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조 퀸텟 몽크 개관 10주년 기념공연(2002년10월25일(금))-주최 및 주관 : 부산재즈클럽(PJC)
재즈동호회 결성, 재즈 공연 기획등 부산 재즈 문화 활성화의 공로자였던 고.김성환님이 1992년 부산대 앞에서 개관후 1999년 경성대 앞으로 이전 재개관하여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재즈의 메카 몽크의 개관 10주년을 기념하여 부산재즈클럽(회장:박권희)이 대한민국 최정상급 재즈밴드 '정성조 퀸텟'을 초청하여 2002년 10월 25일(금) 오후 8시 30분부터 경성대앞 재즈클럽 '몽크'에서 공연을 합니다.
보스톤 버클리 음악대학 프로페셔널 음악을 전공한 현 한국방송공사(KBS) 관현악단 단장이신 색소포니스트 정성조님은 영화음악 "어제 내린 비"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 여자" "깊고 푸른 밤" 등 40여편 작곡 과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레미제라블" "에비타" 등 20여편 편곡 및 지휘하였고 사도 마사히코와 야마시타 요스께, 히노 데루마사 등 일본의 유명 재즈 연주인들과의 일본 동경과 오사카 순회 공연등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널리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대한민국 최정상급 재즈 뮤지션으로 현재 한국의 고전 가요들 (눈물젖은 두만강, 동백 아가씨 등)을 재즈로 편곡, 출판 준비중인데 이번 공연에는 기타에 박지혁, 베이스에 정중화, 드럼에 이창훈, 피아노에 배소희가 함께하며, 가을 분위기에 어울리는 'Autumn Leaves(고엽)', 영화 주제곡으로 유명한 '흑인 오르페(Black Orpheus)', On Green Dolphin Street등 주옥 같은 명곡과 함께 깊어가는 가을을 ....
정성조님 프로필
재즈 색소포니스트
보스톤 버클리 음악대학 프로페셔널 음악 전공
영화음악 "어제 내린 비"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 여자"
"깊고 푸른 밤" 등 40여편 작곡
서울 시향 범 세대 연주회 및 팝스 작곡 및 편곡, 연주.
KBS교향악단 팝스 다수 편곡 및 연주.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레미제라블" "에비타" 등 20여편 편곡 및 지휘
서울 연극제 음악상 수상
대종상 음악상 수상
KBS가요대상 편곡상 수상
영화 평론가상 수상
한국 방송대상 음악상 수상
일본 동경과 오사카 재즈 클럽 30여회 출연
사도 마사히코와 야마시타 요스께, 히노 데루마사와 순회 공연
전 서울 예술전문대학 실용음악과 교수
현 한국방송공사(KBS) 관현악단 단장
Jazz 음반
94년 All That Jazz (정성조와 친구들 1,2) 오사카 재즈 연주인들과 조직한
오중주단 스탠다드 재즈 연주집
96년 All That Jazz (정성조 빅밴드) 연주집
97년 말, 한국의 고전 가요들 (눈물젖은 두만강, 동백 아가씨 등)을
재즈로 편곡, 출판 준비중
2001.8월호.월간조선
[서병욱의 그룹 인터뷰] 한 여름 밤의 Jazz 뮤지션 15명의 15인생 중에서 발췌
---테너 색소포니스트 鄭成朝
『세계 재즈는 테너 색소폰이 리드한다』
『매형이 미8군 군속이었어요. 자연스레 색소폰 연주를 들을 기회가 많았지요. 한번은 재즈 매거진 「다운 비트」를 봤는데, 거기에 세계적 재즈 代父들의 악보가 있는 거예요. 그걸 색소폰으로 불었는데, 이걸 우연히 들은 美 흑인 색소폰 연주자가 깜짝 놀라는 겁니다. 「야, 어린 학생이 그 어려운 걸 어떻게 불어내냐」며…』
테너 색소포니스트 鄭成朝(정성조·55)는 당시 서울高 밴드부원이었다. 그 흑인 색소폰 연주자는 이후 鄭씨에게 재즈 판도 이따금씩 빌려 줬다. 이와 함께 해군 군악대장 이교숙을 만나면서 더욱 재즈와 가까워진다.
『만약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지 않았다면 재즈는 국내에 훨씬 나중에 들어왔을 겁니다. 미8군이 당시엔 유일한 재즈 문화의 공급처였지요. 재즈를 공부한다 하면서도, 비틀즈 음악까지도 재즈로 생각했던 겁니다. 통상 1인당 국민 소득이 2만 달러는 돼야 재즈 음악의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도 일리는 없지 않습니다』
1964년 서울大 음대 작곡과에 입학. 색소포니스트 길옥윤이 일본에서 막 귀국해 있었다. 길옥윤과 연결돼 5~6년 간 연주 생활을 한다. 1960년대 末까지 잘 나갔다. 영화 감독, 레코드 사장들이 서로 정성조에게 일감을 못 맡겨 안달이었다.
