 1일섭취 영양소의 50%를 섭취한다 하고 열량도 330kcal나 되어 있어 제법 요기가 된다. 이제 배를 채웠으니 일어서야지. 그러나 짐은 줄은것 같지가 않다. 더 무겁기만 한것같다. 선비샘 표지판 벽소령대피소를 출발한지 1시간여, 덕평봉 아래 넓다란 공터가 나온다. 이곳이 한노인의 슬픈사연이 서려있는 선비샘이다. 파이프를 통해 시원스레 나오는 물을 한모금 받아 마시니 속이 후련하고 시원하다. 슬픈사연이 있는 그 노인도 이물을 받아 마시고 속이 후련했을까? 그 슬픈노인의 사연을 보면 옛날 덕평마을에 이씨 노인이 살고 있었다 한다. 노인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화전민의 자식으로 가난에 쪼들리며 평생을 살았다. 배우지 못하여 무식 한데다 몹시 추하게 생겨 주위 사람들로부터 천대를 받으며 노인은 한번이라도 남에게서 사람다운 대접, 선비대접을 받으며 살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살아 생전 소원을 이루지 못한 그는 마지막 유언으로 상덕평 샘터 위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고 효성이 지극한 두 아들은 아버지의 유해를 샘터 위에 매장 했다. 그로부터 매년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은 샘에서 물을 마실 때면 반드시 노인의 무덤 앞에 인사를 하게 되니 생전에 그렇게 받고 싶었던 선비대접을 무덤 속에서나마 받게 되었다. 후일 동네사람들은 생전에 불우했던 이씨 노인을 위로하기 위해 이 샘을 선비샘으로 부르게 됐다. 그래서 덕평봉 남쪽 상덕평 능선 해발 1,500m에 있는 샘터를 선비샘이라 한다. 수량은 적으나 마르는 적이 없고 주위가 평탄하고 넓어서 야영하기에도 좋다. 선비샘 맑고 시원한 선비샘을 음료수팩에 담아가지고는 륙색옆에 꼽아 놓는다. 무겁고 힘들어도 물은 있어야지. 아직도 갈길이 먼데. 정말 장거리 산행을 나홀로 하는것은 마음과의 싸움이다. 체력이 소모되어 힘든것은 어쩔수 없으나 외로운 생각이 들면 몸이 더 축~ 쳐진다. 등산로를 벗어나 어디 호젓한 숲속으로 들어가 노래도 부르고 가지고간 하모니카도 불면서 마음을 달래보고도 싶지만 몸이 천근만근 말을 듣지 않는다. 에라 여기서 좀 푹쉬자. 칠성봉 가기전 전망이 좋은 넓고 아득한 자리에 주저앉는다. 멀리 천왕봉이 손끝에 달듯 한눈에 들어온다.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가지고간 미숫가루를 타서 먹고 있으려니 한 등산객이 아저씨 앉아 있는 폼이 주위 경치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사진한장 찍어 주겠단다. 주위 다른 등산객도 맞장구를 친다. 갑자기 탈렌트가 됬나? 나를 놀리나? 어쨋던 듣기 싫지는 않기에 카메라를 내준다. 정말 경치좋은 곳이다. 앉아 미숫가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해본다 멀리 천왕봉이 한눈에(칠성봉 前 가칭 전망대에서 바라본 천왕봉) 한 30여분을 쉬고는 칠성봉을 향한다. 칠성봉만 넘으면 세석산장이다. 칠성봉을 지나 영신봉이 가까워지니 여기도 긴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나무계단을 내려가는데 7분씩 소요된다. 그럼 이 계단은 500계단은 되나? 자연보호를 위하고 탐방인의 편의를 위하여 설치한것은 좋은 일이나 펑 뚫린 계단,계단 밑에는 떨어트렸는지? 버렸는지? 음료수팩이랑 비닐이랑 쓰레기들이 눈쌀을 찌프리게 한다. 사실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담배피우는 등산인은 물론 버려진 쓰레기를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버려진 쓰레기를 카메라에 담었지만 사진 자체만으로는 어디 라는 곳이 명확히 알수가 없어 그냥 사진 찍어두는것으로 끝낼수 밖에 없으리라. 세석평전 (가운데 보이는 봉우리가 촛대봉) 세석산장 세석산장에도 어디 따가운 퇴약볕 피해 휴식을 취할 자리없이 등산인으로 붐빈다. 여기저기서 구수한 찌게를 끓이며 냄새를 풍기고, 웃고 담소하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다. 할수없어 세석산장을 벗어나 세석평전 나무그늘을 찾아든다. 그러나 이곳은 등산로를 벗어난 곳이기에 잠시 메모만 하고 일어선다. 그리고는 촛대봉으로 올라간다. 넓은 세석평전 위에 우뚝선 촛대봉, 설기설기 바위로 수놓은듯 여기저기 널려있다. 촛대처럼 생겨 촛대봉인가? 했더니 넓은 평전위에 우뚝솟은 봉우리다. 촛대봉에 있는 이정표 잠시 사진 몇장 찍고는 장터목대피소로 향한다. 연하천대피소에서 새벽에 출발했으니 장터목대피소에도 일찍 도착하겠지. 이정표에는 장터목대피소까지 2.7km. 1시간30분 거리다. 이제부터는 등산인이 가끔씩 보이고 등산로도 한적하다. 삼신봉을 지나 연하봉에 오니 멀리 장터목대피소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의 산행도 마감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왜 봉우리마다 근사한 표지석 하나 세워놓지 않고 나무로 이정표 겸 해 놓았을까? 물론 근사한 돌로 해 놓으려면 운반도 그렇고 경비도 많이 들어 가리라. 그건 그렇다치고 등산로에 숨겨진 쓰레기나 정리를 했으면--- 양심을 버리고 간 등산인만을 탓하다가는 온통 모든산이 쓰레기산이 되지 않을까? 입장료든 대피소 이용료든 얼마를 받는다는 것은 이런것도 책임져야 되는것 아닌지? 연하봉에 있는 이정표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니 오후 2시50분. 온몸은 쑤시고 종다리는 어떻게 해야 시원한지 의자에 앉아 이리 올려도 보고 저리 올려도 보아도 시원치가 않다. 주물러도 본다. 또 파스도 뿌려본다. 어떻게 해도 시원치가 않다. 둘어눕고 싶지만 6시가 되야 입실이 시작된단다. 에이 식사준비나 하자. 물을 떠다가는 코펠에 넣고 햇반을 넣는다. 끓인다. 안내설명서에 끓는물에 18분간 있어야 된다니 한 20분 끓이자. 내일 먹을것까지 끓인다. 이것저것 가지고간 반찬을 꺼내놓고 햇반을 뜯으니 근사한 저녁만찬이 된다. 쐐주 한입 마신다. 온몸은 쑤시고 아프지만 거 근사한데, "혼자 오셨어요"하고 옆 사람이 말을 건넨다. 그리고는 종주하느냐고, 씩 웃으며 식사를 끝낸다. 아마 혼자 식사하는 모습이 안됬던 모양이지. 입실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자리를 배정받고 들어가니 국립공원 직영관리 대피소 라 그런지 연하천대피소 보다 훨씬 근사하고 시설이 잘 되어있다. 오늘은 몸도 피곤하고 잠자리도 좀 나으니 제대로 자겠지? 들어누으니 내일 일출을 보려고 하는 등산인은 천왕봉에서 해가 5시에 뜨니 1시간10분 전에는 출발해야 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그러면 새벽 3시반에는 출발 해야겠네. 애라 잠이나 자자. 장터목대피소 장터목대피소 내부일부 3. 천왕봉에 묻어두고 산 행 지 : 장터목대피소 ~ 대원사(유평매표소) 산행일시 : 2005.06.07 (화요일) 산행거리 : 13.4km 산행시간 : 실산행시간 - 6시간54분, 휴식 및 중식시간 - 2시간36분, 총산행시간 - 9시간30분 지리산 동부능선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등산로를 후라쉬 하나에 의존해 올라간다. 해가 5시경에 뜬다고했으니 지금쯤엔 올라가야 한다. 생각하고 장터목대피소를 나선다. 지금이 새벽 3시반.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소리도 나는것 같다. 잠시쉬고 있으니 두사람이 후라쉬도 없이 더듬더듬 거리며 올라온다. 그들도 역시 천왕봉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위해 어둠을 뚫고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예비 후라쉬를 건네주고 올라간다. 