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믿으면 (요11:40~42)
교회를 잘 다니고 주일도 잘 지켰는데 갑자기 원하지 않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마음에 번민이 일어나고 실망과 낙심되어 하나님은 물론 교회까지 원망하거나 멀리하게 됩니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교회를 다녔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하는 반감이 생기게 됩니다.
눅7: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눅7: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라는 말씀과 같이 예수님께 헌신적으로 봉사하던 마리아라는 여인이 있는데 그의 오라버니가 병들어 죽은 것입니다.
막14: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은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의 가치가 있었는데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기 전 오천 명이 먹을 양식을 구하는 값이 이백 데나리온이라고 하니 그 값어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식으로 계산을 하면 청년 칠천오백 명이 먹을 수 있는 가치가 있는 옥합이 됩니다.
이렇게 값진 옥함으로 헌신한 마리아와 그의 동생 마르다에게 큰 시험이 찾아온 것입니다.
요11: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라는 기록이 있고
요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오라버니가 죽은 원인이 마치 예수님 때문이라는 푸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요11: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요11: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첫 번째는 믿음입니다.
요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나라를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움직이고 역사 되는 곳입니다.
[롬4:3]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아브람이 인격적으로 교육적으로 사업성이 좋아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창12: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라는 말씀과 같이 부인을 방패로 삼아 생존하려는 비겁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부인이 아기를 생산하지 못하니 부인의 종으로 있는 애굽 여인 하갈을 첩으로 들여 이스마엘이라는 서자를 낳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비록 인간적인 면에서 부족함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이기에 그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그와 그 후손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전 재산과 같은 옥함을 깨어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칼로 씻기는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백 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아낌없이 드리는 믿음을 보여 그와 그 후손이 영원한 복을 받은 것과 같이 이 여인은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재산이 옥합을 예수님께 드리는 헌신을 한 것입니다.
막14: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천한 여인이요 작은 여인의 믿음이 예수님과 더불어 영원히 기록되는 영광을 받게 됩니다.
두 번째로 시험을 극복하는 믿음입니다.
요1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지금도 사람이 죽으면 최소 삼 일 장을 지냅니다.
아마도 죽은 자 가운데서 삼 일만에 살아나신 것 때문에 이런 풍습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요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라는 말은 푸념이 되지만 또 다른 의미로 보면 믿음의 기다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내 오라버니가 죽었고 삼 일이 지나 냄새가 나지만 예수님이 이 자리에 오시면 죽음이 생명으로 바꾸겠다는 믿음이 포함되 있는 것입니다.
백 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리아 산으로 가서 번제로 드리기 위해 삼 일 길을 가야 했습니다.
창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주신 곳으로 가더니
창22:4 제 삼 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자기 아들을 죽여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기 위해 삼 일 길을 가는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시험에 들지 않고 삼 일 길을 잘 참고 끝내 승리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상급을 받게 됩니다.
자신의 오라버니가 죽은 지 삼 일이 지나 냄새가 나지만 예수님이 오시면 사망의 문제가 풀린다는 믿음이 삼 일의 시험을 극복하는 힘이 된 것입니다.
시험이 있다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약1:12]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주님 뜻에 맡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창22: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창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백 세에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려고 칼로 아들을 내려치는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자포자기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욥1:21]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내 것이 없는데 우리들은 어느새 내 것과 네 것이 구별되어 마음에 탐욕으로 가득하고 아까워서 욕심이 나서 이웃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을 섬기지도 못합니다.
아브라함은 범사를 하나님께 맡기는 순종의 마음을 가졌고 마리아와 마르다는 살고 죽는 것이 예수님께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요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오라버니 나사로는 예수님이 여기 계시지 않았기에 죽었고 여기 계셨으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단순한 믿음이지만 아주 위대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살고 죽는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요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믿음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드리는 아주 귀한 향기입니다.
이 향기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흠향하시고 기쁘신 대로 믿음의 성도들에게 아브라함의 기적과 오늘 마리아와 마르다의 기적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https://youtu.be/5MeRQNMxXp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