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파란색 나라가 금나라입니다.]
역사적으로 다문화로 인해 나라가 망해버린 경우는 은근히 있습니다. 그 중에서는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참조: http://cafe.daum.net/dacultureNO/KDW3/394 /다문화정책반대카페에서 제가 적은 글입니다.]도 있는데 청나라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된 다문화로 인해 100년 만에 나라가 망해버린 경우가 있습니다. 그 경우가 금나라죠. 금나라는 여진어로는 ‘안춘 구룬’이라고 하고 만주어로는 ‘아이신 구룬’이라고 부르는 데 한국계 여진인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일단 금나라를 세운 ‘왕기얀 아구다(완안 아골타)’의 6대조 할아버지인 김함보가 우리나라에서 만주로 건너간 사람입니다. 일단 역사는 이렇습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와 후백제를 병합한 시점 즈음, 한국인 김함보(신라인이라는 주장도 있고 고려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는 자기 친족들을 포함한 집단을 이끌고 고려를 떠나 만주로 정착합니다. 거기서 김함보는 주변 여진족들을 병합하고 생여진 부족의 부족장이 되게 됩니다.
이후 거란제국(요나라)의 눈치를 보면서 세력을 조금씩 확장해 나가지만 ‘완안아골타’이전 그의 친형인 ‘완안오아속’이 고려의 심기를 건드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여진족의 약탈에 분노한 고려 숙종은 윤관 장군에게 군대를 양성해서 복수를 할 것을 지시했고 이후 윤관 장군은 부장인 척준경을 데리고 대대적으로 여진족들을 공격해서 지금의 함경도-두만강 유역 일대를 정복하는데 성공합니다.[1108년] 그러자 당시 여진족 영토의 20% 를 순식간에 빼앗긴 ‘완안오아속’은 사실상의 사죄 및 항복 문서를 들고 와 고려에게 9성을 돌려줄 요청했고 개척이 어렵다고 판단한 예종은 윤관의 반대에도 9성을 돌려주게 됩니다.
그런데 이후 1115년 금나라는 요나라의 70만 대군을 무찌르고 요동 일대를 장악합니다. 그리고 1125년에는 송나라와 힘을 합치고 요나라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맙니다. 이 때 송나라의 휘종이 옛 요나라의 잔당들과 힘을 합쳐 금나라를 배신하려고 하자 금나라는 송나라의 수도인 변경(카이펑)을 공격해서 단 1년 만에 화북지역 전체를 정복해 버리고 맙니다![정강의 변] 송나라 입장에서는 순식간에 전체 영토의 30% 및 전체인구의 40%를 날려버린 꼴이 되버린 거였죠!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이 일이 모두 1108년에 이뤄진 고려의 공격으로 국토의 20%가 쑥대밭이 되고 전체 여진족 병력의 20%가까이가 전멸한 상태에서 이뤄낸 일입니다. 즉, 고려가 한 번 여진족의 힘을 빼버렸는데도 그 남은 힘 가지고도 이런 무서운 일을 일으켰습니다. ㅎㄷㄷ
이후 휘종의 둘째아들인 고종이 강남지역의 항주에 수도를 두고 남송을 세웠고 이후 남송은 효종이 북벌로 회수유역까지 진격하기 이전까지 금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복속되는 신하국으로 전락합니다.