이 날카로운 바위투성이의 등산로를 올라가다가 어디라도 부딪치는 경우에는 크게 다칠것이다. 한15분간 더듬더듬 올라가니 어둠속에 잎하나없는 나무들이 즐비하게 장송처럼 서있는 체석봉이다. 이곳은 50여년전 벌목군들이 벌목한것을 숨기기위하여 불을 질렀다 한다. 그래서 나무들의 공동묘지가 되어 버렸다. 날이 훤하면 카메라에 담을텐데--- 체석봉에 서있는 이정표 한참 오르다보니 여기저기 제법 등산인들이 많이 오른다. 일출을 보려나 보다. 그런데 뭐가 자꾸 걸리며 등산로가 좁다. 여기가 천왕봉으로 가는 통천문 이라나? 어두워 카메라에 담지도 못하고 뒤에 오는 등산인에 떠밀려 그냥 올라간다. 이렇게 어둠과 싸워가며 장터목대피소를 출발하여 1시간. 드디어 "천왕봉"이다. 육지의 산으로는 제일 높은곳. 천왕봉 표지석에 서서 사진을 몇장 찍는다. 그리고는 나는 제일 높은곳에 올라와 있다. 하고 소리쳐 본다. 다른 사람들의 "얏호"하며 소리치는 소리에 뭍혀 뒤범벅 되는 소리겠지만---. 그런데 해는 5시나 되야 떠오를테고, 아직도 20분 이상이나 시간이 남았으니 세차게 불어대는 새벽공기에 몸이 움츠려 진다. 그래도 참아야지. 천왕봉 표지석에 적힌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 처럼 기상이 있는데--- 일출을 보고자 어둠이 깔린 천왕봉에 서있는 등산인들
노고단평야?에 있는 전망망원경과 돌탑
노고단을 출발한지 2시간여 반야봉 갈림길이 나온다. 많은 등산인이 쉬고 있다. 반야봉을 가보지 않고 지리산종주를 할수는 없지. 하고는 반야봉으로 방향을 잡는다. 마고할미 전설이 있는 반야봉. 갈림길에서 1.0km구간, 40여분 거리다. 반야봉에 도착하니 여기도 많은 등산인이 붐비고 있다. 반야봉에서 바라보는 달궁계곡과 심마니능선, 앞이확트인 시원함이 마음을 상쾌하게 해준다. 여기서 마고할미와 관련된 전설을 살펴보면 반야봉에는 지리산 산신 중 女神인 천왕봉의 마고할미와 관련된 전설이 있는데 그 여신은 선도성모(仙桃聖母) 또는 마고(麻古)할미, 노고(老姑)라 불리는 바로 천신(天神)의 딸이다. 그 천신의 딸인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있던 도사 반야(般若)를 만나 결혼해 천왕봉에서 살았다. 그들은 딸만 8명을 낳았다. 그러던중 반야는 더많은 깨우침을 얻기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반야봉으로 떠났다. 그리고 마고할미가 백발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마고할미는 반야봉에서 깨우침을 얻기 위해 외로이 수도하는 남편 반야를 그리며 나무껍질을 벗겨 남편이 입을 옷을 만든다. 그리고 마고할미는 딸들을 한명씩 전국 팔도에 내려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린다. 기다림에 지친 마고할미는 끝내 남편 반야을 위해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 숨지고 만다. 갈기갈기 찢겨진 옷이 바람에 날리어 반야봉으로 날아가니 바로 반야봉의 풍란이 되었다고 전한다. 후세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이라 불렀고 그의 딸들은 8도 무당의 시조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반야봉에 있는 표지석 반야봉에 있는 이정표 반야봉에 도착해서는 만들어간 야채 사라다를 김에싸서 아침식사겸 요기를 하고는 자리를 일어선다. 연습삼아 처음 만들어 먹어보는 것이지만 야채사라다에 김을 싸서 먹으니 맛이 일품이다. 산에와서 먹어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야채 사라다만 먹는거와 김에 싸서 먹는것은 맛이 천지(天地)차이다. 와~ 이렇게 맛있는 것도 있담. 반야봉에서 다시 되돌아 노루목으로 거쳐 삼도봉으로 향한다. 일명 날라리봉. 삼도봉의 바위모양이 낫날 같다하여 '낫날봉'이라 하던 것이 와전되어 '날라리봉'으로 불리게 된것이다. 반야봉을 출발한지 40여분.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가 만나는 삼도봉. 그 삼도봉위에 세워진 삼각형의 표지석위에 서서는 "나는 三道를 한꺼번에 밟았다" 하고는 속으로 빙그레 웃어본다. 삼도봉에 있는 표지석 삼도봉에서 화개재(뱀사골대피소 삼거리)로 가는 등산로에는 긴 나무계단이 있다. 삼도봉에서 화개재까지 내려가는데 30여분 걸리는데 나무계단만 내려가는데 10여분이 소요된다. 와! 이 나무계단을 올라오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틀림없이 연하천산장 아니면, 벽소령대피소, 아니 그전에 대피소에서 자고 왔을텐데 힘들고 지친몸으로 무거운 륙색까지 짊어지고 이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를때의 심정은? 내려가는데도 온몸이 뻐근하고 죽겠는데--- 말이다. 누군가 안내판에 "꼭 600계단"이라고 적어 놓은것이 실감을 낳게한다.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가는 등산로에 있는 나무계단 화개재(뱀사골대피소 삼거리 안부) 화개재에 와서 잠시 쉬고는 토끼봉으로 향한다. 도데체 지리산에는 봉우리가 몇개야! 토끼봉에 올라서는 잠시 피로도 풀겸 느긋이 휴식을 취하며 늦장을 부려본다. 여기서 연하천대피소까지는 3km, 2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이기에--- 지금시간이 오후 1시, 그러면 연하천대피소에는 3시전에 들어간다. 저녁까지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낸담. 하여튼 그래도 가긴 가야지. 일어선다 토끼봉에 있는 이정표 토끼봉을 출발하여 1시간여 연하천대피소 1km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아! 연하천대피소가 얼마 안남았군, 천근만근되는 몸을 이끌고 명성봉을 오른다. 명성봉만 넘으면 대피소다. 대피소에 일찍 도착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데도 머리속에는 대피소에 얼른가서 좀 쉬야지. 하는 생각뿐이다. 막상 대피소에 도착해보니 쉴곳은 없고 사람들로 정신이 없다. 자리배정도 6시나 되야 한단다. 지금이 3시15분이니 그냥 벽소령대피소까지 갈까? 그러나 비박준비도 없이 벽소령대피소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잘때가 없다 할수없이 그래도 예약한 연하천에서 자기로 하고 우연히 만난 아가씨 두분과 함께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별다른 준비도 없이 온것 같은 한 아가씨는 운동화 차림이다. 대단하네 하며 가지고 온 햇반과 아가씨들이 사온 라면으로 저녁식사를 때운다. 물론 소주 한잔씩 하면서--- 연하천대피소 6시가 되어 자리배정을 받고 임대한 침랑을 깔고 누워보니 와우! 여기가 군대인가? 도무지 잠이 올것 같지가 않다. 한사람의 소유넓이가 56.5cm. 사람끼리 다닥다닥 붙어 자는수 밖에 없다. 밖으로 나와보니 밖에는 더 아수라장 같다. 어두워지면서 몰려드는 등산인. 예약이 안된 사람들이 자리배정 받기위한 선두다툼. 그냥 땅바닥에 침랑깔고 비박하는 등산인. 몇컷 기념사진을 찍을려니 후라쉬가 터져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여 순간순간을 렌즈에 담을수도 없다. 에라~ 내일의 산행을 위하여 어쨋던 자 두는것이 좋지. 잠을 청해본다. 예약못한 등산인 자리배정 줄서기 대피소 앞을 꽉메운 등산인과 비박하는 등산인 2. 