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제가 아버지입니다!”
기도모임에서 세계적인 ‘남성부흥운동’으로 성장
62개국 247개 도시에서 무려 30만 명 수료
검정색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남성들의 모습이 마치 얼룩말 같다. 이구동성으로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고 외치는 모습은 얼룩말이 초원을 달리는 것처럼 힘차다.
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이하 아버지학교)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했다. 현재까지 62개국 247개 도시에서 무려 30만 명이 수료했다. 교회를 넘어 사회로, 한국을 넘어 세계로, 아버지에서 청소년으로 그 지경을 계속 넓혀가고 있다. ‘남성부흥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아버지학교 20년을 돌아봤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아버지학교는 1995년 10월 두란노서원에서 시작되었다. 가정의 문제를 아버지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실추된 아버지의 권위를 회복시키기 위한 운동이었다. 올바른 아버지상을 회복해 가정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 목적이다.
황은철 목사(현 브라질 동양선교교회 담임목사)와 도은미 사모가 아버지학교를 기획했다. 1996년 황은철 목사 부부가 브라질로 떠나면서 김성묵 장로가 맡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아버지학교가 문을 열자마자 남자들끼리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하는 자리가 특히 좋았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아버지학교에 참가하고 싶다는 지원자들이 해마다 늘었다.
아버지학교 1기 65명이 수료한데 이어 1998년 15기까지 무려 1,400명이 수료했다. 아버지학교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97년 IMF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부터다. 금융위기로 직장을 잃은 많은 아버지들이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 발로 아버지학교 문을 두드렸다. 한 기수에 120명씩 등록하는 폭발적인 현상이 일어났다. 대구, 부산, 포항 등지에서 아버지학교를 열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그때부터 아버지학교가 전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 ‘아버지학교운동본부’로 명칭을 통일했다. 전국적인 조직망을 만들고, 해외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중국 연변, 미국 포틀랜드, 시애틀,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캐나다, 유럽, 동남아시아, 호주와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전 세계 62개국으로 퍼져나갔다. 피부색과 언어는 달라도 가정의 중심은 아버지라는 인식은 같았다. 아버지학교가 국경만 초월한 것이 아니다. 대상도 폭을 넓히기 시작했다. 2003년 목회자 아버지학교 1기가 문을 열면서 전문적인 목회자 사역을 시작했다. 교도소 아버지학교(여주교도소)도 시작됐다. 이는 교정 역사를 새로 썼다는 찬사를 받으며 매스컴에도 보도됐다. 2004년에는 현대고등학교에서 학부모와 교직원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비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아버지학교가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62개국 247개 도시에서 30만 명이 아버지학교를 거쳐 갔다. 국내에만 76개 지부가 있다. 한국교회 역사에 유례없는 남성부흥운동의 시작과 끝이 바로 아버지학교다.
맞춤형 아버지학교와 어머니학교
아버지학교는 대상에 따라 일반아버지학교와 열린아버지학교, 예비아버지학교 등으로 나뉜다.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한 일반아버지학교는 국내 여러 지역의 교회에서 열리고 있다. 기독교적 성향의 프로그램을 고수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IMF이후 아버지학교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일반인들도 많이 참가하고 있다. 그들을 배려하기 위해 열린아버지학교가 생겼다. 회사, 학교, 사회단체, 관공서, 정부 부처 등의 요청으로 종교적인 색채를 배재한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전력, 현대자동차, 효성, 서울메트로, 이수화학, 고려아연 등에서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아버지학교를 모델로 지자체와 이웃종교(천주교 성요셉아버지학교, 불교)에서도 아버지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도 교도소 아버지학교, 군부대 장병과 미혼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예비아버지학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감동캠프, 부부가 함께 하는 부부학교 등도 진행하고 있다. 소외계층 아버지(외국인 근로자, 다문화가정, 노숙자)를 위한 아버지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소년소녀가장 돕기, 도박중독 예방 활동, 사회정화 운동 등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월간 <아버지>를 발간하고, 두란노어머니학교도 지원하고 있다. 16년 전 시작된 어머니학교는 지금까지 40개국에서 10만 명의 수료자를 배출했다. 아버지학교와 더불어 가정을 바로 세우는데 한몫하고 있다.
