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입수한 모암재공(31세 휘 계철 괴봉공파)에 대한 만시(죽음을 슬퍼하면서 쓴 시)입니다.
작자는 장흥군 안양면 월암출신의 묵헌 위후식(30세 안항공파)이며 출전은 '묵헌집'입니다...
모암재공은 1894년 중앙관료제도 및 지방행정구역 개편으로 나주부 산하 장흥군의 탁지부(현재의 재정경제부)의 주사(중앙과 지방 64명 정원)로 1896년에 유도천(향교 추천)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당시 장흥지역은 1894년과 1895년에 일어난 동학난과 이에 따른 장흥성 전투와 장흥 석대들 전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전사했으며 이후 수습과정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투옥 또는 사형 당했을 때이므로 장흥땅과 그인근의 민심이 매우 흉흉할 때 였지만 모암재공께서는 시시비비를 공평히 처리해서 관군과 동학군 양쪽에서 비난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하산사 중건을 주도했습니다.
이시는 1913년에 지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천천히 시를 음미해 보시길 바랍니다...
◇ 輓主事族姪啓哲
주사 족질 계철을 애도하다.
묵헌(黙軒) 위후식(魏侯植 1848-1929)
吾門天挺奇男子
하늘은 우리 문중에 빼어난 남자 내셨으니
風節爲時矜且模
당세에의 꿋꿋한 절개는 자랑이고 모범이었다.
仁無愛惡眞君子
어질어 악인도 싫어하지 않는 참 군자였으니
勇斷是非偉丈夫
옳고 그름을 용단하는 위대한 장부였다.
幾載靑雲遊北路
북쪽 길 올라 몇해나 높은 벼슬 지냈는가
一生令聞檀南都
일생 아름다운 명성은 남녘에 넘쳐났다오
其身欲百人誰贖
누가 대속하다고 그 몸 백번 바치나.
猿鶴徘徊只自吁
원숭이 학이 배회하자 스스로 탄식만 하네.
주)其身欲百人誰贖
<시경(詩經)> (황조(黃鳥))에
"저 푸른 하늘이여, 우리 좋은 사람을 죽이도다.
만약 대속 할 수 있다면 사람마다 그 몸 백 번이라도 바치리라."
*.魏啓哲(헌종6년 庚子1840~癸丑1913) 향년 74
字는 치선(致善), 號는 모암재(帽巖齋). 長興邑 杏園里生. 建陽丙申年(1896) 儒道薦하여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이다.
장흥향교 전교를 지낸 和堂 魏聖日(1912~1996)과
장흥군보훈회장 友堂 魏利彦의 曾祖가 된다.
*.위후식(魏侯植)
자(字)는 덕헌(德憲)이요 헌종(憲宗) 무신(戊申) 1848년9월19일 미시생(未時生)이며 호(號)는 묵헌(黙軒) 우호(又號)는 능언재(能言齋)다. 의용(儀容)이 단수(端粹)하고 덕성(德性)이 온후(溫厚)하여 학종정주(學宗程朱)하고 행준소학(行準小學)하니 수양임천(修養林泉)하여 부지불온(不知不慍)하다. 기사(己巳) 1929년5월27일 종(終)하니 향년(享年)이 82요 묘(墓)는 안양운흥향매동손좌(安良雲興香梅洞巽坐)며 유유고(有遺稿)하다. ○ 배(配)는 청풍김씨(淸風金氏)요 부(父)는 인세(麟世) 조(祖)는 이해(履海)며 문평공길통후(文平公吉通后)요 외조(外祖)는 영광김석후(靈光金錫垕)다. 병인(丙寅) 11월8일 졸(卒)하니 묘(墓)는 공영동원부우(公塋同原祔右)요 유1남(有一男)하다. ○ 배(配)는 광산김씨(光山金氏)요 부(父)는 익수(益洙) 조(祖)는 연재(淵載)며 문정공태현(文正公台鉉)의 후(后)요 외조(外祖)는 풍천노수홍(豊川盧壽洪)이다. 신해(辛亥) 1851년생이며 계축(癸丑) 1913년8월14일 졸(卒)하니 묘(墓)는 공영동원부좌(公塋同原祔左)다.
재치(財痴)...
휼륭하신 위문중 조상님들의 옛발자취와 귀한글을 잘보고 갑니다.
번역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