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6.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롬 8:1~13
*제목; 로마교회에 보낸 사도바울의 편지(15) 정죄 받지 않는 은혜
1. 지난 주 이야기, 내 영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
우리 영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는 첫째로 하나님 앞에 부족함을 알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이 여전히 있으면 그렇고, 둘째로 그래서 이로 말미암아 감사가 나오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날마다 감사하는 자의 영혼은 이처럼 주님 앞에 살아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2. 로마서의 정수 ‘로마서8장’,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필립 스페너(루터교 경건주의 창시자)는 “성경이 반지라면, 로마서는 그 보석이고, 로마서8장은 보석의 빛나는 초점”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유명한 영국의 설교가 마틴 로이드 존스도 “성경에서 가장 빛나는 보석은 로마서8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로마서 특별히 8장은 더 큰 은혜를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정수가 바로 ‘1절’에 등장합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 즉,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죄를 지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롬 7:25’에 보면 바울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신으로는 죄의 법의 섬긴다”고 통탄해 합니다.
그러나 이 통탄은 통탄이고, 그의 선언과 고백은 이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또한 이 부분에서 우리가 놓치는 것은 우리의 육신의 삶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변화”하였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는 자리까지는 온 것입니다. 할렐루야!
바울은 이어서 그 변화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2절’입니다.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2)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이미 해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리는 가장 큰 은혜는 바로 “정죄 받지 않는 은혜”입니다. 예수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이미 우리를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를 “교리”로 이해하면 매우 위험한 상황에 빠집니다. ‘우리는 정죄 받지 않으니 마음껏 죄를 지어도 되겠네.’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이 말씀을 가장 오해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은혜”로만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죄를 초월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은혜로 받는 자들은 더욱 믿음으로 나아가고, 더욱 겸손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족해도 성령님과 함께 하면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수영이 부족해도 수영코치와 함께 하면 물에 빠지지 않고, 양이 아무리 이리떼 가운데 있어도 목자와 함께 하면 안전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은혜의 핵심은 바로 “우리의 영적 코치요 목자이신 성령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3. 정죄는 없지만, 징계는 있습니다.
우리는 죄 지어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말미암아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징계”가 있습니다. ‘히 12:7~8’입니다.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히 12:7~8)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성령께 순종하는 삶, 생명의 성령의 법 안으로 들어가는 삶을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9절’입니다.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9)
그렇다면 “성령께 순종하는 삶”이란 무엇입니까?
이는 내 성정과 판단과 생각을 뒤로하고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아마 성령의 생각은 내 생각과는 전혀 반대되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철저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잊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그래서 내 생각의 반대대로 행하면 성령의 생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존 번연 목사님은 ‘개신교도’라는 죄목으로 투옥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경건과 신실함에 반한 간수장은 그를 존경하고 극진히 대했습니다. 그러다 존 번연 목사님께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게 되고, 이를 안 간수장은 하루를 휴가를 보내줍니다. 죄인이 무슨 휴가입니까? 그런데 존 번연 목사님을 믿은 간수장은 이렇게 그를 집으로 보내준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을 가던 목사님이 그냥 돌아왔습니다. 간수장이 이유를 묻자, 자신도 너무 집에 가고 싶지만 성령께서 자꾸 돌아가라고 하셔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왕의 사신이 감옥을 순찰하러 온 것입니다. 성령께 순종하지 않았으면 존 번연 목사님뿐만 아니라, 간수장까지 목숨을 잃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4~6절’을 마지막으로 봅시다.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4)
항상 성령의 생각을 따릅시다. 이것이 바로 생명과 평안의 길입니다.
아마 이것은 내 생각, 판단, 성정을 다 반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면 바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정죄는 받지 않지만, 여전히 죄를 범하고 있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늘 성령을 향한 순종함으로 “결코 정죄함이 없는 은혜”를 완성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기분이나 행동에 따라 바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정죄 받지 않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징계는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래서 그 천국의 길, 생명의 성령의 법을 벗어나려 할 때, 주님은 징계를 통해서 돌이키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