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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석주 원문보기 글쓴이: 수졸재 주민
『천 개의 고원』, 질 들뢰즈/펙릭스 가타리, 김재인 옮김, 새물결, 2001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쉬지 않고 읽는다. 나는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을 먹고 산다. 책의 성분 요소들인 질료들과 날짜와 속도들을 먹고 산다. 그렇게 함으로써 책이라는 다양체를 내화(內化)한다. 나는 하나의 이성, 하나의 주체가 아니라 다양한 이성, 여러 개의 주체다. 차라리 흩뿌려진 점들, 차이의 유목민들이다. 책은 하나의 점이며, 점들로 이루어진 선이다. 나는 그 점과 점들을 잇는다. 유목민은 오아시스라는 사막에 찍힌 점들을 찾아 움직이지만 실은 움직이지 않는 자다. 정주민들은 정착하기 위해서 이동하지만 유목민들은 떠도는 도중에 멈춘다. 유목민의 길은 정주민들이 만든 길과는 근본에서 다르다. 정주민의 길은 고속도로와 같이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며 사회공간과 접속하는 길이다. 유목민의 길은 실존의 경로들이고, 불확정적이고 무규정적인 영역을 가로지르며 개체들과 집단들을 잘게 쪼갠다. 정주민들의 길은 울타리들과 울타리들 간의 경로이고 홈이 패인 도로인 까닭에 경로를 벗어날 수 없으며 오로지 그 길을 따라서만 갈 수 있다. 그러나 유목민의 길들은 언제라도 샛길로 빠지고 지나간 곳은 다 길이 되니, 그 길은 하나의 경로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방으로 열린 길이다.
세계는 거대한 사막이고 책은 사막 위에 있는 오아시스다. 나는 오아시스를 찾아 사막을 횡단하는 여행자다. “책에는 대상도 주체도 없다. 책은 갖가지 형식을 부여받은 질료들과 매우 다양한 날짜와 속도들로 이루어져 있다. 책이 어떤 주체의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이 질료의 구실과 이 질료의 관계들의 외부성을 무시하게 된다. 지질학적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은 선한 신을 꾸며낸다. 다른 모든 것들처럼 책에도 분절선, 분할선, 지층, 영토성 등이 있다. 하지만 책에는 도주선, 탈영토화 운동, 지각 변동 운동들도 있다. 이 선들을 좇는 흐름이 갖는 서로 다른 속도들 때문에, 책은 상대적으로 느려지고 엉겨 붙거나 아니면 반대로 가속되거나 단절된다. 이 모든 것들, 즉 선들과 측정 가능한 속도들이 하나의 배치물을 구성한다. 책은 그러한 배치물이며, 그렇기에 특정한 누군가의 것이 될 수 없다. 책은 하나의 다양체이다.” 책은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의 들판으로 나가게 만들며, 있음을 넘어서서 생성으로 나를 내몬다. 책은 혈통 모델이 아니라 이질성의 집합체인 반(反)계보로 나를 이끈다. 책은 나의 내면 형질을 바꾸고 나는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와 접속하고 끊임없이 재배치된다. “책은 세계의 탈영토화를 확실하게 해주지만 세계는 책을 재영토화하며, 다시 책은 스스로 세계 안에서 탈영토화된다.” 나는 하나의 지층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책과 더불어 탈영토화하고, 세계에 의해 재영토화했다가, 다시 책과 더불어 탈영토화하는 존재다.
다시 자본주의가 미쳐 날뛰는 계절이 돌아왔다. 자본주의는 그 본질에서 분열증 자체이기 때문에 이상한 일이 아니다. 주기적으로 위기는 돌아오고 증식되고 소멸하며 다시 그 과정이 반복된다. 환투기와 주식 투매의 미친 바람이 불고, 자본은 이익이 있는 곳으로 순간 휘몰아쳤다가 자양분을 빨아먹고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자본의 유동적 흐름은 포식자처럼 취약한 외환시장과 주식거래를 삼켜버린 뒤 소화할 수 없는 뼈들만 뱉어낸다. 전지구적 규모의 자본주의라는 정글에 방목된 사자들은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운용되는 토끼들을 사냥하기에 여념이 없다. 사자들에게 도덕과 인의를 가지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자는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사자는 이성을 가진 주체가 아니라 차라리 자본주의적 욕망이라는 유령이다. 우리는 날마다 그 유령과 싸운다. 최근에 다시 『천 개의 고원』을 읽는다. 이미 여러 번 통독한 책을 다시 읽고 또 읽는다. 이 책은 유령에 대처하는 방법, 그것과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점유하고, 거주하며, 보존하는 영토에서 끊임없이 달아나라 ! 늑대 한 마리가 아니라 늑대 무리로 달아나라 ! 무리로 달아나야만 하나의 도주로가 아니라 천 개의 도주로를 만들 수 있다. 하나는 붙잡히지만 천 개는 붙잡히지 않는다. 경로를 따르지 말고 그것을 자주 이탈하라 ! 내가 어디로 움직일지 그들이 알 수 없게 하라 ! 정주민들이 아니라 유목민으로 살아라 ! “유목민들은 사막을 만들고 동시에 사막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들은 탈영토화의 벡터들이다.” 『천 개의 고원』은 화폐와 노동의 흐름을 장악하고 있는 국가-기계의 포획에서 도망가도록 부추긴다. 국가-기계는 수많은 금기의 거미줄들을 만든다. 제도들과 정책, 법과 치안의 그물로 국민들을 포획하고 국가라는 지층에 편입시킨다. 지층화. 그 금기들은 위반의 욕망을 도발하고, 지층화에 저항하도록 한다. 나는 항상 붙잡아 두려는 일체의 포획 장치에서 탈주 중이다. 조세와 병역 의무를 지우는 국가의 다양한 포획 장치들로부터, 자본주의의 기계들, 이를테면 미국 정부,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이사회로부터. 나는 소수-되기를 원한다. 나는 울타리도 척도도 없는 유목민적 노모스다.
