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16~17] 산중 문답
얼음을 녹이는 것은 눈물.
뜨거운 무엇이 필요했다.
<눈의 여왕>이라면 그럴 수 있을까.
그와 동행하여 카이를 찾아 나선다.
게르다가 되어 걷는 그 길 위에서
나는 인생을 배울 것이다.
백년 인생도 긴 역사에서 보면
하룻밤 묵어가는 나그네일 뿐이요,
구중궁궐도 우주에서 보면
개미굴 보다 작은 법이라 했다.
무엇이 두려울까.
겨울의 하루, 앙상한 가지의 지혜를 쫓는다.
■ 일시 : 2010년 01월 16~17일
■ 코스 : 양정마을 - 영원사 - 삼정산 - 상무주암 - 문수암 - 도마마을
양정마을을 들머리 삼아 산에 든다.
꽃들의 모의가 임박한 듯 흡사 초봄의 포근함이다.
사각사각 눈 밟히는 소리가 정겹다.
인간의 육신은 아둔하며 광합성은 이기적이다.
선을 그어 그 경계의 내에서만 처사가 되고
저 바랑 가득한 오만과 시기와 욕심을 내려 놓고
그 자리 배려의 온기로 채운 것을 이내 망각한다.
이내 지워질 것이다.
그렇다고 서운타 할까.
그리 또 걸어갈 뿐.
뉜들 그렇지 않으랴.
지난 청춘은 아름다웠으며 슬펐을 것이다.
그렇게 추억되고 지워졌을 것이다.
그래도 걷는 순간 만큼은 무상의 기쁨.
터벅 터벅 지루함을 이겨내는 무언의 행복.
내게 무슨 마음으로 푸른 산에 사느냐 묻기에,
웃으면서 답하지 않으니 마음이 절로 한가롭다.
이백의 산중문답이 이와 다르지 않다.
말없이 땀 훔치고 웃어 걷는다.
저것은 분명한 자유.
내 눈을 의심하랴. 내 마음을 의심하랴.
유동주 교수는 저서 <지구 반대편에서 3650일>에서 길을 잃지 않았더라면
가보지 못하였을 어느 길을 이야기 하였지만 안데르센의 '게르다'는 마음으로 길을 내어 간 것이다.
옴팍한 장터목과 제석봉 그리고 상봉과 중봉의 산세가 실로 유장하니
시인이라면 호방한 시 한수 절로 날 듯 과연 원유(遠遊)가 주는 호연지기다.
뒤돌아 보니 외로운 반야봉.
이것은 잠심(潛心).
그렇다면 역시 시인이었어야 한다.
원유와 잠심이 한 곳이니 반드시 시가 높고 깊을텐데 고작 넋 놓고마는 심사 가련타.
어디선가 설화차 향이 흩날린다.
예 이르러는 무심한 자로도 차마 뭉클하구나.
김돈중의 심사가 아니었으면 어이 달랠까.
그의 마음 빌어 내 마음 읽어 본다.
우연히 산 기슭의 절에 이르니
향 연기 자욱한 방 하나 외로이 솟아 있네.
숲은 깊어 대나무와 잣나무 뿐
땅은 고요하고 티끌 하나 없네.
속인의 귀로 스님 말씀 듣고
시름 겨운 창자에 술을 들이킨다.
고요하여 이미 맑고 깨끗한데
더불어 달빛까지 와서 비추네.
근심 풀려 앉은 자리,
아뿔사, 피안(彼岸)의 창이 또한 경계다.
창(窓)
이곳과 저곳이 소통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둠과 밝음
높음과 낮음
별무리가 쏟아진다.
바람은 종적 없다.
사내의 마음도 물결 인다.
옅은 달빛 불러내어 술 한잔 권할까.
여명.
저 붉은 기운이 좋다.
소심한 서생도 발군의 기운을 도모한다.
여명의 자연은 실로 고고하다.
더함과 뺌이 없이 진경의 미가 섬뜩하다.
앞서의 지리 능선을 뒤로 살짝 보이는 뾰족 한 필봉과
늘어진 왕산 능선 그 뒤로 황매산의 근사한 실루엣.
앞서의 금대산 삼봉산 뒤 우측으로
연화산, 별유산을 이어 가야산까지 시원한 능파.
따신 햇살을 받으며 앉아 커피 한잔 한다.
저 멀리 아스라한 남덕유의 설능까지 마음에 쟁인다.
그 시선에 담기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젊음의 열정.
저 환한 웃음이 바로 부처의 마음.
카이를 찾은 게르마의 마음.
눈물이 흐른다.
작은 점 하나 역사가 되어 내 살아갈 힘이 되는 것.
배려해야지.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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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무엇입니까.
마음이 편안한 것이지요.
여러 잔 주거니 받거니 속에
승속(僧俗)의 짧은 문답이 오간다.
삶의 즐거움이란 무엇입니까.
이해하는 것이지요.
여말, 저마다의 길을 걸은 세사람의 즐거움을 쫓으랴.
어딘가 있을 내 즐거움을 기약하랴.
그도 아니면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을 노래하랴.
북방에 눈 흩날릴 때 가죽옷을 입고 준마에 올라
누런 사냥개를 끌고 푸른 사냥매를 팔뚝에 얹은 채
들판을 달리면서 사냥을 하는 것.
