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굴, 뭍에 오르다

생굴, 뭍에 오르다                                                                                                                   최 화 웅      새해 들어 강추위가 기승이다. 이맘때면 가덕 대구와 그 너머 통영 생굴이 제철이다. 15년 전 ‘고향의 민선 이장(里長)으로 봉사하고 싶다’는 핑계(?)로 부산의 병원을 접고 귀향한 H형은 해마다 생굴을 새해 선물로 보낸다. 물 맑은 통영 섬마을에서 갓 채취한 싱그러운 생굴에서는 H형의 후덕한 체취와 함께 바다향이 그윽하다. 굴 상자를 여는 순간 굴 상자는 나를 향한 이야기 상자가 된다. 그 이야기 상자는 윈드서핑을 타고 물 맑은 통영 앞바다를 누비던 옛 일로부터 스쿠버 다이빙과 여름철 가족캠핑의 감미로운 추억들을 하나둘 풀어나간다. 통영 근해에 아름다운 별처럼 뿌려진 150여 개의 크고 작은 섬 사이로 바닷물의 흐름은 빠르다. 한려수도 물길 따라 떠있는 굴양식용 부기가 바둑판을 점령한 흰 돌처럼 질서정연하다. 여든이 넘은 H형이 해마다 통영 생굴을 보내는 정이 두텁고 향기롭기 그지없다.      물 맑은 통영과 거제, 고흥과 여수, 충남 보령과 서산 등지에는 양식장과 선창을 바쁘게 오가는 굴 채취선과 굴 까는 아낙네의 손길이 펼쳐지는 풍경이 한 폭 그림이다. 우리 부부는 2006년 입동을 앞두고 H형의 부름으로 남망산 통영문화회관에서 열린 ‘통영국재음악제 가을시즌’에 초대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유리 테미르카노프가 지휘하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러시아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펠츠만의 협연으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들을 수 있었다. 호른이 도입부를 끌어오면 피아노 화음이 따라오면서 곧이어 장중한 주제가 등장하는 곡의 스케일이 가슴에 사무쳤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교향악단은 한 세기가 넘는 연륜에 세계 5대 교향악단을 자랑한다. 연주회에 앞서 H형 부부와 함께 묵혀둔 이야기보따리를 풀며 풀코스의 통영 굴정식을 맛보았다. 그 뒤로 겨울이면 생굴에 굴 구이와 굴전, 굴밥과 굴 국밥, 굴 무침과 굴튀김을 가리지 않고 즐겨 먹게 되었다.    통영에서 생굴이 온 날 점심을 아내의 정갈한 상차림으로 질 좋은 한우 등심 구이와 굴전, 버섯 구이로 집밥을 먹었다. 젊은 날에는 해장용 굴국으로 속을 푸는 일이 잦았다. 살이 오른 생굴을 넉넉하게 넣어 뚝배게로 끓여낸 굴 국밥의 진한 국물 맛이 가히 일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홉 종의 굴이 나온다. 참굴, 낙동강 하구의 강굴, 고흥 근해의 벗굴, 남서해안의 털굴, 남해안에 서식하는 바윗굴 등이다. “굴을 먹어라. 그러면 보다 오래 사랑하리라.”는 서양속담이 있다. 기원전 1세기부터 이탈리아 나폴리에서는 굴양식이 시작되었고 서기 69년 고대 로마 황제 아울루스 비텔리우스가 굴을 즐겨 먹었는데 로마 황제 위테리아스는 한꺼번에 굴 천 개씩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탄력 있는 피부와 아름다운 몸매를 위해 식탁에서 굴을 빼놓지 않았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짐(朕)이 곧 국가’라고 외친 프랑스 왕 루이 14세와 1871년 독일을 통일한 비스마르크도 굴 마니아로 전해진다. 나폴레옹은 전장에서 삼시세끼 굴을 즐겨 먹었고 삼총사를 쓴 프랑스 소설가 알렉산더 뒤마도 굴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서양에서 굴을 사랑한 인물로는 카사노바를 빼놓을 수 없다. 서양 최고의 플레이보이로 꼽히는 카사노바는 매일 아침 생굴 50개씩을 먹었다는 일화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생굴은 화이트와인이나 샴페인과 잘 어울린다. 