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06. 1. 13. 선고 2003다54599 판결
[손해배상(기)][공2006.2.15.(244),226]
【판시사항】
[1] 금융기관이 계좌 명의인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자에게 예금계좌를 개설함에 있어서 요구되는 주의의무의 정도 및 금융기관이 예금계좌 개설에 있어 최소한의 확인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결과 개설된 모용계좌가 범죄행위에 이용되어 발생한 제3자의 손해와 위 금융기관의 주의의무 위반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 여부(적극)
[2] 과실상계사유에 대한 사실인정과 비율확정이 사실심의 전권사항인지 여부(적극)
【판결요지】
[1] 금융기관에게 은행거래 당사자가 해당 금융자산의 실질적인 권리자인지의 여부를 조사·확인할 의무까지 있다고 볼 수 없으나, 금융기관으로서는 대리인을 자처하는 자에게 예금계좌를 개설하여 주는 과정에서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제출받고 대리인의 신분증을 확인하는 등의 최소한의 확인조치를 취함으로써 그것이 불특정 다수의 잠재적 피해자에 대한 범죄행위에 이용될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함으로써 타인의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지 않아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볼 것이고, 그러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아니한 결과 개설된 모용계좌가 범죄행위에 이용되어 모용자가 제3자로부터 계좌에 금원을 입금받는 방법으로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하였다면, 금융기관의 그와 같은 주의의무 위반은 해당 금융기관이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실명확인의무를 이행하였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위법한 것으로서, 제3자가 입게 된 손해와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
[2]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사건에서 과실상계사유에 관한 사실인정이나 그 비율을 정하는 것은 그것이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인정되지 않는 한 사실심의 전권사항에 속한다.
※ 참조
■ 민법 제470조(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는 변제자가 선의이며 과실없는 때에 한하여 효력이 있다.
■ 민법 제702조(소비임치)
수치인이 계약에 의하여 임치물을 소비할 수 있는 경우에는 소비대차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그러나 반환시기의 약정이 없는 때에는 임치인은 언제든지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 민법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 민법 제396조(과실상계)
채무불이행에 관하여 채권자에게 과실이 있는 때에는 법원은 손해배상의 책임 및 그 금액을 정함에 이를 참작하여야 한다.
■ 민법 제763조(준용규정)
제393조, 제394조, 제396조, 제399조의 규정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에 준용한다.
【참조조문】
[1] 민법 제470조, 제702조, 제750조 [2] 민법 제396조, 제750조, 제763조
【참조판례】
[2] 대법원 2002. 1. 8. 선고 2001다62251, 62268 판결(공2002상, 452)
대법원 2002. 7. 12. 선고 2001다44338 판결(공2002하, 1940)
대법원 2003. 1. 10. 선고 2000다57832, 57849 판결(공2003상, 582)
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1다2129 판결(공2003상, 695)
대법원 2005. 6. 24. 선고 2005다16713 판결(공2005하, 1257)
【전 문】
【원고, 피상고인】 강릉시 (소송대리인 변호사 김한수외 1인)
【피고, 상고인】 주식회사 조흥은행 (소송대리인 변호사 유현석외 2인)
【원심판결】 서울고법 2003. 9. 17. 선고 2003나7724 판결
【주 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 유】
1. 불법행위의 성립에 관한 각 상고이유에 대하여
피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유현석의 상고이유 제1점 및 피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정병훈, 한상민의 상고이유 제1, 2점에 관하여 본다.
가. 기록에 의하면, 원고의 직원인 소외인은 피고 은행 ○○지점에서 소외 라파즈한라시멘트 주식회사(이하 ‘소외 회사’라고만 한다)의 직원을 자칭하며 소외 회사 명의의 은행거래신청서(을 제1호증의1)를 작성하여 소외 회사 명의로 이 사건 예금계좌를 개설한 다음, 소외 회사가 이미 원고에게 제출한 광해방지사업 보조금 청구서 및 입금의뢰서를 소외인 자신이 임의로 개설한 이 사건 예금계좌의 계좌번호가 기재된 것으로 바꿔 넣었고, 원고의 회계 담당자가 위 계좌로 소외 회사에 대한 교부금 2억 5,000만 원을 입금하자, 소외인은 그 다음날 피고 은행 △△지점에서 위 계좌로 입금된 2억 5,000만 원 전액(현금 1억 5천만 원과 천만원권 수표 열 장)을 출금하여 이를 임의로 사용한 사실, 당시 예금계좌 개설업무를 담당한 피고 은행 ○○지점 직원은 대리권을 확인할 수 있는 소외 회사 명의의 위임장이나 인감증명서를 제출받지 아니하였을 뿐 아니라, 당시 다른 예금거래 때문에 위 지점에 보관되어 있던 소외 회사 대표이사의 주민등록증사본을 위 은행거래신청서에 첨부하기까지 하였고, 소외 회사 직원이라 자처하는 소외인의 성명이나 신분증조차도 전혀 확인하지 아니하였으며(따라서 은행거래 신청서에는 소외 회사의 상호만 기재되어 있을 뿐이다.), 소외인이 임의로 새긴 소외 회사의 직인의 인영이 위 지점에 신고된 인감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서도 이 사건 계좌를 개설하여 주었고, 피고 은행 △△지점에서는 아무런 의심 없이 소외인에게 위와 같이 예금 전액을 인출하여 주었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나. 