산속 조용한 방 안 밝은 창가에서
정갈한 탁자에 향을 피우고
스님과 차를 끓이면서 함께 시를 짓는 것.
흰구름이 뜰에 가득하고 붉은 햇살이 창에 비칠 때 따스한 온돌방에서
병풍을 두르고 화로를 끼고서 책 한권을 들고 편안히 누워 있는데
아름다운 여인이 수를 놓다가 가끔 바느질을 멈추고 밤을 구워서 입에 넣어주는 것.
정도전의 혁명가적인 호방한 즐거움도 좋고
고려의 신하로 남은 이숭인의 처사적 즐거움도 좋고
권근의 현실지향의 온건한 즐거움도 또한 좋다.
다시금 길 나선다.
또 다른 점 하나 찍으러 간다.
그 가는 길, 즐거움과 따뜻함이 동행하여 사는 이유 될테다.
그대를 만나기 전에 / 안도현 시, 손병휘 노래
이상 행복팍팍 사랑팍팍 팬다
첫댓글 등등하던 겨울도 한풀 숨 죽이는가 봅니다. 자연과의 교감으로 남은 겨울도 기운차게 이겨내시기 기원합니다!
자연속에서 시간의 여유가 묻어나는군요~^^
대체로 여유로운 걸음이었습니다~ 날도 포근하여...
산에 오르다 보며는 저같은 경우 사진을 소훌하게...다음부터는 ...겨울의 한가로움을 잘 보고 갑니다.
마음에 남겨도 부족치 않을텐데 욕심에 ㅠ.ㅠ
시인같아요. 감성이 풍부하시고 나중에 책으로 한권 출판하셔도 될듯,,, 한적한 삼정산길 구경잘했습니다.
과찬...고맙습니다~~~
" 백년 인생도 긴 역사에서 보면 하룻밤 묵어가는 나그네일 뿐이요 " 하룻밤 밖에 안되는 짧은 인생 보람있게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아침부터 좋은 노래, 좋은 후기 잘 보고 갑니다. *^^*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이종묵 교수의 표현입니다. 시적인 표현이 근사하지요~~~
자연과 삶의 향기가 느껴집니다....어쩌면 저리 향기로울까....감성을 배우거나 하지는 못하겠지만....실행하는용기를 존경하며 ........"감동"이라는 말로 ...인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문수암 도봉 스님과 나눈 산중 문답이 기억에 남네요. 산중 조사님과도 산중 문답을 나눌 기회를 기약해 봅니다~~~
기다란 지리산 줄기를 조망하는 즐거움이 느껴집니다...^^ 이눔의 세상사가 산길 같아서 이리도 오르락 내리락 하는지... 어제는 2년전 방영한 다큐 한편을 보고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팬다님이 글이 낮잠 한숨 이루게 할 듯합니다....^^
세상사 산길 같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긍정적으로^^
이겨울도 풀리는걸 읽고서 느껴봅니다. 몇몇 머리속으로 되새겨보는 글들이 있어 오늘도 감사합니다. ㅎㅎ
그렇지요? 한결 포근하네요. 뉴스로는 더이상의 한파는 없을거라니 좋은건지...
반가운 글이 올라왔군요. 팬다님 글을 읽다보면 분명 산문인데 운율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ㅎ. 그윽한 문자향이 치열했을 겨울산행조차 잊게 만듭니다. 저는 여말 세 사람 가운데 이숭인의 즐거움이 가장 끌립니다. 치열한 삶의 전쟁이 끝날 때 즈음이면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이숭인의 꿈과 권근의 꿈이 모두 와닿네요^^ 권근의 꿈 속 때로 이숭인의 꿈을 꿀 수 있다면...욕심이겠지요?
함께못한 아쉬움..........^^
제말이요^^ 또 그리 가입시더~~
좋은코스 다녀오셨네요. 저도 카이를 찾아 나서고 싶은데 병중이신 어머니때문에 왠종일 울음으로 보내는 하루하루입니다. 밝은기운 얻고싶어 잠시 찾은 오캠에서 팬다님 후기로 기운 좀 내봅니다.
경황이 없겠습니다. 기운 내시구요 어머님의 쾌유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혼자서 겨울 눈길을 꼭 가보고 싶은곳....마음이 절로 차분해지는 곳....이 부족한 중생은 도솔암 마당에서 하룻밤 유하고 싶은 욕심을 소망으로 가지고 있다는...... 잘 보았습니다.
그런 날이 있길 또한 기원합니다. 날이 한결 포근한데 그래도 남은 겨울 건강히 잘 나세요^^
언젠가는 함께하고싶은 동반자... 멋진후기 사진 발봤다는...^^
친구~ 겨울 건강히 나소^^
ㅇ ㅏ.....어찌 그리 잘 쓰시는지....마냥 브럽꼬
청소년기때 책 읽기를 게으름핌을 두고두고 후회
지금은 사느라 바빠다는 핑계거리만 널어놓는
아둔한 그대...ㅅ ㅏ랑이 ㅡㅡ+ㆀ
ㅅ ㅏ랑이도 조만간 가을이나 겨울에 찾꼬싶다 했는데
이래도 행복하게 다녀오셔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