지난 10년 간 내가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문제적인 책은 『천 개의 고원』이다. 무수한 책들 중에서 이 책은 단 한 권의 책이다. 리좀-나무, 탈영토화-재영토화, 무리-군중, 사본-지도, 분자-그램분자, 소수-다수, 유목성-정주성, 전쟁 기계-국가 장치, 매끈한 판-홈 패인 판과 같은 무수한 이항 대립의 쌍들을 변주하며, 사유의 방식, 기능, 양태들에 대해 설명한다. 이 책은 내가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난삽하면서도 가장 흥미로운 지적 자극을 주었던 책이다. 이 책은 장들이 아니라 열 다섯 개의 고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내 관심과 흥미의 대상이 되었던 고원들은 첫째 고원 ‘서론 : 리좀’, 2장 ‘1914 ― 늑대는 한 마리인가 여러 마리인가 ?’, 일곱 번 째 고원 ‘0년 ― 얼굴성’, 10장 ‘1730 ― 강렬하게-되기, 동물-되기, 지각 불가능하게-되기’, 열두번 째 고원 ‘1227 ― 유목론 또는 전쟁 기계’ 등이다. 들뢰즈/가타리는 차이의 철학, 혹은 욕망의 미시정치학에 대해 말하기 위해 생물학과 언어학과 음악학과 경제학과 정치학을 가로질러 간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니라 다양체, 선, 지층과 절편성, 도주선과 강렬함, 기계적 배치물과 그 상이한 유형들, 기관 없는 몸체와 그것의 구성 및 선별, 고른판, 그 각 경우에 있어서의 측정 단위들이다.” 이것이 들뢰즈/가타리가 요약한 이 책의 주제다. 리좀, 동물-되기, 소수-되기, 영토화와 탈영토화, 포획, 탈주선, 지층과 지층화, 기관 없는 신체, 얼굴성, 추상기계, 배치, 매끈한 공간과 홈 패인 공간, 공리계의 접합접속........ 등등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무수의 자의적 개념들이 춤추기 때문에 쉽게 해독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여러 번 읽는 수밖에 없다. 이해할 수 없다면 친밀해져라 ! 이것이 내가 취한 방식이다.
서구 자본주의는 리좀과 풀을 잃어버렸다. 풀은 유일한 출구인데, 그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에서 위기는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위기는 자본의 생리와 그 한계에 갇힌 자본주의에 내재된 불가항력적인 형질이다. 자본주의는 도박판에서 판돈이 움직이는 원리와 마찬가지로 움직인다. 거기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 오로지 강자 독식의 원리만이 작동할 뿐이다. 리좀은 무엇인가 ? “위계적인 방식으로 소통하며 미리 연결되어 있으며 중앙 집중화되어 있는 체계와는 달리, 리좀은 중앙 집중화되어 잇지 않고, 위계도 없으며, 기표작용을 하지도 않고, ‘장군’도 없고, 조직화하는 기억이나 중앙 자동장치도 없으며, 오로지 상태들이 순환하고 있을 뿐인 하나의 체계이다.” 풀과 리좀을 잃어버린 그것은 자꾸 경직되고 지층화된다. 황폐화된 그 영토는 조만간 잡초에 의해 뒤덮일 것이다. “결국 잡초가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잡초는 중국, 바로 동양적 성분들을 가진 그 무엇이다. 서구 자본주의를 모방하고 따라가서는 그 아류 밖에 될 수가 없다. “자본주의는 모든 종류의 구성체들의 교차점에 있으며 언제나 본성상 새로운 자본주의이며, 동양적인 얼굴과 서양적인 얼굴을 발명하고 그 둘을 개조해감으로써 최악의 자본주의를 만들어간다.” 그 최악의 자본주의를 따라가야 하는가 ? 저 제국들이 강제하는 그 경로를 버려야 산다. 시작도 끝도 없고 언제나 중간을 취하며 중간에서 자라고 넘치는 리좀을 찾아야 한다. 리좀의 차원들 혹은 움직이는 방향들, 다양체로, 소수-되기로 살아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잡초의 성분들을 연구하고 잡초-되기라는 독자적인 길을 가야 한다. 잡초만이 무성해지고, 무성해진 잡초들이 마침내 들을 덮어버린다. 『천 개의 고원』은 우리에게 음악을 들려준다.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외치면서 노래한다. 귀를 기울여보라. “풀을 따라가라. 물길을 따라가라.”는 노래가 들리지 않는가.