바른 아버지로, 바른 남편으로
아버지학교는 5주 과정이다. 보통 토요일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진행된다. 개설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6~8명이 한 조가 된다. 아버지학교를 수료한 선배가 조장이 되어 토론을 진행한다. 조원들 간의 토론과 고백이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첫째 주는 ‘아버지의 영향력’이 주제다. 아버지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자신은 자녀들에게 어떤 아버지인지를 생각하는 시간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싫어했으면서도 그 모습을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점검한다. 나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과제가 주어진다. 또 아내와 자녀들에게 축복기도를 해주라고 권한다. 가족들과 친밀감을 높이는 방법도 전수한다.
둘째 주 주제는 ‘아버지의 남성’이다. 사회에 퍼져 있는 잘못된 남성문화를 되짚어보는 시간이다. 카드 값에 허덕이면서도 술자리에서 폼 나게 카드를 긁는 체면문화, 열심히 일만 하는 모습이 남자답다고 생각하는 일 문화, 여자에게 얼마나 어필하느냐로 남자다움을 평가하는 섹스문화, 음주문화, 남성중심의 레저문화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눈다. 아내에게 편지가 과제로 주어진다. 아내가 사랑스러운 20가지 이유를 적어야 한다.
셋째 주 주제는 ‘아버지의 사명’이다. 남자의 가장 큰 성공은 갑부가 아니라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임을 가르친다. 아버지와 자녀가 가까워지고,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내와 데이트하기가 과제다. 둘째 주에 적은 아내를 사랑하는 20가지 이유를 직접 들려줘야 한다.
넷째 주 주제는 ‘아버지의 영성’이다. 자녀는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잠시 허락한 존재임을 깨닫는 시간이다. 자녀들과 일대일 데이트가 과제로 주어진다. 자녀와 단 둘만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자녀가 사랑스러운 20가지 이유를 적어서 들려줘야 한다. 아버지학교 수료소감문도 쓴다.
다섯째 주는 졸업식이다. 아내와 자녀들도 참석한다. 집에서 손수 준비해온 도시락과 다과를 나누며 조원들과 소감을 나눈다. 부부가 각자 써온 편지를 서로에게 읽어주고, 아버지학교를 하면서 변화된 모습을 이야기한다. 하이라이트는 남편이 아내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이다. 남편이 아내 앞에 무릎 꿇고 아내의 발을 씻겨주면서 바른 아버지로, 바른 남편으로 살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시간이다.
문의: 02-2182-9100
<간증_아버지학교를 수료한 어느 재소자>
“좋은 아버지로 다시 태어나겠습니다”
차가운 봄비가 응어리진 가슴을 적시던 날, 어두운 터널 가운데서 한 줄기 빛을 보았습니다. 일단 감사드립니다. 이런 곳까지 와주셔서요. 그래서 더 눈물이 많이 났던 것 같습니다.
수감생활을 하면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구속된 이후 ‘이번 일을 전환점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짐했지만 불안한 마음을 떨치기 힘들었습니다. 그때 아버지학교가 제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아버지학교는 저에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교육에 참가하신 분들, 영상에 등장하신 분들, 앞서 아버지학교를 경험한 선배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을 통해 정말 큰 감동을 받고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며칠 전 장모님께서 제게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편지에는 장인어른도 몇 해 전 아버지학교를 수료하고 봉사한 적이 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무척 좋은 교육이니 잘 받으라는 격려가 적혀 있었습니다. 아내 역시 아버지학교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부부가 결혼하던 날 교회에서 아버지학교가 열려서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아버지들을 보았다더군요. 봉사자와 지원자들이 군데군데 앉아서 담소 나누던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아버지학교는 우리 가족에게 낯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요. 저를 제외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이미 마음속에 아버지학교를 담고 기다리고 있었나봅니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사위로서 바로서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가족들을 실망시킨 것을 반성하고 약속을 잘 지키겠습니다. 제가 가정으로 돌아가면 아버지학교에서 배운 대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아내와 희망찬 미래를 엮어갈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 용기가 생깁니다.
지금은 만날 수 없지만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면 사랑을 듬뿍 담아 안아주겠습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축복을 빌어주며, 좋은 아버지로 다시 태어날 것을 약속하는 포옹을 할 것입니다. 정성스럽게 섬겨주신 과천 아버지학교 봉사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면 저처럼 한순간의 실수로 과오를 범한 사람들을 섬기겠습니다. 그들에게 아버지학교를 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눈물 속에서 당신을 만나게 하시고, 아등바등하던 나를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서울 구치소에서 아버지학교를 수료한 어느 재소자
<사역칼럼>
아버지학교 20년에 대한 소회(所懷)
하용조 목사님이 소천하기 몇 년 전 내게 물으셨다. “아버지학교가 여기까지 올 줄 아셨나요?” 나는 “아니요, 전혀 상상 못했어요. 목사님은 예측 하셨나요?”라고 반문했다. 하 목사님은 빙긋 웃으며 말씀하셨다. “나도 몰랐습니다.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나님만 아셨을 겁니다.”
