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깨 생각
임병식 rbs1144@hanmail.net
“휘익 칙, 휘익 칙”
내 귓속에서는 이따금 도래깨 소리가 들린다. 실제 나는 소리는 아니고 환청이 들려온다. 어렸을 적 하도 인상적으로 박혀 있는 장면인에다 특특한 소리가 강렬하게 새겨진 때문일까.
귓속에서 그 소리가 들리면 머릿속에서는 어김없이 어떤 장면도 그려진다. 머리위에서 크게 원심력을 이용해서 한차례 휘저어 내리치는 당면, 그 위력은 상당했다. 도리깨를 맞으면 콩대며 들깨다발은 대책없이 으스러졌다.
농가에서 흔히 알려진 말이 있다. 들깨는 해뜨기 전에 털어야 꼬투리가 안부러지고 참깨는 해가 떠올라 이슬이 말려야만 꼬투리가 벌어져서 잘 털린다는 것이다. 삶의 지혜가 아닌가 한다.
도리깨를 살펴본다. 생김새는 마치 대빗자루를 거꾸로 세워놓은 형태인데, 구조는 손잡이에 해당하는 도리깨장부와 꼭지에 낀 고두머리, 그리고 발채의 치마로 이뤄져 있다. 길이는 대략 175cm, 치마길이는 1m 남짓이다.
그런 크기는 사람의 키를 감안한 것이다. 사옹하는 방법은 머리 위에서 한바퀴 휘둘른 다음 바닥에 내려치는데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 상당한 요령이 필요하다. 한편, 이것은 간단한 구조로 이루어졌지만 예사 과학적 운동법칙이 접목된 것이 아니다. 인체역학적으로 적은 힘으로도 최대한 성과를 내도록 만들어졌다.
사람은 동작을 취할 때 직선으로 행할 때와 원운동을 적용할때의 힘의 역량은 크게 차이가 난다. 즉, 원운동을 이용하면 적은 힘으로 몇 배의 힘을 더 가할 수가 있다. 도리깨는 바로 그 원리를 최대한 응용한 것이다.
도리깨에 있어서 가장 힘이 많이 미치는 부분은 직선의 힘을 원운동으로 바꿔주는 비녀못에 있다. 돌쩌귀모양으로 생겼는데 이 부분이 회전하면서 가속을 더하게 된다. 내리치는 부분은 치마이다. 그런 만큼 이 두 부분은 특별히 견고해야 한다. 그래서 재료는 특별이 가려서 만든다.
비녀못은 탱자나무나 늘푸레나무가 제격이다. 이것이 여물기도 하려니와 탄력이 좋아서 충격을 잘 훕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치마는 대나무를 쪼개서 엮어 만드는데, 더러는 닥나무 늘프레나 닥나무를 이용하기도 한다.
도리깨 장부는 통상 대나무를 쓰지만 여기에도 감안하는 것이 있다. 대 뿌리가 약간 붙어있는 것을 취하여 그 부분에다 구멍을 내어 비녀를 꽂는다. 그런 다음에 치마를 노끈으로 동여 묶고 반 뼘 간격으로 날개를 묶는다. 치마가 함부로 벌어지는 것을 막으면서 타작하기에 좋도록 한 것이다.
예전에 보면 이것으로 타작을 하면 의외로 효율이 높았다. 힘이 적게 드는 반면, 많은 작업량을 금방 마칠 수가 있었다. 덕석하나 가득 콩대나 메밀대를 쌓아두고서 도리깨질을 하면 줄기는 금방 바스러지면서 알곡이 쏟아졌다. 바로 직선 운동이 비녀못의 조화로 원운동으로 바뀌면서 강력하게 타격을 가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도리깨는 언제부터 사용하게 되었을까. 그 근원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오래된 역사를 추정해 볼 수 있는 근거가 있다. 바로 고려 말 이색이 중국에 가서 보고 온 것으로 도리편(都里鞭)인데, 이것이 도리깨가 아닌가 짐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참 후대지만 조선 정조시대 연암 박지원이 쓴 과농소초(課農小抄)에도 이기구가 언급되어 있음을 본다.
도리깨질은 보기에 쉬어보여도 결코 만만한 작업도구는 아니다. 힘이 있다고 잘 부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완급을 조절하여 내리치는 것과 들어 올려 방향을 가늠함과 동시에 돌리는 것을 자연스럽게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기구가 엉키지 않고 반복동작을 할 수 있다.
이것을 사용 할 때는 한쪽 발을 반 발짝 내딛고 다른 발로는 중심을 잡고서 허리근육을 받쳐주어야 한다. 그런 자세를 취해야 균형을 잡을 수가 있다. 그런 동작은 자연스럽게, 오른손잡이는 오른발을 내딛고 왼손잡이는 왼발을 내딛게 된다.
