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홧김에, 술김에' 끝없는 방화…'솜방망이 처벌' 때문?
머니투데이
정한결 기자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모텔 건물에 불을 지른 혐의로 체포된 60대 A씨가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스1
#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 모텔에서 장기투숙하던 60대 A씨는 지난 25일 자신이 묵던 방에 불을 질렀다. '술을 안준다'며 모텔 주인과 싸우다 홧김에서다. 이 화재로 결국 두 명이 숨졌다. A씨는 구속됐다.
# 6월에는 한밤중 만취한 채로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에 불을 지른 30대가 구속됐다. 그는 조계사 대웅전 주변에서 자신의 가방에 인화성 물질을 뿌린 뒤 불을 질렀고 이 과정에서 벽화 일부가 훼손됐다. 송씨는 경찰 조사에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홧김에, 술김에 저지른 불이 막대한 인명·재산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매년 1400건에 달하는 방화 방지를 위해 형량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치료가 우선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분노·우울이 부른 방화
소방청 등에 따르면 올해 총 681건의 방화(방화의심 포함) 사건이 발생해 60명이 사망했다. 미리 대응을 하기가 어려운 방화 특성상 인명피해가 크다. 올해 총 3만5000여건의 화재로 322명이 숨졌는데, 방화의 경우 건수는 전체의 1%에 불과하지만 이로 인한 사망자는 전체의 18%를 차지했다.
방화는 분노·우울 등 스트레스가 누적돼 나타나는 강력범죄로 알려져 있다. 범죄 은닉 등의 목적으로 계획적 방화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부정적인 감정이 제어가 되지 않는 이들이 스트레스 표출 수단으로 불을 택하기도 한다.
주로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지 못해 스트레스 관리가 어려운 사회적·경제적 약자를 중심으로 발생한다. 지난해 총 1317건의 방화 사건 중 838건(63%)이 경제적 약자에 의해 일어났다. 살인·강간 등 다른 강력범죄에 비해 경제적 약자의 범죄비율이 높다.
방화를 통해 희열을 느끼는 병적 방화를 비롯해 알코올 의존에 따른 상습적 방화도 많다.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다. 주취 상태서 일어난 방화건은 지난해 484건(36%), 정신질환자에 의한 방화는 136건(10%)를 나타냈다.
이에 따라 재범률도 높은 편이다. 지난해 전과자에 의한 방화는 846건으로, 이중 동종 전력이 있던 이들은 총 72명(재범률 8.5%)이었다.
지난 6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에서 조계종 관계자가 불에 탄 대웅전 외벽 벽화 일부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1
'형량 강화' vs. '처벌보다는 치료'
곳곳에서 방화범을 더욱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심신미약 사유가 인정돼 감형되는 경우가 많은데 재범률이 높아 형량 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앞서 지난 10월에는 진주에서 22명의 사상자를 낸 방화살인범 안인득이 심신미약을 인정받아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면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었다.
지난달 17일에는 경찰관들에게 욕을 하고 경찰서 내 방화를 시도한 60대 남성이 알코올 의존증후군을 앓고 있던 점을 참작 받아 징역 1년을 선고 받기도 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음주운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것처럼 심신미약으로 인한 방화도 엄벌한다는 인식을 확대해야 한다"면서 "이는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반면 일각에서는 방화 방지를 위해 형량 강화보다는 치료가 더욱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강하게 처벌한다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신질환에 따른 치료가 병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사회·경제적 환경은 여전한 가운데 감정 제어가 어려운 성격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처벌은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공 교수는 "범죄 은닉 수단으로 방화를 선택하는 등 계획적인 방화의 경우 엄벌해야겠지만 심신미약의 경우 치료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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