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마산토호세력을 찌르다
우리에게 막대기가 아닌 사람을 달라
‘희망연대’와 경남도민일보. 작지만 야무진 송곳이 두터운 얼음바위를 찔렀다. 얼음바위란, 마산의 수구 정치세력과 한 몸으로 결탁하고 있는 지역 문화권력이다. 지역토호세력의 카르텔이다. 마산시가 친일혐의의 작곡가 조두남 기념관을 시민세금으로 건립하려다가 결국 개망신을 당했다.
‘희망연대’를 위시한 지역 시민운동단체와, 이 운동에 뜻을 같이한 전국 네티즌들의 집요한 항의의 주먹들이 마침내 마산시 행정당국의 코피를 쏟게 했다. 이런 방식으로 자주 코피가 터지는 것이 바로 개혁이다. 수구적 발상에 의해 세세무궁토록 태평성대를 구가하고자 하는 시행정 당국의 콧잔등을 후려치는 일이 전국적으로 발생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지역적으로 건수를 잡아 올려다오. 힘 닿는데까지 도배라도 해줄 테니.
이 문제가 친일예술인 문제에서 출발, 시당국의 문화정책과 철학문제, 시행정결정 과정 상의 정보공개문제, 급기야 정치문제로 비화되버렸다. 지역문화권력의 카르텔이 어깨힘을 믿고 우격다짐하려던 것에 급제동이 걸린 것이다. 다급한 마산시 당국은 시민위원회에 이 문제 해결을 위임했고, 시민위원회는 조두남기념관의 명칭을 마산음악관으로, 친일문학가인 노산 이은상기념관을 마산문학관으로 개칭하는 한편, 마산출신 예술문화인들의 작품을 동시에 전시하고, 지역문화활동의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최종 결정하게 된다.
모르긴 해도, 한나라당이 의회와 시행정을 장악하고 있으니, 한나라당 중앙에서는, 전국 문제로 비화된 이 사태로 인해 한나라당이 친일파들 소굴, 혹은 친일파 절대 비호세력으로 비쳐지는 것을 우려해, 마신시민운동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라 판단한다.
지역시의 문화정책이란 것이 지역 문화권력의 카르텔이 도모하고, 그 과정을 뭉치며, 최종 마무리까지 다 설거지를 하게끔 되어 있다는 사실을, 해당지역 거주민이라면 삼척동자도 안다. 그럼에도 좀처럼 이것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이유가 있다. 거대도시와 달리 지방 중소도시의 경우, 이 카르텔의 핵심분자들이 곳곳에 잠복해 있고, 그들과 대문을 마주하고 살기 때문에, 이를 지적하고, 이에 항의하는 시민운동을 장기간 지속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불이익을 인내해야 한다. 물론 이 지난하고 가난한 투쟁을 집중적이고 끈질기게 조명하는 언론도 거의 없다. 동네 왕따가 되기로 전 가족들이 굳은 결심을 한다고 하더라도 얼마 못가, 그 가장은 가족에서 마저 왕따가 되기 쉽상이다.
50줄을 훨씬 넘어버린, 일생을 정치권에 기웃거리지 않고 오로지 시민운동에 헌신한 지역운동가 김영만 ‘희망연대’ 대표의 경우, 이번 운동을 전개하면서 그가 술회한 한 마디의 말 속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운동의 근거를 부단히 확인해가고자 하는, 시민운동가의 미덕이 잘 담겨 있다. “저는 그저 우리 마산의 아이들이 민주화의 성지 마산에서, 친일 음악가의 노래소리를 듣고 성장하는 것을 막아야 했던 것뿐입니다.” 한때 그의 사무실은 전화요금도 밀려 전화가 불통되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머리 깨져가며, 일신이 구속되어 가며, 가정에 왕따 되어가며, 한 길을 가고 있다. 그들에게 새로운 기부문화 솔루션을 들먹이며 지역시민운동의 변화를 조언하는 것은 호사스러운 입이다. 그냥 기부하면 된다.
사실상 끼리끼리 해먹을려고 했던 지역문화권력들. 이번 사건으로 그 카르텔의 엉덩이에 화끈한 불이 붙었다. ‘희망연대’와 지역시민운동단체들이 거대한 지역문화권력의 카르텔에 송곳이 되어 찔렀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과연 이 거대한 얼음바위가 단번에 쪼개질까. 이는 그들의 공적과 좀 다른 차원의 문제이고, 단순한 지역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안이다.