외로운 종주산행 산 행 지 : 연하천대피소 ~ 장터목대피소 산행일시 : 2005.06.06 (월요일) 산행거리 : 13.3km 산행시간 : 실산행시간 - 6시간19분, 휴식 및 중식시간 - 3시간06분, 총산행시간 - 9시간25분 지리산 종주 이정표 자다깨다 자다깨다, 설잠을 잔채 깨어보니 시계는 5시를 향해 달리고 있다. 더 있어야 잠도 오지않고 날은 밝아 오는듯하니 일어나자 하고 밖으로 나간다. 벌써 많은 등산인들이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구수한 찌게냄새가 코를 간지럽게 한다. 혼자서 처량하게 냄새를 맡고 있느니 산행하는게 낫지. 아침은 벽소령대피소에 가서할까? 세수를 하는둥 마는둥 눈꼽만 떼고는 륙색을 짊어지고 내뺀다. 원래계획은 아침밥을 먹고 8시쯤 출발할 계획이었다. 천왕봉에서 백두대간을 시작하는 "아름산방" 회원들이 벽소령에서 자고 연하천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되었기에 그래도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담소라도 하고 가야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놈의 구수한 냄새때문에--- 아침식사 준비하는 많은 등산인들 연하천대피소를 출발한지 한 40여분, 삼각봉을 지나 형제봉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형제봉을 나서 내려가는데 누가 "안녕하세요" 한다. "다올"님이다. 뒤에들 온단다. 이내 "진주"님, "들꽃"님 그리고 닉은 모르지만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모두 29명이 1차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했단다. 많은 인원이다. 잠시 기념촬영과 담소를 나누고는 헤어진다. 얼마안가 후미에 오시는"산조아"님을 만난다. 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속보산행이나 장시간 산행이 힘들어 참여를 하지 못한것이다. 이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한 내가 아는 팀만도 3개팀이나 된다. 그러나 내가 함께 산행하기에는 전부 힘든 스케쥴이고 어려운 산행이다. 할수없어 나홀로 외로운 종주산행을 택할수 밖에 없었다. 벽소령대피소 아름산팀과 헤어져 30분간 지나니 벽소령대피소다.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하니 연하천 대피소에서 함께 저녁식사 했던 아가씨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오늘 백무동에서 4시에 떠나는 고속버스를 예약해 놓았기에 세석을 거쳐 빨리 내려 가야 한단다. 사진 몇장 찍어주고는 세석에서 백무동까지도 3시간30분 이상걸리니 서두루라고 하고는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한다. 아침식사라야 아직 남아있는 야채사라다와 김이다. 그리고는 칼로리바란스 빵을 한입 넣는다. 영양가도 2pack을 먹었을때 1일섭취 영양소의 50%를 섭취한다 하고 열량도 330kcal나 되어 있어 제법 요기가 된다. 이제 배를 채웠으니 일어서야지. 그러나 짐은 줄은것 같지가 않다. 더 무겁기만 한것같다. 선비샘 표지판 벽소령대피소를 출발한지 1시간여, 덕평봉 아래 넓다란 공터가 나온다. 이곳이 한노인의 슬픈사연이 서려있는 선비샘이다. 파이프를 통해 시원스레 나오는 물을 한모금 받아 마시니 속이 후련하고 시원하다. 슬픈사연이 있는 그 노인도 이물을 받아 마시고 속이 후련했을까? 그 슬픈노인의 사연을 보면 옛날 덕평마을에 이씨 노인이 살고 있었다 한다. 노인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화전민의 자식으로 가난에 쪼들리며 평생을 살았다. 배우지 못하여 무식 한데다 몹시 추하게 생겨 주위 사람들로부터 천대를 받으며 노인은 한번이라도 남에게서 사람다운 대접, 선비대접을 받으며 살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살아 생전 소원을 이루지 못한 그는 마지막 유언으로 상덕평 샘터 위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고 효성이 지극한 두 아들은 아버지의 유해를 샘터 위에 매장 했다. 그로부터 매년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은 샘에서 물을 마실 때면 반드시 노인의 무덤 앞에 인사를 하게 되니 생전에 그렇게 받고 싶었던 선비대접을 무덤 속에서나마 받게 되었다. 후일 동네사람들은 생전에 불우했던 이씨 노인을 위로하기 위해 이 샘을 선비샘으로 부르게 됐다. 그래서 덕평봉 남쪽 상덕평 능선 해발 1,500m에 있는 샘터를 선비샘이라 한다. 수량은 적으나 마르는 적이 없고 주위가 평탄하고 넓어서 야영하기에도 좋다. 선비샘 맑고 시원한 선비샘을 음료수팩에 담아가지고는 륙색옆에 꼽아 놓는다. 무겁고 힘들어도 물은 있어야지. 아직도 갈길이 먼데. 정말 장거리 산행을 나홀로 하는것은 마음과의 싸움이다. 체력이 소모되어 힘든것은 어쩔수 없으나 외로운 생각이 들면 몸이 더 축~ 쳐진다. 등산로를 벗어나 어디 호젓한 숲속으로 들어가 노래도 부르고 가지고간 하모니카도 불면서 마음을 달래보고도 싶지만 몸이 천근만근 말을 듣지 않는다. 에라 여기서 좀 푹쉬자. 칠성봉 가기전 전망이 좋은 넓고 아득한 자리에 주저앉는다. 멀리 천왕봉이 손끝에 달듯 한눈에 들어온다.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가지고간 미숫가루를 타서 먹고 있으려니 한 등산객이 아저씨 앉아 있는 폼이 주위 경치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사진한장 찍어 주겠단다. 주위 다른 등산객도 맞장구를 친다. 갑자기 탈렌트가 됬나? 나를 놀리나? 어쨋던 듣기 싫지는 않기에 카메라를 내준다. 정말 경치좋은 곳이다. 앉아 미숫가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해본다 멀리 천왕봉이 한눈에(칠성봉 前 가칭 전망대에서 바라본 천왕봉) 한 30여분을 쉬고는 칠성봉을 향한다. 칠성봉만 넘으면 세석산장이다. 칠성봉을 지나 영신봉이 가까워지니 여기도 긴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나무계단을 내려가는데 7분씩 소요된다. 그럼 이 계단은 500계단은 되나? 자연보호를 위하고 탐방인의 편의를 위하여 설치한것은 좋은 일이나 펑 뚫린 계단,계단 밑에는 떨어트렸는지? 버렸는지? 음료수팩이랑 비닐이랑 쓰레기들이 눈쌀을 찌프리게 한다. 사실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담배피우는 등산인은 물론 버려진 쓰레기를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버려진 쓰레기를 카메라에 담었지만 사진 자체만으로는 어디 라는 곳이 명확히 알수가 없어 그냥 사진 찍어두는것으로 끝낼수 밖에 없으리라. 세석평전 (가운데 보이는 봉우리가 촛대봉) 세석산장 세석산장에도 어디 따가운 퇴약볕 피해 휴식을 취할 자리없이 등산인으로 붐빈다. 여기저기서 구수한 찌게를 끓이며 냄새를 풍기고, 웃고 담소하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다. 할수없어 세석산장을 벗어나 세석평전 나무그늘을 찾아든다. 그러나 이곳은 등산로를 벗어난 곳이기에 잠시 메모만 하고 일어선다. 그리고는 촛대봉으로 올라간다. 넓은 세석평전 위에 우뚝선 촛대봉, 설기설기 바위로 수놓은듯 여기저기 널려있다. 촛대처럼 생겨 촛대봉인가? 했더니 넓은 평전위에 우뚝솟은 봉우리다. 촛대봉에 있는 이정표 잠시 사진 몇장 찍고는 장터목대피소로 향한다. 연하천대피소에서 새벽에 출발했으니 장터목대피소에도 일찍 도착하겠지. 이정표에는 장터목대피소까지 2.7km. 1시간30분 거리다. 이제부터는 등산인이 가끔씩 보이고 등산로도 한적하다. 