금융기관에게 은행거래 당사자가 해당 금융자산의 실질적인 권리자인지의 여부를 조사·확인할 의무까지 있다고 볼 수 없음은 소론과 같으나, 금융기관이 대리인을 자처하는 자에게 예금계좌를 개설하여 주는 과정에서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제출받고 대리인의 신분증을 확인하는 등의 최소한의 확인절차마저 모두 생략한다면, 이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명의를 모용한 채 거래에 임하면서 임의로 개설한 은행계좌로 송금받는 방법으로 금원을 편취하는 범죄행위가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음은 누구나 쉽게 예견할 수 있다 할 것이고, 금융기관이 위와 같은 최소한도의 조치만 취하더라도 그와 같은 잠재적 위험의 상당 부분을 제거할 수 있으며, 또 예금계좌의 개설에 임하는 금융기관 이외에는 위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주체가 전혀 존재하지 아니하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금융기관으로서는 위와 같은 최소한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그것이 불특정 다수의 잠재적 피해자에 대한 범죄행위에 이용될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함으로써 타인의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지 않아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볼 것이고, 그러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아니한 결과 개설된 모용계좌가 범죄행위에 이용되어 모용자가 제3자로부터 계좌에 금원을 입금받는 방법으로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하였다면, 금융기관의 그와 같은 주의의무 위반은 해당 금융기관이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실명확인의무를 이행하였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위법한 것으로서, 제3자가 입게 된 손해와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 위 법리에 의하여 원심판결을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고 은행의 담당직원은 앞서 본 최소한의 조치도 전혀 취하지 아니한 채 은행계좌를 개설하여 준 것으로서, 결국 원심이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불법행위의 성립에 있어 과실, 위법성, 인과관계 및 과실에 의한 방조의 공동불법행위책임에 관한 법리오해 및 심리미진 등의 위법이 없다. 위 각 상고이유는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
2. 손해발생에 관한 상고이유에 대하여
피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유현석의 상고이유 제2점에 관하여 본다.
원심이 적법하게 인정한 바와 같이 원고가 국가로부터 수령한 보조금 관련 재원이 원고의 일반 예산으로 편입되어 원고에게 귀속된 이상, 이 사건 불법행위의 피해자는 원고로 볼 것이므로, 원고가 아닌 국가를 이 사건 불법행위의 피해자로 보아야 할 것이라는 취지의 상고이유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소외 회사가 보조금 청구권을 확정적으로 포기하였다는 피고의 주장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보아 배척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가사 피고의 주장처럼 소외 회사가 이 사건 불법행위 이후 원고의 난처한 입장과 원고 소속 공무원들이 문책 당하는 처지를 염려하여 이 사건 보조금 청구권을 포기하였다 하여도, 이는 이미 원고가 입은 손해를 소외 회사가 그의 부담으로 전보해 주는 사실상의 효과가 있을 뿐 손해의 발생 여부를 좌우할 만한 사정은 될 수 없다 할 것이므로, 소외 회사의 보조금 청구권 포기로 인하여 원고에게 아무런 손해가 발생하지 아니한 것이라는 취지의 상고이유의 주장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다.
3. 사용자책임에 관한 상고이유에 대하여
피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정병훈, 한상민의 상고이유 제3점의 주장은 상고심에 이르러 비로소 주장하는 것이고 원심에서는 주장한 바 없었음이 명백하므로 이는 원심판결에 대한 적법한 상고이유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피용자의 불법행위가 외관상 사무집행의 범위 내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 있어서도 피용자의 행위가 사용자나 사용자에 갈음하여 그 사무를 감독하는 자의 사무집행행위에 해당하지 않음을 피해자 자신이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알지 못한 경우에는 사용자책임을 물을 수 없음은 소론과 같으나, 소외인 명의의 위 예금계좌 개설행위는 피고 은행 ○○지점 직원의 직무의 집행행위에 속하는 것임이 명백하므로, 위 직원의 행위가 사용자인 피고 은행이나 피고 은행에 갈음하여 그 사무를 감독하는 자의 사무집행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함을 전제로 한 위 상고이유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4. 과실상계에 관한 상고이유에 대하여
피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유현석의 상고이유 제3점 및 피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정병훈, 한상민의 상고이유 제4점에 관하여 본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사건에서 과실상계사유에 관한 사실인정이나 그 비율을 정하는 것은 그것이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인정되지 않는 한 사실심의 전권사항에 속한다고 할 것인바(대법원 2002. 1. 8. 선고 2001다62251, 62268 판결 등 참조), 이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기록을 살펴보면, 위 소외인은 원고의 직원으로서 고의로 이 사건 보조금을 편취한 자이고, 피고 은행 직원은 예금계좌 개설에 관한 과실로 위 손해발생에 가담한 것이므로, 피고 은행과의 관계에서 원고는 위 소외인의 사용자로서 그 관리·감독상의 책임 등을 이유로 이 사건 손해의 일정 부분을 감수하여야 한다고 봄이 손해분배의 공평의 원리에 부합한다고 보아 피고 은행이 원고에게 이 사건 손해에 관하여 배상하여야 할 책임범위를 위 손해의 1/3 정도로 제한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고, 원심 인정의 과실상계 비율이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현저히 불합리하게 높거나 혹은 낮다고 보이지 않는다.
이 부분 상고이유도 받아들일 수 없다.
5. 결 론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강국(재판장) 손지열 김용담(주심) 박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