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 벌써 여성단원들은 여행 중 점심식사용으로 바켓트빵 샌드위치를 준비하고 남성단원들은 짐을 다시 손질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전날 자기 집으로부터 무슨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 CEO는 짐을 꾸리랴 서울의 문제를 어찌 어찌 해결하라고 지시하랴 정말 마음속으로 분주한 모양이다.
아무튼 7시40분 파리의 민박집을 떠나 아라공 역에서 전철을 타고 Place d. italie역에서 6호선으로 환승 몽파르나스 역(뚜-르 와 보-르-도 가는 기차가 출발하는 역임)으로 가는 중 이었다.
몽파르나스 역에서 하차할 것 이었다.
보통 파리에서 이 시간대는 출퇴근 시간이기 때문에 전철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혼잡하고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을 정도로 초만원이다.
뚜-르 에 도착한 후의 고성 관광계획 때문에 할 수 없이 일찍 떠난 것인데 문제가 생겼다.
아 ! 큰일 났다 !
전차는 떠나기 시작했는데 유 수자 씨가 못 내린 것이다. 복잡한 바람에 어쩌다가 유 수자 씨가 혼자 옆에 있는 문 쪽으로 타게 되었고, (탈 때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차안이 꽉 차서 짐은 무겁고 의사소통은 불가능해보이고 어쩔 수없이 그냥 가던 중 다른 단원들은 다 내리는데 혼자 내리지 못하고 멀끔히 처다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안 얘기이지만 사전에 그 역에서 내린다는 말을 못 들었다고 한다. 유 수자 씨가 그냥 통과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당황 할 수밖에 ! 그 남편 CFO의 얼굴은 이미 사색이 되었고, 부인하고 눈이 마주첬냐 ? 우리가 내린 걸 아느냐 ? 하니 그렇다고 하는데, 좌우간 우리는 모두 어찌할 줄 몰랐다. 우리는 유 수자 씨가 해외여행을 많이 한 분이고, 지하철을 타고내릴 때 앞장서서 Lead하던 분인지라 틀림없이 다음 역에서 내려 반대편 차를 타고 오실 것이라 생각하고 기다렸으나, 허사였다.
전차가 3대쯤 지나갔다. 그래도 안 온다. 단장이 급해졌다. 뚜-르 행 기차 출발 시간은 닥아 오는데 어찌해야할지 !
반대편 플-래-트 폼에 가 기다리던 단장이 돌아온다. 그러는 동안 전차가 몇 대인지 와 섰다가는 지나가곤 한다. 사람이 많아 쉽게 내릴 수도 없었는데 혼자 어떻게 하고 계실까 ?
서성서성 하다가 급한 놈이 우물판다고 CFO가 다음 오는 차를 타고 가 보겠다고 한다. 그래서 CEO와 여성단원 두 분은 그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CFO와 단장이 전차 앞쪽에 타고 갔다. 그래야 유 수자 씨가 보이면 바로 내릴 수 있으니까 !
몇 대의 전차가 또 지나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 드디어 세 사람이 같이 오는 것 아닌가 ?
후유! 살았다 ! 만일,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 졌을까 ? 하루 관광이 ‘꽝’이 되는 것은 물론 어찌어찌하여 만나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 기차표 값은 또 어떻게 될 것인가? 유로패스가 9일짜리 이기는 하지만 이번에 예약하고 타려던 하루 분은 무효가 되는 것 아닌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는 동안 이미 예약된 기차시간은 지났다
참 돌아와 다행이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생겼다. 두 부부가 사랑싸움을 시작 한 것이다.
힐끗 처다 보니, 말도 안하고 ! 얼굴은 벌겋고, 우리는 몽파르나스 기차역으로 짐을 끌고 가야하고 !
왜 찾으러 안 왔느냐 ? 그게 그렇게 가게가 잘 안 됐다 ! 그게 그런 게 아니다. 라면서. 서로 말하자면 자기를 안 알아준다는 것 아닌지 모른다.
야 ! 기차표 값 날라 가면 너 네 부부가 책임지라우 ! 아무리 협박하고 달래? 보려 해도 잘 안 통하는데, 단장은 아무 말도 안하고 기차표 파는 곳으로 가서 오지 않는다.