삼신봉을 지나 연하봉에 오니 멀리 장터목대피소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의 산행도 마감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왜 봉우리마다 근사한 표지석 하나 세워놓지 않고 나무로 이정표 겸 해 놓았을까? 물론 근사한 돌로 해 놓으려면 운반도 그렇고 경비도 많이 들어 가리라. 그건 그렇다치고 등산로에 숨겨진 쓰레기나 정리를 했으면--- 양심을 버리고 간 등산인만을 탓하다가는 온통 모든산이 쓰레기산이 되지 않을까? 입장료든 대피소 이용료든 얼마를 받는다는 것은 이런것도 책임져야 되는것 아닌지? 연하봉에 있는 이정표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니 오후 2시50분. 온몸은 쑤시고 종다리는 어떻게 해야 시원한지 의자에 앉아 이리 올려도 보고 저리 올려도 보아도 시원치가 않다. 주물러도 본다. 또 파스도 뿌려본다. 어떻게 해도 시원치가 않다. 둘어눕고 싶지만 6시가 되야 입실이 시작된단다. 에이 식사준비나 하자. 물을 떠다가는 코펠에 넣고 햇반을 넣는다. 끓인다. 안내설명서에 끓는물에 18분간 있어야 된다니 한 20분 끓이자. 내일 먹을것까지 끓인다. 이것저것 가지고간 반찬을 꺼내놓고 햇반을 뜯으니 근사한 저녁만찬이 된다. 쐐주 한입 마신다. 온몸은 쑤시고 아프지만 거 근사한데, "혼자 오셨어요"하고 옆 사람이 말을 건넨다. 그리고는 종주하느냐고, 씩 웃으며 식사를 끝낸다. 아마 혼자 식사하는 모습이 안됬던 모양이지. 입실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자리를 배정받고 들어가니 국립공원 직영관리 대피소 라 그런지 연하천대피소 보다 훨씬 근사하고 시설이 잘 되어있다. 오늘은 몸도 피곤하고 잠자리도 좀 나으니 제대로 자겠지? 들어누으니 내일 일출을 보려고 하는 등산인은 천왕봉에서 해가 5시에 뜨니 1시간10분 전에는 출발해야 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그러면 새벽 3시반에는 출발 해야겠네. 애라 잠이나 자자. 장터목대피소 장터목대피소 내부일부
여기서 마고할미와 관련된 전설을 살펴보면 반야봉에는 지리산 산신 중 女神인 천왕봉의 마고할미와 관련된 전설이 있는데 그 여신은 선도성모(仙桃聖母) 또는 마고(麻古)할미, 노고(老姑)라 불리는 바로 천신(天神)의 딸이다. 그 천신의 딸인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있던 도사 반야(般若)를 만나 결혼해 천왕봉에서 살았다. 그들은 딸만 8명을 낳았다. 그러던중 반야는 더많은 깨우침을 얻기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반야봉으로 떠났다. 그리고 마고할미가 백발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마고할미는 반야봉에서 깨우침을 얻기 위해 외로이 수도하는 남편 반야를 그리며 나무껍질을 벗겨 남편이 입을 옷을 만든다. 그리고 마고할미는 딸들을 한명씩 전국 팔도에 내려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린다. 기다림에 지친 마고할미는 끝내 남편 반야을 위해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 숨지고 만다. 갈기갈기 찢겨진 옷이 바람에 날리어 반야봉으로 날아가니 바로 반야봉의 풍란이 되었다고 전한다. 후세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이라 불렀고 그의 딸들은 8도 무당의 시조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반야봉에 있는 표지석 반야봉에 있는 이정표
반야봉에 있는 이정표
반야봉에 도착해서는 만들어간 야채 사라다를 김에싸서 아침식사겸 요기를 하고는 자리를 일어선다. 연습삼아 처음 만들어 먹어보는 것이지만 야채사라다에 김을 싸서 먹으니 맛이 일품이다. 산에와서 먹어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야채 사라다만 먹는거와 김에 싸서 먹는것은 맛이 천지(天地)차이다. 와~ 이렇게 맛있는 것도 있담. 반야봉에서 다시 되돌아 노루목으로 거쳐 삼도봉으로 향한다. 일명 날라리봉. 삼도봉의 바위모양이 낫날 같다하여 '낫날봉'이라 하던 것이 와전되어 '날라리봉'으로 불리게 된것이다. 반야봉을 출발한지 40여분.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가 만나는 삼도봉. 그 삼도봉위에 세워진 삼각형의 표지석위에 서서는 "나는 三道를 한꺼번에 밟았다" 하고는 속으로 빙그레 웃어본다.
삼도봉에 있는 표지석
삼도봉에서 화개재(뱀사골대피소 삼거리)로 가는 등산로에는 긴 나무계단이 있다. 삼도봉에서 화개재까지 내려가는데 30여분 걸리는데 나무계단만 내려가는데 10여분이 소요된다. 와! 이 나무계단을 올라오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틀림없이 연하천산장 아니면, 벽소령대피소, 아니 그전에 대피소에서 자고 왔을텐데 힘들고 지친몸으로 무거운 륙색까지 짊어지고 이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를때의 심정은? 내려가는데도 온몸이 뻐근하고 죽겠는데--- 말이다. 누군가 안내판에 "꼭 600계단"이라고 적어 놓은것이 실감을 낳게한다.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가는 등산로에 있는 나무계단 화개재(뱀사골대피소 삼거리 안부)
화개재(뱀사골대피소 삼거리 안부)
화개재에 와서 잠시 쉬고는 토끼봉으로 향한다. 도데체 지리산에는 봉우리가 몇개야! 토끼봉에 올라서는 잠시 피로도 풀겸 느긋이 휴식을 취하며 늦장을 부려본다. 여기서 연하천대피소까지는 3km, 2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이기에--- 지금시간이 오후 1시, 그러면 연하천대피소에는 3시전에 들어간다. 저녁까지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낸담. 하여튼 그래도 가긴 가야지. 일어선다
토끼봉에 있는 이정표
토끼봉을 출발하여 1시간여 연하천대피소 1km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아! 연하천대피소가 얼마 안남았군, 천근만근되는 몸을 이끌고 명성봉을 오른다. 명성봉만 넘으면 대피소다. 대피소에 일찍 도착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데도 머리속에는 대피소에 얼른가서 좀 쉬야지. 하는 생각뿐이다. 막상 대피소에 도착해보니 쉴곳은 없고 사람들로 정신이 없다. 자리배정도 6시나 되야 한단다. 지금이 3시15분이니 그냥 벽소령대피소까지 갈까? 그러나 비박준비도 없이 벽소령대피소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잘때가 없다 할수없이 그래도 예약한 연하천에서 자기로 하고 우연히 만난 아가씨 두분과 함께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별다른 준비도 없이 온것 같은 한 아가씨는 운동화 차림이다. 대단하네 하며 가지고 온 햇반과 아가씨들이 사온 라면으로 저녁식사를 때운다. 물론 소주 한잔씩 하면서---
연하천대피소
6시가 되어 자리배정을 받고 임대한 침랑을 깔고 누워보니 와우! 여기가 군대인가? 도무지 잠이 올것 같지가 않다. 한사람의 소유넓이가 56.5cm. 사람끼리 다닥다닥 붙어 자는수 밖에 없다. 밖으로 나와보니 밖에는 더 아수라장 같다. 어두워지면서 몰려드는 등산인. 예약이 안된 사람들이 자리배정 받기위한 선두다툼. 그냥 땅바닥에 침랑깔고 비박하는 등산인. 몇컷 기념사진을 찍을려니 후라쉬가 터져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여 순간순간을 렌즈에 담을수도 없다.
에라~ 내일의 산행을 위하여 어쨋던 자 두는것이 좋지. 잠을 청해본다.