어렸을 적에 보면 농가에는 어느 집이나 도리깨를 갖추고 있었다. 이것은 낫, 쇠스랑, 괭이, 삽과 함께 갈무리되고 벼나 보리를 훑은 홀태와 함께 보관되었다.
나는 일꾼이 사랑방에서 도리깨를 제작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때 보면 일꾼들은 먼저 도리깨 비녀를 준비했다. 실한 탱자나무 밑동을 잘라 그늘에 말린 다음 그것을 곱게 다듬었다. 그런 후음에는 대나무 뿌리가 드러나는 오래된 것을 베어다가 적당한 길이로 자른 다음 뿌리 쪽에다 달군 쇠코지를 사용해 구멍을 뚫었다. 그런 후 미리 만들어 놓은 비녀를 꽂아가며 구멍크기를 조절했다.
그런 도리깨는 오래사용하지 못하고 이태마다 새로 만들었다. 해마다 가을철이면 타작할 것이 많아 한참 두드리다 보면 절단이 나기 때문이었다. 도리깨질은 요령이 필요하다. 일정한 힘과 간격을 두고서 타격하다가 신바람이 나면 약간 밖으로 치마를 벌려서 내리쳐도 엉키지 않았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매번 회전축이 걸려버려 사용하면서 고역을 치러야만 했다.그것을 내가 몇 해에 걸쳐 몇 차례나 해보았던가. 집에 머물 때의 일이니 스무살 남짓하던 때의 일이 아닌가 한다.
얼마 전에 나는 흥미로운 소식을 들었다. 농경문화가 점차 사라져가는 때에 어느 고장에서 도리깨축제 행사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바로 강원도 인제군에서는 해마다 이 축제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무척이나 반가웠다. 이 고을이나 저 고을이나 지금은 옛 풍속이 사라져 가는데 농경문화를 널리 알리는 것이어서 흐뭇했다.
가만히 도리깨라는 이름을 생각해 본다. 우선 이름이 흥미롭다. 머리를 도리질 한다고 해서 도리깨라 했을까. 아무튼 알 수는 없는데 흔히 아이를 보고 ‘도리도리’하고 시키는 것을 생각하면 그게 어쩌면 어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렇다면 도리깨춤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모르긴 하되 손을 머리위로 올리고 추는 춤을 이른 것이 아닐까.
문득 도리깨를 생각하니 덕석을 펴놓은 마당에 콩 다발을 올려놓고 도리깨질을 해보고 싶어진다. 엉성한 콩대를 두들기면 차차로 잦아 들면서 낱 콩이 우수수 떨어지는데, 그 풍요의 맛을 한번 느껴보고 싶다. 그러나 고향집도 이미 헐려버린 지금 그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해서 마음 속은 그리움만 짙어간다. 철떡 철떡 울리던 그 소리만 추억으로 소리로 귓가에 맴돌 뿐이다. (2020)
첫댓글 도리깨의 역사와 과학이 새롭습니다.
옛적에는 콩이나 팥, 메밀 따위를 타작할 때 도리깨질이 상식이었는데 요즘은 구경하기도 어렵게 되었는가 봅니다.
소년에 도리깨질을 배우다가 걸핏하면 도리깨를 망가뜨렸던 기억이 선합니다. 보기보다는 어렵더군요. 요즘엔 콩이나 팥, 들깨 등을 작대기로 힘들게 타작하는 형편이니 세월이 거꾸로 흐르는 기분입니다.
아버지가 깨끔하게 쓸어낸 마당에 콩대를 펴널고 도리깨로 능숙하게 콩을 타작하실 때면 저는 멀리 튀어나간 콩알을 쓸어모으다가 콩대를 한 번 뒤집어 펴널면 잠시 땀을 들인 아버지가 다시 도리깨질을 하시던 추억에 잠겨듭니다.
잊혀가는 농경문화의 유산을 채록하는 마음으로 남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써보았습니다. 그 박에도 잊혀혀가는 것이 많은데 하나씩 써볼까 합니다. 통이 뛰어 달아나면 쓸었다는 대목을 읽으니 섬진강 김영택 시인이 '쥐구명으로 들어간 콩을 보고 콩 너 죽었다'고 표현한 것이 문득 생각나 웃음이 나는군요.
도리깨질 하는 걸 몇 번 보긴했지만 그게 도리깨인 줄을 몰랐네요. 바뀌어 가는 농작문화로 옛 것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거 같아 아쉬운데 이렇게 글로남아 접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옛 것에 대한 얘기 자주 풀어주십시요..^^
이글을 읽으시고 댓글을 주셨군요.
우리 농경문화에서 점점 사라져사는 것들을 하나식 찾아내어 채록하는 마음으로 재현해 놓으려고 합니다
관심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
제 고향에 아직도 사용하는 할매 할배가 계십니다.
도리깨는 참으로 과학적인 농기구지요. 힘은 적게 들면서도 능률을 올리게 하니 지혜가 담긴 것이 분명합니다.
<도리깨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