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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이란 단어를 자주 말하고 듣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행복하기를 소망합니다. 만날 때마다 행복하세요!!~~ 카톡 안에서도 소통합니다. 그래서 저는 문자를 받으면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자주 보냅니다.
유엔은 해년마다 세계행복지수 순위를 매기는데 행복한나라 그렇지 못한 나라를 살펴 볼 수 있습니다. “행복지도” 라는 단어를 알고 계십니까? 에릭 와이너의 "행복의 지도"라는 책에서 모든 인생은 궁극적으로 행복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는 나그네다. 어디에 행복이 있을까, 어떻게 행복을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매일 같이 헤매고 있다고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행복지도사도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행복해 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을 행복만점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열면 하나님의 사람 모세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120세 이런 유언을 하고 죽었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신33:29) 모세가 죽기 전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회고해보면 삶 전부가 하나님이 함께하여 주셨기에 행복하기에 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유언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예수님 안에서 행복을 찾고 어떤 일이든 긍정마인드로 나아가는 습관입니다. 이런 습관이 몸에 익숙해지면 그리스도인으로써 행복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누구를 사랑하는 것도 행복이요,....... 사랑 받는 것도 행복이요.......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것도 행복입니다........이기는 것도 행복이요......실패하여 지는 것도 행복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지하철 사랑의 편지” 만원으로 얻은 행복 훈훈한 행복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어느 어려운 가정에 가장인 남편이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어 아내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요즘 지쳐 보인다며 고기라도 먹고 오라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만원을 받아들고, “여보, 나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라고 말했습니다.
며칠 뒤 아내는 노인정에 다니는 시아버지에게 남편에게 받았던 만원을 드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님. 제대로 용돈 한번 못 드려서 죄송해요.”
시아버지는 그날 노인정에서 며느리 자랑에 하루가 갑니다. 그리고 그 돈은 쓰지 않고, 서랍 속 깊숙한 곳에 두었습니다. 명절날 손녀의 세배를 받고서 기분이 좋았던 시아버지는 숨겨둔 그 만원을 손녀의 세뱃돈으로 주었습니다.
세뱃돈을 받아든 손녀는 상을 차리는 엄마에게 달려가 만원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이 돈으로 나 책가방 사줘, 응? 엄마.”그 순간 엄마는 요즘 들어 무척 힘들어 하는 남편이 떠올랐습니다. 아내는 조용히 일어나 남편의 호주머니에 쪽지와 함께 만원을 넣어둡니다. “여보, 내일 좋은 것 사드세요”만원 한 장의 행복 바이러스가 가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달되어 온 가족이 행복비타민으로 채워진 참으로 행복한 가정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우리 가정도 마치 만원 한 장의 행복처럼 행복비타민으로 녹아 스며드는 아름다운 장면이 오늘 읽은 성경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3절.......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이런 가족 분위기라면 주님이 이 가정에 찾아오셔서 정말 행복한 가정이구나 복을 주실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주향성도여러분!! 어떻게 하면 우리 가정이 행복한 가정으로 복을 누리며 살 수 있겠습니까?
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얻는 복입니다.
1 절.......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오늘 읽은 본문 1절 시작되는 말씀이 여호와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복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주는 복이 우선이 아니요 하나님이 주신 복이 먼저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받아 그것을 감사하고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나누는 것이 복을 받는 기본입니다. .....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받았으면서 그 복을 받은 것을 잊어버리고 혼자 독차지 한다든지 가졌어도 나누지 않고 창고에 넣고 썩도록 놓아두는 잘못된 생각은 복 주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이러한 복에 대한 차이는 무엇에서 판가름됩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 하늘과 땅차이입니다.
성도여러분!!...... 경외란 무엇입니까? “경외한다”는 말은 “두려워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존귀하시고 위엄 있으신 전능자이기 때문에, 그 분 앞에서는 모두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전혀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경외’란 ‘두렵고 무서워 한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존경하고 그래서 가까이 하고 싶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권능을 가진 분이셔서 두렵지만,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분께 가까이 가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 분이 내 생명과 삶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그 분께 가까이 나가서 그 분을 가까이 모시고 싶은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감정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만나면 누구나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나 존귀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 분 앞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 우리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 믿는 자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도록 허락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두렵고 무서운 분으로만 생각하다가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두렵고 어려운 분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시요, 사랑이 많으신 분이요 나와 친밀한 관계를 가진 분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 분 앞에 가까이 나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서도, 내 인생의 주님으로 모시고, 내 아버지로 모시면서 친밀한 관계를 가지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자녀라면 1절 하반절에.....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가까이하여 말씀대로 사는 길을 가는 성도이기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2. 일하는 것과 먹어서 복입니다.
2절....“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수 있는 복이 네게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노동의 복입니다.
기독교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이 아닌 땀을 흘리는 종교입니다. 땀 흘리는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공짜로 놀면서 먹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일하고 수고하는 것이 행복의 조건입니다.