원래 이번 사건은, 지역에 문화권력을 누리고 있는 문화권력의 우두머리의 친일행적에 대한 지적과 항의로 출발했지만, 문화권력이란 것이 정치권력과 결탁되어 있으므로 당연히 정치문제로까지 비화된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힘 없지만 옹골찬 ‘희망연대’회원들의 눈두덩만 시퍼렇게 멍들게 하고, 지역문화권력과 시당국이 계획한데로 일사천리로 추진되었을 것이다. 친일행적 혐의의 문화권력 우두머리들이 쏟아 놓은 예술작품을 버젓이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리라. 무슨 교양인이듯 행세하는 지역문화권력의 카르텔 분자들끼리 오손도손 모여 친일혐의자의 기념관 개관식 테이프를 커팅했을 것이다. 일송정 푸른 솔을 떠올리며, 마치 만주벌판의 민족투사가 된듯 착각하며.
민주화의 성지였던 마산이 YS 3당야합 이후 급격히 수구화되어 가던 참이었다. 지역 정치권, 지역시민운동단체, 마창노련을 위시한 노동운동권 등이 정파를 떠나, 의회수구정당 한나라당을 분쇄하기 위해 참으로 무진장 애를 쓰곤 있었다. 실제 경남지역에서 민주당 활동을 하는 것은 민노당 활동하는 것 만큼이나 힘들고 심장 상할 때가 많다. 원적과 본적이 호남 깽깽이라는 어거지를 예사로 부리니까 말이다. 졸지에 DJ 앞잡이가 되었으니, 뭉뚱그려 모두 빨갱이고, 사회분열세력이고, 계돈 떼 먹고 전라도로 뛸 하와이 종자들로 규정된다.
<마산시>
70∙80년대 소년소녀 가장으로 마산공단에 넘어와, 고사리 손을 기계에 놀려가며, ‘타이밍’을 연신 들이키고 애써 졸음을 참아가며, 중노동에 시달리던 호남출신 마산 정주자들은 이제 겨우 먹고 살만하고, 정치색 없이 선린의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는데도, 뜬금없이 호적등초본을 들먹이는 바람에 사상을 검증 받아야 한다. 많이 퇴화되어 가고 있지만, 그래도 자연스럽게 한 두 줄기 튀어나오던 호남방언을 깨끗이 탈색할 수밖에 없는 동네 사상검증이 벌어진다. 사상드잡이가 시작된다. 정말 인간적으로 못할 짓이다.
그러나 그 변호의 마음도 그저 마음일뿐. 호남출신의 내 선린이웃을 변호하면, 내 호적지도 함께 전라도 목포가 되든지, 벌교가 되어야 한다. 부친이 나서서, 서북청년단 출신의 철저한 반공투사라고 보증을 서도, 우리 부친을 마산 코앞까지 진출했던 6.25 인민군 이탈병이라고 할 기세다. 솥단지 몇 개, 밥 숫가락 몇 개가 관찰되는 지역의 이웃들이니, 지역토호세력의 카르텔과 그 카르텔이 고용하는 동네 모니터링 체제에 뭐가 걸려도 걸린다. 이 바닥에서 DJ 선거운동하는 것, 그건 물 좋은 무학산 소나무 밑에서 도닦는 거나 매 일반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민주당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야, 솔직히 선거철 마다 중앙당의 지원이라도 일말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민노당도 노동자들과 의기투합하며 일말의 시름을 잊을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시민단체운동을 무슨 反한나라당 정치운동으로 이해하고 있는 종자들이 수두룩하여, 대부분 조그마한 시민운동세력들은 정말이지 말할 수 없이 열악한 속에서 시민운동을 이끌어 가고 있다.
물론 정당활동과 시민운동을 그런 식으로 맞비교할 수야 없겠지만. 그나마 이들 열악한 시민운동단체와 뜻을 같이한 지역 종교단체들이 서로 연대하여 힘이 되지만, 그 종교 속으로 자세히 들어가보면, 역시 나와 다른 하나님을 모시고 교회를 들락거리는 지역토호권력과 그 세포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지역토호권력과, 그들이 풀어놓은 세포들과 같은 예배당 안에서 기도하는 일, 이도 대단한 정신적 수양임에 틀림없다.