「영자의 전성시대」, 「어제 내린 비」, 「겨울 여자」, 「깊고 푸른 밤」 등 영화 음악 40여 편을 작곡했다. 그러다 미국 유학을 결심한다. 先拂로 받아 둔 나이트 클럽 계약금 등도 모두 돌려 줬다.주변에서 반대가 심했다.
『야, 너 미쳤냐? 모두들 일자리가 없어 쩔쩔매는 판에, 너처럼 돈 많이 버는 사람이 어딨냐? 유학 갔다오면 떼부자 된다던?』
주변에서 단 한 사람도 유학에 긍정적이지 않았다. 부모도 반대였다. 1979년 고교 때부터 동경하던 미국 보스턴 버클리 음대로 유학 간다. 프로페셔널 뮤직을 전공했다. 흑인 색소포니스트 빌 피어스에게서 2학기 정도 배웠다. 벨기에人 색소포니스트 아돌프는 『세계 재즈는 테너 색소폰이 리드한다』고 말해 줬다. 금세 4년이 흘렀다. 귀국하려니 왠지 심란했다. 담당교수가 이런 그를 보고 말했다.
『어디 아프냐?』
『내일이면 한국에 갑니다. 다시 그 전에 하던 일을 또 하려니, 별로 내키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냐? 뭘 하든, 그걸로 생활을 할 수 있다면 그건 축복받은 거다』
논 팔아 밭을 사다
1983년 귀국. 서울은 너무 변해 있었다. 우선 전화번호 「머리」가 두 자리에서 세 자리로 바뀌어 있었다.
다시 영화 음악에 손댔다. 그러던 중 서울예전(現 서울예대) 유덕형 학장의 제의로 교수가 된다. 8년이 되자 몸이 뒤틀렸다. 연주만 하고 싶었다.
1993년 3월 KBS 관현악단장으로 옮긴다. 주위에서 「논 팔아 밭 산다」고 했다. 그나마도 계약직이었다.
『악단장이 편한 자리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오랜 객지생활 끝에 귀향한 것 같았습니다』
노래 반주나 편곡도 손뗀 지 오래다. 「돈 되는 일」은 마다하고 「돈 안 되는 일」만 하고 있는 것이다.
『1960년대 初, 색소폰은 100만원의 高價였어요. 당시 서울의 마당 있는 집 한 채 값이 100만원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색소폰은 지금도 수백만원밖에 안 하는데 집값은 수억원으로 뛰었지요』
잡기는 아무 것도 모른다. 당구도 쳐본 적이 없다. 보다 못해 아들녀석이 바둑을 권해 요즘 목하 바둑 수업 중. 아마 7급 정도다.
일요일 오후 9시부터 11시까지 반드시 서울 이태원의 재즈 클럽 「올 댓 재즈(All That Jazz 02-975-5701)」에서 연주한다. 17년째다. 외국에 갔다 올 때도 연주 시간이 되면 공항에서 바로 「올 댓 재즈」로 간다.
「정성조 재즈 앙상블」도 있다.
『18명 규모의 밴드인데, 지금 KBS 소속으로 돼 있습니다. 혼자서 꾸려 가긴 어렵습니다. 그만큼 돈이 많이 듭니다』
국악의 세계화도 그의 관심거리다. 그러나 사물놀이나 판소리는 외국인들이 이해하기엔 너무 이질적이란 시각이다.
『IMF만 아니었다면 「눈물 젖은 두만강」, 「동백 아가씨」 등 옛 가요의 재즈화가 상당히 진척됐을 겁니다. 국악 중에도 대중성이 있는 「타령」은 재즈화가 가능합니다』
그동안 KBS 교향악단 팝스를 다수 작곡 및 편곡하고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레미제라블」, 「에비타」 등 20여 편을 편곡 및 지휘했다. 일본 東京 등 재즈 클럽에 그동안 30여 회 출연했다. 사도 마사히코와 야마시타 요시케, 히노 데루마사와 순회공연도 했다.
『일본 뮤지션들은 외국 유학보다는, 도제식의 교육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선지 師弟間의 유대도 돈독합니다. 재즈 인구도 굉장합니다. 지하철 종점 등에선 수시로 재즈가 연주됩니다. 세계 최고 수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