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누구를 닮았겠나!
솔향 남상선/수필가
우리 7남매는 지난 2월 부산 해운대에서 모임을 가졌다. 형제들이 탄 열차는 여러 소도시 대도시를 거쳐서 부산에 도착했다. 어떤 도시는 규모도 작은 데다 구태의연해 보이는 풍모가 현대판 도시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그냥 길을 내고 도로망을 연결시켰을 뿐이지 빈촌이라는 걸 바로 알 수가 있었다. 한참을 가다 보니 첩첩산중인데도 눈에 번쩍 띄는 도시도 있었다. 현대 산업사회를 한 눈으로 보는 것 같았다. 불과 1시간 거리 시차를 두고 산업화의 명암이 엇갈리는 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하고 있었다.
우리 속담의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를 간다.>는 말이 생각났다. 수양산 그늘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강동 땅 팔십 리까지 펼쳐진다는 뜻이니, 이는 어떤 한 사람이 크게 출세하면 그 덕분에 친척이나 친구들은 물론 그들의 연고지 주변 일대가 발전하게 됨을 비유한 것이라 하겠다. 역시 사람은 크게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자신도 빛나고 그 후광으로 고향도 주민도 잘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대견스러운 일이겠는가!
형제들 가족 일행은 해운대에서 1박하고 형제애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타인들이 보기에 7남매 가족이 천하무적이라 해도 될 것 같았다. 해운대 해수욕장 백사장이 좋다기에 거기서 맨발로 즐기는 낭만의 시간도 가졌다. 촉감이 부드러운 모래는 어쩌면 개구쟁이 어린 시절을 동경하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발로만 느끼는 모래의 촉감만으로는 부족했던지 손장난까지 치는 어린애가 돼 가고 있었다. 반짝 번쩍 빛나는 숱한 모래알이었지만 같은 모습 동일한 크기는 하나도 없었다. 하고많은 사람의 모습도 성격도 그처럼 천차만별이란 생각이 들었다.
TV 저녁 뉴스에 끔찍한 사건 사고 소식이 보도되었다. 아들이 물탱크에 연만하신 아버지를 빠뜨려 죽였다는 소끼치는 뉴스였다. 인륜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지만 효가 뭐인지도 모르고 사는 도덕불감증 시대의 사람들이 안타깝지 않을 수 없었다.
월남 이상재 선생님이 살아계셨더라면 기절초풍이라도 했을 일이었다. 월남 이상재 선생님은 조부의 산소 문제가 잘못된 송사 사건이 되어 부친이 감옥에 가게 됐을 때 그 아버지의 감옥살이를 대신하여 재판관을 감동시켰다고 했다. 천연기념물 같은 효자가 아닐 수 없다. 언짢은 불효 뉴스를 들으니 어버이날에 있었던 일화 한 편이 떠올랐다.
일화 내용은 이렇다.
어버이날이 가까워오자 이 집 저 집 자식들은 부모님을 찾아뵙는다고 주변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마당마다 승용차가 즐비하게 서 있고 이따금씩 비좁은 공간엔 오토바이가 진을 치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이 손 저 손에는 카네이션 꽃에 선물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거기엔 지적 장애인으로 시집을 못 갈까봐 걱정이 많았던 논산 댁 셋째 딸도 있었다. 여인은 생각보다는 시집을 잘 가서인지 부모님께 드릴 흑염소 진액 보약 1박스에 산 더덕 한 소쿠리, 들기름 병, 오리백숙, 칡즙 1박스까지 챙기는 일도 잊지 않았다. 셋째 딸은 소아마비 남편과 두런두런 얘기하며 오는 폼이 잉꼬부부임을 말해 주는 것도 같았다. 아마도 장인 장모님께 효도하려고 강원도 특산물을 거덜내게 한 지도 모를 일이었다.
바로 그 때 인근 사는 박 노옹은 이만저만 심기가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이집 저집의 다른 자식들은 어버이날이라 해서 효도한다고 번질나게 드나드는데 당신네만 깜깜 무소식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박 노옹은 기대는 저버릴 수 없었던지 어버이날 전까지만 해도 표정이 괜찮은 편이었다. 승용차가 주차장에 주차할 때면 혹시나 당신 자식들이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창을 열고 내다보곤 하였다. 어버이날 점심때까지 그러시던 분이 저녁때가 되니 절망에 빠졌는지 한숨을 내쉬며,
“새끼 키워 봐야 소용없어!”
를 연발하더니 경로당으로 자취를 감춰 버리는 거였다.
‘자식이 누구를 닮았겠나!’
자식을 원망하기 전에 자성에 빠져 볼 일이로다.
얘기가 나왔으니 박 노옹의 이력에 대해 좀 말해봐야겠다.
박 노옹은 부모로부터 꽤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한량 끼가 있고 도박을 좋아하여 놀음으로 그 많던 유산을 탕진하다시피 했다. 그 바람에 유산 다 날리고 현재 가진 것이라고는 집 한 채밖에 없다. 천성은 가슴이 따뜻한 분이었는데 궁기가 돌다보니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게 되었고 사기꾼 기질까지 발휘하게 되었다.
결과는 신뢰를 잃게 되어 외톨이로 살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 자식들로부터도 존경받지 못하고 외면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자업자득 출이반이(出爾反爾: 너한테서 나온 것은 너한테로 되돌아감.)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새끼 키워 봐야 소용없어!”
박 노옹의 독백하는 한 마디에 대꾸라도 하듯
후한서의 내시반청(內視反聽)이란 말이 튀어 나왔다.
남을 꾸짖기보다는 자신을 돌이켜 반성해 보라는 말이니
금과옥조의 말이 아닐 수 없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 했다.
새끼가 코빼기도 안 내민다고 꾸짖기에 앞서
자식이 누구를 닮았겠나!
자성에 한 번 빠져볼 일이로다.
‘내시반청(內視反聽)! ’
약이 되길 바란다.
첫댓글 "내시반청"
자식은 부모의거울
"모든것은 내 탓이오" 라는말이 떠오릅니다.
저도 모르게 아버지의 나쁜 습관을 따라할 때가 있어 깜짝 놀라곤 합니다. 자라나는 아이에게는 좋은 습관만을 물려주도록 항상 조심해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