몽해항로
장석주시집
제 1부
자벌레
그믐
뱀을 밟다
협재바다
서귀포
대한 무렵
당신에게
빨래
얼룩과 무늬
샘해어
바둑시편
저공비행
제 2부
벼룩
파리
모기
매미 1
매미 2
쌀벌레
귀뚜라미
달팽이
비둘기
소
제3부
푸른 잠
가을밤
소나기
장마
수의를 깁는 밤들
비
소한
젖니
폭설
돌개바람 이는 날
寂
추사
사막
영월
제 4부
숯의 노래
石佛
초복
가을 아침에
뿔
사막
만삭
소리박물관
가을의 시
장한몽
성북동 호랑이
제5부
몽해항로 1
몽해항로 2
몽해항로 3
몽해항로 4
몽해항로 5
몽해항로 6
제1부
자벌레
뽕잎 뒤에 붙어서 비 피하는
자벌레,
비 오시고 심심하니
쌍계사 저녁 공양 때까지
종일을
뽕잎 經이나 사각사각 외운다.
그믐
흑염소 떼가 풀을 뜯고 있다.
어둑했다.
젊은 이장이 흑염소 떼 끌어가는 걸
깜빡했나 보다.
내 몸이 그믐이다.
가득 찬 슬픔으로 앞이 캄캄하다.
저기 먼 곳이 있다.
먼 곳이 있으므로 캄캄한 밤에
혼자 찬밥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뱀을 밟다
대가리 곧추 세워 덤벼드는
초록 뱀,
풀섶에서 일어난 가벼운 접촉사고다.
미안해, 너를 밟은 건
실수였을 뿐이야 !
협재바다
푸른 一劃이다.
이 세상 다시 오면
여기를 가장 먼저 달려와 보고 싶다.
아련한 가을비 속에
죽은 고모 이마보다
찬 바다 !
서귀포
연필과 노트를 산 뒤
인근 대학교 운동장 계단에 걸터앉아
웃통 벗고 농구하는 얘들을 쳐다본다.
새 筍들이 초록 입술 내밀어
햇빛을 다슬기 빨듯 빤다.
어느 해 늦봄,
서귀포가 떠오른다.
햇빛은 비둘기 빛,
귀 없는 바람이 불었다.
천도복숭아 먹은 뒤 남은 복숭아씨 같은
서귀포에 다시 가고 싶다.
대한 무렵
황혼에 장지문은 치자빛이고
백동화로에는 재가 식는다.
목덜미가 으슬하다.
사는 게 다 그렇다.
병풍 수탉이 목 빼고 울자
괴목반닫이 위에 목기러기 한 쌍
날개를 푸드덕이고
목단항아리 매끈한 표면에
철이른 모란 두어 점
붉은 꽃을 피운다.
당신에게
초겨울 찬비 오고
젖은 채 어는 빨래,
당신 떠난 뒤 뒤늦게 깨닫는다.
당신을 사랑했던 건
영혼이 아냐,
오, 그 허리 !
빨래
빨래를 빨랫줄에 내다 널고
첫 수확한 감자를 찜통에 찐다.
당신이 다녀간 뒤 며칠 앓았다.
잠자리 편대는 높이 뜨고
하늘은 푸르렀다.
찐 감자를 먹으며
프란츠 카프카를 읽는 동안
빨래는 잘 마른다.
곧 어둠 속에
반딧불이 몇 점 나타나고
호수로 이어지는 개울 물소리는
밤이면 더욱 우렁차리라.
얼룩과 무늬
욕망과 어리석음이
얼룩이라면
꿈과 고요는 무늬다.
얼룩이 나를 가리켜
얼룩이라 한다.
성급함과 오류들이
얼룩을 만들었을 것이다.
감히 무늬라고 말하지 못한다.
무늬로 살고 싶은 게
꿈이라고 말할 수는
있었을 터다.
심해어
세상은 어지러웠다.
어제의 친구가 적으로 표변하여
벼린 칼을 겨누고
베는 세태가 무서웠다.
세상을 등지는 게
살 길로 보였다.
눈 감고 귀 막은 채
숨어 살지만
누군가에게는 빛으로 發光한다.
어둠 속에서 몸을 환하게 밝히는
저 은둔 군자들 !
바둑시편
패착과 자충수로 끝난
一局,
이마를 찧는다.
나가고 물러설 때를
아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지금도 長考 중,
돌이 놓여야 할 자리는
딱 한 군데다.
*
흑과 백이 끌어안은 태극,
盤床에서
흑과 백은 돌로써 평등하다.
이 無等의 나라에
피바람이 휘몰아친다.
天元이 흐려지고 花點마다 싸움이다.
一局의 삶이
있을 뿐이다.
*
급소를 맞자
판세는 빠르게 기운다.
유랑하는 곤마들.
결국 쫓기다가 맞은
고단한 終局 !
*
축이나 회돌이에 걸린
돌들이 한 무더기씩 뜯겨나간다.