지역 중소도시에 짙게 드리워져 있던 수구의 문화권력과, 그 카르텔. 이는 지역토호세력들의 권력이다. 그들은 이번에 총집결하여 ‘희망연대’와 경남도민일보의 조두남기념관 건립 반대운동을 집요하게 방해했다. 학계는 이데올로기를, 지역 경제계는 자금을, 언론은 전위부대로서 이데올로기 홍보를, 사법기관과 지역 경찰권력은 법률서비스와 치안질서를 담당한다. 끼리끼리 지지고 볶고, 그 카르텔의 동심원의 중앙에 가까울수록 부유하다. 부를 창출하기 위해 모였고,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정보로만 소통한다. 돈 되지 못하는 자, 그 세계에서 탈락이다. 그 카르텔에 속한 구성원들과, 그 자식들과 그 자식의 자식들이 서로 서로 교배하고, 새끼친다. 모두 지역사회의 교양인들이다. 메인스트림이다. 지역토호권력의 카르텔이다.
그 메인스트림의 말빨과 파워가 총결합하여 ‘희망연대’라는 조그만 시민단체를 공격했으니, 그 단체가 얼마나 곤궁하고 무지막지하게 시달렸겠나. 그런 지역토호세력의 카르텔이 마산만 있는가. 아니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있다. 그러니 이 문제는 대한민국의 문제인 것이다. 지역토호세력의 카르텔은 중앙 서울과 정확히 연결되어 있다. 중앙의 지배권력들은 모두 하나씩 지역의 부를 착취하기 위한 지역출장소 하나씩은 보유하고 있다. 기존의 지구당, 이는 중앙에 진출한 지역토호세력의 거두들이 지방의 부를 착취하기 위해 설치한 지역출장소에 다름 아니다. 지역출장소는 지역토호세력의 카르텔의 중심과 정확히 연결되어 부를 공출하고, 부를 창출한다.
이를 끊어내기 위해선 지역문제와 서울의 문제, 나아가 대한민국의 문제에 균형적 지식과 실천적 의지를 가진 지역정치 전문인이 의회공간 속으로 시급히 진입해야만 한다. 그들의 유능함이 효과적인 메스를 만들 것이다. 지역분권화 시대를 맞아 지역의회와 경쟁하며 타협하며 지역분권의 역작용을 지적하고 주도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유능한 지역전문가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다. 경남도민일보의 김주완 지역전문기자, 나는 그럴 대기자라 부르고 싶다. 그는 말한다. 지역을 말하면서 지역문제의 역사와 문화와 정치에 대해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극단적으로 말해 대한민국엔 지역 전문기자가 없다고. 그렇다면, 대한민국에 지역전문의 정치가는 과연 있는가. 지역정치 공작전문가들이야 팔도에 널렸겠지.
타당의 지역정당에 대해서 뭐라 탓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의 경우, 마산지역에서 한번도 이 문제에 대해 실천적 고민을 하지 않던 자가 열린우리당의 공천을 받겠다고 입당했다. 천하장사 이만기. 그가 자신이 교편을 잡고 있는 김해에서 경선에 참가할 지, 마산의 두 지역구 중에 경선에 응할 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씨름선수 출신, 마산 인근의 조그만 농촌가난한 집에서 마산에 유학와, 약수물로 배 채우고, 무학산 기슭을 밤낮으로 오르내리며 육을 갈고 닦고 기술을 익혀 대한민국 씨름계 전설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식을 쌓아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라고 해서 국회의원 꿈이 없을 리 있겠는가. 피선거권이야 헌법에 보장되었고, 더구나 천하장사, 그리고 찢어지게 가난했던 불우한 환경도 극복했고, 그만큼이면 일반인으로서도 존중할만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또 내 친구들도 그를 그렇게 평가하니, 분명 국회의원 꿈이 허황된 것은 아닐 것이다. 하물며, 로보트 국회의원을 만들어 자신이 수렴청정하려 했던 김호일 같은 작자도 몇번 해먹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가 김호일이 상실한 지역구의 보궐선거에 출마하려다, 한나라당 공천에 실패한 전력을 탓하고 싶지 않다. 돈오점수도 있지만, 돈오돈수도 있으니, 어느날 갑자기 개혁세력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는가.