대피소 앞을 꽉메운 등산인과 비박하는 등산인
2. 외로운 종주산행 산 행 지 : 연하천대피소 ~ 장터목대피소 산행일시 : 2005.06.06 (월요일) 산행거리 : 13.3km 산행시간 : 실산행시간 - 6시간19분, 휴식 및 중식시간 - 3시간06분, 총산행시간 - 9시간25분 지리산 종주 이정표
산 행 지 : 연하천대피소 ~ 장터목대피소 산행일시 : 2005.06.06 (월요일) 산행거리 : 13.3km 산행시간 : 실산행시간 - 6시간19분, 휴식 및 중식시간 - 3시간06분, 총산행시간 - 9시간25분
자다깨다 자다깨다, 설잠을 잔채 깨어보니 시계는 5시를 향해 달리고 있다. 더 있어야 잠도 오지않고 날은 밝아 오는듯하니 일어나자 하고 밖으로 나간다. 벌써 많은 등산인들이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구수한 찌게냄새가 코를 간지럽게 한다. 혼자서 처량하게 냄새를 맡고 있느니 산행하는게 낫지. 아침은 벽소령대피소에 가서할까? 세수를 하는둥 마는둥 눈꼽만 떼고는 륙색을 짊어지고 내뺀다. 원래계획은 아침밥을 먹고 8시쯤 출발할 계획이었다. 천왕봉에서 백두대간을 시작하는 "아름산방" 회원들이 벽소령에서 자고 연하천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되었기에 그래도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담소라도 하고 가야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놈의 구수한 냄새때문에--- 아침식사 준비하는 많은 등산인들 연하천대피소를 출발한지 한 40여분, 삼각봉을 지나 형제봉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형제봉을 나서 내려가는데 누가 "안녕하세요" 한다. "다올"님이다. 뒤에들 온단다. 이내 "진주"님, "들꽃"님 그리고 닉은 모르지만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모두 29명이 1차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했단다. 많은 인원이다. 잠시 기념촬영과 담소를 나누고는 헤어진다. 얼마안가 후미에 오시는"산조아"님을 만난다. 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속보산행이나 장시간 산행이 힘들어 참여를 하지 못한것이다. 이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한 내가 아는 팀만도 3개팀이나 된다. 그러나 내가 함께 산행하기에는 전부 힘든 스케쥴이고 어려운 산행이다. 할수없어 나홀로 외로운 종주산행을 택할수 밖에 없었다. 벽소령대피소 아름산팀과 헤어져 30분간 지나니 벽소령대피소다.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하니 연하천 대피소에서 함께 저녁식사 했던 아가씨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오늘 백무동에서 4시에 떠나는 고속버스를 예약해 놓았기에 세석을 거쳐 빨리 내려 가야 한단다. 사진 몇장 찍어주고는 세석에서 백무동까지도 3시간30분 이상걸리니 서두루라고 하고는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한다. 아침식사라야 아직 남아있는 야채사라다와 김이다. 그리고는 칼로리바란스 빵을 한입 넣는다. 영양가도 2pack을 먹었을때 1일섭취 영양소의 50%를 섭취한다 하고 열량도 330kcal나 되어 있어 제법 요기가 된다. 이제 배를 채웠으니 일어서야지. 그러나 짐은 줄은것 같지가 않다. 더 무겁기만 한것같다. 선비샘 표지판 벽소령대피소를 출발한지 1시간여, 덕평봉 아래 넓다란 공터가 나온다. 이곳이 한노인의 슬픈사연이 서려있는 선비샘이다. 파이프를 통해 시원스레 나오는 물을 한모금 받아 마시니 속이 후련하고 시원하다. 슬픈사연이 있는 그 노인도 이물을 받아 마시고 속이 후련했을까? 그 슬픈노인의 사연을 보면 옛날 덕평마을에 이씨 노인이 살고 있었다 한다. 노인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화전민의 자식으로 가난에 쪼들리며 평생을 살았다. 배우지 못하여 무식 한데다 몹시 추하게 생겨 주위 사람들로부터 천대를 받으며 노인은 한번이라도 남에게서 사람다운 대접, 선비대접을 받으며 살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살아 생전 소원을 이루지 못한 그는 마지막 유언으로 상덕평 샘터 위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고 효성이 지극한 두 아들은 아버지의 유해를 샘터 위에 매장 했다. 그로부터 매년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은 샘에서 물을 마실 때면 반드시 노인의 무덤 앞에 인사를 하게 되니 생전에 그렇게 받고 싶었던 선비대접을 무덤 속에서나마 받게 되었다. 후일 동네사람들은 생전에 불우했던 이씨 노인을 위로하기 위해 이 샘을 선비샘으로 부르게 됐다. 그래서 덕평봉 남쪽 상덕평 능선 해발 1,500m에 있는 샘터를 선비샘이라 한다. 수량은 적으나 마르는 적이 없고 주위가 평탄하고 넓어서 야영하기에도 좋다. 선비샘 맑고 시원한 선비샘을 음료수팩에 담아가지고는 륙색옆에 꼽아 놓는다. 무겁고 힘들어도 물은 있어야지. 아직도 갈길이 먼데. 정말 장거리 산행을 나홀로 하는것은 마음과의 싸움이다. 체력이 소모되어 힘든것은 어쩔수 없으나 외로운 생각이 들면 몸이 더 축~ 쳐진다. 등산로를 벗어나 어디 호젓한 숲속으로 들어가 노래도 부르고 가지고간 하모니카도 불면서 마음을 달래보고도 싶지만 몸이 천근만근 말을 듣지 않는다. 에라 여기서 좀 푹쉬자. 칠성봉 가기전 전망이 좋은 넓고 아득한 자리에 주저앉는다. 멀리 천왕봉이 손끝에 달듯 한눈에 들어온다.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가지고간 미숫가루를 타서 먹고 있으려니 한 등산객이 아저씨 앉아 있는 폼이 주위 경치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사진한장 찍어 주겠단다. 주위 다른 등산객도 맞장구를 친다. 갑자기 탈렌트가 됬나? 나를 놀리나? 어쨋던 듣기 싫지는 않기에 카메라를 내준다. 정말 경치좋은 곳이다. 앉아 미숫가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해본다 멀리 천왕봉이 한눈에(칠성봉 前 가칭 전망대에서 바라본 천왕봉) 한 30여분을 쉬고는 칠성봉을 향한다. 칠성봉만 넘으면 세석산장이다. 칠성봉을 지나 영신봉이 가까워지니 여기도 긴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나무계단을 내려가는데 7분씩 소요된다. 그럼 이 계단은 500계단은 되나? 자연보호를 위하고 탐방인의 편의를 위하여 설치한것은 좋은 일이나 펑 뚫린 계단,계단 밑에는 떨어트렸는지? 버렸는지? 음료수팩이랑 비닐이랑 쓰레기들이 눈쌀을 찌프리게 한다. 사실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담배피우는 등산인은 물론 버려진 쓰레기를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버려진 쓰레기를 카메라에 담었지만 사진 자체만으로는 어디 라는 곳이 명확히 알수가 없어 그냥 사진 찍어두는것으로 끝낼수 밖에 없으리라. 세석평전 (가운데 보이는 봉우리가 촛대봉) 세석산장 세석산장에도 어디 따가운 퇴약볕 피해 휴식을 취할 자리없이 등산인으로 붐빈다. 여기저기서 구수한 찌게를 끓이며 냄새를 풍기고, 웃고 담소하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다. 할수없어 세석산장을 벗어나 세석평전 나무그늘을 찾아든다. 그러나 이곳은 등산로를 벗어난 곳이기에 잠시 메모만 하고 일어선다. 그리고는 촛대봉으로 올라간다. 넓은 세석평전 위에 우뚝선 촛대봉, 설기설기 바위로 수놓은듯 여기저기 널려있다. 촛대처럼 생겨 촛대봉인가? 했더니 넓은 평전위에 우뚝솟은 봉우리다. 촛대봉에 있는 이정표 잠시 사진 몇장 찍고는 장터목대피소로 향한다. 연하천대피소에서 새벽에 출발했으니 장터목대피소에도 일찍 도착하겠지. 이정표에는 장터목대피소까지 2.7km. 1시간30분 거리다. 이제부터는 등산인이 가끔씩 보이고 등산로도 한적하다. 삼신봉을 지나 연하봉에 오니 멀리 장터목대피소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의 산행도 마감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왜 봉우리마다 근사한 표지석 하나 세워놓지 않고 나무로 이정표 겸 해 놓았을까? 물론 근사한 돌로 해 놓으려면 운반도 그렇고 경비도 많이 들어 가리라. 그건 그렇다치고 등산로에 숨겨진 쓰레기나 정리를 했으면--- 양심을 버리고 간 등산인만을 탓하다가는 온통 모든산이 쓰레기산이 되지 않을까? 입장료든 대피소 이용료든 얼마를 받는다는 것은 이런것도 책임져야 되는것 아닌지? 연하봉에 있는 이정표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니 오후 2시50분. 온몸은 쑤시고 종다리는 어떻게 해야 시원한지 의자에 앉아 이리 올려도 보고 저리 올려도 보아도 시원치가 않다. 주물러도 본다. 또 파스도 뿌려본다. 어떻게 해도 시원치가 않다. 둘어눕고 싶지만 6시가 되야 입실이 시작된단다. 에이 식사준비나 하자. 물을 떠다가는 코펠에 넣고 햇반을 넣는다. 끓인다. 안내설명서에 끓는물에 18분간 있어야 된다니 한 20분 끓이자. 내일 먹을것까지 끓인다. 이것저것 가지고간 반찬을 꺼내놓고 햇반을 뜯으니 근사한 저녁만찬이 된다. 쐐주 한입 마신다. 온몸은 쑤시고 아프지만 거 근사한데, "혼자 오셨어요"하고 옆 사람이 말을 건넨다. 그리고는 종주하느냐고, 씩 웃으며 식사를 끝낸다. 아마 혼자 식사하는 모습이 안됬던 모양이지. 입실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자리를 배정받고 들어가니 국립공원 직영관리 대피소 라 그런지 연하천대피소 보다 훨씬 근사하고 시설이 잘 되어있다. 오늘은 몸도 피곤하고 잠자리도 좀 나으니 제대로 자겠지? 들어누으니 내일 일출을 보려고 하는 등산인은 천왕봉에서 해가 5시에 뜨니 1시간10분 전에는 출발해야 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그러면 새벽 3시반에는 출발 해야겠네. 애라 잠이나 자자. 장터목대피소
아침식사 준비하는 많은 등산인들
연하천대피소를 출발한지 한 40여분, 삼각봉을 지나 형제봉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형제봉을 나서 내려가는데 누가 "안녕하세요" 한다. "다올"님이다. 뒤에들 온단다. 이내 "진주"님, "들꽃"님 그리고 닉은 모르지만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모두 29명이 1차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했단다. 많은 인원이다. 잠시 기념촬영과 담소를 나누고는 헤어진다. 얼마안가 후미에 오시는"산조아"님을 만난다. 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속보산행이나 장시간 산행이 힘들어 참여를 하지 못한것이다. 이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한 내가 아는 팀만도 3개팀이나 된다. 그러나 내가 함께 산행하기에는 전부 힘든 스케쥴이고 어려운 산행이다. 할수없어 나홀로 외로운 종주산행을 택할수 밖에 없었다.