초년 운은 축이라면
말년 운은 회돌이다.
이 판은 글렀다 !
죽은 돌들이 흘린 피가
낭자하다.
오, 핏물 위에
수정 무지개가 선다.
*
俗手에 당하다니 !
기운 국면,
자책은 깊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판은 끝났다.
후회가 커도
착점을 되돌릴 수는 없다.
*
두 눈 못낸 대마가 꿈틀대며
무겁게 앞으로 나간다.
欲界의 불길 속이다.
아들아, 사는 건
꽃놀이패가 아니더구나.
대나무는 백 년에 한번 꽃을 피운다지만
반상 위에서는
삶과 죽음이 순간마다 엇갈리고
그 순간마다 백년이
반상 위로 흘러간다.
*
혼자 복기를 한다.
국면이 일목요연하다.
패국의 빌미가 된
실수를 기어코 찾아낸다.
뼈아픈
딱 한 수의 過慾 !
*
흑백의 돌들이 판 위에 어지럽다.
저녁은 모둠발을 딛고 오고
축에 걸린 돌들은 속수무책이다.
고독이 밀물로 몰려온다.
*
피 마르는 싸움은 끝나고
몇 군데 잔 끝내기만 남겼다.
서로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 없는 和局이다.
종국은 가까워지고
다시 꼼꼼하게 계가를 한다.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한 집 반 차이
남은 건 패배를 승복하는 일뿐
공배를 메우는
손끝에 초저녁 별들이 뜬다.
*
결국 퇴로는 끊겼다.
눈을 씻고 들여다봐도
대마가 살 길은 없다.
전체를 놓치고 부분에 집착한 탓,
이기는 법은 단순하나
지는 이유는 천 가지다.
바둑이나 인생은 닮았다.
왜 행복은 단순하게 오고
불행은 복잡하게 오지 않던가.
거울의 뒷면 같은 진실,
그걸 못 보고
허상에 홀리면 그르치는 것이다.
저공비행
황사가 덮친 뒤
지붕들은 실의에 빠졌다.
먼 산들은 조금 더 멀어지고
먼 바다에는 파랑주의보가 내려진다.
실의는 너희들 것이 아냐,
꽃을 비싸게 팔아보려는 자들의 것.
태양계에서 명왕성이 퇴출당하고
새정부가 들어서며 국정원장은 바뀌었다.
첫번째 우주선에 탑승할 한국인도 이소연 씨로 교체되었다.
밖에서 돌아와 코트를 벗는데 단추가 떨어진다.
무심코 마당 한 귀에 떨어져 있는 새똥들.
작년의 새들은 돌아오지 않고
수천 년을 흐르던 물길이 인위로 바뀌리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흐름을 바꾸려는 자들이 돌아온 것이다.
나는 강까지 걸어가던 습관을 버렸다.
옆집에서 갓난아기가 울음이 들린다.
베트남 며느리가 아이를 낳은 모양이다.
아기들은 습관의 동물들이다.
배고프면 울고 기저귀가 축축해지면
또 운다. 목욕과 이야기와 젖만이
그 울음을 달랜다. 모든 습관은 무섭다.
모란꽃이 피는 이 세상은
태어나는 자들과 죽은 자들이 임무를 교대하는 곳,
忌日들은 언제나 빨리 돌아오고
기일을 남긴 자들은 서둘러 잊힌다.
어제는 아버지의 일곱 번째 기일이었다.
나는 기일에 납골당을 가는 대신에
아버지가 말년을 보낸 성북동엘 다녀왔다.
옛 성곽 아래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며
남의 집 마당을 들여다보고
빨랫줄에 걸린 빨래들이 잘 마르는가를 염려했다.
기일 저녁에는 면도를 하고
정종 파는 집에 가서 정종 석 잔을 마셨다.
동생들은 연락이 없고
내 슬픔은 미적지근했다.
미국 경기침체가 본격화하리라는 소식에
어제 코스닥은 맥을 못 추고 급락했다.
페놀이 스민 강물에서 죽은 고기들이 뜨고
대운하로 한몫 챙기려는 자들이
잠 못 든 채 사업구상에 골몰하는 이 밤,
빈 깡통을 차서 어둠 저쪽으로 날렸다.
깡통에 맞고 어둠 한쪽이 일그러진다.
판자들은 삭고 판자에 박힌 못들은
붉은 땀을 흘리며 세월을 견딘다.
조카딸년과 당신과 사철나무는 푸르고,
모든 이쁜 것들은 다 푸르다.
나는 모든 뻔뻔한 자들의 공범자다.
용서하는 자가 아니라 용서받아야 할 자다.
푸른 것들만 무죄다.
당신 속에는 암초와 법칙들이 자라난다.
나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없다.
매화와 산수유가 찬바람 속에서 꽃눈을 준비하는데
황사로 개화는 며칠 더 늦춰진다.
기어코 조카애의 초경이 터진다.
제2부
모기
여름밤의 이 불청객,
품성이
저속한 것은 짐작했다.
남의 피 빨며 산 것,
가난 때문이라고 변명하지 마라.
네 본색이다.
그렇게 살지 마라 !