한 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단장이 기차표를 들고 손해 보지 않고 해결했다면서 활짝 웃는다. 그 간의 상황을 역무원에게 잘 설명했더니, 처음에는 You lose your money all ! 하는 바람에 난감했다는 것, 한참 우물우물 하다가, 무료로, 다음번 기차로 바꿔 좌석예약을 해주는 바람에 손해 없이 잘 해결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역무원이 재량권이 좀 있는지 ! 한다.
단장은 여행을 하다보면 이런 식으로 이산가족 ? 이 되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라며 서로 사랑싸움을 끝낼 것을 재촉한다. 아 ! 이런 일이 있기 때문에 여행이 재미있는 것 아니냐 ! 고 두 사람은 물론 다른 단원들의 마음까지도 다독여 준다.
특히 출근시간에 짐을 갖고 지하철을 타는것은 어디서나 힘든 일이지만 특히 파리에서는 조심해야할 일로 생각된다.
우리는 한 시간 가량 늦은 10시 40분 기차로 뚜르를 향해 떠났다. 남 불란서로 향하는 철로연변은 나지막한 구릉이 가끔 보일뿐 대부분이 비단결 같은 평원으로 되어있다.
그 위에서 포도가 자라는 것이다.
원 계획보다 1 시간 늦게 뚜르 에 도착했다.
시간 절약을 위해 고성 관광예약을 기차역 안에 있는 Kiosk에서하려고 가보니 오늘은 이미 Fully Ocupied 라는 것이다. 계획을 변경하여 내일 오전관광을 예약했다.
내일 오후에는 보르도로 갈 것이다.
미리 보르도 마드리드 간 TGV를 예약하러 갔는데, 아 ! 불사 ! 마드리드 행 열차는 하루에 한번 밖에 없다면서 이미 예약이 끝났기 때문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러면 다른 역에 가서 갈아타면 되지 않겠는가 싶어 별 걱정을 안했는데, 그 것 마저 없다는 것이다. 난감했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그러면 TGV를 타고 파리 몽파르나스 역으로 가서 마드리드로 밤차 타고 가면 되지 않느냐 ? 는 말이 나왔다. 역무원에게 말하니 한참 있다가, 마드리드로 가는 기차는 Gare d' Austerlitz 역에서 떠나는데, 몽파르나스 역 도착 시간보다 1시간 30분 후에 기차가 출발 한다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예약하고 가기로 했다. 하마터면 시골에서 돈만 쓰고 며칠 더 보낼 뻔했다. 마드리드의 숙소를 이미 예약해 놓았기 때문에 보르도에서 2 박 하려던 것을 1 박만 하기로 하고, 마드리드에는 계획된 날짜에 그대로 도착하게되는것이다. 줄어든 1 박 대신에 야간 열차를 타는 것이다. 그 하루 밤 절약되는 숙박비로 기차 좌석 예약비를 지불하면 되니까 비용 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우리는 이런 것이 여행이다 ! 라고 다시 외쳤다.
내일 것으로 고성 관광예약을 했고 시장끼를 느껴 그만 역 구내에서 둘러앉아 준비해온 것으로 점심을 끝내고 바로 숙소인 Mirabeau Hotel을 찾아 나섰다.
우리는 숙소인 Mirabea Hotel에 체크인 한 후 단장이하 여성단원들이 쉬고 있는 동안, CEO가 파리에서 산 오르세이 미술관 소장품 도록을(너무 무거웠으므로) 우편으로 부치고 오라는 단장의 명을 받고, 속으로는 얼씨구나 때가왔구나 ! 하고 CFO와 둘이서 우체국을 찾아 나섰다. 눈치 빠른 CEO 의 마누라가 슬며시 와서는 귓속말로 “ 다 안다 둘이 나가면 뻔하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봐준다. 적당히 조금만 마셔라, 만일 지나치면 용서 않는다.” 는 것이다. 그렇게 하겠다고 철석 같이 말하고는 나는 듯이 시내로 나왔다. 단장은 술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우리 둘 처럼 그렇게 술을 자주 마시거나 많이 마시지는 않기 때문에 우리가 좀 미안 한 것이다.
일단 우체국에서 책을 부치는데 한사람은 불어, 한 사람은 영어로 말을 하니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다. 무조건 “인터나찌오날레 뽀스떼!” 했더니 “위”하고는 안으로 들어가 항공우편으로 부칠 준비를 다 해갖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단장은 배로 부치면 싸다, 돈 얼마 안 든다, 라고 하며 배로 부칠 것을 권했는데 도통 말이 통해야지! 하는 수 없이 46 유로나 주고 항공 우편으로 부치고 말았다.