벽소령대피소
아름산팀과 헤어져 30분간 지나니 벽소령대피소다.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하니 연하천 대피소에서 함께 저녁식사 했던 아가씨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오늘 백무동에서 4시에 떠나는 고속버스를 예약해 놓았기에 세석을 거쳐 빨리 내려 가야 한단다. 사진 몇장 찍어주고는 세석에서 백무동까지도 3시간30분 이상걸리니 서두루라고 하고는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한다. 아침식사라야 아직 남아있는 야채사라다와 김이다. 그리고는 칼로리바란스 빵을 한입 넣는다. 영양가도 2pack을 먹었을때 1일섭취 영양소의 50%를 섭취한다 하고 열량도 330kcal나 되어 있어 제법 요기가 된다. 이제 배를 채웠으니 일어서야지. 그러나 짐은 줄은것 같지가 않다. 더 무겁기만 한것같다.
선비샘 표지판
벽소령대피소를 출발한지 1시간여, 덕평봉 아래 넓다란 공터가 나온다. 이곳이 한노인의 슬픈사연이 서려있는 선비샘이다. 파이프를 통해 시원스레 나오는 물을 한모금 받아 마시니 속이 후련하고 시원하다. 슬픈사연이 있는 그 노인도 이물을 받아 마시고 속이 후련했을까?
그 슬픈노인의 사연을 보면 옛날 덕평마을에 이씨 노인이 살고 있었다 한다. 노인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화전민의 자식으로 가난에 쪼들리며 평생을 살았다. 배우지 못하여 무식 한데다 몹시 추하게 생겨 주위 사람들로부터 천대를 받으며 노인은 한번이라도 남에게서 사람다운 대접, 선비대접을 받으며 살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살아 생전 소원을 이루지 못한 그는 마지막 유언으로 상덕평 샘터 위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고 효성이 지극한 두 아들은 아버지의 유해를 샘터 위에 매장 했다. 그로부터 매년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은 샘에서 물을 마실 때면 반드시 노인의 무덤 앞에 인사를 하게 되니 생전에 그렇게 받고 싶었던 선비대접을 무덤 속에서나마 받게 되었다. 후일 동네사람들은 생전에 불우했던 이씨 노인을 위로하기 위해 이 샘을 선비샘으로 부르게 됐다. 그래서 덕평봉 남쪽 상덕평 능선 해발 1,500m에 있는 샘터를 선비샘이라 한다. 수량은 적으나 마르는 적이 없고 주위가 평탄하고 넓어서 야영하기에도 좋다. 선비샘
맑고 시원한 선비샘을 음료수팩에 담아가지고는 륙색옆에 꼽아 놓는다. 무겁고 힘들어도 물은 있어야지. 아직도 갈길이 먼데. 정말 장거리 산행을 나홀로 하는것은 마음과의 싸움이다. 체력이 소모되어 힘든것은 어쩔수 없으나 외로운 생각이 들면 몸이 더 축~ 쳐진다. 등산로를 벗어나 어디 호젓한 숲속으로 들어가 노래도 부르고 가지고간 하모니카도 불면서 마음을 달래보고도 싶지만 몸이 천근만근 말을 듣지 않는다. 에라 여기서 좀 푹쉬자. 칠성봉 가기전 전망이 좋은 넓고 아득한 자리에 주저앉는다. 멀리 천왕봉이 손끝에 달듯 한눈에 들어온다.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가지고간 미숫가루를 타서 먹고 있으려니 한 등산객이 아저씨 앉아 있는 폼이 주위 경치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사진한장 찍어 주겠단다. 주위 다른 등산객도 맞장구를 친다. 갑자기 탈렌트가 됬나? 나를 놀리나? 어쨋던 듣기 싫지는 않기에 카메라를 내준다. 정말 경치좋은 곳이다.
앉아 미숫가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해본다 멀리 천왕봉이 한눈에(칠성봉 前 가칭 전망대에서 바라본 천왕봉)
멀리 천왕봉이 한눈에(칠성봉 前 가칭 전망대에서 바라본 천왕봉)
한 30여분을 쉬고는 칠성봉을 향한다. 칠성봉만 넘으면 세석산장이다. 칠성봉을 지나 영신봉이 가까워지니 여기도 긴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나무계단을 내려가는데 7분씩 소요된다. 그럼 이 계단은 500계단은 되나? 자연보호를 위하고 탐방인의 편의를 위하여 설치한것은 좋은 일이나 펑 뚫린 계단,계단 밑에는 떨어트렸는지? 버렸는지? 음료수팩이랑 비닐이랑 쓰레기들이 눈쌀을 찌프리게 한다. 사실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담배피우는 등산인은 물론 버려진 쓰레기를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버려진 쓰레기를 카메라에 담었지만 사진 자체만으로는 어디 라는 곳이 명확히 알수가 없어 그냥 사진 찍어두는것으로 끝낼수 밖에 없으리라.
세석평전 (가운데 보이는 봉우리가 촛대봉) 세석산장
세석산장
세석산장에도 어디 따가운 퇴약볕 피해 휴식을 취할 자리없이 등산인으로 붐빈다. 여기저기서 구수한 찌게를 끓이며 냄새를 풍기고, 웃고 담소하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다. 할수없어 세석산장을 벗어나 세석평전 나무그늘을 찾아든다. 그러나 이곳은 등산로를 벗어난 곳이기에 잠시 메모만 하고 일어선다. 그리고는 촛대봉으로 올라간다. 넓은 세석평전 위에 우뚝선 촛대봉, 설기설기 바위로 수놓은듯 여기저기 널려있다. 촛대처럼 생겨 촛대봉인가? 했더니 넓은 평전위에 우뚝솟은 봉우리다.
촛대봉에 있는 이정표
잠시 사진 몇장 찍고는 장터목대피소로 향한다. 연하천대피소에서 새벽에 출발했으니 장터목대피소에도 일찍 도착하겠지. 이정표에는 장터목대피소까지 2.7km. 1시간30분 거리다. 이제부터는 등산인이 가끔씩 보이고 등산로도 한적하다. 삼신봉을 지나 연하봉에 오니 멀리 장터목대피소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의 산행도 마감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왜 봉우리마다 근사한 표지석 하나 세워놓지 않고 나무로 이정표 겸 해 놓았을까? 물론 근사한 돌로 해 놓으려면 운반도 그렇고 경비도 많이 들어 가리라. 그건 그렇다치고 등산로에 숨겨진 쓰레기나 정리를 했으면--- 양심을 버리고 간 등산인만을 탓하다가는 온통 모든산이 쓰레기산이 되지 않을까? 입장료든 대피소 이용료든 얼마를 받는다는 것은 이런것도 책임져야 되는것 아닌지?
연하봉에 있는 이정표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니 오후 2시50분. 온몸은 쑤시고 종다리는 어떻게 해야 시원한지 의자에 앉아 이리 올려도 보고 저리 올려도 보아도 시원치가 않다. 주물러도 본다. 또 파스도 뿌려본다. 어떻게 해도 시원치가 않다. 둘어눕고 싶지만 6시가 되야 입실이 시작된단다. 에이 식사준비나 하자. 물을 떠다가는 코펠에 넣고 햇반을 넣는다. 끓인다. 안내설명서에 끓는물에 18분간 있어야 된다니 한 20분 끓이자. 내일 먹을것까지 끓인다. 이것저것 가지고간 반찬을 꺼내놓고 햇반을 뜯으니 근사한 저녁만찬이 된다. 쐐주 한입 마신다. 온몸은 쑤시고 아프지만 거 근사한데, "혼자 오셨어요"하고 옆 사람이 말을 건넨다. 그리고는 종주하느냐고, 씩 웃으며 식사를 끝낸다. 아마 혼자 식사하는 모습이 안됬던 모양이지.