다시 화북을 정복한 금나라로 돌아가 보자면 금 태조의 동생인 금 태종은 정강의 변을 일으켜 화북 전역을 정복했고 이후 금태조의 친손자인 금 희종에게 양위했는데 이 금 휘종 때부터 한족과의 다문화가 시작됐습니다. 금 희종은 한족 관료를 적극 기용하기 시작했고 황제 및 관료들이 입는 복장을 송나라 때 입은 복장 그대로 입기 시작했으며 여진 문자를 버리고 한자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금 희종의 사촌동생인 해릉양왕은 황족과 여진족 신하들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한족 관료를 앉혔고 모든 제도 및 문화를 중국식으로 바꿨으며 여진어조차 잊어버렸습니다. 이때부터 여진족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자신이 여진족인지 한족인지도 까먹을 만큼 한족에 동화돼버렸습니다. 아예 복장, 음식, 언어, 문화, 정체성, 생각 등이 한족과 다를 게 없을 만큼 동화됐는데 이후 해릉왕이 온갖 폭정을 저지르자 반정을 일으켜 황제가 된 금 세종이 다시 여진족 정체성 찾기 운동을 개시했으나 후계자인 금 장종이 다시 무력화시키고 한족과의 다문화드라이브를 가속화했습니다. 이즈음엔 아예 여진족 정체성, 문화, 언어 등이 다 날라갔으며 모든 게 한족과 다를게 전혀 없어졌습니다.
이렇게 다문화로 나라가 막장이 돼버리니 다른 나라는 건드리지도 못했습니다. 일단 금나라는 고려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어서 고려 영토는 티끌 하나도 건들지 못했고 오히려 고려가 금나라가 차지했던 보주성(평안북도 의주군 일대)을 공격해서 빼앗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금나라는 고려를 공격할 역량 자체가 없었습니다.
이 후 정체성을 잃어버린 금나라에 원한을 품은 새로운 지배자가 나타났습니다. 그가 바로 몽골초원 일대를 통일한 칭기스 칸입니다. 칭기스 칸은 금나라에 큰 원한을 품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조상인 안바가이 칸을 끌고 가서 사지를 찢어 죽인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금나라를 혐오했으며 칭기스 칸이 몽골지역을 통일하자마자 남송과 연합하고 금나라를 공격해서 순식간에 금나라 영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버렸고 그 아들인 오고타이 칸은 변경으로 도망친 금나라 황제를 쫓아 잡아버리고 금나라 자체를 아예 멸망시키고 맙니다.
이후 금나라를 세운 여진족들은 한족에게 동화돼 버렸고 아예 존재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후손들이 드문드문 사는 만주족들과 달리 금나라 황족들은 해릉왕의 탄압을 피해 산간벽지로 숨어지낸 김올출의 후손들 외에는 모두 전멸했습니다. 그나마 김올출의 후손들조차 금나라의 유산을 완전히 잊어먹고 까먹어버렸습니다.
결국 금나라는 대륙을 정복한지 채 50년도 안돼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급속하게 잃어버렸고 정체성 상실은 국토수호의지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촉매제로 작용해 이후 몽골제국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인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태를 지켜본 칭기스 칸은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파악하고 몽골문자 창제, 몽골식 법전제정, 몽골문화 확립, 몽골문자로 몽골역사 작성 및 몽골정체성 교육 등 후손들이 ‘몽골인’정체성을 지킬 수 있도록 온갖 애를 썼는데 그 덕분에 현재 몽골인들은 정체성을 지켜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금나라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청나라의 만주족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비슷합니다. ‘역사와 정체성을 잊어버린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매우 중요하고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저의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때 금나라를 한국의 역사로 봐야 하는지 약간 혼란이 있을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만약 조선족 4,5세가 완전한 한국인이라고 생각되신다면 금나라를 한국의 역사로 봐도 되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한국의 역사로 보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금나라 황족들의 고려에 대한 인식은 조선족 4,5세가 가지는 한국에 대한 인식과 비슷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상님이 나온 나라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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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금나라의 황후들 중에 발해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말도 있었습니다. 역시 엄마쪽 조상도 조상님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역시 아버지쪽 조상은 신라 아님 고려입니다. 금나라 황실에서 직접만든 역사서인 <금사>에서 김함보가 대놓고 신라말-고려초 사이의 우리나라에서 건너왔다고 진술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조상들은 다문화를 좋아하나보다....ㅎ
여진 이라는 곳으로 건너갔기에 정체성확립이 어렵다보니 한족과의 동화룰 자진해서 선택했나봅니다
멸망을 자초한 결과가 되었지만요...
쇄국정책을 행한 흥선대원군을 보면 조상들도 조상들마다 성향이 다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