그래도 일을 끝냈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 둘은 가까운 Bar에 들렸다. 생맥주로 목을 축이고 나서 단 숨에 포도주를 두 풀라쉬 나 마신 후, 포도주를 한병 사 들고 돌아 왔다. 치즈 꺄망베르를 한통 사려고 했으나 수퍼-마케트를 찾을 수가 없어 돌고 돌던 종 주유소를 발견하고는 6유로 주고 포도주를 한 병 더 사가지고, 꺄망베르 치즈도 물론 사들고 돌아왔다.
오후에 우리는 Medival Down Town을 구경하면서 포도주를 한잔씩 했다.
중세의 건물들이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다.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광장을 중심으로 중세의 건물들이 삥 둘러 서 있다. 아늑하고 고즈넉하다. 흡사 동구 체코의 체스키 크롬로프에 있는 광장과 비슷한 모습이다. 2차대전 등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고 고스란히 보존되었기 때문에 체스키 크롬로프는 유네스코 등록 문화유산으로 된 반면, 뚜르의 Medival Down-Town은 그렇지 않다는 차이 밖에 없는 것 같다. 뚜르 전체가 관광 도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무슨 소득으로 사는지 ? 궁금하다. 아까 Medival Down-Town 광장에는 관광객들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도 않았는데! 별 걱정을 다 ! 하는 것 아닌가? 그래도 15세기에는 직물생산으로 번영을 누렸던 적도 있다한다. 그리고 이곳만의 볼거리로는 기술자들의 조합박물관 과 Touraine 와인 박물관, Saint- Gatien Cathedral 그리고 제마이유 미술관 등이 있었으나 시간 부족으로 인해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세대별 여행준비물로 준비해온 Tourist Cooker (일본 산요제품임)로 라면을 끓여 놓고 낮에 사온 꺄망베르를 안주 삼아 포도주를 마시며 만찬을 즐겼다.
유 수자 씨는 뚜르 에서도 잊지 않고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을 올립니다.
뚜르
호텔에 짐을 풀고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시내 구경을 나간다. 도시 전체가 가라 앉아 차분한 느낌이고 지나가는 여자들의 옷차림이 빠리보다 세련되고 우아해 보인다. 길가 옷가게에는 우리가 입어도 어울릴 것 같은 옷이 많다. 뚜르는 로마의 지배를 받아 일찍이 도시로 발전된 곳이고 뚜르 언어가 표준어가 될 뻔 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래서 귀족들이 많이 살았고 음식문화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여기도 빠리같이 식당에서 와인, 맥주를 파는 곳이 많다. 여기저기 골목 광장에는 아름다운 식탁보 . 나프킨이 너무 예쁘다. 하루의 피로를 씻는 것 보다 생활 자체를 즐기는 곳 같다. 옛날에는 집의 폭이 넓을수록 세금이 많아진다고 해서 좁고 깊숙한 집들이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고 조각, 꽃, 동상으로 어우러져 치장된 곳은 배우가 의상만 중세풍으로 입기만 하면 완벽한 세트가 될 듯한 곳이다.
아까 뚜르 역에서 내일 고성관광 예약하느라 이리저리 뛰시는 단장님 옆에서 의자에 한가하게 앉아있을때 역의 분위기도 전면의 커다란 고풍스러운 시게를 배경으로 영화 안나 카레니나의 마지막 기차역 분위기가 나는 곳이다.
집을 떠나면 현실을 너무 잊어서 그런 가 ? 프랑스 전체가 6시경이면 모두 철수를 해서 전체가 한산한데, 잘생긴 프랑스총각이 노랑과 보라가 섞인 꽃다발을 들고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마주 온다. 오늘 좋은 일이 있는 듯 기대와 설레임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저녁은 라면으로 마감하기로 하고 각자 가져온 쿠-커로 주인 몰래 조리하여 숨어서 먹는 컵 라면 맛이 기막히다. 이 호텔은 각각 방마다 침대위치와 가구가 다르다. 옛날에 지은 듯 천정이 높고 화장실과 목욕실이 따로 있다. 방 열쇠도 카드가 아니고 옛날식이다. 뜨거운 물로 프랑스의 찌르는 듯한 추위를 물리치고 잠든다.