그러나 내 친구들은 두 가지 점에서 이만기의 실패를 예상한다. 참고로 그들은 노대통령이 대선에 실패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지역주의 신봉자들이요, 지역토호세력 카르텔의 세포들이다. 첫째는, 아직도 그 지역이 한나라당의 아성이라는 점. 둘째, 이만기가 열린우리당으로 출마할 명분이 없다는 점. 이 두 가지다. 첫번째 이유를 분석하는 것은 너무 싱겁다. 두번째 이유를 풀어보면, 열린우리당의 출마후보자들이 언제 마산의 본질적인 개혁 아니, 어떤 변화, 아니 어떤 수정, 아니 어떤 점진적 수정 가능성에 대해서 고심한 적, 아니 고심한 흔적, 아니 고심한 척이라도 한 적이 있냐는 것이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것을 막자고 했다. 천만번 옳다. 이만기씨가 개혁문제에 돈오점수의 방식으로 득도하시기 바란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그렇다면 막대기 말고 사람을 달라. 물론 막대기와 사람을 놓고 경선을 한다고 한다. 그것까지도 인정한다. 열려 있으니 막대기도 사람도 경선에 입후보할 수 있다. 그러나 막대기가 경선에 승리할 가능성을 뻔히 알면서도 막대기가 무슨 자랑이라고 동네방네 홍보까지 해준다. 결론적으로, 열린우리당 막대기와 한나라당 막대기가 붙으면, 마산에선 정확히 한나라당 막대기가 승리한다. 그들의 승리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장차 이 지역의 지하 깊숙히 매장될 개혁정신이 두려운 것이다. 선거도 지고 명분도 지고. 그러니, 장래 이 지역을 책임질 유능하고, 전문적이며, 지역발전의 철학과 대한민국의 발전을 균형으로 감각하고 실천할 사람을 달라. 운동 하루이틀 하다가 안 되면 죽자는 말인가.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우리 모두 알고 있으니, 사람을 달라. 가족에 왕따 되어가며, 좁은 냉골바닥에 일신이 갇혀가며, 머리통이 깨져가며, 일관되게 살아온 지역 시민운동가들 중에 유능하고 균형감각을 갖춘 지사들은 많다. 그들의 동선이 일관되고, 그 일관성이 너무도 소중하여, 저절로 연민이 솓구치고, 그 연민으로 유혹당하는 것이 너무도 감격스러워, 서포터의 가슴이 절절 끓게 하는 후보들은 아직도 있다. 그 겸손한 지역의 개혁상징들이 내미는 빈한한 손이라면, 기꺼이 맞잡고 열정적으로 헌신할 지역의 개혁시민들이 많다고 믿어야 한다. 그들이 도처에 그득히 숨어 있었으니 조두남과 이은상이 한방에 가지 않았나. 그 참여의 시민들이 요구하고 있다. 경상도땅에도 막대기는 필요 없다고.
금번 마산의 조두남기념관 건립투쟁은 어떤 조그만 지역 시민단체의 일관된 시민운동 하나가 승리한 것뿐이다. 되려 이 운동을 주도했던 시민단체, 즉 ‘희망연대’와 경남도민일보 등은 이 문제가 정치문제로 이슈되던 것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들 단체들만이 마산의 장래와 올바른 발전지향을 담보하고 있다고 추켜 세우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지역발전이 곧 나의 삶이라는 가치지향, 그것이 대한민국의 발전지향과 균형을 조정할 줄 아는 유능한 지역전문가들이 의회공간 속으로 유도되지 못한다면, 도대체 우리 개혁세력의 인적 자원은 어디서 발굴할 수 있단 말인가. 경상도 땅에도 막대기 말고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희망연대’라는 송곳은 마산만 찌른 것이 아니라, 자칭 개혁세력이라고 나불대는 내 심장도 찌른 것이 분명하다.
첫댓글 복잡하지요. 중앙-지역, 토호, 관통하는 건 지주라는 경제적 신분과 정치입니다. 강좌안5 빵모형의 중첩구조에서 살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