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익철 구청장님께
구청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양재동 우성아파트 103동 1005호에 사는 주부 신숙자 입니다.
작년 시월,새벽 뒷산에서 우연히 시찰나온 구청장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쉼터를 지나 베드민턴 구장쪽의 솔밭을 지나는데 누군가 부르더군요.
처음엔 근처 회사의 직장인들인 줄 알고 그냥 지나쳤어요.
급기야 다급히 제 뒤를 따라오신 검은 양복의 신사가 말했습니다.
"구청장님과 인사 한 번 나누시지요.하시고 싶은 말씀도 하시구요"
엉겁결에 당한 상황이라 저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앞서 가시던 구청장님이 들으셨던지 일부러 내려 오시더군요.
"안녕하십니까? 서초구청장 진익철 입니다"
하시며 손을 내밀며 따뜻한 악수를 청하시더군요.
솔직히 저는 그때까지도 우리 구의 구청장님이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워낙 정치에 관심도 없었고,솔직히 공무원에 대한 신뢰도 없어서지요.
어줍게 제가 몰라뵘을 면구해하자
"아이쿠 이제 부턴 제 이름도 기억해 주시고,관심도 갖어 주십시오"
하시며 제게 윗주머니의 명함을 건네 주셨습니다.
그 친절함에 제 말문이 트이고 말았어요.
"구청장님,양재천 물웅덩이 좀 없애 주세요.
저는 '양재천마라톤'이라는 동네 마라톤 동호회에서 뛰고 있는데
비가 온 후면 주로가 곳곳이 물이 고여 뛸 수가 없습니다"
구청장님은 제 말씀을 신중히 들으시더니 담당자를 부르시더군요.
웅덩이가 심한 곳의 위치와 불편한 사항을 적게 하셨습니다.
저는 마치 응석받이 어린애가 엄마에게 조르 듯 일러바쳤(?)습니다.
"양재천 둔덕에 촌스럽게 써 있는 '세계명품도시 서초'아랫부분이
제일 심하고,그 길 윗편으로 교총회관 밑 무지개다리 까지 무려
7~8개 정도의 물웅덩이가 생깁니다. 그래서 저희 동호회원들은
비가 오거나 눈이 온 후에는 그 길을 달릴 수가 없답니다"라고.......
그러자 구청장님은 '서둘러 꼭 시정하겠다'며 약속을 주시더군요.
이렇게 민원을 드려 놓고도 기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제가 기쁨에 설레어 '서초구청장님을 만났어요'라는 제목으로
저희 '양재천마라톤' 홈피에 글을 올리자 댓글 반응이 부정적이었거든요.
'예산편성>공사발주>.....한 2년 뒤에나 고쳐질랑가??'뭐 이런 류의......
그런데 2010년 10월27일,출근길 남편 배웅하는데 벨이 울렸습니다.
구청장님을 뵌 지 꼭 닷새 후,관할 담당자께서 전화를 주신거에요.
민원 내용을 조목조목 확인한 후, 불편 끼쳐 미안하다는 사과와
행정상의 어려움에 대한 이해를 구하더니
'2011년 봄 까지는 반드시 양재천 구배공사를 마치겠다' 하시더군요
저는 말씀만으로도 고마워 담당자의 성함을 물었습니다.
'서초구청 공무원으로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것 뿐'이라며 저어하시던데
간신히 <재난치수과 채규석氏>임을 알았습니다.
이 내용도 홈피에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이번 댓글도 부정적이었어요.
"만약 계속 물구덩이면 비만 오는 날이면 鴻安(홈피의 제 호)을
매일 거기 나와 물퍼내기 담당자 시키자!"등등의 자조섞인 반응이었죠.
그렇게 몇 달이 지났습니다.
3월 부터 폴 대를 든 건축기사가 왔다갔다 하고
밤늦도록 공사 현장을 알리는 노란띠가 둘러지더니
드디어 오늘 저는 이렇 듯 구청장님께 감사의 메일을 올리게 됐습니다.
그동안 봄비가 많이 내린 날 이른 아침이나
요사이 계속되는 장맛비 사이의 개인 새벽녘에도
저는 회복하는 친구의 얼굴을 확인하 듯 양재천을 살피며 달려봤습니다.
정말 제가 염려했던 양재천 물웅덩이 구간은 잘 복구 됐더군요.
촌스러웠던 간판 '명품서초...'슬로건도 '1등도시...'로 나아졌습니다.
엊그제 주말,저희 동호회의 정기모임에서 모처럼의 회식이 있었는데
제 글에 부정적 댓글로 기를 죽였던(?) 회원분이 제 팔을 드시며
"양재천 물웅덩이길이 말짱해졌으니 '아름다운 홍안길'로
명명식 하십시다!"하시대요.
그 후에도 지금껏 서울엔 장맛비가 쏟아 붓고 있습니다.
양재천이 넘쳐 제 키 만큼 자랐던 풀도, 그윽한 붓꽃 화원도,
흐드러진 유월의 망초꽃도 모두 잠겼습니다.
물웅덩이 옆에 새로 만든 수채며,구배공사가 이 비에 망치면 어쩌나......
솔직히 빗소리에 뒤척이는 밤도 있었어요.
오늘 새벽 다섯시, 희뿌연 여명이 창에 비치더군요.
서둘러 양재천으로 달음질 쳤습니다.
아! 넘실대는 양재천 물살 위로 동녘의 햇살이 반짝이며 너울거리고
범람한 물살에 고개 숙인 풀들과 꽃 사이로
흙탕물을 뒤집어쓴 양재천 주로가 그래도 해맑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저희의 아지트인 영동1교 다리밑도 비 한 방울 새지 않고
광장처럼 넓은 가슴으로 기다리고 있더군요.
벽치기 테니스와 인라인을 연습하는 주민들 사이에서 준비체조를 하고
저는 내 친구같은 아름다운 양재천 길을 달려 보았습니다.
10년을 무딘 중년아낙으로 '양재천마라톤'의 꼴찌를 도맡아 하지만,
오늘 새벽만은 나팔꽃 같은 소녀가 되어 나비처럼 나는 것 같았습니다.
왜?
양재천변의 철벅이던 물웅덩이의 속상함이 감쪽같이 사라졌거든요.
진익철 서초구청장님, 약속 지켜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2011년 7월5일 양재동 주민 鴻安 신숙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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