끝
제 7일(5/11 고성 Chenonceau와 앙보아즈 성)
이곳은 뚜르(Tours) Mirabeau Hotel, 7시 기상, 오랜만에 호텔식당에서 Continental Buffet 로, 계란도 안 보이고 햄도 안 보였지만, 그래도 전 단원님들, Butter와 Cheese를 듬뿍 발라 맛있는 아침식사를 끝냈다.
관광이 끝나는 오후에는 보르도로 가야하기 때문에 짐 보따리를 다시 손보는 등 고성관광 떠날 채비를 했다. 먼저 쉬농소(Chenonceau) 성을 보고 그 다음에 앙부아즈 성을 볼 것이다.
말로만 들었던 고성 Tour를 하는 것이다. 9시 30분, 현지 가이드인 한 프랑스 여성이 차를 갖고 왔다. 차안에는 우리들 말고는 이태리인 부부 한 쌍뿐이다.
어느새 차는 루아르 강변도로에 접어들었다. 왼편에 루아르 강을 끼고 대서양 그러니까 서쪽으로 달리는 것이다. 프랑스 여인은 영어를 잘하는 것 같다. 이제부터는 그 말을 알아듣는 정도만큼 관광이 알차게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아무리 Hearing이 안된다 해도 가이드가 없는 것 보다는 낳으리라 생각하면서 그 여인의 설명을 열심히 듣는다. 루아르 강은 길이가 1,300Km 나 되며 사람의 손이 전혀 가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강으로 보존되어 있다 한다. 그리고 대서양으로 흘러들어 가는데, 현재는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정말 강이 태초의 원시적인 그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강 건너 저 멀리에 로마 시대에 축조되었다는 탑 같은 것이 보인다. 그 시대에 강을 오르내리는 배가 있으면 봉화 불을 올려 높은 사람에게 신호를 보냈던 탑이라 한다. 배들을 감시했던, 그래서 통행세도 받고, 적이 오면 전투태세를 갖추게 하기도 하고, 꽤나 중요한 역할을 했겠지 !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차는 강변을 벗어나 언덕 비슷한 구릉을 오르는 것 같았다. 제법 많이 올라가는 듯 했는데, 시야에는, 산 같은 것은 보이지 않고, 광대한 평원이 펼쳐진다. 곳곳에 방풍림이 보인다.
이곳 루아르 강변에는 고성이 수 없이 많은데, 이지방의 특산이며, 사람이 다루기가 아주 쉬운, 석회석을 이용하여 그 성들을 축조했다 한다. 인근에는 석회석 동굴들이 많이 있어서 한때는 그 동굴에서 버섯을 많이 재배하였다 한다. 지금은 Netherland 사람들이 버섯 재배를 크게 하는 바람에 더 이상 버섯재배를 하지 않는다 한다. 그때는 일본으로 수출도 했다고 말한 것도 같은데 알 수 없다. 또한 이곳은 영국과 가까운 곳으로 한때 Celt 족이 살기도 했다며 영국과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상당히 오래된 것임을 암시했다. 차도 양 옆으로 넓은 포도밭이 끊일 줄을 모른다. 모두 Chenonceau 성에 속하는 것이라 한다. 쉬농소 성은 프랑스에서 파리를 빼고 말하면 두 번째로 많은 관광객을 유혹하여 끌어 모으는 관광명소라 한다. 첫 번째는 Mont St. Michel 이고 그다음이 쉬농소 성이라는 것이다. 원 계획대로라면 우리도 파리에 머물고 있을 때 Mont St. Michel을 관광했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해 좀 아쉽기는 하지만, 민박집 주인이, 그날이 월요일인지라, 상점도 문 닫고 해서 재미가 별로 없을 것이라면서 그냥 외모만 보게 될 것인데 하루를 전부 소비하면서까지 갈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하는 바람에 퐁-피-두 근 현대 미술관등을 관람하기로 계획을 바꾸었던 것이다.
