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따라 맛 따라 여행
덕천 염재균/ 수필가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그칠 줄을 모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온열질환 환자가 급증할 것 같다. 시원스레 내리는 빗줄기가 그리워진다. 매일 오전에 한 시간 걷기를 생활화 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시원한 나무 그늘이나 집에서 에어컨을 켜고 지낸다면 냉방병에 걸릴 것만 같다. 이열치열(以熱治熱) 이라고 더위에 강해지기 위해서는 이를 극복하는 방법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계속되는 무더위로 인한 무기력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내와 지인 부부와 같이 하루코스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여름에는 숲이 우거진 산과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는 바닷가가 여행의 목적지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간편한 복장으로 목적지인 태안을 향하여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보니 산과 들녘은 초록으로 물들어가고 있어 피곤함을 잊게 한다.
밤의 주산지인 공주와 부여지역은 밤꽃이 피어 장관의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올 가을에는 밤농사가 풍년으로 이어져 농민들에게 기쁨의 웃음이 가득하기를 바래본다.
모를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초록의 물결이라니 자연의 힘은 대단함을 느끼게 한다. 공주 휴게소에 들러 차 한 잔의 여유와 군것질 거리를 눈요기 해보며 짧은 휴식을 했다. 태안방면으로 갈수록 비가 올 것만 같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다. 한 줄기 소나기라도 내렸으면 했는데 허사였다. 쉽게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태안읍으로 들어섰다.
첫 번째 목적지인 백화산으로 향했다. 정겨운 시골길 같은 도로를 따라 가다보니 눈에 잘 띄지 않은 곳에 입구가 있어 지나쳐서 되돌아 와야만 했다.
나무로 우거진 포장된 길은 경사가 심해 차가 숨 가쁘게 오르고 있다. 가다보니 나이든 분들이 삼삼오오 배낭을 메고 힘겹게 올라가는 모습인 안쓰러워 보인다. 등산은 약간의 고통을 맛보면서 정상에 올라 해냈다는 쾌락을 즐긴다고 한다.
‘태을암’(太乙庵) 입구에 있는 임시 주차장에 도착했다. 태을암(太乙庵)의 창건주와 창건 시기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다만, 조선시대에 경상도 의성현(義城縣)에 있는 태일전(太一殿)을 이곳 태안읍 백화산으로 옮겨오면서 태을암을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태을암’이란 명칭은 단군(檀君) 영정을 모신 태일전에서 연유했다는 설이 있지만 문헌상의 기록은 없다. 경상도 의성에 있던 태일전을 충청도 태안 지역으로 옮겨온 이유는 민생의 안전과 평안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현재 태일전은 없고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이 있는 위쪽 약 200m 지점에 그 터만 남아있다. 1962년 10월 1일 전통사찰 제40호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절의 대웅전에는 중앙에 석가여래, 왼쪽에 관세음보살, 오른쪽에 소형의 석가여래가 자리하고 있다. 태을암의 동쪽 약 50m 지점에 자리한 백제시대의 삼존불은 일반 삼존불의 형식과 다르게 중앙의 보살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불상을 배치한 독특한 형태다.
금계국 등의 꽃들이 만발하고 곳곳에 바위가 있는 고즈넉한 모습의 조용한 사찰은 우리들 마음을 잠시나마 정화시키는 것 같다. 절 구석구석을 거닐며 번잡했던 마음을 내려놓는다. 잘 모셔져 있는 ‘마애삼존불입상’으로 올라가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모두가 잘되기를 기도해 본다. 국보로 지정된 마애삼존불입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백제시대의 마애불상이라고 한다. 백제 시대에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도공들의 조각 기술은 놀라움을 자아나게 한다.
절에서 400m 거리에 있는 비탈길을 숨을 헐떡이며 오르기 시작했다. 지속된 무더위로 인해 숲속의 그늘도 냉기가 사라진지 오래인 것 같다. 더운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간다. 바위로 이루어진 백화산(白華山) 정상(284m)에 오르니 태안읍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맑은 하늘이 아니라 자세히 볼 수 없어 아쉬움이 크다. 이곳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던 곳이라는 팻말도 보인다.