성경은 노동과 일을 두 가지의 모습으로 가르쳐줍니다. 하나는....... 노동과 일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시고 그를 에덴동산으로 이끌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을 가꾸라고 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먼저 노동하셨으니, 너도 이 땅에서 수고하고 일하고 땀 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한 결과물에 대해서 즐거워하시고 기뻐하신 것처럼 너도 수고하고 땀 흘려 만든 작품들을 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신성한 노동이 인간이 죄를 지면서 괴로운 노동으로 바뀌었습니다...... 축복받은 노동이 내게 거리끼는 괴로운 짐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다시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한 자, 외로운 자, 소외된 자들을 만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질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것을 못 마땅히 여긴 종교인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묻습니다. “당신은 왜 그런 일을 하는가?”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한복음 5:17)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일, 회복의 일, 치유의 일,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요의 일을 감당하시면서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두운 그림자로 꽉 막혀있는 일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야 합니다.
좋아하면서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일인가?.... 공동체를 살리는 일인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가? 를 확인하면서 일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신나고 흥이 나는 일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남에게 해악이 되는 일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내가 기뻐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당장 멈춰서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정치인 부부가 대구에 내려가 의사이기에 코로나로 직접참여하며 봉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매우 감동이 되는 아름다운 섬김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좋은 일이 있으면 동참해야합니다. 내 마음에 자원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 일이 축복받은 일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먹는 것이 축복입니다. 이축복은 빙둥빙둥 놀면서 먹는 복이 아닙니다. 일하면서 먹는 축복입니다. 먹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좋은 복인지 모릅니다.
성도여러분!!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이 마지막 신음하며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먹고 싶은 것이 없습니다. 이제 먹을 힘도 없습니다.....” 어떤 환자는 마지막 죽음 앞에서 이렇게 호소를 합니다.
“나는 정말 먹기 싫다고 하는데 자꾸만 먹으라고 할 때마다 정말 싫습니다. 내가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무도 이해해 주려고 하지를 않아요.”
여러분, 생사의 기로에 선 사람들은 그렇게 맛있게 먹던 음식을 보아도 맛을 느끼지 못합니다....식욕이 떨어집니다..... 입맛을 잃어버립니다...... 눈앞에 산해진미가 가득 있어도 먹고 싶은 것이 없습니다.
먹는 즐거움,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커다란 즐거움입니다....... 건강할 때 먹고 싶은 것을 우리가 먹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과식하거나 과음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또한 반찬이 별로 없을 때에도 내 앞에 놓여 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그것은 최고의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음식을 앞에다 놓고 타박해서는 안 됩니다........ 음식 그 자체를 즐거워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을 모두 걷어차고 있는 것입니다.
3. 가정이 있다는 것이 복입니다
3절......“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가족을 보는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모습이 펼쳐집니다. 남편과 아내 자녀들이 밥상공동체에 둘러앉아 땀 흘려 수고한 열매 앞에 앉아 있습니다. 남편은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사랑의 고백을 하는데 여보! 당신은 정말 결실한 포도나무 같아요 그리고 자식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며 고백하기를 너희들이 참으로 감람나무 같구나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 있습니다....
이스라엘 풍습에서 아내를 향한 포도나무는 알알이 맺은 포도 한 알 하나가 마치 자식을 양육하여 번성하는 모습이기에 비유한 것입니다.
또한 자녀를 바라보는 것이 감람나무로 비유하는 것은 감람나무에서 올리브기름을 짜서 불을 밝히는 용도로 쓰이기에 자녀들이 세상에 나가서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고 소금이 될 것이다 라는 양육하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한마디로 밥상공동체에서 아버지의 고백은 말 그대로 가정천국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현대 가정들은 너무 바쁘게 사느라 이런 행복을 잃어버렸습니다. 더 잘 살아보겠다고 이른 아침부터 뿔뿔이 흩어져 바쁘게 살다보니 온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을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아빠와 아이들이 대화할 기회가 없어 모처럼 한 자리에 앉으면 낯선 손님처럼 어색합니다.
오늘 말씀처럼 밥상에 둘러앉은 자녀들을 바라보며 가장으로서 마음껏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아내가 가족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먹을 때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먹는 마음으로 자녀들과 즐거운 교제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서로의 관계를 아주 가깝게 만들어줍니다. 늘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식구(食口)라고 하는데 식구는 서로 입을 마주보고 식사를 함께 하는 사이입니다. 우리는 가족이요 식구공동체입니다.
♫♬~~~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상에 둘러서 먹고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4. 이제 개인의 복과 가정의 복에서 공동체의 축복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5-6절....“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불평이 전염성이 있는 것처럼 행복도 전염성이 있습니다. 내가 기뻐하면 상대방도 기뻐합니다. 내가 감사하면 상대방도 감사합니다. 내가 행복하면 상대방도 행복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행복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축복의 역사입니다. 어느 누가 이런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이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시편 128:1)
시인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축복을 헤아려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먹게 하셨군요. 하나님께서 내게 식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사랑하는 가족을 주셨군요. 하나님께서 내게 축복받은 공동체를 주셨군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이 행복의 시작이요 행복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 행복과 축복을 가족들과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하나님께 감사 찬송하는 복된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