9세기 경, 바이킹이 루아르 강을 타고 처 들어와 전투를 했던 곳이라면서, 한 시골 동네의 삼거리를 지나는 동안, 옛날 얘기를 하는데, 누가 이겼느냐 ? 고 물었더니 그 여인은 어린애처럼 France ! 라고 자랑스러운 듯 해맑은 얼굴을 한다. 프랑스인 특유의 자존심 같은 것 아니겠나 싶었다. 아마도 바이킹들이 이 좋은 땅을 보고는, 어찌 바이킹의 체면이 있지 그냥 그대로 돌아 갈수 있었겠나? 한 번, 호박 찌르듯이 찔러보기라도 하고 싶지 않았을까 ?
루아르 강과 합치는 한 지류 쉐르 강 위에 어느 사람이 다리를 놓고 그 위에 성을 지었다는데, 이름을 쉬농소(Chenonceau) 성이라 했으며, 2차대전 중에는, 그 루아르 강과 쉐르 강을 가운데 두고 서로 대치하는 전선이 형성되었던 곳으로, 그때에는 북쪽에서 자유를 찾아 많은 사람들이 (특히 유태인 등이) 남쪽 자유세계로 왔던 곳이기도 하다 한다.
성이 가까워졌는지 Chenonceau 성에 관한 얘기를 한다. 다른 모든 고성들은 아무개 왕 등 높은 사람들이 지었지만 이 Chenonceau 성은 아무 벼슬도 없는 개인이 지었다 하며, 이 성을 중심으로 세 여인의 이름이 전해 오는데 (여행 안내서에는 6 인의 여인으로 되어 있음) 하나는 성을 처음 축조할 때 재무를 담당했으며 다른 하나는 무슨 일을 했으며, 마지막 여인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20세 연하인 앙리(2세) 왕의 애인이 되었다고 하는 말에, 얼핏 말하자면 애첩정도로 설치지 않았나 싶어서, 그러면 그중 어느 여인이 제 일 가는 강자 ?(그 세 번째 애첩을 제일로 꼽기를 기대하면서) 였었냐? 고 물으니 멋 적게도 각각 시대가 달라 알 수 없다면서 아마도 첫 번째 여자가 아니겠느냐? 는 것이다. 사실 세 번째 여자의 에피소드 같은 것을 좀 듣고 싶었던 것인데, 기대가 어긋나고 말았다. 속으로는 이것도 영어를 한다고 질문을 했나? 싶었다.
어느 사이에 쉬농소 성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래된 원시림 같은, 아름드리나무! 그 우거진 숲 속으로 마차길 같은 것이 보이고, 길옆에 입장권을 받는 곳이 보였다.
성을 관광한 후, 그 프랑스 여인과 다시 만날 장소와 시간을 약속하고는 모두 성을 찾아 숲 속 길을 걸었다. 오는 도중 내내 우리와는 달리 조용히 있던 그 이태리 부부는 어디론지 가고 우리들만이 한 팀을 이루어 성을 향해 걷고 있는 것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웃자란 아름드리나무 숲을 걷노라니 저 멀리 성의 모습이 위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성이 가까워질수록, 어떻게 다리위에 성을 세울 수가 있었을까 ? 하는 호기심에 먼저 교각부분을 유심히 보았다. 석회석을 두부 모 자르듯이 자유자재로 잘라서 교각을 여러 개 축조하고 윗부분을 아-치 형으로 마무리한 후 그 위에 Floor를 만들고 다시 그 위에 회랑(회랑에서는 무도회도 열렸을 것 같았다)을 그 것도 2 -3층 정도 되게 건축했으며, 본 성은 강가 쪽에 치우쳐 세워져 있다. 물론 회랑과 본 성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교각 사이는 배가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폭이 좁았으며, 성과 육지사이는 수로를 에둘러 파놓아 배들을 하나씩 통과할 수 있게 해놓았다. 그리고 그 수로와 연결되는 정원이 있는데 얼핏 보아서는 그 수로가 눈에 잘 뜨이지 않을 정도로 전략적(?)인 관리를 아주 잘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이로 보아 아마도 Chenonceau 성주는 처음에는 그 강을 통과하는 배를 상대로 통과 세를 받는 등 노략질(?)을 하는 것을 본업으로 한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는 나중에 힘을 축적하여 점잖은 성주로 행세한 것은 아닐까?
