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후견제도가 시행된 지 1년 8개월이 지났지만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내며 당초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가로채는 등 범죄에 악용할 가능성도 커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성년후견제도는 발달장애, 치매 등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후견인을 지정해 돕는 제도다.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손과 발이 돼 병원 진료·입원, 은행·관공서 업무, 재산관리 등 사무를 잘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과거에는 장애인을 금치산자(법률상 무능력자)라 해서 각종 법률행위를 제한하는 데 급급했다면 후견제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면서도 후견인을 통해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게 특징이다. 게다가 정신 능력이 감퇴하는 노인들도 주 이용 대상이기 때문에 고령화 사회에 연착륙하기 위한 대안으로도 각광받았다.
하지만 성년후견제도의 현주소는 이러한 취지나 기대와는 전혀 딴판이다.
◇후견인 횡령 막을 시스템 부실= 지난 2013년 국내 한 기업체 회장이 뇌출혈로 쓰러지자 그의 아들과 부인이 서로 후견인이 되겠다면 법정 싸움을 이어갔다. 자식이 없는 한 자산가가 병으로 거동이 불편해지자 조카들이 후견인 자리를 노리고 자산가에 접근해 갈등을 빚기도 했다.
재산을 두고 서로 후견인이 되겠다고 나선 사례들이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후견인은 자신의 생활을 희생해가면서 피후견인을 위해 봉사하는 힘든 일이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희생’보다는 피후견인의 ‘재산’만 보고 후견인을 자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런 경우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빼돌리는 횡령·배임 등 범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성년후견제가 안착하려면 후견인이 제대로 활동하는지를 감시·감독·지원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 후견인에 대한 감독은 가정법원의 조사관 1명이 사실상 전담하는 실정이다. 법원 허가를 받은 후견인(지난 2월말 기준)이 461명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후견인 범죄를 예방하거나 적발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이현곤 법무법인 지우 변호사는 “후견감독인을 양성하고 관리하는 감독전문기관을 별도로 만드는 등 감독 강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배우자나 자녀 등이 후견하는 친족후견인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친족 간 재산범죄는 ‘친족상도례’ 원칙이 적용돼 처벌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후견인에 한해 친족상도례 원칙을 적용할 수 없게 해 친족 후견인의 권한 남용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 미비·홍보 부족으로 속수무책= 후견인 A씨는 지난해 자신이 후견하는 B씨가 갑자기 사라지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뒤늦게 알고 보니 B씨 가족들이 후견인에게 얘기도 않고 B씨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켜버린 것이다. 환자가 스스로 입원을 결정하면 병원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고 입원 기간도 조절할 수 있지만 B씨는 가족의 ‘동의입원’을 거쳤던 터라 6개월 동안 폐쇄 병동에 머무르게 됐다. 때문에 A씨는 졸지에 후견 업무를 사실상 중단해야 했다.
피후견인의 병원 입원, 거주지 이동 등을 관리하는 건 후견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관련 법이 정비되지 않아 후견인이 임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신 병원 입원이다. 정신보건법은 가족 등 보호자의 동의만으로 환자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후견인이 선임되면 정신병원 입원 같은 중대한 사안의 경우 후견인 동의 절차를 거치도록 해야 하지만 아직 규정이 고쳐지지 않아 A씨와 같은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은행, 관공서 등에서 성년후견제를 제대로 알지 못해 후견인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후견인 교육을 담당하는 성민성년후견지원센터 관계자는 “한 후견인이 지적장애가 있는 피후견인을 대신해 은행에 카드를 발급하려 갔는데 직원이 ‘카드 발급은 당사자가 직접 해야 한다’고 거부해 낭패를 본 일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금융기관이나 관공서에 후견인을 상대할 때 필요한 ‘업무 표준 매뉴얼’을 만들어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도 사각지대 놓인 10만 독거치매노인= 가족 없이 홀로 살면서 치매까지 앓고 있는 노인에겐 후견인 서비스가 절실하다. 이들은 장기요양급여, 기초연금 등 정부 지원을 받지만 이를 관리할 능력이 떨어지는 데다 복지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기초연금 액수를 올리는 등 복지 지원을 강화해도 이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복지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독거치매노인이 성년후견제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독거치매노인의 이웃 등이 통장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연금을 빼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10만여명으로 추산되는 이런 어르신에게 후견인이 절실하지만 정부가 이들을 연계해주는 등의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아 제도 이용의 사각지대에 있다.
서양에서는 고령치매노인들이 성년후견제 이용자의 60%에 이르는 등 후견제를 고령화 시대 중요한 복지서비스의 하나로 활용하고 있는 점을 배울 필요가 있다.
새롭게 도입된 성년후견제도에서 후견인의 유형은 크게 법원이 후견인을 결정하는 법정후견인과 후견계약에 따라 본인이 후견인을 결정하는 임의후견인이 있습니다.
이중 법정후견인은 청구요건과 권한의 범위, 선임의 효과 등에 따라 성년후견인, 한정후견인, 특정후견인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성년후견의 종류는
1. 사무처리능력이 지속적으로 없다고 인정돼 대부분의 법률행위를 조력받은 성년후견
2. 일부분의 조력만 받는 한정후견
3. 일시적 또는 특정 업무에 대한 후원을 받는 특정후견
4. 장래의 정신능력 악화에 대비해 본인이 직접 후견인과 후견 내용을 정하는 임의후견이 있음
새로운 성년후견제도는 가정법원의 권한부여에 따라 의료행위나 우편물 관리, 거주지 결정 등 신상과 관련한 지원도 가능합니다.
또 후견인이 선임돼도 당사자가 스스로 결정하는 영역이 보장되고 신상과 관련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보장돼 있습니다.
후견감독인을 두거나 가정법원에 의해 후견업무를 감독할 수 있게 됐고 후견과 관련한 별도 등기제도를 운영하기 때문에 후견인 선임여부에 대한 개인정보도 보호가 됩니다.
후견인을 선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법정후견인을 선임하고자 하는 경우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검사, 지방자치단체의 장 등이 가정법원에 후견개시의 심판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임의후견의 경우에는 별도로 후견계약을 맺은 뒤 후견개시가 필요한 상황이 됐을 때 가정법원에 임의후견감독인의 선임을 청구해야 하며 각각의 심판청구에 대한 가정법원의 결정이 나면 후견인이 선임되고 후견업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성년후견제도가 도입된 계기는.
국제적으로 장애인의 법 앞에서 평등을 규정하고 있는 UN장애인권리협약(제 12조, 2006년 도입)이 배경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단체를 중심으로 16개 단체로 구성된 '성년후견제추진연대'가 2004년 결성되는 등 주로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제도의 도입을 강력하게 희망해 성년후견제도가 도입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