분위기를 잡으려는 연인들이면 사랑을 고백하는 자리에서 생굴에 와인을 곁들이기도 한다. ‘굴에는 샤블리’라는 말이 있듯이 프랑스 부르고뉴 샤블리 지방의 화이트와인이나 이탈리아 소아베 화이트와인과 궁합이 맞는다. 정력적인 남성들이 즐긴 탓인지 굴은 정력제로도 널리 알려졌다. 식품영양학계에서는 굴을 ‘바다의 우유’이라고 일컫는다.       굴은 다른 조개류에 비해 아연(亞鉛, Zn), 철분, 칼슘 등 무기질이 풍부하고 비타민 B1, B2, 나이아신 등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가 넉넉하다. 칼슘 함량이 우유와 비슷할 정도로 많아 어린이 성장발육에 도움을 준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굴을 ‘바다의 우유’라고 부른다. 굴에 들어 있는 철분과 구리, 칼슘은 빈혈을 예방하고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다. 특히 정상적인 면역기능과 함께 세포분열에 필수 영양소인 아연을 함유하고 있다. 아연은 남성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는 영양소로 셀레늄과 함께 정력에 좋은 미네랄로 알려져 있다. 굴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의 형성을 돕는 아미노산이 풍부해 정력제로도 알려진 식품이다. 아연을 많이 함유한 굴은 우리 몸에 축적돼 있는 납 성분을 체외로 배출시키는 효능이 있고 굴에 있는 셀레늄은 대장암세포를 억제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여드름이 심한 환자가 굴을 먹으면 균 감염을 막을 수 있고 여성들에게는 멜라닌 색소를 분해하는 성분이 들어 있어서 피부 미용에 인기다. 또한 굴의 타우린 성분은 간 기능을 향상시킨다. 굴은 알코올을 해독하는 작용이 뛰어나 피로회복에 좋다고 한다. 굴은 뇌 기능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며 심혈관질환을 유발하는 콜레스테롤 생성을 억제하여 혈압을 낮춘다. 굴에는 비교적 콜레스테롤이 많지만 이를 타우린이 낮추어 준다. 굴은 동서양에 걸쳐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아 온 식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굴을 즐겨 먹었다. 선사시대 사람들의 쓰레기장인 패총에서도 굴 껍데기가 출토되고 조선 시대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굴은 동해안을 제외한 7도에서 나는 중요한 토산물로 기록되어 있다. 굴은 부르는 이름도 다양해 모려(牡蠣), 굴조개, 석굴, 석화(石花) 등으로 불렀다.       석화는 돌 ‘석(石)’자에 꽃 ‘화(花)’자로 바닷가 바윗돌에 꽃이 핀다는 뜻의 ‘돌꽃’으로 불렀다. 고서의 기록을 보면 고려시대는 석화 껍데기를 ‘모려’라고 부르며 약용으로 썼다고도 한다. 19세기 초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는 궁중에서 즐겨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굴 양식이 발전한 때는 구한말이었으나 지금 우리가 먹는 양식 굴 생산은 1970년대부터 붐을 이루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도 굴을 즐겨먹었다. 1795년의 <원행을묘정리의궤>의 수라상에는 ‘석화잡저(石花雜菹)’라고 나오는데 바로 이것이 굴을 넣고 담근 궁중의 섞박지 김치다. 굴은 자연산 못지않게 FDA가 인정하듯 양식 굴도 품질이 좋다. 굴양식을 많이 하는 통영의 갓 딴 큼직한 양식 굴은 색이 우윳빛을 띠고 살은 패주가 뚜렷하게 서 있는 것으로 둥그스름하고 통통하게 부풀어 신선하다. 굴은 겨울철이 제철이고 서양속담처럼 굴은 알파벳 ‘R‘자가 들어간 달에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굴을 냉장 보관하면 사시사철 향기로운 식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