그렇다. 아버지학교가 여기까지 올 것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세워주시고, 인도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다.
지금의 아버지학교는 한국을 넘어 세계로, 교회를 넘어 사회로, 아버지를 넘어 청소년에게까지 그 지경을 넓혀가고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아버지학교는 1995년 서빙고 온누리교회 선교관에서 자그마한 기도모임으로 시작됐다. 조직도, 자금도 없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열정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
아버지학교 초창기에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냉대를 받았었다. “아버지학교가 무슨 학교냐?”, “그리 희한한 이름의 학교가 있나?”, “사고 친 아버지들이 들어가는 학교인가?”라는 수많은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다. “관심 없으니 당신들이나 잘 하쇼”라는 말도 수차례 들었다. 그러던 사람들이 아버지학교를 경험하고 달라졌다. 가정이 변했다. “우리 아빠가 변했어요”, “이게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이제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했습니다”, “남편이 아버지학교를 다녀온 후 저는 왕비처럼, 아이들은 왕자와 공주처럼 살고 있어요. 고맙습니다”라며 눈물을 글썽이던 수많은 가족들의 표정과 고백을 잊을 수가 없다.
지난 20년을 돌이켜 보면 여러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개인적으로는 대장암 수술과 사업을 정리해야하는 고통과 아픔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헌신도 있었다. 나의 영원한 멘토이자 사)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의 초대 이사장이셨던 하 목사님. 아버지학교가 전국으로 확산되어 갈 때 지방으로 출발하기 전에 하 목사님은 헌신자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며 “여러분은 아버지학교 전도사입니다”라며 격려해 주셨다. 아버지학교가 교회를 넘어 교도소, 관공서, 군대, 기업체, 학교 등으로 확산되자 매우 기뻐하셨다. 아버지학교는 교회의 좋은 내용들을 사회로 흘려보낼 수 있는 통로이며,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주신 특별한 선물이라며 본인 스스로가 아버지학교 전도사가 되어 주셨다. 황은철 목사님과 도은미 사모님도 빼놓을 수 없다. 이분들은 1995년 아버지학교를 처음 개설하고, 아버지학교의 씨앗을 뿌리고 기초를 닦은 분들이다. 이 분들이 처음을 잘 세워주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고 장헌철 형제님도 잊을 수 없다. 53세의 나이에 직장인으로, 가장으로, 아버지학교의 헌신자로 열심히 섬겼다. 그는 아버지학교 강의 현장에서 쓰러져 하나님 품에 안긴 아버지학교 첫 번째 순교자다. 지난 20년간 영적 리더십으로 평신도들과 비전을 함께 나누며 서울에서 한라로, 세계로 현장을 누비고 다녔던 권준 목사님과 그 외 여러 목사님들, 부족한 나를 믿고 따라와 준 많은 동역자님들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들의 눈물과 땀, 기도와 헌신으로 아버지학교는 단순한 세미나를 넘어 운동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그들의 열정과 사랑이 아버지학교를 교회와 세상을 깨우는 거대하고 위대한 영적 운동, 성령 운동으로 바꾸어 놓았다.
아버지학교는 하나님의 꿈이며, 시대적 소명이며, 우리의 희망이다. ‘아름다운 세상, 행복한 가정을 위해 땅 끝까지 가는 아버지운동’을 펼치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고 믿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 시행착오도, 실수도 많았다. 나의 미숙함 때문에 상처받고 힘들어하다 아버지학교를 떠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리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
지금도 나는 힘들 때마다 하 목사님이 자주 하셨던 말씀을 묵상한다.
“인생은 축복받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사명 받고 사는 것입니다. 사명 받고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남은 삶도 가정회복, 교회부흥, 사회변화 그리고 수직선교(가정선교)의 축을 회복시키는 일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자고 다짐하며 기도한다. 아버지학교의 지난 20년은 숨 가빴지만 감사했다. 앞으로 세상과 교회와 소통하며 새로운 20년을 준비해 나갈 것이다.
/김성묵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