벼룩
늙어 주름 많은 몸을
벼룩이 깨문다,
따끔따끔,
아프지 않다.
아직은 살았구나.
벼룩아, 네가 깨물어 생긴 인연
고맙다 !
파리
비굴했다,
평생을
손발 빌며 살았다.
빌어서 삶을 구하느라
지문이 다 닳았다.
끝끝내 벗지 못하는
이 남루 !
매미 1
지하 감옥 칠년 끝에
보름 남짓 얻은 자유,
건달로 낙인 찍혀
허물 벗는 이 居士,
억울해 ! 말로 못 다할
설움이나 풀어낸다.
매미 2
밤의 근간에서
빠져나온 樂士들
歌舞一切 일생도 한 철로 끝장이다.
늦가을 산책길 어귀,
여기저기
죽은 매미들.
쌀벌레
밥물 앉히려고
묵은 쌀 씻으려니,
뜨물 위로
쌀벌레 두어 마리.
내 양식
축낸 놈들이
바로 늬들이었구나 !
귀뚜라미
댓돌 위에 대 그림자,
밤새
우는 귀뚜라미,
못 말리는 본성이다,
꺾지 못한
취향이다.
울어라 ! 울음으로써
네 노동을 마쳐라.
비둘기
취객의 토사물에
달라붙은 衆生들,
암, 먹고 사는 일은
숭고한 修行,
장엄한 일이다.
달팽이
사는 것 시들해
배낭 메고 나섰구나.
이슬 맞는 노숙은 고달프다 !
알고는 못 나서리라,
그
아득한 길들 !
소
돌 속에 해가 지고
돌 속에 물 마른다.
순하게 날 저물고 황소는 끔뻑끔뻑,
어느덧 편모슬하의
밤이 온다.
참 소슬하다
제3부
푸른 잠
소나무는 굽고
솔잎은 푸르렀다.
기차가 지나갔다.
어느덧 집은 낡았다.
今生을 용서하니,
식욕이 푸르렀다.
가을밤
먹 갈아 蘭 치는데,
劃이 굽은 듯 곧다.
명월 뜬 저 하늘에
날아가는 기러기떼
누구의 書體인가요,
꿈틀대는 저 명필 !
소나기
구름은 滿朔이다,
양수가 터진다.
흰 접시 수 만 개가 산산이 박살난다.
하늘이 천둥 놓친 뒤
낯색이 파래진다.
장마
비 보름째
뒹굴뒹굴
무위도식 보름째
이게 사는 건가
이게 사는 건가
내 안에 갇힌 돼지들
답답하다,
꿀꿀꿀 !
수의를 깁는 밤들
까맣게 회오리쳐 몰려가는 되새떼
저 허공
어디서 폭탄세일 하는 모양이다.
수의를 깁는 밤들이
가을과 함께 깊어간다.
비
산뽕나무에 푸른 비
금광호수에 푸른 비
아침 먹고 봐도 비
옥수수 먹고 봐도 비
산빛은 종일 푸르고
굴속 여우도 굶는다.
소한
쌩쌩 추운 날 골라
노인네 눈 감았네.
꽃철 오면
맘 변할까,
서두른 게 분명하다.
빈 밭에 고라니 한 놈
난데없이 뛰어간다.
젖니
녹지 않은 잔설 위로
복수초 촉 돋는다.
소한 대한 견뎌내고
솟구치니
의연하다.
요것 봐, 아기 잇몸에
쌀톨 만한
젖니 났어 !
폭설
큰 눈 온 뒤
눈 구덩에 갇힌 고라니,
길 끊긴 백색 바다에
고립된 산간마을들.
공중에
박새 한 마리
雪山 등지고 날아간다.
돌개바람 이는 날
종일 비 오시고
돌개바람 이는 날
개들이 짖는다.
뭘까, 나라는 존재는
벽에 머리를 찧는 사연이
꽃 진 탓만 아니다.
寂
宗家 古宅
뒤 뜰 안
어린 딸 혼자 논다.
뜰에는 저 혼자 폈다 지는 민들레,
누 억년
金漆한 햇빛
눈부시게 내린다.
추사
봉은사에 가면 板殿이라는
딱 두 字 현판 글씨를 보고 오너라.
지독히 못 생겼다.
서툴고 졸렬하다.
오래된 저 졸렬함에
심장 그만 멎는다.
붓 천 자루 닳아서 몽당붓이 되고
벼루 열 개가 닳아서 구멍이 뚫렸다.
이만한 수고도 없이
추사 솜씨 얻었겠나 !
사막
유엔 난민지위를 얻은
모래들의 취락,
고요라는 짐승들의 집단서식지,
뼈들의 명상센터,
시간의 블랙홀.
영월
저녁이면 물것들이
살냄새를 맡고 몰려든다.
기절한 듯 몸 뉘인
물설고 낯선 旅宿,
영월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물것들이 일러주는 것이다.
제 4부
숯의 노래
밤의 가장자리에서
숯이 탄다.
제 몸 벌겋게 태워
부르는 노래,
너는 필경 淸音을 가졌구나.
숯이여, 자만을 경계해라.
