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증거하는 말세의 특징 중 하나는 자기를 사랑하는 나르시시즘입니다(딤후 3:2). 나르시시즘은 부풀려지고 과장된 자기 이미지에 빠져서 자신을 아주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심리적 왜곡입니다. 이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나르키소스(Narcissus)가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물속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나르시즘에 빠진 목회자가 되면 안 됩니다.(갈 5:24-26) 나르시시즘에 빠진 목회자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과장된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자신의 우월함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셋째, 다른 사람의 입장과 감정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넷째, 자신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고 분노와 수치심을 느낍니다.
사람은 누구나 칭찬받고 인정받기를 좋아합니다. 외모, 학벌, 재물 등으로 자신의 탁월함을 과시하여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헛된 영광을 자랑하는 허영(vainglory)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대중적인 죄입니다. 소셜 미디어의 확산과 함께 우리는 더 많은 ‘좋아요’(Like)를 받기 위해 근사해 보이는 사진과 영상을 공유합니다.
헛된 영광을 구할 때 우리는 서로를 노엽게 하거나 서로를 시기하게 됩니다(갈 5:26). 영국의 신학자 존 스토트(John Stott)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에 의해 결정된다. 자신에 대해 자만할 때(허영에 빠질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자극하거나 시기하게 된다.” 그래서 자기를 사랑하는 목회자도 이런 사람이 되면 절대로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 특별히 목회자는 두 가지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첫째, 육체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합니다. 둘째, 성령으로 행합니다. 여기에서 ‘행하다’(stoicheo)는 ‘열을 맞춰서 행군하다’는 뜻입니다. 훈련된 군인이 절도 있게 걷는 것처럼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은 인내와 절제를 배워 올바른 길로 행합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주님만 바라보며 목회하는 이 땅의 모든 목회자들이 되기를 오늘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