입실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자리를 배정받고 들어가니 국립공원 직영관리 대피소 라 그런지 연하천대피소 보다 훨씬 근사하고 시설이 잘 되어있다. 오늘은 몸도 피곤하고 잠자리도 좀 나으니 제대로 자겠지? 들어누으니 내일 일출을 보려고 하는 등산인은 천왕봉에서 해가 5시에 뜨니 1시간10분 전에는 출발해야 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그러면 새벽 3시반에는 출발 해야겠네. 애라 잠이나 자자.
장터목대피소 내부일부
3. 천왕봉에 묻어두고 산 행 지 : 장터목대피소 ~ 대원사(유평매표소) 산행일시 : 2005.06.07 (화요일) 산행거리 : 13.4km 산행시간 : 실산행시간 - 6시간54분, 휴식 및 중식시간 - 2시간36분, 총산행시간 - 9시간30분 지리산 동부능선
산 행 지 : 장터목대피소 ~ 대원사(유평매표소) 산행일시 : 2005.06.07 (화요일) 산행거리 : 13.4km 산행시간 : 실산행시간 - 6시간54분, 휴식 및 중식시간 - 2시간36분, 총산행시간 - 9시간30분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등산로를 후라쉬 하나에 의존해 올라간다. 해가 5시경에 뜬다고했으니 지금쯤엔 올라가야 한다. 생각하고 장터목대피소를 나선다. 지금이 새벽 3시반.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소리도 나는것 같다. 잠시쉬고 있으니 두사람이 후라쉬도 없이 더듬더듬 거리며 올라온다. 그들도 역시 천왕봉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위해 어둠을 뚫고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예비 후라쉬를 건네주고 올라간다. 이 날카로운 바위투성이의 등산로를 올라가다가 어디라도 부딪치는 경우에는 크게 다칠것이다. 한15분간 더듬더듬 올라가니 어둠속에 잎하나없는 나무들이 즐비하게 장송처럼 서있는 체석봉이다. 이곳은 50여년전 벌목군들이 벌목한것을 숨기기위하여 불을 질렀다 한다. 그래서 나무들의 공동묘지가 되어 버렸다. 날이 훤하면 카메라에 담을텐데--- 체석봉에 서있는 이정표 한참 오르다보니 여기저기 제법 등산인들이 많이 오른다. 일출을 보려나 보다. 그런데 뭐가 자꾸 걸리며 등산로가 좁다. 여기가 천왕봉으로 가는 통천문 이라나? 어두워 카메라에 담지도 못하고 뒤에 오는 등산인에 떠밀려 그냥 올라간다. 이렇게 어둠과 싸워가며 장터목대피소를 출발하여 1시간. 드디어 "천왕봉"이다. 육지의 산으로는 제일 높은곳. 천왕봉 표지석에 서서 사진을 몇장 찍는다. 그리고는 나는 제일 높은곳에 올라와 있다. 하고 소리쳐 본다. 다른 사람들의 "얏호"하며 소리치는 소리에 뭍혀 뒤범벅 되는 소리겠지만---. 그런데 해는 5시나 되야 떠오를테고, 아직도 20분 이상이나 시간이 남았으니 세차게 불어대는 새벽공기에 몸이 움츠려 진다. 그래도 참아야지. 천왕봉 표지석에 적힌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 처럼 기상이 있는데--- 일출을 보고자 어둠이 깔린 천왕봉에 서있는 등산인들
한15분간 더듬더듬 올라가니 어둠속에 잎하나없는 나무들이 즐비하게 장송처럼 서있는 체석봉이다. 이곳은 50여년전 벌목군들이 벌목한것을 숨기기위하여 불을 질렀다 한다. 그래서 나무들의 공동묘지가 되어 버렸다. 날이 훤하면 카메라에 담을텐데---
체석봉에 서있는 이정표
한참 오르다보니 여기저기 제법 등산인들이 많이 오른다. 일출을 보려나 보다. 그런데 뭐가 자꾸 걸리며 등산로가 좁다. 여기가 천왕봉으로 가는 통천문 이라나? 어두워 카메라에 담지도 못하고 뒤에 오는 등산인에 떠밀려 그냥 올라간다. 이렇게 어둠과 싸워가며 장터목대피소를 출발하여 1시간. 드디어 "천왕봉"이다. 육지의 산으로는 제일 높은곳. 천왕봉 표지석에 서서 사진을 몇장 찍는다. 그리고는 나는 제일 높은곳에 올라와 있다. 하고 소리쳐 본다. 다른 사람들의 "얏호"하며 소리치는 소리에 뭍혀 뒤범벅 되는 소리겠지만---. 그런데 해는 5시나 되야 떠오를테고, 아직도 20분 이상이나 시간이 남았으니 세차게 불어대는 새벽공기에 몸이 움츠려 진다. 그래도 참아야지. 천왕봉 표지석에 적힌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 처럼 기상이 있는데---
일출을 보고자 어둠이 깔린 천왕봉에 서있는 등산인들
지리산의 주인 성모(聖母)가 살았다는 천왕봉, 그 성모가 마고(麻古)할미라 불리우는 선도성모(仙挑聖母)로 천왕봉에는 예전부터 고사를 지내는 성모상(聖母像)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온데간데없고 그대신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 라고 적힌 천왕봉 표지석이 우뚝서서 천왕봉을 찾는 사람을 맞이하고 있다. 여기적힌 글처럼 한국인의 기상이 온천하에 널리 퍼지기를 기대해본다 5시가 닥아온다. 그러나 날은 훤해 오는데 태양은 구름속으로 숨어버린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여기 천왕봉에 오른 기상을 힘있게 펼쳐보려던 꿈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져 간다. 젠장 붉게 물든 모습을 보여주면 안되나 좋다. 네가 구름속으로 숨어 버린다면 나는 내가 짊어지고 가야할 세상사의 모든 고난을 이 천왕봉에 묻어두고 가마. 네가 내대신 짊어 지려므나 사랑과 미움도 묻어두고 간다. 어슴프레 밝아오는 천왕봉을 뒤로하고 중봉 으로 향한다. 구름속에 숨어버린 태양 떠오르는 태양을 못본아쉬움을 달래며 중봉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등산로에는 그야말로 숨죽인듯 고요하기만 하다. 어둠이 채가시지 않은 시간인데다 등산인이 한사람도 없다. 중봉을 지나 써리봉에 올라서서는 훤이 밝아오는 아침을 맞는다. 구름사이로 검붉게 비쳐오는 태양빛. 훤해지는 밝음속에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아침식사를 할까? 써리봉에 와서는 륙색을 풀어 이것저것 꺼내놓는다. 이 고요한 아침, 드넓은 산속에 나혼자라니. 이제 모든것을 천왕봉에 묻어 두고 왔으니 아무도 없는들 어떻고 아무것도 없는들 어떠랴. 없음이 있음이요 있음이 곧 없음 인데, 세상만사 다 그런것 아닌가? 無卽是有 有卽是無 (무즉시유 유즉시무) 라는 글이 떠 오른다. 중봉에 세워진 표지판 써리봉에 세워진 표지판 무겁게 여기까지 짊어지고 온 캔맥주와 함께 아침을 거나하게 들고는 일어선다. 날은 훤해졌고, 민생고가 해결되서 그런지 발걸음도 조금은 가벼워 진다. 짐도 좀 가벼워진것 같다. 그놈의 캔맥주가 지금까지 그렇게 무거웠었나? 치밭목대피소 1km라고 적힌 안내표지판에 와서는 다 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멀리 치밭목 대피소가 보인다. 훤해지는 하늘 써리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왼쪽이 천왕봉, 오른쪽이 중봉) 치밭목대피소에는 몇몇분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여기도 위탁관리 대피소인가 보다. 아담하니 조그마하게 단장되어 있다. 그래도 겉으로는 연하천대피소 보다 나은것 같다. 여기서 대원사까지는 7.8km. 짧은 거리가 아니다. 3시간이 넘겨 걸리는 거리다. 지금이 8시경이니 오전중에는 대원사에 도착 하겠지. 치밭목 대피소를 뒤로하고 계곡으로 내려선다. 이제 지리산종주 마지막 산행을 끝내는 등산로에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7.8km가 어찌나 긴 거리인지. 가도가도 산속이다. 계곡인가 했더니 올라서고 또 계곡으로 들어서나 했더니 오르막길로 들어선다. 