득음에 이르는 길은
멀고 또 멀다 !
石佛
죽산 가는 길목,
머리 없는 石佛
서넛이 서서 비에 젖는다.
사그막골 두 노인네
점심 끼니로 찐 감자 두어 개
천일염에 찍어 먹고
종일 오시는 비나
내다본다.
초복
다리 밑에서 동네 남정네들이 모여
개를 잡고 있다.
무자비했다.
개 비명이 우레 같다.
이런 세상에서 살았구나 !
이런 세상을
피안인 듯 살았구나 !
가을 아침에
가을 아침은
깊이를 경멸하며 거부한다.
이미 투명한 표면으로
깊이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맑은 것들이 몰려온 이 아침,
외동딸은 멀리 있다.
혼자 사는 아비는
거울 앞에서 허연 수염을 깎는다.
면도를 하는 일은
쓸쓸하면서도 기쁜 일이다.
변덕스런 날씨와
구름들, 비, 우레와 더불어
나는 오래 묵은 새로움이다.
뿔
정수리께가 근질근질하더니
마침내 금강석 촉이 돋는다.
속귀에 있던 마음이 각질로 변하면서
살을 뚫는다.
이 초식짐승의 징표,
뿔은 돋아나서
面壁을 쿵쿵 들이받는다.
내겐 남모를 슬픔이 있는 게다.
벌써 북쪽 山間엔
첫얼음이 얼었다 한다.
만삭
저 앞에 걸어오는 젊은 여자,
만삭이다.
남의 애를 가진 저 여자,
발걸음이 당당하다.
한 몸 안에 두 생명이 동거하는
저 이쁜 둥근 몸,
저 무덤이 피안으로 가는
출구다 !
소리박물관
소리박물관에 온 사람들은
소리박물관에 소리가 없다는 것에 놀란다.
소리박물관에 소리는 없고
소리 王朝의 무덤에서 발굴한 부장품들,
소리의 화석들만 진열되어 있다.
소리의 상호침투와 어지러운 메아리,
거기서 건너온 나는
일체 소리가 없는
소리박물관의 침묵이 낯설다.
침묵은 소리의 극명한 태초,
소리의 피안이다.
저 침묵에 귀의함으로써
소리는 소리의 생을 다한다.
가을의 시
가을이 왔습니다.
연인은 헤어지게 하시고,
슬퍼하는 자에겐 더 큰 슬픔을 얹어주시고,
부자의 재물이 감쪽같이 사라져
그것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음을 알게 하소서.
학자에게는 치매나 뇌경색을 내려서
평생 닳도록 써먹은 뇌를 쉬게 하시고,
한없이 달리는 자의 뼈를 부러뜨려
혹사당한 근육에 긴 휴식을 내리소서.
모든 수도자들과 사제들은
더 냉정하게 하소서.
전쟁을 계획 중인 자들은
더 호전적이 되게 하소서.
폐허만이 평화의 가치를 알게 하니
도처에 분쟁과 유혈혁명이 일어나게 하소서.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서정시를 써온 자들은
상상력을 탕진해서
더는 시가 나오지 않아 붓을 꺾게 하소서.
시집을 찍어 내느라
나무를 베는 일이 없게 하소서.
다만 시들고 마르고 바스러지며
이루어지는 멸망과 죽음들이
왜 이 가을의 축복이고 아름다움인지를,
부디 깨닫게 하소서.
장한몽
- 이문구를 기리며
십년 전 청진동 골목 어귀에서
문득 스쳐 지나간 한 사내.
암소를 닮은 그 사내의 어깨에
상심한 별 몇 개가 떨어지고
바람은 한사코 외투자락에 매달렸다.
그 뒤에 전해들은 낙향 소식,
몸에 몹쓸 병이 슬었다는 소식,
세상보다 앞서 세상을 버렸다는 소식,
중모리 자진모리로 넘어가는 게 세월이던가.
중부 내륙의 기후는 여전한데
양양 낙산사 銅鐘이 火魔에 녹고
숭례문도 한 떨기 숭엄한 불꽃으로 졌다.
외양간에서 암소가 순한 눈으로 울 때
남쪽에는 동백꽃이 뚝뚝 졌다 한다.
다시 청진동 골목 어귀에 오니
낙향했다는 그 사내
그림자 드리우고 우두커니 서 있다.
짧은 낮 긴 꿈 덧없다, 덧없다,
천년 오동나무 거문고는 우는데
春窮의 시절이다, 해가 지고 있다
성북동 호랑이
- 만해 한용운을 기리며
호랑이가 내려오던 성북동 계곡이다.
구름이 내려와 탁족을 하던
그 계곡엔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남의집 마당에 살구나무 홀엄씨가 그림자 데리고 사는데,
뒷방 웃목에 자개장롱 모시고
舊韓末 살림 꾸리며 늙은 내외가 산다.
의가 좋다고도 나쁘달 수도 없는 쓸쓸한 내외를
나는 보육원을 찾듯이 주말마다
고등어 한손을 사들고 찾던 시절이다.
내외 중에서 적십자 병원으로 혈액투석 다니던
남자가 먼저 세상을 뜨고
혼자 남은 여자도 늙고 병들었다.