성 내부에 성당이 있었고, 1층에는 성 안에서 살던 사람들의 식생활을 위해 사용한 식기, 요리기구(놋을 두드려서 만든 것들임), 술통 등이, 사냥해온 짐승들을 손질하던 곳 과 부엌에 전시하고 있다. 2층에는 침실과 거실로 되어 있으며 벽을 장식한 타페스트리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회랑에는 강을 감시하던 곳으로 보이는 둥근 감시창 ? 을 만들어놓아 강의 상.하류를 감시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 창을 내다보니 바로 전면에 강이 나타나는데 양안으로 숲이 원시림처럼 욱어져있어 경치가 무척 아름답다. 프랑소아즈 1세와 루이 14세가 와서 투숙한 일이 있다는데, 그 방들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특히 그 벽난로는 로마네스크 양식이라 하여 잘 보존하고 있었다. 정원이 잘 손질되어 있어서 증명사진 몇 장을 찍었다.
지금도 이 성은 개인이 관리하고 있다 한다.
한 잔에 1 유로를 받고 포도주를 맛보게 하는 포도주 시음 코너가 있어서 단장과 한잔씩하고(CFO는 어디를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 성에서 만든 1998년 산 적포도주 2병을 샀다. 저녁에 한잔씩 할 것이라고.
약속 시간 11시 45분 정확히 그 프랑스 여인을 만났다. 이태리인 부부도 시간을 정확히 지켰다.
우리는 앙보아즈 성을 향해 출발했다.
이곳은 전체적으로 인근 보다 지세가 높은 평원(Plateau)을 이루고 있으며 경치는 빼어났다. 방어에 유리한 위치라 이곳에 많은 성들을 세워 놓은 것 아닌가? 싶다.
역사적으로 로마와 관계가 깊었던 곳이라 한다.
넓은 평원을 가로질러 앙보아즈 성을 향하는 동안 프랑스 여인의 안내는 계속되었다. 처음 뚜르에서 관광을 떠날 때에는 가끔 요약하여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으나 어느 틈엔가 잊어 먹고 (실력도 모자랐지만) 그냥 듣기만 한다. 아보아즈성은 원래 프랑소아즈 1세가 축조하였다 하며 나중에 프랑소아즈 8세가 이태리를 정벌하고 돌아올 때 수많은 이태리 기술자들을 데리고 와서 그 들로 하여금 성을 아름답게 개축하게 했다 한다.
이때에 로마교황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레오날드 다빈치가 이 성으로 와서 그림을 그리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보르도 지방은 한때 영국령이었던 적이 있다. 이곳을 상속 받은 공주가 나중에 영국 왕이 되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때 이 땅을 지참금으로 갖고 시집을 갔다 한다. 원래 영국 사람들이 포도주를 아주 좋아 해서 보르도로부터 포도주를 많이 구입 해 갔고, 보르도의 포도도 잘 되고 해서 보르도의 포도주가 유명해 졌는데, 그 공주의 소생이 나중에 영국 왕이 되고, 300년 후에는 프랑스가 다시 보르도 지방을 영국으로부터 돌려받게 되었다 한다. 보르도의 포도 농사가 잘 되기도 했지만 영국이라는 거대한 소비처가 있어서 더욱 보르도가 포도주 집산지로 각광받게 되었다 한다.
이런 얘기들이 오가는 동안, 우리는 앙보아즈 성에 도착했다.
무슨 요새처럼 육중한 성이 눈앞에 나타난다.
앙보아즈 성은 루아르 강변에 접해 있다.
먼저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무덤이 있다 는 성 휴버트 교회를 보고나서, 성 위를 올라보니 경치가 너무나 아름답다. 강 건너 멀리 펼쳐진 평원을 바라보노라면 눈 아래로 루아르 강을 건너지르는 다리가 깨끗한 모습을 드러낸다. 충분히 높은 위치에 서 있어서 원근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시대의 이동 속도를 생각해 볼 때, 강 하류나 상류에서 적이 처 들어오는 경우나, 강 건너 평원에서 적이 처 들어올 경우, 그 것을 발견한 후에 천천히 준비 하더라도 전투태세를 완벽하게 갖출 수 있는 그런 자리인 것이다.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좋은 작품이라도 될 것 같아서 !
