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할때 눈빛이 달라지네요!”
“그런가요?살려고발버둥치려고,그래서 그런 걸거예요. 아마자살하려고마음먹은사람
도 이크랙앞에 데려다놓고 올라가라고 하면죽기살기로 매달릴걸요?”
이명희는왁자지껄수다를떨면서웃다가도크랙에붙어서는날카롭게변했다.눈빛,심지
어는 다정스런 손짓마저도 사정없이 크랙 속에 박히며 확보물로 둔갑했다. 이처럼 치열해
야하는게인생사는원리라고온몸으로말하는듯했다.“그렇게해서얻는게무엇이냐?”
고 물으면 대개 ‘성취감’따위를 운운할 텐데 그녀는 단지 “미쳤다”고 말했다. 그럼 수많은
등반을 했어도 남측 오버행이 그녀에게 끼친 영향이 뭘까? 이 질문엔 세계의 다른 벽을 오
르기위한대비였을뿐이라고답했다.
보편적원칙이지배하는세상과분리된듯한그녀의말투.등반가로서의사상이투철한그
녀의생각과말은일반어로해석할필요가있다.
“크랙등반을즐기는사람들이많아졌으면좋겠어요.그렇게되면많은사람들이산을보는
다른시각을갖겠죠?국내크랙등반대상지도많아질거고요.”
이 말은 즉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 방식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여러 기회가
지금보다많을거고,더즐거운세상이되지않을까요?”쯤으로해석할수있겠다.
남편 최석문도 그녀와 같은 과다. 둘은 일심동체로 세상의 더 높고 어려운 벽을 오르는 게
인생최대 목표다. 좋은 차, 넓은 집, 많은 돈 따위를 이들은 바라지 않는다. 자신들이 삶이
담긴영화를이들은그들마음껏연출하는중이었다.
“보건(아들)이요?걔도걔인생이있는거예요.누구의간섭없이알아서살도록교육중이
에요.당연히우리조차도걔인생에끼어들순없는거고요.‘너는너인생을살아라,우리도
우리인생을살테니’이런식으로말해줘요.”
이명희는 지금 손정준클라이밍연구소에서 운동하고 있다. 일주일에 3회,
운동과강습을병행하고있다.지난해도봉산강적크랙과이번남측오버행
등반을위해따로계획을짜서훈련을하진않았다.
“볼더링보단 지구력 위주로 훈련하긴 했는데, 크랙 등반을 위해서는 암장
훈련이그렇게큰의미가없어요.실내에서는‘멘탈’을키울수가없거든요.
자연에서 등반하기 위해서는 힘도 힘이지만 공포감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
력을갖추는게중요해요.”
그리고그녀는오로지이크랙을위해등반에매달리지도않았다.
“저는 성격이 좋은 편이 아니에요. ‘나는 할 수 있어!’라고 하면서 긍정적인
마음을갖는편이아니에요.내가어떤일을할때내능력에맞춰그범위를
정확하게재는편이죠.강적크랙이나남측오버행이나처음엔제가오를수
있는루트가아니었어요.그렇기때문에‘난꼭이걸끝내야해’라면서매달
리지않았어요.대신포기하지는않았죠.아무튼하다보니까된거예요.”
이러저러한 의미에서 등반은 이명희를 성장시키는 발판이다. 그래서 그녀
는 여태껏 다른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죽하면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
도등반가로서의삶을살겠다고했을까.
“19살에 등반을 처음 접했어요. 이후로 지금까지 같은 취미활동을 하고 있
는셈이죠.여러번생각해봤는데,저는굳이어렸을때가아니더라도40살,
50살이되어도어떻게든바위타는인생을살았을거예요.”
남편 최석문을 만나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지금처럼 등반활동을 할 수 있었을
까? 하긴 했어도 지금처럼은 못했을 것이라는 게 그녀를 아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다.실제로 그녀는 그 원동력이
남편 최석문 덕분이라고 했다.
“우리 놀이공원 놀러 갈까?” “싫어! 웬 놀이공원. 산이나 가자!”, “자기, 빽 하
나 필요해?”“무슨 빽이야.캠이나 사줘!”
등반, 산 외에 둘이 나누는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둘의 관심사는 오로지 높고
어려운 벽을 오르는 것뿐이라 둘은 지금 딱히 큰 걱정 없이 살고 있다. 수입이
적긴하지만 등반을 즐기면서 살기엔 충분했다.
“그냥 오래 오래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보건이중학교2학년인데,뭐 알아서
할 거고. 사실 이번에 남편이 히말라야 갔을 때 마음을 엄청 졸였어요. 우리는
서로 가지말라는 말은 안해요. 다만
걱정은하지.잘 갔다 왔으니까.건강하게
같이 계속 늙을때까지‘할멈,할아범’하면서 계속같이 등반했으면 좋겠어요.”
크랙 아래쪽에서 이명희의 확보를 보는 최석문이 어렴풋이 보였다. 이번엔 주
인공이 이명희다. 그걸 아는 최석문은 기꺼이 프레임에서 빠졌다. 둘은 앞으로
도 이것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그들만의 클라이맥스를 완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