나는 늙은 그이를 어머니라고 부르는데,
아, 고등어조림을 침침한 식탁에 올리던 쓸쓸한 家系여.
배를 밀며 나아가는 길이
살 길이더냐 죽을 길이더냐.
오동꽃 피고 오동꽃 지고
의심 많은 나는 응달진 데나 들여다본다.
나의 가계 일부가 있던 성북동에 갈 때마다
해와 그늘과 구름과 初氷과 맨드라미를 거느리며
성북동 일대를 오르내리던
심우장 호랑이를 생각한다.
굽실굽실 고개를 잘도 조아리던 중들 앞에서
악취가 난다고
포효하던 그 호랑이를 생각한다.
제5부
몽해항로
― 樂工
누가 지금
내 인생의 전부를 탄주하는가.
황혼은 빈 밭에 새의 깃털처럼 떨어져 있고
해는 어둠 속으로 하강하네.
봄빛을 따라 간 소년들은
어느덧 장년이 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네.
하지 지난 뒤에
黃菊과 뱀들의 전성시대가 짧게 지나가고
유순한 그림자들이 여기저기 꽃봉오리를 여네.
곧 추분의 밤들이 얼음과 서리를 몰아오겠지.
一局은 끝났네. 승패는 덧없네.
중국술이 없었다면 일국을 축하할 수도 없었겠지.
어젯밤 두부 두 모가 없었다면 기쁨도 줄었겠지.
그대는 바다에서 기다린다고 했네.
그대의 어깨에 이끼가 돋든 말든 상관하지 않으려네.
갈비뼈 아래에 숨은 소년아,
내가 깊이 취했으므로
너는 새의 소멸을 더듬던 손으로 악기를 연주하라.
네가 산양의 젖을 빨고 악기의 목을 비틀 때
중국술은 빠르게 주는 대신에
밤의 邊境들은 부푸네.
몽해항로
― 흑해행
잡풀들이 무너져 키를 낮추고
들의 웅덩이들이 마른다.
가을 가뭄은 길고 꿈은 부쩍 많아지는데
사는 일에 신명은 준다.
탕약이 끓는데, 이렇게 살아도
되나, 옛날은 가고 도라지꽃은 지고
간고등어나 한 마리씩 먹으며 살아도 되나.
요즘 웬만한 길흉이나 굴욕은 잘 견디지만
사소한 일에 대한 인내심은 사라졌다.
어제 낮에는 핏물이 있는 고기를 씹다가
구역질이 나서 더 먹지를 못했다.
비루해, 비루해. 남의 살을 씹는 거,
내 口腔에서 날고기 비린내가 난다.
이슬람이라면 라마단기간에 금식을 할텐데,
금식은 얼마나 순결한가.
안성 시내에서 탄 죽산행 버스 안에서
취한 필리핀 남자 두 명을 만났다.
안성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겠지.
황국이 피는 이 낯선 땅에서 술을 마시며
헤매는 저 이방의 노동자들 !
기온이 빙점으로 내려가는 밤이다.
서재에서 국립지리학회보를 들여다보는데
뼛속의 칼슘들이 조용히 빠져나간다.
지난해 이맘 때 자주 출몰하던 너구리가
올해는 보이지 않는다.
하천 양쪽으로 콘크리트 옹벽을 친 탓일까.
배나무에서 배꽃 필 무렵
잉잉대던 벌들도 올해는 드문드문 보인다.
주변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많다.
가창오리들이 꾸륵꾸륵 우는 소리 들으니
집 아래 호수의 물이 어는 모양이다.
꿈속에서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버스를 탄다.
누군가 흑해행 버스라고 했다.
검은 염소들이 시끄럽게 울어댄다.
한 주일쯤 달리면 黑海에 닿는다고 했다.
나는 참 멀리도 가는구나, 쓸쓸한 내 간을 위하여
누가 마두금이라도 울려다오,
마두금이 없다면 뺨이라도
철썩철썩 때려다오, 마두금이 울지 않는다면
나라도 울어야 하리 !
몽해항로
― 당신의 그늘
구월 들어 흙비가 내리쳤다.
대가리와 깃털만 남은 멧비둘기는
포식자가 지나간 흔적이다.
공중에 뜬 새들을 세고
또 셌다, 자꾸 새들을 세는 동안 구월이 갔다.
식초에 절인 정어리가 먹고 싶었다.
며칠 입을 닫고 말을 삼간 것은
뇌수막염에 걸린 듯 말이 어눌해진 탓이다.
여뀌와 유순한 그늘과 나날이 어여뻐지는
노모와 함께 나는 만월의 슬하에 든다.
당신의 그늘을 알아,
당신에게 그늘이 없었다면
몇 그램의 키스를 탐하지 않았을 터다.
만월에는 오히려 星雲의 흐름이 흐릿하다.
금식 사흘째다. 모자를 쓰고
안성 시내를 나갔다가 원산지 표시가 없는
쇠고기를 먹었다. 중국에서는 부화 직전의
알을 깨서 통째로 씹어 먹는다고 했다.
사람의 식욕은 처절하다.