야 이 등산로로 올라오는 사람은 무척이나 힘들고 지루하겠다. 생각해 본다. 치밭목대피소 치밭목대피소를 떠난지 40여분. 무제치기폭포 100m라는 안내표지판이 나온다. 100m정도 라면 그냥 갈수는 없지. 비탈길로 조금 내려서니 나무사이로 폭포가 보인다. 와우! 무지하게 높으네. 아무도 없는 산속, 등산로에서 100m나 떨어져 있는 산속, 물소리로 인하여 떠들고 노래 불러도 누가 뭐라하지 않는 산속, 은근히 "알탕" 생각이 난다. 깊은산속 나홀로 산행할때 물속에 온몸을 담그고 쐐주 함모금 삼키는 그맛. 아마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것이다. 무제치기 폭포 그러나 집으로 올라갈 길이 멀다. 시간도 그리 넉넉한게 아니다. 잠깐 발을 적시고는 일어선다. 세상만사 다 집어치고 산속에서 살까? 그런데 무얼먹고 사나? 어떤이는 산속 식물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어 "겨울에는 뿌리요, 봄은 줄기라, 여름은 잎새귀요, 가을은 열매라" 그래서 산속에서는 사시사철 먹을것을 걱정을 안 한다고 하는데 나는 식물에 대해서 무뢰한 이니 산속에서 살기는 다 틀린 모양이다. 식물에 대해서 열심히 배워 보려고 해도 생각처럼 안된다. 무제치기폭포를 벗어나 새재갈림길에 오니 대원사 5.9km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아직도 한참 가야겠구먼. 이 긴 계곡 하산길 에서는 부산에서 오셨다는 하산하는 부부를 만난다. 이분들도 어지간이 산을 좋아하는 분들이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유평리 대원사 계곡 콘크리트 길이다. 치밭목대피소를 출발한지 3시간10분이다. 참 지루한 하산길 이었지만 그래도 오전내에 하산길을 마치고 민가길이다. 콘크리트길 유평식당가에 접어 들어서는 아예 막걸리 한잔하고 가잔다. 그것도 싫지않은 제안이다. 시원한 막걸리가 단숨에 들어간다. 속이 시원하다. 유평리 산행로 입구 유평상가 대원사로 내려와서는 사진 몇장 찍는다. 그리고 카페주소를 알려준다. 지리산종주 산행의 휘날래를 시원한 막걸리 했으니 모든게 시원스레 됬으면 좋겠다. 유평매표소 버스정거장에 와서는 또 막걸리와 비빔밥으로 마감을 한다. 어찌나 막걸리가 시원하고 비빔밥이 맛있었던지, 배가 고팟었나? 3일간의 지리산 종주산행을 마치고 진주행 버스에 오른다. 그리고는 세상모르고 잔다. 진주에 와서야 잠이 깨고 그분들과 즐겁게 악수를 하며 헤어진다. 이제 집에 갈일만 남았다. 얏호 지리산 종주산행 끝. 41.7km 그러면 나도 이제부터는 젊음쪽에 들어가나? 정말 기분좋은 산행이다. 대원사
좋다. 네가 구름속으로 숨어 버린다면 나는 내가 짊어지고 가야할 세상사의 모든 고난을 이 천왕봉에 묻어두고 가마. 네가 내대신 짊어 지려므나 사랑과 미움도 묻어두고 간다. 어슴프레 밝아오는 천왕봉을 뒤로하고 중봉 으로 향한다.
구름속에 숨어버린 태양
떠오르는 태양을 못본아쉬움을 달래며 중봉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등산로에는 그야말로 숨죽인듯 고요하기만 하다. 어둠이 채가시지 않은 시간인데다 등산인이 한사람도 없다. 중봉을 지나 써리봉에 올라서서는 훤이 밝아오는 아침을 맞는다. 구름사이로 검붉게 비쳐오는 태양빛. 훤해지는 밝음속에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아침식사를 할까? 써리봉에 와서는 륙색을 풀어 이것저것 꺼내놓는다. 이 고요한 아침, 드넓은 산속에 나혼자라니.
이제 모든것을 천왕봉에 묻어 두고 왔으니 아무도 없는들 어떻고 아무것도 없는들 어떠랴. 없음이 있음이요 있음이 곧 없음 인데, 세상만사 다 그런것 아닌가? 無卽是有 有卽是無 (무즉시유 유즉시무) 라는 글이 떠 오른다.
중봉에 세워진 표지판
써리봉에 세워진 표지판
무겁게 여기까지 짊어지고 온 캔맥주와 함께 아침을 거나하게 들고는 일어선다. 날은 훤해졌고, 민생고가 해결되서 그런지 발걸음도 조금은 가벼워 진다. 짐도 좀 가벼워진것 같다. 그놈의 캔맥주가 지금까지 그렇게 무거웠었나? 치밭목대피소 1km라고 적힌 안내표지판에 와서는 다 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멀리 치밭목 대피소가 보인다.
훤해지는 하늘
써리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왼쪽이 천왕봉, 오른쪽이 중봉)
치밭목대피소에는 몇몇분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여기도 위탁관리 대피소인가 보다. 아담하니 조그마하게 단장되어 있다. 그래도 겉으로는 연하천대피소 보다 나은것 같다. 여기서 대원사까지는 7.8km. 짧은 거리가 아니다. 3시간이 넘겨 걸리는 거리다. 지금이 8시경이니 오전중에는 대원사에 도착 하겠지. 치밭목 대피소를 뒤로하고 계곡으로 내려선다. 이제 지리산종주 마지막 산행을 끝내는 등산로에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7.8km가 어찌나 긴 거리인지. 가도가도 산속이다. 계곡인가 했더니 올라서고 또 계곡으로 들어서나 했더니 오르막길로 들어선다. 야 이 등산로로 올라오는 사람은 무척이나 힘들고 지루하겠다. 생각해 본다.
치밭목대피소
치밭목대피소를 떠난지 40여분. 무제치기폭포 100m라는 안내표지판이 나온다. 100m정도 라면 그냥 갈수는 없지. 비탈길로 조금 내려서니 나무사이로 폭포가 보인다. 와우! 무지하게 높으네. 아무도 없는 산속, 등산로에서 100m나 떨어져 있는 산속, 물소리로 인하여 떠들고 노래 불러도 누가 뭐라하지 않는 산속, 은근히 "알탕" 생각이 난다. 깊은산속 나홀로 산행할때 물속에 온몸을 담그고 쐐주 함모금 삼키는 그맛. 아마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것이다.
무제치기 폭포
그러나 집으로 올라갈 길이 멀다. 시간도 그리 넉넉한게 아니다. 잠깐 발을 적시고는 일어선다. 세상만사 다 집어치고 산속에서 살까? 그런데 무얼먹고 사나? 어떤이는 산속 식물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어 "겨울에는 뿌리요, 봄은 줄기라, 여름은 잎새귀요, 가을은 열매라" 그래서 산속에서는 사시사철 먹을것을 걱정을 안 한다고 하는데 나는 식물에 대해서 무뢰한 이니 산속에서 살기는 다 틀린 모양이다. 식물에 대해서 열심히 배워 보려고 해도 생각처럼 안된다. 무제치기폭포를 벗어나 새재갈림길에 오니 대원사 5.9km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아직도 한참 가야겠구먼.
이 긴 계곡 하산길 에서는 부산에서 오셨다는 하산하는 부부를 만난다. 이분들도 어지간이 산을 좋아하는 분들이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유평리 대원사 계곡 콘크리트 길이다. 치밭목대피소를 출발한지 3시간10분이다. 참 지루한 하산길 이었지만 그래도 오전내에 하산길을 마치고 민가길이다. 콘크리트길 유평식당가에 접어 들어서는 아예 막걸리 한잔하고 가잔다. 그것도 싫지않은 제안이다. 시원한 막걸리가 단숨에 들어간다. 속이 시원하다.
유평리 산행로 입구
유평상가
대원사로 내려와서는 사진 몇장 찍는다. 그리고 카페주소를 알려준다. 지리산종주 산행의 휘날래를 시원한 막걸리 했으니 모든게 시원스레 됬으면 좋겠다. 유평매표소 버스정거장에 와서는 또 막걸리와 비빔밥으로 마감을 한다. 어찌나 막걸리가 시원하고 비빔밥이 맛있었던지, 배가 고팟었나? 3일간의 지리산 종주산행을 마치고 진주행 버스에 오른다. 그리고는 세상모르고 잔다. 진주에 와서야 잠이 깨고 그분들과 즐겁게 악수를 하며 헤어진다. 이제 집에 갈일만 남았다. 얏호 지리산 종주산행 끝. 41.7km 그러면 나도 이제부터는 젊음쪽에 들어가나? 정말 기분좋은 산행이다.
유평매표소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