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나오는 코미디언 목사? “허무주의 영성” 그 설교 때렸다
#궁궁통1
혹시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으신가요.
내가 다니는
교회의
담임목사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럴 때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나요?
다들
힘들 겁니다.
목회자의 설교는
뭐랄까,
하늘의 말씀을
대신 전달한다는
무언의 공감대 같은 게
교인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설교자를
예언자라고도 부르는데,
이때
미리 예(豫)자가 아닌
맡을 예(預)자를 씁니다.
하늘의 뜻을
맡아서,
대신 전한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설교는
그런
설교입니다.
그런데
목회자의 설교가
성역화하다 보니
별다른 견제가 없고,
설교 역시
목사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정말
가슴을 울리는
영성가의 설교가
있는 반면,
물건을 사라고
외치는
시장통 장사꾼 같은
설교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들의 설교를
적나라하게
도마 위에 올린
목사가 있습니다.
대구 성서아카데미 원장과
샘터교회 담임을
역임한,
정용섭 목사입니다.
서울의
한 책방에서
그와
마주 앉은 적이 있습니다.
#궁궁통2
정 목사의
설교 비평은
예리하고,
또
냉정했습니다.
목사끼리 주고받는
온정주의에 기반을 둔
덕담이나
알맹이 없는
미사여구식 칭찬은
찾아볼 수도
없었습니다.
활발한
방송 활동으로
코미디언처럼
웃음을 던져주던
장경동 목사의 설교에
대해선
“허무주의 영성”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서울 연세중앙교회의
윤석전 목사의
설교에 대해선
“예수천당, 불신지옥
패러다임의 카리스마”라고
비평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칫하면
다른 목사들로부터
‘왕따’를 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입니다.
궁금하더군요.
그런 줄
뻔히 알면서도
정용섭 목사는
왜
그토록 신랄하게
설교 비평을
한 걸까.
예전에
그 누구도
한 적이 없는
위험한 시도를
왜
굳이 하는 걸까.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고.
#궁궁통3
기원 실력으로
4급,
인터넷 바둑에선
1단이라는
정 목사는
바둑에 빗대서
이유를 설명하더군요.
바둑 두는 법을
적은 책이나
바둑의 내용을
기록한 걸
‘기보(碁譜)’라고 부릅니다.
“바둑의 기보(碁譜)는
텍스트다.
성서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텍스트다.
거기에는
숨어 있는 세계가 있다.”
바둑을
해설하는 사람도,
성서를
해석하는 사람도
그 숨어 있는
세계를
포착해서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만약
그 숨어 있는 세계를
찾아내지 못하면
설교는
어떻게 될까요.
“설교자가
엉뚱한 이야기만
하게 된다.
생각해 보라.
바둑을 모르는 사람은
수를 읽지 못한다.
그런 사람이
바둑 해설을 맡으면
어떻게 될까.
바둑의 기보는
풀어내지 않고,
상금이 얼마라거나
날씨가 어떻다는 등
바둑과 상관없는
엉뚱한 이야기만
하게 된다.”
정 목사는
설교도
똑같다고 했습니다.
성서 속의
숨은 세계를
찾아내지 않고,
헌금이나 물질적 부,
세상 속의 성공 등
엉뚱한 이야기만
펼쳐놓게 된다고
하더군요.
바둑판을 보면
19×19줄입니다.
그 안에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읽는 게
바둑 해설자의
몫입니다.
성서 역시
그런 바둑판입니다.
그 속에
길이 있습니다.
우리를
본질적으로
자유롭고 평화롭게
해주는,
숨겨진 길입니다.
“성서는
노출돼 있지만
동시에
은폐돼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격언이 있다.
그건 성서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문구다.”
#궁궁통4
성서에
숨겨진 세계,
성서에
숨겨진 길.
그걸
보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정 목사는
바둑으로 치자면
설교자가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프로 해설자는
다릅니다.
수 하나만 보고도
무궁무진하게
풀어냅니다.
왜 그럴까요.
길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프로기사 이세돌이
바둑을 둘 때,
그걸
더 넓게 볼 줄 아는
사람은
‘이세돌의 바둑’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이세돌의 바둑’에 있는
숨겨진 길과
숨겨진 세계를
마음껏
풀어낼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정용섭 목사는
작정한 듯이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내세워
교인들을 위협하거나,
세속의 성공만 강조하는
설교는
성서의 길과 어긋난다.
따지고 보면
신앙에도
고수와 하수가 있다.
아마추어 동호회 수준의
설교자는
종종 자기보다 아래인
하수를 농락한다.
기복주의 신앙,
기도 만능주의 신앙이
그런 예다.
그런 설교자는
교인들이
바둑을 배우는 것도,
기보를 익히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목사의 밑천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기도 만능주의가
왜 문제가 되는지
말입니다.
정 목사는
그건 현실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실제 기도한다고
다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서에는
기도했는데
왜 이뤄지지 않는가에
대한 고민이
이미 담겨 있다.
그게 ‘하나님의 침묵’이다.
오히려 이것이
성서에 담겨 있는
가장 깊이 있는 영성이다.”
그렇다고
정 목사가
기도 무용론을 주장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기도가 뭔가.
나의 욕구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가를
찾는 거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그걸 찾는 거다.
그래서
기도가 두려운 거다.”
그런 기도가
왜 두려운 걸까.
정 목사는
짧게 답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의 욕구에 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늘
그렇습니다.
나의 뜻이
무너진 곳으로
신의 뜻이
드러납니다.
그러니,
나의 욕구에 반하는
하나님의 뜻.
어쩌면 그건
우리가
신을 만나는
소중한
통로입니다.
[출처:중앙일보]백성호:종교전문기자