초승달이 뜨고 모란꽃 지던 밤은
멀리 있었다, 밤엔 잠이 오지 않아
따뜻한 물에 꿀을 타서 마셨다.
흑해가 보고 싶었다.
물이 무겁고 차고 검다고 했다.
날이 차진 뒤 장롱에 넣었던 담요를 꺼냈다.
안성종고 이영신 선생이 올해 텃밭 수확물이라고
고구마 한 박스를 가져왔다.
조개마다 진주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삽살개의 눈에 자꾸
눈꼽이 낀다. 속병을 가진 모양이다.
집개는 아파도 아프다는 소리를 못하는데,
나는 치통 때문에 신경 치료를 받으러
두 달간이나 치과병원을 드나든다.
작년보다 흰눈썹이 몇 올 더 늘고
바둑은 수읽기가 무뎌진 탓에 승률이 낮아졌다.
흑해에 갈 날이 더 가까워진 셈이다.
몽해항로
― 낮에 보일러수리공이 다녀갔다
겨울이 들이닥치면
북풍 아래서 집들은 웅크리고
문들은 죄다 굳게 닫힌다.
그게 옳은 일이다.
낮은 밤보다 짧아지고
세상의 저울들이 한쪽으로 기운다.
밤공기는 식초보다 따갑다.
풀 우거진 마당에 놀러왔던 유혈목이들은
동면에 들었을 게다.
개똥지바퀴들은 떠나고
하천을 넘어와 부엌을 들여다보던 너구리들도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나는 누굴까, 네게 외롭다고 말하고
서리 위에 발자국을 남긴 어린 인류를 생각하는
나는 누굴까.
나는 누굴까.
낮에 보일러 수리공이 다녀갔다.
산림욕장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속옷의 솔기들 마냥 잠시 먼 곳을 생각했다.
어디에도 뿌리 내려 잎 피우지 마라 !
씨앗으로 견뎌라 !
푹풍에 숲은 한쪽으로 쏠리고
흑해는 거칠게 일렁인다.
구릉들 위로 구름이 지나가고
불들은 꺼지고 차디찬 재를 남긴다.
빙점의 밤들이 몰려오고
물이 언다고
물이 언다고
저 아래 가창오리들이 구륵국구륵국 운다.
금광호수의 물이 응결하는 밤,
기름보일러가 식은 방바닥을 덥힐 때
나는 누굴까,
나는 누굴까.
몽해항로
― 설산 너머
작약꽃 피었다 지고 네가 떠난 뒤
물 말은 밥을 오이지에 한 술 뜨고
종일 흰 빨래가 펄럭이는 걸 바라본다.
바람은 창가에 매단 편종을 흔들고
제 몸을 쇠로 쳐서 노래하는 추들,
나도 몸을 쳐서 노래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덜 불행했으리라.
노래가 아니라면 구업을 짓는
입은 닫는 게 낫다.
어제는 문상을 다녀오고,
오늘은 돌잔치에 다녀왔다.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작약꽃과 눈[雪] 사이에 다림질 잘 하는 여자가
잠시 살다 갔음을 기억할 일이다.
떠도는 몇 마디 적막한 말과
여래와 같이 빛나는 네 허리를 생각하며
오체투지하는 일만 남았다.
땀 배인 옷이 마르면
마른 소금이 우수수 떨어진다.
해저보다 깊고 어두운 밤이 오면
梅里雪山을 넘는 야크 무리들과
양쯔강 너머 금닭이 우는 마을들을 떠올린다.
누런 해가 뜨고 흰 달이 뜨지만
왜 한번 흘러간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가.
바람 불면 바람과 함께 엎드리고
비가 오면 비와 함께 젖으며
곡밥 먹은 지가 쉰 해를 넘었으니,
동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가는 일만
남았다. 저 설산 너머 고원에
금빛 절이 있다 하니
곧 바람이 와서 나를 데려가리라.
몽해항로
― 탁란
가장 좋은 일은 아직 오지 않았을 거야.
아마 그럴 거야.
아마 그럴 거야.
감자의 실뿌리마다
애기 젖꼭지만한 알들이 달려 옹알이를 할 뿐
흙에는 물 마른 자리 뿐이니까.
생후 두 달 새끼 고래는 어미 고래와 함께
찬 바다를 가르고 나가고 있으니까,
아마 그럴 거야.
물 뜨러 간 어머니 돌아오시지 않고
나귀 타고 나간 아버지 돌아오시지 않고
집은 텅 비어 있으니까,
아마 그럴거야.
지금은 탁란의 계절,
내 알과 네 알은 섞여 있고
어느 알에 뻐꾸기가 들어 있는 줄 모르니까,
아마 그럴 거야.
아마 그럴 거야.
먹장구름이 동지나해 상공을 지나가고
양쯔강 하류의 물들이 황해로 흘러든다.
저 복사꽃은 내일과 모레 필 복사꽃보다
꽃 자태가 곱지 않다.
가장 좋은 일은 내게 오지 않았어.
기다려야겠지.
기다려야겠지.
좋은 것들은
늦게 오겠지, 가장 늦게 오겠지.
아마 그럴 거야.
아마 그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