정상에 있는 바위에 앉아 간식을 먹고 있는 아낙네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군침을 생긴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태안 시내를 조망해 볼 수 있는 장소로 뜻이 깊은 것 같다. 여자들은 노년일수록 무릎이 남자들보다 약하다고 한다. 산행을 포기하고 절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아쉬움에 ‘태을암’을 잠시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본다. 언제쯤 다시 올 수는 있을는지 기약을 할 수가 없다.
여행에 있어서 길 따라 산천구경을 하는 것도 좋지만 먹는 것도 중요하다. 지인의 동창이 알려준 태안의 맛집이라는 간장게장을 하는 식당을 간신히 찾아갔다. 꽃게가 비싸긴 비싸다. 금값처럼 귀한 느낌이다. 1인당 33,000원이라니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반찬도 별로 없는데도 말이다. 쓸쓸함을 뒤로하고 식당을 나와 싱싱한 꽃게를 사러 인근에 있는 동부시장으로 갔다. 가격을 물어보니 상상이상이다. 왜 이렇게 꽃게 값이 금값인지 놀랄 뿐이다.
놀란 마음을 진정하며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안면도로 가는 다리를 건너 가다보니 ‘백사장항’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이름 그대로 백사장이 펼쳐져 있는 항구처럼 느껴져 호기심에 그곳으로 갔다. 생각과는 달리 항구가 제법 크고 관광버스 여러 대가 와 있는, 먹거리가 풍부해 보이는 항이었다. 먼저 수협 위판장으로 들어가 싱싱한 수산물들을 살펴보았다. 우리가 사고자 하는 꽃게는 어디를 가나 금값이었다. 1kg에 2마리의 가격이 오만원이라 망설이다가 손자와 자식부부를 위해 필자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2kg를 샀다. 다른 생선들도 사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여 참아야만 했다. 건어물과 수산물을 파는 곳을 돌아다니며 눈요기를 하며 항구에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리고 식당 근처에서 태안의 특산물인 씨알이 굵은 햇마늘 반접을 사서 먹어보기로 했다. 어느덧 시계는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다. 날씨가 서늘했더라면 안면도의 송림공원으로 가 솔향기를 맡으며 거닐고 싶었다.
무더운 날씨가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한다. 보이지 않은 마력이 작용하기 때문은 아닐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드넓은 서산 방조제를 지나 간월도로 갔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뒤라 ‘간월암’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간월암은 조선시대 이성계의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작은 암자로 고려 말 이곳에서 수도하던 중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우쳤다고 하여 암사 이름을 간월암(看月庵)이라 하고, 섬 이름도 ‘간월도’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페사 되었다가 일제 강점기 때 ‘만공선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하루에 두 번 섬이 되었다가 뭍이 되는 절이다. 다른 암자와는 달리 간조 시 육지와 연결되고 만조 시에는 섬이 되는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섬이라 많은 관광객들이 들리는 곳이다. 이곳 에는 무학대사가 손수 짚고 다니시던 지팡이를 꽃아 놓아서 자랐다는 사철나무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담장 밑에는 웃음을 짓고 있는 작은 모양의 배불뚝이 승려의 포대화상이 눈에 띈다. 행복이 따로 있나 웃음이 행복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담장밖에는 바다물결이 넘실대고 떼를 지어 날고 있는 가마우지가 어촌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곳 간월도의 어리굴젓이 유명해 관광객들이 사가는 곳이기도 하다.
돌아오는 길에 공주휴게소에 들러 특산품인 ‘밤빵’과 요거트를 맛보며 길 따라 맛 따라 여행을 마무리 한다. 여행은 현장을 직접 경험해보며 느끼는 체험의 장이라 할 수 있다.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일수록 무더운 날씨에는 집에만 있지 말고 여행을 다니며 새로운 것을 접하면서 마음을 젊게 가져야 한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2025. 6. 12.)
첫댓글 염재균 수필가님, 제2인생을 너무 멋지게 사시고 계십니다.
아내와 늘 함께하고 계신 것, 하나님께 축복받는 지름길입니다. 다음엔 아내를 사랑하는 글 한 편 쓰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