안으로 들어가니, 한편에서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왔는지 줄지어 선생님으로 보이는 여성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아마도 이 성의 역사는 학생들이 알아 두어야할 정도로 중요한 것인 모양이다. 우리는 그 학생들의 줄을 지나쳐 앞으로 나아갔다. 레오날드 다빈치 의 작품들이 소장되어있다. 사진을 찍으려하니 안 된다는 신호를 보낸다. 휙 둘러보고 나와서 레오날드 다빈치가 안장되어 있는 성당을 또 바라보았다. 성당은 크지 않았지만 우리들이 가끔 어디서 사진을 보았는지 아주 낯익은 그런 모양의 성당이다.
우리는 오후 3시 34분 TGV를 타고 보르도로 갈 것이다.
무슨 말 끝에 뚜르 역에(Rail Road Station 이라 말하면서) 몇 시쯤 도착 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그러지 말고 Train Station 이라 하면 어떠냐? 한다. 더 알아듣기 쉬울 것 같았다.
1 시 15 분 경 우리는 뚜르 역에 도착 아침에 갖고나온 짐들을 챙겼다.
저녁 6시 보르도의 Saint-Jean 역에 도착, 16번 버스를 타고, Gambetta 광장 근처에 있는 숙소 Bristol 호텔을 찾아 떠났다.
버스 안이 좀 복잡하다 했는데, 갑자기 어떤 여인의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웬 여자와 우리 단장이 자리를 박차고 길가로 뛰쳐나가는 것이다. 영문을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는 데, 금방 그 여인이 가방을 들고 다시 타며, 우리 단장도 다시 타는 것이다. 소매치기가 가방을 들고 뛰었던 것이다. 가방이 좋아 보였다. 그 후 여인은 가방을 단단히 부여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중에 단장이 “뛰쳐나가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하면서 웃는다.
파리에서 부단장이 신용카드가 든 지갑을 분실한 적이 있는데, 그때 단장이 백방으로 노력하여 카드회사에 알리고 경찰에도 신고하고 나서, 잘 되었다고 단원들 기분을 되살려준 적이 있다. 본인들이야 얼마나 기분이 상했으랴만, 그 당시 단장이 여행 중 절대로 잃어 버려서는 안될 것이 있는데, 그 하나는 마누라요 다른 하나는 여권이다. 라고 말 하고는 다른 것은 얼마든지 잃어버려도 된다 ! 라는 바람에 모두 껄껄대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Gambetta 광장에 도착했다.
Bristol 호텔은 후지고, Lift 도 없다 하며, 짐은 무겁고 난처했는데 종업원이 근처에 있는 Clamenceau 호텔을 소개해주어, Lift가 있는 호텔에 묵게 되었다.
Check-In 하고나서 수퍼 마케트가 문 닫기 전에 내일 아침 과 점심용 식 재료를 사려고 Merideac commercial -center에 있는 수퍼-마케트를 찾았다. 식 재료를 호텔에 두고, Gambetta 광장에 있는 Pub-Restaurant에서 포도주를 곁들여 만찬을 즐겼다. 수퍼 마케트 에서 떨이 포도주(3-4유로하는 것)를 4병을 사왔는데, 호텔에 와서 그중 두병을 해치우고 CEO가 Chenoncau 성에서 사온 것 중 한 병을 더 마셔버렸다. 여행 떠난 지 7일쯤 되니 모두 긴장도 좀 풀리고 포도주도 한잔 했겠다 기분이 거나해 있는데, 그러나 단장은 다음날 여행 스케듈 때문에 늘 고민인 모양이다. 프랑스 가이드 말로는 고성이란 다 그렇고 그래서 앙브와즈 와 쉬농소 만 보면 된다고 한다. 우리들 기분에도 뚜르에서의 고성관광은 아주 알맞게 되었는데, 보르도에서 보내려던 하루가 반나절로 줄어들어 Wine-Chatteau를 관광할 수 없게 된 것이 섭섭했다. 시간도 없었지만 모두 Full Booking 이었으므로 Wine-Chatteau 관광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Saint d'Million Chatteau 는 어쩌면 볼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을 갖고, 스르르 잠에 들다.
첫댓글 김사장, 여행기가 정말 명문장이요, 찬사를 보냅니다.
CEO의 역작이 점점 光을 내기 시작합니다. 또 혼날까봐 앞으로 "벤또"얘기는 절대 안 하겠습니다.
와,곽교수 말씀데로 대단한 명 문장이네! 즐거움을 나눠줘서 대단히 감사,또 감사,
와,곽교수 말씀데로 대단한 명 문장이네! 즐거움을 나눠줘서 대단히 감사,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