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할 수 있다고 믿든, 할 수 없다고 믿든, 믿는 대로 될 것이다(요20:24-29)
-사도 도마 이야기-
2022.9.18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카더라 방송”이라는 것이 있다. 이 방송은 진짜 있는 방송은 아니고, 사람들이 직접 듣거나 체험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들은 것을 전달하는 것을 뜻한다. 카더라 방송의 내용에는 좋은 내용도 있고, 그렇지 못한 내용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이 방송은 본인이 직접 듣거나 체험한 소식이 아니기 때문에 퍼질수록 점점 더 왜곡되고 부풀려질 위험성이 더 많다. 그래서 어디서든지 섣부른 짐작이나 한쪽 말만 듣고 머릿속으로 쓴 소설 내용을 송출하면(소문내기 등), 억울한 사람이 나오고, 좋았던 신뢰관계에 금이 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들이 카더라 방송의 위험성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알아감에 있어서 카더라 방송 수준에만 그치면 안 된다. 만약 우리의 신앙이 그러한 간접경험 수준에 머문다면, 그 사람의 믿음이 고개는 끄덕이지만, 가슴에는 와 닿지 않는 “지식적인 동의 수준”에 정체될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의 삶 속에서 직접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일이 반복되면, 그 사람의 신앙은 큰 성숙을 이룰 수 있다. 그렇기에 “OO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수준”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성경을 읽고, 부르짖어서 기도하면서 나의 하나님을 체험하고 만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응답체험이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말이다. 이러한 체험들이 반복되면서 신앙의 뿌리가 단단해지고 예수님을 믿는 맛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오늘 본문 말씀인 요한복음 20장은 예수님이 부활 후에 일어나났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부활 후에 여러 여인들에게 나타나셨고, 골방에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도 오셨다(요20:19). 그런데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 도마(Thomas)라는 제자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 그 소식을 듣고 자신이 직접 자신의 손을 못 자국에 넣어보고, 창에 찔린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말했다(요20:24-25). 도마의 이런 모습은 언뜻보면 굉장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의심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마의 이런 모습은 사실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얼마든지 “1+1”을 “무한대(1+1=∞)”로도 만들 수 있다. 도마는 자신의 생각의 벽에 갖혀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했다. 그는 삼년 반 동안이나 주님을 따르면서 믿어왔지만, 여전히 뭔가 2% 부족한 믿음이었다. 우리 주변에도 도마처럼 몇 개의 모래 알갱이같은 지식이나 생각의 울타리에 갖혀서 더 광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도마의 이러한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신 주님께서 일주일 후에 도마도 함께 있을 때,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도마에게 주님의 손과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 보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미는 자가 되라고 하셨다(사진 : 의심하는 도마 - 카라바조 작품 1602년).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
그러자 도마가 직접 눈으로 부활의 주님을 확인한 후에 비로소 이렇게 고백했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 이다”(요20:28)
여기서 중요한 말은 “나의(My)”라는 단어이다. 이 말 속에서는 주님을 인정하고 믿는 그의 진심이 느껴진다. 우리는 보통 사도 도마하면 가장 먼저 “의심 많은 도마”라는 수식어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는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로는 더 이상 그는 카더라식의 나약하고 의심 많은 제자가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확실하고 열정적인 복음전도자로 변했다. 그가 확실한 믿음으로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은 그 이후의 행동을 통해 알 수 있다. 도마는 주님이 승천한 후에 다른 어떤 사도들 보다 먼저 선교활동에 전념했다.
특히 그는 인도(India) 남부지역에까지 건너가서 엄청난 선교활동을 했다(이때 사도 도마가 한반도에까지 왔었다는 주장들도 있다). 도마의 선교여행은 사도 바울보다 10년 이상 앞선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지체하지 않고 즉시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마28:19)”는 말씀에 순종했다는 말이 된다.
처음 19년 동안은 예루살렘을 출발해서 북인도까지 왔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얼마간 머물다가 다시 22년 동안 두 번째 선교여행을 하게 된다(AD52-72). 사도 도마의 선교여행 기간은 사도 바울의 전체 선교여행 기간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길다. 그는 인도의 남부인 첸나이(Chennai, 마두라스) 일대에서 전도하다가 A. D72년에 마이라풀에서 이교도 원주민들의 창에 찔려 순교하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첸나이에는 사도 바울의 기념교회와 그의 무덤이 있다.
사도 도마의 영향으로 현재 첸나이와 그 일대에는 무려 6,000여 개의 교회가 있으며, 지역인구의 18%가 기독교인이다. 신학교도 300여개에 이른다. 현재 인도에는 전체 인구의 3%에 해당하는 약 3,900만 명의 기독교인이 있는데, 그 중에 2,000만 명이 첸나이가 있는 남인도에 몰려있다. 사도 바울의 경우에도 그렇지만 사도 도마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우리를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사역의 출발은 그가 부활의 주님을 직접 만나고 체험한 후에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후부터였다. 이처럼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만나고 계속해서 체험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그리고 이 글을 지역 주민들이여, 이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하다. 여러분 중에 만약 지금까지는 누구 때문이나 체면이나 인사치례 또는 환경이나 어떤 인간적인 이유 때문에 교회에 나오고 안 나오고를 결정했다면, 이제는 그 모든 것과 상관없이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인격적이고 의지적으로 나의 하나님을 만나기 바란다. 그래서 크고 단단한 믿음의 거목이 되기 바란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사도 도마처럼 될 수 있도록 가장 먼저 은혜의 자리에 빠지지 말자. 따지고 보면 도마가 부활의 주님을 직접 만져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하게 된 것도, 처음에 은혜의 자리에 빠졌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아무리 오래 다녔던 사람도 빠지기 시작하면 습관이 된다.
또한 우리들도 사도 도마처럼 복음을 위한 강력한 새 타작기계로 쓰임 받기 위해서 내 입을 열어 강렬하게 부르짖어 기도하자. 서양 속담에 “지독한 몸부림은 신도 알아준다.”라는 말이 있다. 기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포드 자동차의 창업자인 헨리 포드는 어려웠던 시절을 기도의 힘으로 이겨냈던 것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할 수 있다고 믿든, 할 수 없다고 믿든, 믿는 대로 될 것이다”(헨리 포드)
정말 그렇다. 믿는 대로 되는 것이 어찌 자동차 만드는 일 뿐이겠는가?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는 더욱 그렇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주님은 반드시 만나 주신다.
그러므로 강렬한 기도의 몸짓으로 직접 나의 하나님을 만나자. 그래서 계속해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무엇인지, 신유는 무엇이며, 성령의 불이 무엇인지를 경험해 가자. 절대 자신을 영적침체나 태만 상태에 방치하지 말자. 그래서 나의 하나님을 체험하고, 복음의 도구로 멋지게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자.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